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25화 (225/300)

< 천국과 지옥. - (3) >

박영훈 부회장이 휴대폰을 손에 쥔다.

“총장님, 박영훈입니다. 오랜만에 뵙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박영훈 부회장의 제의를 거절할 사람은 몇 없다.

검찰총장 역시 마찬가지…….

-알겠습니다.

***

며칠 후, 대정 호텔 지하 주차장.

검찰총장이 차에서 내렸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차 문을 닫는다.

‘혼자 오라니…….’

그는 박영훈 부회장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런데, 요구 조건이 있었다.

기사 없이 혼자 오라는 것…….

‘젠장.’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하다.

뇌물을 주겠다는 거다.

‘무슨 제안을 해도 거절해야 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 옷을 벗게 될 게 분명하다.

새로운 대통령은 입맛에 맞는 사람을 부리려 할 테니까.

여기까지는 상관없다.

예상하던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음 대통령은 도제성이 될 거야!’

그것은 여야가 뒤집어진다는 뜻이다.

그럼, 전 정권을 향한 칼질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베고 또 베고…….

왕권이 바뀐 후 벌어진 참수는 때 마다 이뤄졌던 역사니까.

그리고 검찰총장의 이름 역시 데스 노트에 적힐 수 있다.

그는 한상국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조심해야 해.’

말년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

검찰총장은 굳은 결심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대정 호텔 VIP실.

검찰총장은 박영훈 부회장과 마주 앉아 있었다.

가벼운 인사말이 오간 후 검찰총장이 조심스레 묻는다.

“어쩐 일로 부르셨는지……?”

느긋한 자세로 앉아 있던 박영훈 부회장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김용준 실장.”

그 말에 김용준 실장이 검찰총장의 앞에 섰다.

그가 서류 봉투 하나를 테이블에 올리며 입을 연다.

“퇴임 후 법률 자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정그룹의 법무 팀은 거대 로펌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유능한 변호사로 무장된 전문 집단이다.

그런데도 법률 자문을 부탁하는 이유는 단 하나.

전문 지식보다 우선되는 인맥.

책을 펴고 사건을 훑는 것보다 전직 검찰총장이 한번 움직이는 게 훨씬 효과적이니까.

“그리고 이번 노조 문제…… 저희가 준비한 시나리오가 있는데, 검토 한번 부탁드립니다.”

검찰총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검토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박영훈 부회장이 입을 연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면 직접 메가폰 들고 감독을 맡아 주셔도 좋고요.”

검찰총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준비했던 대로 거절의 말을 전했다.

“죄송합니다. 퇴임 후에는 세상 구경을 다니고 싶습니다. 법률 자문도 그렇고…… 일자리는 세상 구경이 끝난 후에 찾아볼 생각이라…….”

하나 거절한다고 포기할 김용준 실장이 아니다.

그가 테이블에 놓아뒀던 서류 봉투를 검찰총장의 앞으로 더 깊숙이 밀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책정한 총장님의 개런티가 얼마일지? 확인만 해 보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더 권하지 않겠습니다.”

검찰총장이 어색하게 웃는다.

“하하, 나 이거 참…….”

자신의 몸값이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이다.

그가 슬쩍 봉투를 손에 쥐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동시에 입이 쩍 벌어진다.

“백, 백억?”

박영훈 부회장이 빙긋이 웃는다.

“적습니까?”

“아, 아뇨…….”

“다행이네요.”

“하, 하지만…….”

박영훈 부회장이 손을 저었다.

“세탁기 여러 번 돌렸으니까 출처는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껏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계약금도 따로 준비했습니다. 사과 상자에 신사임당으로 가득.”

“가득요?”

김용준 실장이 테이블에 놓인 검찰총장의 차 키를 손에 쥐었다.

“트렁크에 넣어 두겠습니다. 보안 역시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은 대정 호텔이고 CCTV는 보안 점검으로 일시 정지될 겁니다.”

뭔가가 정신없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총장이 간신히 정신을 붙들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박영훈 부회장이 다시 그의 입을 막아 버린다.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야기 하죠.”

VIP실의 문이 열리며 헐벗은 여자들이 들어온다.

검찰총장까지 오르며 많은 접대를 받아 봤다.

하지만 박영훈 부회장의 눈은 높다.

쉽게 보기 힘든 미인들이다.

그녀들이 검찰총장의 옆에 앉는다.

이어서 테이블에는 고급 양주가 놓였고 밝았던 전등이 적당하게 어두워졌다.

박영훈 부회장이 술잔을 들며 말한다.

