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24화 (224/300)

< 천국과 지옥. - (2) >

동시에 유원희 의원은 담배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몇이나 올까?’

전부 오지는 않을 거다.

놈들은 자기 안위가 1번이니까.

‘그럼, 여덟 명 정도?’

머릿속에 친했던 의원들의 이름이 스쳤다.

공천을 줬던 사람, 뇌물을 나눴던 사람, 함께 계집질을 했던 사람…….

‘……그 정도는 오겠지.’

한 가치, 두 가치……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쌓이기 시작했다.

마음은 점점 약해진다.

‘네 명은 올까? 아니 세 명?’

그리고 약속된 6시가 훌쩍 지나 8시 20분이 되었다.

유원희 의원은 여전히 혼자 있다.

스무 명이 앉아도 넉넉할 공간이라 더 쓸쓸해 보인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보좌관?”

미닫이문이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왔다.

아무도 오지 않았으니 엄청 죄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네, 의원님.”

목소리조차 기어들어 간다.

“연락해 봐. 무슨 일이 있으니까 못 오고 있을 게야.”

보좌관이 우물쭈물한다.

“해 보라니까?”

이미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봤다.

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소리샘으로 연결될 뿐이다.

보좌관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에 유원희 의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받는가?”

“……죄송합니다.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아무도?”

보좌관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유원희 의원이 억지웃음을 짓는다.

‘버림받은 것인가? 쫓겨난 것인가?’

주름진 손에 힘이 풀린다.

그때…….

“잠시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보좌관이 고개를 틀어 본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이, 이성윤 의원?”

유원희 의원도 마찬가지다.

의아한 시선으로 문 앞에 선 성윤을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눈빛을 받으며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유원희 의원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와.”

잠시 후, 성윤과 유원희 의원이 마주 앉아 있었다.

파전 하나와 소주 한 병이 두 사람의 사이에 존재하는 전부다.

유원희 의원이 성윤의 잔을 채우며 조용히 웃는다.

그는 지금 여유로운 척하고 있다.

하지만 속마음을 들어 보면 무척 초조하다.

불과 며칠 전, 세상은 유원희 의원의 앞에서 굽실거렸다.

어딜 가도 ‘존경하는 의원님’이라는 말을 들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을 씹어 먹던 강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에서 쫓겨난 늙은 사자다.

세상을 포효했던 목소리는 갈라졌고 근육은 시들었다.

하이에나에게 둘러싸여 비참히 죽어 갈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 어쩐 일인가?”

“의원님을 돕고 싶어서 왔습니다.”

유원희 의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은 대선을 앞둔 상황이다.

유원희 의원을 물고 뜯고 난리를 쳐서 민국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돕겠다니…….

“바라는 게 있나?”

“박영훈 부회장에 대한 견제죠.”

솔직한 답에 유원희 의원이 껄껄 웃는다.

“괜찮은 거래겠어. 그래, 어떻게 도와줄 건가?”

“먼저 기한을 정하겠습니다. 기한은 한 달.”

“한 달?”

“저희도 계속 의원님의 손을 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유원희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한민국은 사건 사고가 많아. 오늘 아침과 저녁의 실검이 다르지. 한 달 후면 내 이야기는 잊힐 거야. 좋아, 그렇게 하지.”

유원희 의원이 동의하자 성윤은 가져온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저희가 확보한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입니다. 노조 문제 외에도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주와 손녀까지…… 가족 전체를 털고 있습니다.”

유원희 의원이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서류를 손에 들어 펼쳤다.

“이, 이 새끼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다.

그런데, 검찰에서 비리로 엮고 있다.

유원희 의원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 이것도 박영훈 짓인가?’

지난번 대정 그룹 전략기획 실장이 찾아와 말했었다.

-박영훈 부회장이 검찰의 체면을 세워 주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그러려면 유원희 의원님을…….

물론 대정 그룹 전략기획실장 심경로가 그를 찾아간 것은 성윤의 지시였다.

게다가 검찰에 손녀의 소스를 넘긴 것 역시 성윤이다.

하지만 유원희 의원은 여전히 박영훈 부회장만 생각한다.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초조함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유원희 의원은 성윤의 손바닥에서 놀고 있었다.

성윤이 그의 속마음을 들으며 악마의 목소리를 속삭였다.

“저희가 파악하기로 검찰과 대정 그룹이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유원희 의원이 어이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 숨통을 끊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그럴 것 같습니다.”

“내 머리를 성문에 걸어 놓고 아들, 손자, 며느리…… 순서대로 까발리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물타기를 하겠다는 건가?”

사건의 시작은 유원희 의원과 박영훈 부회장이 대정 자동차 노조와 전략적으로 손잡은 거다.

