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26화 (226/300)

< 천국과 지옥. - (4) >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여자? 비리?’

두 단어의 조합이 불길하다.

박무혁 의원은 정치인이자 재벌이다.

뭘 가져다 붙여도 말이 된다.

‘정치인의 여자, 재벌의 여자…….’

게다가 비리라는 단어까지 끼어 있으니 생각은 점점 더 최악으로 이어진다.

‘만약 여자 문제, 그것도 나쁜 쪽이 터지면…….’

대선은 끝이다.

아니, 대선이 문제가 아니다.

내용에 따라 강제 은퇴도 가능하다.

하늘에 닿았던 권력도 땅에 처박아 버리는 게 여자 문제니까.

‘이게 박무혁 의원이 사라졌던 이유인가?’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정보가 더 필요해.’

그래서 박 회장의 속마음에 계속 집중했지만 여기까지였다.

그는 금세 평정심을 찾았다.

생각을 멈추고 대화를 끊어 버린다.

“유원희의 말은 노인네의 허세일 뿐이에요. 그놈은 무혁이의 털끝도 건들 수 없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선거 놀이나 하세요.”

더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박 회장의 표정엔 불쾌감이 가득하다.

아무리 성윤이라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음 놓고 선거에 집중하겠습니다.”

잠시 후, 성윤이 떠났다.

병실에는 다시 박 회장과 성종그룹 윤 회장만 남았다.

물끄러미 박 회장의 표정을 살피던 윤 회장이 지나가는 말처럼 묻는다.

“무혁이의 비리라는 게…… 혹시 대학 때 그 아가씨는 아니지?”

박 회장의 미간이 확 찌푸려진다.

“이런 고약한 늙은이가! 내 새끼들이 대학 다닐 때부터 쥐새끼를 붙여 놨던 거야? 대학생이 뭘 안다고!”

“고약하다니? 우리 집 가정부가 자네한테 용돈 받고 아파트를 샀던 것 기억 안 나나? 우리 집 식비가 그리 궁금했어?”

“에잉…….”

두 사람은 대정과 성종의 수장으로 참 오랜 시간 경쟁해 왔다.

때로는 치사하게, 때로는 더럽게…….

하지만 이제는 추억이고 과거다.

박 회장이 병실의 창문을 열더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몇 년 전만 해도 자네가 정말 미웠는데…….”

그의 입에서 씁쓸한 연기가 흐른다.

눈동자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다.

하지만 윤 회장은 그럴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무혁이의 문제, 그 여자가 맞지?”

박 회장이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까지 그 얘기 할 거야? 무혁이 대학 때 일이면 30년 전의 일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기억해? 오늘 아침 된장국에 시금치가 들어갔는지 냉이가 들어갔는지, 그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박 회장은 얼버무렸다.

하지만 윤 회장의 눈빛은 차가워진다.

그 눈빛은 확신에 가깝다.

“그 여자…… 혹시 한국에 들어온 것 아니야?”

“들어왔으면 왜?”

윤 회장과 박 회장의 눈빛이 점점 살벌해진다.

마치 한창 일선에서 일할 때처럼…….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해야 할 일이 뭔가? 자식들 앞길에 놓인 돌덩이를 치워 줘야지.”

형제끼리 물어뜯고 칼질하며 싸우는 것은 참을 수 있다.

가족이니까.

하지만 타인의 손에 내 자식이 죽어 가는 것은 볼 수 없다.

부모니까.

박 회장이 무거운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그건 내 알아서 할 테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여자의 팔을 꺾는 게 뭘 어렵다고 자네 도움을 바라나? 그건 됐고…… 나도 자네에게 하나 물어보지.”

“뭘?”

박 회장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묻는다.

“우리 무혁이, 대선에 나오면 뽑을 겐가?”

윤 회장이 다시 껄껄껄 웃었다.

“무혁이가 대통령이 되면 내 자식 머리채를 잡고 감옥에 처넣을 게 뻔해. 그런데 뽑으라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럼 자네는 뽑을 건가?”

박 회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혁이가 대통령이 되면 영훈이부터 잡아다 죽일 거야. 나보다 먼저 가는 자식을 볼 수는 없잖아?”

“죽인다고?”

“그럴 거야.”

“그 여자 때문이지?”

“30년 전 일은 기억에 없다니까?”

그리고 그 시각…….

성윤은 다시 서안시로 향하는 중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보인다.

‘여자…… 여자…….’

박무혁 의원에게 직접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하지만 물어보기는 어렵다.

힌트를 얻으러 왔다가 생각만 더 복잡해진 것 같다.

그때…….

‘설마?’

지난번 사건이 떠올랐다.

