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23화 (223/300)

< 천국과 지옥. - (1) >

박무혁 의원의 시선이 테이블에 앉은 최고위원들에게 향한다.

그곳에 성윤도 앉아 있다.

성윤과 눈을 마주친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은 알겠다.

‘고생했어.’

박무혁 의원의 시선이 성윤과 최고위를 지나더니 노트북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당직자들에게서 멈춘다.

“네티즌 반응은?”

당직자들이 답한다.

“유원희 의원의 정치 인생에서 오늘이 최악의 날이 될 것 같습니다!”

“댓글 늘어나는 속도가 어마합니다. 벌써 천 개가 넘었습니다!”

“실검도 장악하는 중입니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론 기관에서는 뭐라고 그러지?”

“의혹이기 때문에 유의미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측합니다. 하지만 장기화되거나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적게는 3%, 많게는 7%까지 급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추석 민심을 손에 얻을 수 있다.

박무혁 의원이 손뼉을 짝 쳤다.

“준비하고 있던 기사, 언론에 넘겨.”

“네!”

당직자는 노트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화면에 만들어 둔 기사가 보인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야당의 원로 국회의원이 이 사건에 관여되었다며……(중략)……원로 국회의원은 슬하에 손주와 손녀가 한 명씩 있는데, 손주는 군대에서……(후략)…….

이름만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누가 봐도 유원희 의원이다.

당직자는 곧장 친한 기자에게 기사를 보냈다.

곧 ‘단독’ 타이틀을 달고 기사가 올라왔다.

<단독> 검찰, ‘야당의 원로 국회의원, 수사 착수. 성역은 없다.’

댓글이 주르륵 달린다.

-유원희네.

-응, 유원희.

-유원희입니다.

-성지순례 왔습니다.

댓글을 지켜보던 최고위 위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민국당 지지율 좀 빠지겠는데요?”

“몇 년간 기세등등했지? 오늘 난리 났겠네.”

“아, 위장에 박혀 있던 돌덩이가 내려간 기분이야!”

대한당 출신 의원들은 대놓고 씹는다.

반면 민국당 출신들은 울고 있다.

슬퍼서가 아니라 하도 웃어서…….

그동안 민국당 의원들에게 잦은 모욕을 당했다.

“병신들…… 조금 있으면 민국당이 여당이 될 텐데, 신당은 왜 가? 우리나라 정치 구조에서 신당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걔들 다 망했어.”

친하다는 이름으로 전해 온 비난.

되갚아 줄 때가 됐다.

민국당 출신 의원들이 거세게 입을 연다.

“포털 사이트에 연락해서 유원희 의원 이름을 1위에 박아 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저는 지금 아는 언론사에 전부 연락했습니다. 기사 쏟아 내 달라고!”

다들 실컷 떠들고 있다.

박무혁 의원은 그들을 잠시 내버려 둔다.

때로는 가만히 놔두는 것도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니까.

당직자가 다가와 박무혁 의원의 옆에 섰다.

“의원님도 읽어 보세요.”

박무혁 의원의 손에도 태블릿 PC가 건네졌다.

그가 관련 기사를 죽 훑는다.

복사, 붙여 넣기를 한 것 같은 기사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때가 좋았어.”

이번 사건은 별것 아닌 일로 묻힐 가능성이 높았다.

대한민국이 워낙 버라이어티 해서 그런지 국민들은 웬만한 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언론에 나온 기사가 착했다.

수해 현장에 나가 고생하는 봉사자.

봉사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는 이재민들…….

화기애애한 기사와 뉴스가 며칠 동안 이어진 거다.

그러다가 자극적인 기사가 터지자 네티즌은 대동단결해 모이고 있었다.

게다가 소스도 좋다.

자칫 위험한 상황에 놓일 뻔한 노동자들.

그런데, 알고 보니 조작된 사건!

사람들을 위기에 몰아넣은 인물을 찾아보니 원로 국회의원 유원희!

-이런 씨발! 국회의원이 사람을 죽이려고 그랬냐!

-사형! 사형! 사형! 사형!

-의혹이잖아! 설레발치지 마!

-이게 의혹이라고? 손주는 군대에 있고 손녀는 고등학교 2학년, 가정사가 딱 유원희잖아, 개돼지야!

박무혁 의원은 계속해서 기사를 죽죽 넘겼다.

그러다가 그의 손이 뚝 멈칫거렸다.

물끄러미 기사를 확인한 박무혁 의원이 시선을 틀어 당직자를 향한다.

“이거.”

당직자가 재빨리 박무혁 의원의 옆에 섰다.

“말씀하십시오.”

“이 기사…… 실검에 오를 수 있게 노력 좀 해 봐.”

태블릿 PC를 넘겨 받은 당직자가 기사를 확인했다.