그게 본질이다.

그런데, 사건의 끝은 유원희 의원 가족의 비리다.

그럼,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이 학교를 찾아갈 거다.

아직 미성년자인 손녀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고 인터뷰를 요청할 게 분명하다.

“입시 비리를 준비하고 있던 게 사실입니까!”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유원희 의원의 입에서 칼날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야! 어린아이를 정치 싸움에 집어넣겠다고! 입시도 치르지 않은 애를 입시 비리에 엮어! 이런 개 같은 새끼!”

유원희 의원의 눈동자는 시퍼렇게 번쩍였고 얼굴은 시뻘겋게 변했다.

성윤은 유원희 의원이 뒤틀린 심사가 추스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담배를 입에 물고 무거운 연기를 뿜어 댈 때 입을 열었다.

“저희 당에서 검찰의 수사를 한 달 정도 미뤄 놓겠습니다.”

“고맙네.”

“언론을 전부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그것도 고맙네.”

유원희 의원은 자기를 사냥하는 사냥꾼의 손을 덥석 잡고 있었다.

그것도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성윤은 밖으로 나왔다.

차에 몸을 실으며 휴대폰을 귀에 댄다.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어떻게 됐지?

“박영훈 부회장은 유원희 의원을 상대하느라 정신없을 겁니다. 잠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문이 열리며 운전석으로 정우가 들어온다.

묘하게 웃고 있다.

“왜 웃어?”

“유원희 의원 보좌관이요, 오늘 완벽히 넘어왔어요.”

“그래?”

지난번, 정우는 유원희 의원의 보좌관을 만나 손잡는 것을 제의했다.

그리고 오늘 완벽한 승낙을 받았다.

정우가 안전벨트를 매며 말을 잇는다.

“보좌관도 생각이 많았나 봐요. 유원희 의원은 곧 침몰할 텐데, 계속 함께 가야 하나, 아니면 옮겨 타야 하나?”

그는 비서관부터 시작해서 십수 년간 유원희 의원을 보좌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

심지어 결혼식 주례까지 봐준 게 유원희 의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정 때문에 같이 침몰할 수는 없다.

보좌관은 아직 젊고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꿈도 있다.

“그런데, 오늘 아무도 안 왔잖아요. 결정에 도움을 준 거죠, 갈아타기로. 그리고 갈아탄 기념으로 선물 하나 받아 왔어요.”

정우가 씩 웃으며 잘 접힌 쪽지 하나를 꺼냈다.

“뭐야?”

“받아 온 선물요.”

성윤이 쪽지를 받아 펼쳤다.

작은 글씨로 인쇄된 달력이다.

‘X’ 자가 곳곳에 보인다.

“이게 뭐야?”

“유원희 의원의 손주가 군대에 있는 것은 알죠? 휴가 나온 날을 체크한 거예요.”

쉴 틈 없이 X가 그어져 있다.

보통 병사라면 생각도 못 할 휴가와 외박 기간이다.

“과외병이라고 하거든요? 실보직은 취사병인데, 관사로 출퇴근하면서 사단장 막내딸을 과외해 주고 있대요. 성적이 잘 나오면 휴가 그리고 외박. 그래서 그런지 이제 일병인 놈이 휴가, 병가, 외박, 포상 휴가, 공무상 외박해서 입대 후 87일을 밖에 있었어요.”

성윤이 엷게 웃었다.

“괜찮네.”

성윤이 유원희 의원을 공격하는 것은 앞으로 한 달 후다.

그동안은 유원희 의원을 응원할 거다.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과 열심히 싸우라고.

유원희 의원은 박영훈 부회장을 상대하는 한편 손녀딸이 가진 비리를 지우려고 노력할 거다.

흔적과 냄새를 박박…….

그래야 자신의 손녀딸이 훌륭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으니까.

성윤이 손에 든 작은 달력을 흔들었다.

“그때, 손주의 휴가 일수가 터지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군대 문제는 민감하다.

거대 권력자도 무너뜨리는 게 병역비리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방어하기 어려운데 그게 병역 문제라면…….

“조사해 봐. 겸사겸사 다른 의원들의 자제들, 군대에서 실 보직이 뭐였는지도 알아봐.”

“옙.”

“그리고 보좌관이 우리 손을 잡았다고 했지? 유원희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 달라고 해.”

정우가 자랑스럽게 웃는다.

“그건 이미 부탁했죠. 하하하.”

“잘했어.”

성윤이 고개를 틀어 창밖을 바라봤다.

유원희 의원과 대화를 하며 그의 속마음을 샅샅이 살폈다.