지금 정우와 연락하고 지내는 여기자 한정이…….

그녀와 성윤이 만났던 이유.

‘박무혁 의원에게 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성윤의 눈이 차가워졌다.

***

낮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이제 완연한 가을…….

대정 그룹과 유원희 의원의 싸움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문제는 새우 등만 터진다는 거다.

검찰! 유원희 의원의 사촌 동생 구속!

국세청, 대정 엔지니어링의 계열사 사장 차명 관리 계좌 의혹!

대정 자동차 노조 간부 소환 조사!

유원희 의원의 전 비서관으로 있던 황 모 씨,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도제성 의원의 지지율이 전주 대비 3%가 빠졌어요. 반면에 서용우 전 총리와 박무혁 의원님은 2%씩 올랐고요.”

정우가 성윤의 책상에 지지율이 적힌 서류를 내려 둔다.

1위, 민국당 도제성 40.2%.

2위, 대한당 서용우 26.1%.

3위, 한민당 박무혁 24.9%.

도제성 의원과 박무혁 의원은 15.3%의 차이…….

하지만 똥줄이 타는 것은 민국당이다.

그들은 대한당과 신당이 단일화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단번에 도제성 의원을 넘어서는 지지율이 만들어질 테니까.

그런데 성윤의 표정도 좋지 않다.

“아쉽네…….”

도제성 의원의 지지율이 빠지는 것은 유원희 의원 탓이 크다.

유원희 의원은 ‘민국당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부정적인 내용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2주 남았나?’

하지만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계약에 따라 도제성 의원이 가만히 있지만 추석이 시작되면 곧바로 반격할 게 분명하다.

‘그전까지 더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 번호는 유원희 의원이다.

“네, 의원님.”

-오늘 저녁 어떤가?

유원희 의원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검찰은 없다.

그래서 그는 성윤을 통해 검찰을 움직여야 한다.

“찾아뵙겠습니다.”

성윤 역시 유원희 의원에게 볼일이 있었다.

박무혁 의원에 관한 일을 알아봐야 한다.

통화를 종료하고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정우가 보인다.

“유원희 의원의 손주…… 계속 알아보고 있지?”

유원희 의원의 손주는 군대에 있다.

병과는 취사병이다.

그런데, 보직과 달리 장군의 자식을 과외 시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휴가와 외박 일수다.

입대한 시간이 300일이 조금 안 되는데 그동안 사용한 휴가, 병가 그리고 외박을 합하면 87일이다.

즉, 4일에 한 번은 밖에 있었다는 거다.

“적당한 시기에 터뜨릴 거니까 잘 포장해 놔.”

“그런데, 의원님? 유원희 의원 손주 문제요…….”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뇨, 한정이 기자에게 줘도 될까요?”

“잉?”

“요즘 특종, 단독 따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아는 사람 주면 좋은 거고 이걸 조사할 때 한정이 기자도 옆에서 좀 도왔거든요. 그래서…….”

“마음대로 해.”

정우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옙!”

정우는 모태 솔로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혼자였다.

심지어 성윤의 꿈속에서도 연애는 책과 미연시 게임으로 배웠다고 자랑했었다.

그런 녀석이 처음으로 여자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이번에는 꼭 탈출해라…….’

성윤은 정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

그날 밤.

성윤은 일식집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유원희 의원이 보인다.

유원희 의원이 성윤의 잔에 술을 채우며 말한다.

“정치권에 관심이 두 가지야. 알고 있나?”

하나는 대선이다.

도제성, 박무혁, 서용우 중 누가 청와대의 주인이 될 것인가.

그리고 두 번째는…….

“자네야.”

“저요?”

유원희 의원이 회를 집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박무혁이 대통령이 되면 자네가 뭘 받게 될 것인지 궁금한 모양이야. 장관, 당 대표, 청와대 수석……. 자네는 뭘 하고 싶나?”

공신 정치, 보은 인사…….

선거를 쫓아다닌 인간들에게 감투 하나씩 던져 주는 정치.

그리고 이만큼 해 줬으니까 저만큼 받아야 한다는 생각.

성윤은 관심 없는 일이었다.

“아직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건 이긴 후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유원희 의원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전 이뤄진 에피타이저 같은 대화였으니까.

하지만 성윤에겐 원하던 내용이다.

간 볼 필요 없이 곧장 질문에 들어갔다.

“그런데, 박무혁 의원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술잔을 입에 대던 유원희 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아뇨, 대선에는 여러 변수가 있지 않습니까? 네거티브, 갑자기 터지는 비리…… 그리고 여자 문제.”

“여자?”

“네.”