조작된 사건, 어쩌면 잃었을 수백 명의 목숨, 그들을 살린 국회의원 이성윤

성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구한 이야기가 재조명되는 중이다.

박무혁 의원이 당직자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유원희 의원을 살인자로 칭한 기사랑 오버랩 시키도록 해.”

비교 대상이 있으면 그 효과는 더 커진다.

하지만 꼭 그 효과를 바라며 올릴 기사는 아니다.

고생한 성윤에 대한 작은 보답이다.

당직자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란스러움이 잦아든 것은 30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박무혁 의원이 테이블 앞에 섰다.

“회의 시작하죠.”

성윤을 제외한 최고위들 모두가 기대로 가득한 눈빛으로 박무혁 의원을 보기 시작한다.

‘대선의 시작이구나!’

‘선거는 누구 하나 잡아야 재미있지!’

이들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으로 통일되어 있다.

유원희 의원을 어떻게 잘근잘근 씹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그런데 들려온 말은 달랐다.

박무혁 의원이 말한다.

“우리는 유원희 의원을 도울 겁니다.”

“네? 유원희 의원을 돕는다고요?”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에 최고위들은 눈만 깜빡인다.

가루로 만들어도 모자란데, 돕겠다니…….

“그게 무슨……?”

순간, 설치된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이어서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과 유원희 의원의 얼굴이 보인다.

박무혁 의원이 화면으로 몸을 돌리며 말한다.

“기사를 보면 대정 그룹의 일에 유원희 의원이 참견한 것처럼 나가고 있어요. 두 사람은 서로 살기 위해 총을 꺼낼 겁니다. 총구를 겨누겠죠.”

최고위들은 박무혁 의원의 뜻을 단번에 이해했다.

박무혁 의원의 최대 걸림돌은 박영훈 부회장이다.

이번 사건을 잘 이용하면 박영훈 부회장 시선을 꽁꽁 묶어 둘 수 있다.

“끝까지 팽팽해야 합니다. 추석 전까지는 유원희 의원을 이용해서 박영훈 부회장의 행동을 잡아 둘 겁니다. 그러려면 유원희 의원에게 힘을 보태 줘야죠. 박영훈 부회장과 열심히 싸울 수 있도록.”

“……!”

“그리고 두 사람이 싸우는 동안 우리는 민심을 얻어야 합니다. 전국에 박무혁이라는 이름이 휘날려야 합니다.”

박무혁 의원이 강렬한 눈빛으로 의원들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이제 우리들의 대선이 시작됐습니다.”

의원들의 심장이 쿵쾅쿵쾅 울리고 있었다.

입은 바싹바싹 마른다.

유원희 의원을 농락하고 박영훈 부회장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며 시작되는 대선…….

승리하면 집권 여당!

패배하면 쩌리…….

박무혁 의원의 낮은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저는 청와대를 차지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예!”

잠시 후, 의원들이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걷는 그들의 눈빛은 아침과 달리 살기가 가득하다.

대한당이고 민국당이고 씹어 먹어야 해결될 것 같다.

성윤의 옆으로 공대출 의원이 섰다.

“차 한잔할 텐가?”

성윤은 공대출 의원과 함께 휴게실로 이동했다.

공대출 의원이 캔 커피를 뽑아 건네며 말한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어. 물어봐도 되겠는가?”

“말씀하세요.”

“아까 박 의원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어. 정통이 없는 신당에서 정말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겠구나…….”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만들어야겠죠.”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박무혁 의원이 아니라 자네야.”

“저요?”

성윤이 마시던 캔 커피를 내려 두며 공대출 의원을 바라봤다.

공대출 의원이 눈을 빛내며 묻는다.

“박무혁 의원이 청와대에 가면 우리 당에는 수장이 없어. 당 대표라는 자리가 공석이지. 그럼, 집권 여당의 당 대표 전당대회가 열릴 거야. 대대적이겠지……. 그때, 자네는 어쩔 셈이지? 그때도 킹메이커가 될 텐가? 아니면 직접 왕의 자리에 앉을 텐가?”

“……!”

“난 자네가 탐욕적인 왕이 되었으면 좋겠어. 지지하겠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다들 공대출 의원 역시 성윤의 계파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썩어 빠질 만큼 돈도 많다.

인지도와 지지율 역시 마찬가지다.

대선 주자급은 아직 아니지만 이름이 꽤 높다.

집권 여당의 당 대표가 될 자격은 충분하다.

성윤은 대답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글쎄요.”

***

-필리핀으로 떠난 대정 자동차 노조 위원장이 행방을 감췄습니다. 검찰은 추적을 하는 한편 국내 수사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네티즌들은 노조 위원장의 뒤에 선 원로 국회의원이 누구인지에 대해…….

유원희 의원이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삑’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이 꺼진다.

“이게 전부 박영훈의 짓이라고?”