그런데, 그의 속마음에서 들려온 찝찝한 음성이 있었다.

-대정 그룹은 내가 만들었어! 정권의 눈과 귀를 막아 준 게 나야! 그런데, 박영훈 이 새끼가 은혜를 몰라? 내가 만들었다는 것은 내 손으로 없앨 수도 있다는 거야! 난 박영훈이고 박무혁이고, 다 죽여 버릴 수 있어!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렀다.

성윤은 하나의 계획을 세울 때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하고 또 한다.

그곳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 움직인다.

하지만 세상엔 언제나 ‘툭’ 튀어나오는 변수가 존재하는 법이다.

‘계획대로 갔으면 하는데…… 변수 없이…….’

상대는 유원희라는 늙은 여우다.

게다가 역사의 산증인이다.

성윤이 알지 못하는 대정 그룹과 박무혁 의원의 과거를 알고 있다.

‘그게 혹시……?’

꿈속의 미래.

박무혁 의원은 역사의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 이유와 찜찜함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대선 끝까지 쫓아올 것만 같다.

‘유원희 의원이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정우야.”

“박영훈 부회장과 박무혁 의원님, 그리고 그쪽 형제들 스케줄을 알아봐.”

정우가 눈을 깜빡인다.

“몰래 알아보라는 거죠?”

“어.”

“갑자기 왜요?”

“박 회장을 만나 보고 싶어.”

“네?”

대정 그룹 박 회장…….

성종 그룹 윤 회장과 더불어 대한민국 경제의 거대 기둥 중 하나다.

불과 90년대만 해도 박 회장의 돈을 받지 않고는 정계에 들어올 수 없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지금은 병석에서 오늘내일하고 있지만 꿈속의 미래를 생각하면 사망 시점은 아직 몇 년 더 남았다.

“그 형제들 모르게 만나 봐야겠어.”

정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본다.

“의원님? 우리가 간다고 만나 주지 않을 것 같은데요.”

“명분은 충분해.”

***

“말해.”

박영훈 부회장의 싸늘한 목소리가 회의실 공기를 더욱 얼어붙게 했다.

“대한당과 민국당 그리고 신당이 동시에 우리 대정을 타깃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이유는?”

“대선 전에 인기를 끌기 위한 꼼수인 것 같습니다. 슬로건으로 재벌을 잡아 사회정의를…….”

박영훈 부회장의 주먹이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찍었다.

“우리가 악이야! 우리 없으면 굶어 죽을 새끼가 몇인데! 공장 몇 개를 폐쇄해야 정신을 차릴까! 거지 같은 새끼들.”

보고자는 박영훈 부회장의 목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박영훈 부회장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검찰에서는 국민 여론이 있어서 수사는 해야 한다고…….”

“그동안 내 돈 받아먹은 놈들은? 아직도 외곽으로 빠져 있나?”

“네.”

“그럼, 도마뱀 꼬리는? 검찰에서 요구하는 게 어디까지야? 합의한 것 있지?”

보고자가 다시 눈치를 본다.

동시에 회의실에 앉은 간부들은 고개를 숙인다.

총알받이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자진 출두해서 검찰의 포토 라인에 설 사람.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내뱉을 제물!

그런데…….

“부회장님이…… 직접 한번 움직…….”

박영훈 부회장이 나가란 소리다.

“이런 미친 새끼가!”

박영훈 부회장이 재떨이를 손에 쥐고 집어 던졌다.

재떨이는 보고자의 옆을 스치며 쾅, 스크린에 박힌다.

보고자가 다급히 허리를 굽힌다.

“국회 전부가 대정을 타깃으로 잡았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닥쳐!”

정답은 박영훈 부회장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박영훈 부회장이 원하는 것은 꼼수다.

그리고 대정이 사는 게 박영훈 부회장의 목표가 아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이 사는 거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김용준 비서실장이 입을 연다.

“부회장님, 유원희 의원은 평생을 정계에서 살아온 괴물입니다. 조금만 쑤셔도 악취가 흐를 겁니다.”

박영훈 부회장이 화를 꾹 참으며 김용준 비서실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사건의 끝을 유원희 의원으로 맺을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도 완벽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려면 검찰총장을 만나셔야 합니다. 며칠 전 제가 만나 봤지만 검찰총장이 어깨에 요즘 힘이 들어가서…….”

“총장을 만나라고?”

“네.”

검찰총장을 만나는 것, 포토 라인에 서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다.

박영훈 부회장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지.”

그런데 지금 김용준 실장의 말과 행동은 성윤에게 지시받은 거다.

박영훈 부회장이 검찰총장을 만나 뇌물을 건네는 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 천국과 지옥.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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