유원희 의원의 표정은 굳어간다.

그리고 성윤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유원희 의원을 보고 있다.

그 속마음을 들으면서…….

-설마 그 여자를 말하는 건가? 대정 건설에서 처리했다고 들었는데? 아니겠지…… 30년 전 일을…….

유원희 의원이 껄껄껄 웃기 시작한다.

생각은 음침한데, 표정은 밝다.

“혹시 그 이야기를 말하는 건가? 흔해 빠진 이야기야. 철모르는 부잣집 도련님과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꽃뱀, 이어진 집안의 반대, 던져 준 봉투. 꽃뱀은 만족했고 떠났지. 그게 끝이야. 박무혁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지.”

점점 확신이 든다.

그 여자는 꽃뱀이라 박무혁 의원과 사랑을 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민국당의 사주를 받고 그 여자가 박무혁 의원의 자식을 데리고 나타났었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사랑이 사라진 그 여자에게 어떤 한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그 여자를 찾는 게 우선인 것 같다.

그렇게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넘어갔다.

유원희 의원이 술잔을 들며 말한다.

“자, 이제 오늘 만난 이유를 말해야겠지?”

“편히 말씀하십시오. 검찰에 연락할 일이 있습니까?”

“아니, 그건 괜찮고……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지금 민국당과 사이가 좋지 않아.”

민국당의 의원들은 유원희 의원을 외면한다.

도제성 의원의 지시도 있었고 대정과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거다.

힘들 때 도와주지 않으면 토라지게 된다.

노인이면 더욱더…….

“난 이번 국회를 끝으로 정치도 끝낼 거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마지막을 즐길 걸세.”

유원희 의원이 술병을 들어 성윤의 잔을 채운다.

“내가 30년 넘게 쥐고 있던 내 지역구…… 살 생각 있나?”

“네?”

“내 지역구는 민국당의 텃밭이라 불리지. 빼앗기면 민국당은 큰 타격을 받을 거야.”

지역구를 돈 주고 사라니…….

이런 미친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내가 지지하면 동네 똥개도 당선될 수 있어. 비싸게 팔 생각은 없네.”

“……돈입니까?”

“돈과 내 가족에 대한 안전 보장. 원한다면 박무혁의 대선에도 개입해 주지.”

이제 보니 유원희 의원은 상당히 초조하고 간절해 보인다.

외곽만 치던 대정의 칼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어서다.

조금만 있으면 그의 목을 쑤시고 지나갈 거다.

어떻게든 막아 보려 하지만 민국당이 외면하고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돈으로 있는 진영일보에도 부탁해 봤다.

하지만 진영일보가 대정 그룹을 막기는 무리다.

그래서 지역구를 넘기면서까지 신당의 손을 잡으려는 거다.

박무혁 의원을 우산으로 사용해서 비를 피하기 위해…….

‘이거 참…….’

유원희 의원의 참 한심해 보인다.

그는 국회의원의 권력을 이용해 평생 떵떵거리며 살아왔다.

그런데, 마지막 1초까지도 천국에 있고 싶어 한다.

지역구를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까지…….

‘이게 대한민국 원로 국회의원이라니.’

지옥행 티켓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성윤은 꾹 참으며 빙그레 웃었다.

“의원님의 지역구는 앞으로도 의원님의 유지를 이어 갈 겁니다.”

“산다는 건가?”

“다른 분도 아니고 의원님의 부탁인데요, 당연히 사야죠. 아니, 지역구가 없어도 안전은 보장해 드려야 하고요. 지금껏 우리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고맙네, 고마워. 알아주는 것은 이 의원밖에 없어. 허허.”

유원희 의원은 성윤의 손을 덥석 잡는다.

그리고 위아래로 크게 흔들어 댄다.

살았다는 표정이다.

성윤이 따스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술 한잔 따르겠습니다.”

성윤은 공손히 그의 잔을 채웠다.

술자리는 새벽 1시가 조금 넘어서야 끝났다.

“그럼, 나중에 봅세.”

유원희 의원이 성윤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리고 기분 좋게 웃으며 차에 앉는다.

손까지 흔들며 떠난다.

허리를 굽히고 있던 성윤은 차의 엔진음이 멀어지고 나서야 자세를 바로 했다.

멀어진 차량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유원희 의원도 무너뜨리고 지역구도 뺏을 수 있다.

민국당과 도제성 의원의 지지율도 떨어뜨릴 거다.

하나의 일로 얻은 게 많다.

‘이제 슬슬…….’

성윤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정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의원님.

“유원희 의원에게 엿을 선물해 줄 거야.”

-시작할까요?

“그래.”

< 천국과 지옥.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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