유원희 의원의 목에 칼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누가 공격했는지 모르고 있다.

애꿎은 박영훈 부회장만 잡고 흔드는 상황이다.

이러니 방어를 해 봤자 헛수고다.

“이래서 장사하는 새끼들은 믿을 수 없는 거야. 신의가 없어.”

유원희 의원이 몸을 일으킨다.

“검찰총장을 만나야겠어.”

보좌관이 답한다.

“검찰총장은 박영훈 부회장이 섭외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하니까 섭외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법무부 장관에게 밥이나 먹자고 연락해.”

“법무부 장관도 이미…….”

유원희 의원이 껄껄 웃는다.

“박영훈 그놈이 행동력이 좋아. 하지만 멀었어. 의원 중에 검찰총장의 선배가 있나?”

“신성직, 서동성 의원이 대검에 있을 때 직속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민승, 곽준호 의원이 후배였습니다. 윤헌식 의원과 김만철 의원은 같은 대학 선배였고 연수원 동기로 판사 출신…….”

‘직속’이라는 단어는 참 끈끈하다.

밀어주고 끌어 주고…….

“네가 검찰총장을 그만두면 우리가 뒤를 봐줄게.”

그렇게 카르텔이 완성되고 자기들끼리 다 해 먹고…….

유원희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호명한 놈들, 검찰 출신 의원들, 판사 출신 의원들 그리고 법밥 좀 먹어 봤다는 놈들……. 모두 연락해서 오늘 밤에 모이라고 해. 노인네가 술 한잔 산다고.”

“알겠습니다.”

유원희 의원은 자신이 부르면 모두가 쪼르르 달려올 것이라 믿고 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거절당한 적 없이, 모두가 떠받들어 주는 왕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천천히 창가로 걸어간다.

블라인드를 걷어 창밖을 바라보며 유원희 의원이 입을 연다.

“보좌관, 그거 아나? 대정 그룹은 내가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어. 병석에 누운 박회장에게 개발되는 땅 정보를 알려 준 게 나야. 노조가 파업했을 때 경찰을 투입시켰던 게 나였고. 사람이 죽었을 때 언론을 막아 준 것도 나였어. 세금부터 시작해서 자질구레한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모든 도움을 줬지.”

“…….”

유원희 의원이 씁쓸하게 웃는다.

“내 손으로 만든 대정 그룹을 없애야 한다니……. 가슴이 쓰려.”

***

같은 시각, 민국당 당사.

도제성 의원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다.

“한 방 맞았어.”

도제성 의원의 보좌관이 옆에 선다.

“맞다니요?”

“아니야, 됐어.”

어제 성윤을 만났다.

유원희 의원을 공격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어도 이틀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터뜨리다니…….

도제성 의원이 시선을 틀어 보좌관을 향했다.

“보좌관, 의원들에게 전해. ‘유원희 의원의 의혹은 사실이다. 검찰은 꽤 많은 증거를 갖고 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같이 휩쓸릴 수 있으니 몸을 사려라.’ 이렇게.”

보좌관이 수첩에 지시사항을 적는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지시하실 게 있습니까?”

“최고위를 소집해. 유원희 의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회의를 해야겠어.”

보좌관은 고개를 숙인 후 방을 떠났다.

도제성 의원의 시선은 다시 텔레비전으로 향한다.

‘이성윤…….’

성윤은 정확히 타깃의 머리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날아간 탄알은 유원희 의원의 정치 목숨을 앗아 갈 거다.

‘대단해.’

성윤 한 명의 힘으로 민국당이라는 거대 정당의 지지율이 휘청일 예정이다.

하지만 그보다 두려운 점은 언론과 정계, 그 어디에서도도 성윤의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대정 그룹과 유원희 의원의 이름만 들려오고 있다.

‘이러면 진영일보에서도 이성윤을 찾아낼 수 없지.’

도제성 의원이 깎지를 꼈다.

‘데려올 수 있을까?’

성윤이 자신의 옆에 있어준다면 원하는 이상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최고의 저격수니까.

‘방법이 없을까?’

도제성 의원은 깊은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다음 날 밤…….

유원희 의원이 한정식집 앞에 섰다.

“준비는?”

“최고급으로 예약했습니다.”

“연락은?”

“전부 돌렸습니다.”

“6시라고 했지?”

“네.”

법관 및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오늘 이 한정식집에 모일 예정이다.

유원희 의원은 그들에게 부탁해서 검찰의 수사에서 벗어나려 한다.

어렵지는 않을 거다.

원래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들어가지.”

지금은 오후 5시.

약속은 6시지만 유원희 의원은 조금 일찍부터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부탁을 위해 모이라고 했는데, 손님보다 먼저 오는 것이 예의니까.

방으로 들어간 유원희 의원이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며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 표정이 초조하게 물든다.

< 천국과 지옥.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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