“혹시…… 이런 분위기 싫어하십니까? 그럼, 치울까요?”

검찰총장이 눈동자를 굴렸다.

옆에는 예쁜 여자가 있다.

좋은 향기도 난다.

그리고…….

‘백억을 준다고? 거기에 사과 박스?’

그의 계획은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고 심판의 날이 올 때 피해 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세탁된 돈이야.’

욕망은 눈을 흐리게 한다.

위험한 돈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검찰총장이 술잔을 손에 쥐었다.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술 한잔은 괜찮겠죠. 하하하하.”

두 사람의 잔이 부딪쳤다.

곧 여자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검찰총장은 술을 마시며 생각했다.

이곳이 천국이라고…….

***

김용준 실장이 복도로 나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대기하고 있던 한 남자가 빠르게 다가온다.

“필요하신 거라도……?”

김용준 실장은 남자에게 검찰총장의 차 키를 건넸다.

“사과 박스 옮기라고 해.”

“네.”

차 키를 받아 든 남자가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용준 실장이 몸을 돌린다.

그는 VIP실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복도를 걷고 계단을 내려간다.

그렇게 멈춰 선 곳은 2층 구석에 있는 보안실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던 경호원이 벌떡 일어선다.

“이상 없습니다!”

원래는 보안 요원이 있어야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박영훈 부회장이 오면 보안실 역시 경호원이 차지한다.

돈이 오가고 여자가 드나드는 모습을 보안 요원에게 보일 수 없으니까.

김용준 실장이 팔짱을 낀 채 모니터를 바라봤다.

수십 개의 모니터 중 한 곳에 검찰총장의 차가 보인다.

그리고 사과 박스를 옮겨 싣는 모습이 촬영되고 있다.

김용준 실장이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거…….”

눈치를 보던 경호원이 재빨리 말한다.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영상의 삭제는 항상 있던 일이다.

그래서 삭제하겠다고 말한 것인데 오늘은 평소와 다르다.

김용준 실장이 USB를 내밀고 있다.

“삭제하기 전에 복사해. 총장의 차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엘리베이터, 복도 그리고 여자까지.”

“네?”

“상대는 검찰총장이야. 언제 돌변할지 몰라. 보험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지.”

“아…….”

경호원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용준 실장은 경호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바로 복사해.”

그 시각, 성윤은 대정 병원에 가는 중이었다.

대정그룹 박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병원을 드나들며 치료를 하는데, 오늘이 검사를 받는 날이다.

‘알 수 있을까?’

박 회장을 만나려는 이유는 단 하나다.

꿈속의 미래…….

거기서 박무혁 의원은 정말 뜬금없이 정계에서 사라졌다.

‘비리? 치부? 아니면?’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창밖으로 대정 병원이라는 간판이 보일 때,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번호는 김용준 실장이다.

“네, 이성윤입니다.”

-CCTV 확보했습니다. 박영훈 부회장, 검찰총장 그리고 돈이 오간 정황이 확실하게 찍혀 있습니다.

성윤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이제 박영훈 부회장의 지옥행 티켓도 준비됐다.

유원희 의원과 박영훈 부회장이 박 터지게 싸우는 것을 지켜보면 된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

어차피 둘 다 지옥에 보낼 생각이다.

***

대정 병원 VIP실.

대정그룹 회장 박보인은 한심한 눈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성종 그룹 윤 회장이 앉아 있다.

두 사람은 침대에 앉아 장기를 두는 중이다.

그런데, 박 회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병원에 있어야 할 노인네가 왜 밖을 기어 나왔나 했더니…… 뭐? 나보고 핏덩이를 만나라고?”

박 회장은 성윤보다 윗세대의 사람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경제의 기둥이라 불렸던 거인…….

아무리 성윤이라도 쉽게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성종 그룹 윤 회장에게 부탁했고 그는 죽기 전에 소일거리라며 흔쾌히 허락했다.

박 회장의 말에 윤 회장이 껄껄 웃는다.

“이보게, 박 회장. 경영에서 손을 뗐다고는 들었어. 그런데, 죽을 때가 됐다고 세상 돌아가는 것까지 모르나? 이렇게 눈이 어두워서…….”

“내 혜안 걱정하지 말고 장기나 둬, 이 사람아.”

박 회장의 손에서 장기짝이 옮겨졌다.

윤 회장이 턱을 쓸며 입을 연다.

“자네 아들…… 셋 중 하나는 이미 감옥에 있지? 둘 중 하나도 감옥에 가게 될 거야.”

“악담인가?”

“그걸 결정할 놈이 이성윤이야.”

윤 회장이 장기짝을 이동한다.

동시에 박 회장이 인상을 콱 찌푸린다.

외통수다.

박 회장이 손에 쥐었던 장기짝을 탁 던졌다.

“에이…….”

윤 회장이 슬쩍 웃으며 말한다.

“졌지?”

“밥 먹고 장기만 뒀나……. 한판 더 해.”

박 회장이 장기판을 정리할 때, 윤 회장이 지나가는 말처럼 툭 말을 내뱉었다.

“만나 봐.”

“누구? 이성윤? 몇 살이라고 했지?”

“서른하나일 거야.”

“서른하나?”

“그래.”

박 회장이 무릎을 치며 웃기 시작한다.

“으핫핫핫!”

한참을 웃던 박 회장이 웃음을 뚝 그치고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는다.

“윤 회장…… 나보고 서른한 살짜리를 만나라고?”

“그래.”

“서른한 살짜리가 내 아들놈들을 감옥에 보낸다 만다 결정할 거라고?”

“그래.”

“서른한 살의 경륜이면 뻔 해! 갓 대학을 졸업해서 이제 세상을 알아 갈 나이야. 그런데, 고작 그런 놈이?”

두 사람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박 회장이 한숨을 내뱉는다.

“병원장이 왔나 봐. 장기는 나중에 둬야겠어.”

박회장이 장기짝을 던지며 손을 털었다.

병실의 문이 조용히 열린다.

그런데, 들어온 사람은 병원장이 아니다.

윤 회장의 비서실장인 정기화…….

그리고 성윤이 들어왔다.

박 회장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성윤?”

그 눈은 이내 찌푸려지며 윤 회장에게 옮겨졌다.

윤 회장은 모른 척 창밖을 바라본다.

그사이 성윤은 성큼성큼 박 회장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예의 바르게 허리를 굽힌다.

“이성윤이라고 합니다.”

박 회장은 매서운 눈으로 성윤의 모습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런데, 성윤의 눈빛에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다.

서른한 살이면 오금을 저려도 모자랄 텐데, 오히려 박 회장을 뜯어먹을 듯이 보고 있다.

박 회장이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 의원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어떤 일이십니까?”

박 회장이 예상하는 성윤의 답은 두 개다.

‘박무혁 의원을 도와 달라. 다른 재벌이 방해하는 것을 막아 달라’ 또는 ‘예전부터 존경했습니다. 어쨌습니다.’

아부성 인사말이 한참을 채울 거다.

누구나 그랬고 언제나 들어 왔던 말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유원희 의원과 박영훈 부회장이 대립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뭐요?”

뜬금없는 질문에 박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보니 처음부터 성윤의 눈빛에 ‘아부’는 없었다.

그저 당당하다.

가만히 보니까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이 예상하던 것과 다른 듯하다.

“유원희 의원과 박영훈이요?”

“네.”

두 사람의 신경전을 박 회장이 모를 리 없다.

“압니다만, 그래서요?”

“제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대정 그룹을 만든 것은 유원희 의원이다. 유원희 의원이 정권의 눈과 귀를 막아 줬다. 만들었다는 것은 그 손으로 없앨 수도 있다는 것. 박영훈이 부회장과 박무혁 의원도 다 없앨 수 있다.”

“……!”

“전 박무혁 의원의 대선을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볍게 듣고 넘길 수 없었습니다. 상대는 국회의 어른인 유원희 의원이니까요. 정말 유원희 의원이 박무혁 의원도 없앨 수 있는 겁니까? 대정의 모든 것을 알고? 말씀해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윤은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동시에 박 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주름진 주먹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다.

자기 자식들끼리 치고받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끼리의 싸움이니까.

그런데, 외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건들면…….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다.

“유원희가 그런 소리를 지껄였다고?”

그때, 옆에 서 있던 정기화 실장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다.

“박무혁 의원도 비리가 있다고요?”

정말 눈치 없는 소리다.

윤 회장이 정기화 실장을 쏘아본다.

“정 실장…….”

“앗, 죄송합니다.”

정기화 실장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내뱉은 대역 죄인의 표정을 지으면서…….

하지만 그 행동은 모두 연기, 이곳에 들어오기 전 성윤이 부탁했던 말이다.

모든 것은 박 회장의 속마음을 듣기 위해서다.

그리고 성윤의 시선이 박 회장에게 향했다.

그의 속마음이 들려온다.

-무혁이의 비리? 혹시 그 여자? 지금 한국에 없을 텐데…….

< 천국과 지옥.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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