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21화 (221/300)

< 약속. - (2) >

***

전통 찻집.

유원희 의원과 마주 앉은 심경로 실장이 몸을 발발발 떨며 고개를 숙였다.

“박영훈 부회장이 검찰의 체면을 세워 주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그러려면 유원희 의원님을…….”

“그래서 나를 건든다고?”

“죄송합니다! 검찰의 압박이 심해서 다른 방법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심경로 실장은 뒷말을 줄이며 힐끗 유원희 의원의 눈빛을 살폈다.

매섭다 못해 싸늘하다.

당장이라도 박영훈 부회장을 씹어 먹을 것 같은 눈빛.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중이다.

그럼, 쐬기를 박아 줘야 한다.

“의원님의 손녀를 건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유원희 의원의 주먹이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찍었다.

부리부리한 눈알로 심경로 실장을 노려본다.

“뭐라? 내 손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다.

지난 주말에는 유원희 의원의 발자취를 좇아 정치에 입문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원희 의원의 눈동자에 살기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심경로 실장이 납작 엎드렸다.

쐬기를 박았으면 이제 활활 타오르도록 기름을 부어 버릴 시간이다.

“아무리 그룹이 중요하지만 의원님의 가족, 그것도 아직 고등학생인 손녀를 건들겠다니……. 그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의원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먼저 방비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손녀가 대학 입학을 위해 부정적인 방법으로 뭔가를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고위층의 학벌 비리, 세탁 문제는 알고 있어도 관심을 끊고 쉬쉬하는 게 관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심경로 실장의 말이 구구절절 흘러나온다.

그 말을 들으며 유원희 의원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고위층이 되면 세상에 숨겨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가장 큰 두 가지가 병역과 대학이다.

이 문제가 터지면 거지 같은 서민들이 이를 악물고 손가락질을 해 댄다.

정말 시끄럽게 쌍욕을 하면서…….

그래서 손녀의 대학 입학은 매우 은밀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영훈이 알고 있다고?’

예전부터 뒷조사를 해 오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일이다.

즉, 쥐새끼처럼 주변을 맴돌며 유원희 의원의 비리를 캐 모았다는 뜻.

유원희 의원의 눈이 번쩍였다.

‘감히 장사꾼 따위가!’

이어서 그의 몸이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대한민국 원로 국회의원이다.

정치계의 기둥이라는 한상국과 안재열도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그가 장사치에게 모욕을 당했다.

그의 시선이 심경로 실장에게 옮겨 갔다.

입에서는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금까지의 말에 거짓이 있다면 각오해야 할 거야.”

그 시각, 전통 찻집의 주차장.

유원희 의원의 보좌관이 차에 등을 기댄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 중요한 일인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운전해서 나왔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들어 보고…….”

평소였다면 수행 비서가 따라붙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보좌관이 직접 왔다.

대정 그룹 전략기획실장이 찾아온 게 정말 뜬금없었으니까.

어떤 정치적 음모가 있나 싶었다.

“SNS 계속 확인하고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놈들은 고소하겠다고 협박해. 인터넷에서 사는 놈들은 고소한다고 하면 꼬리 내리니까.”

통화를 이어 가던 보좌관이 인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정우가 캔 커피를 들고 서 있다.

보좌관이 휴대폰에 대고 말한다.

“다시 전화할게.”

통화를 종료하자 정우가 캔 커피를 건넨다.

“커피 한잔 어떠세요?”

“여기가 국회도 아니고……. 우연한 만남은 아닌 것 같은데…….”

보좌관의 눈빛은 날카롭다.

하지만 정우는 능글맞게 웃으며 캔 커피의 뚜껑을 뜯는다.

“우연은 아니죠.”

***

국회의원 회관.

성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었다.

복도를 걸어 멈춘 곳은 민국당 도제성 의원의 사무실이다.

오가던 사람들이 모두 성윤에게 집중한다.

‘이성윤? 저기는 왜?’

성윤은 신당이고 도제성 의원은 민국당의 대선 후보다.

지금은 대선을 앞두고 민감한 시기라 대놓고 왕래를 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국회 직원들은 자신과 연계된 기자들에게 재빨리 메시지를 보냈다.

-이성윤이 도제성 의원의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성윤은 그들의 행동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고 노크 후 문을 열었다.

성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도제성 의원의 보좌관들이 눈을 깜빡인다.

“깜짝이야.”

“이성윤 의원님?”

성윤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연락 없이 방문드려서 죄송합니다.”

다들 헛것을 본 표정이다.

도제성 의원도 마찬가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성윤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손을 흔든다.

“어서 와요.”

도제성 의원을 보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 있다.

‘참 가면이 좋아.’

국민의 대다수를 비롯해 억대 연봉자부터 정치인까지 모두가 내뱉는 말이 있다.

“내가 서민이야!”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선거 때가 되면 잘 타고 다니던 벤츠를 배우자에게 넘긴다.

그리고 어디서 구해 왔는지 10년 정도 된 중고차를 타고 다니며 말한다.

“난 돈이 없어요. 그래서 서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등록된 재산이 수십억이면서 헛소리를 찍찍 내뱉는 거다.

물론 그걸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민 코스프레 한다고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그런데 도제성 의원을 보며 코스프레 한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외형적인 모습이나 먹고사는 것을 보면 서민의 기준같이 보이니까.

성윤이 도제성 의원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도제성 의원이 부드럽게 웃는다.

“어쩐 일입니까?”

“채무 관계를 해결하려고 왔는데요.”

“채무 관계?”

“지난번에 했던 약속이요.”

“……!”

오항로 의원이 SNS에 극단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여주의 한 펜션에 숨어 버렸던 일이 있다.

그때 성윤이 그를 찾아냈다.

그리고 도제성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었다.

-오항로 의원을 건네드리겠습니다. 소재지를 알고 있습니다.

-대선이 시작되면 비방이 난무하겠죠. 제가 사람 한 명을 지정할 겁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네거티브를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 더. 의원님의 주변 사람 중 비리에 얼룩진 사람이 또 튀어나올 겁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방어하지 말고 가차 없이 내쳐 주십시오.

그 일을 기억하며 도제성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사무실에 앉은 보좌진들을 둘러보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여기서 할 말이 아닌 것 같네요. 이 의원과 술 한잔하고 싶었는데, 오늘 어때요?”

“좋습니다.”

***

대정 그룹 부회장실.

박영훈 부회장의 앞에 김용준 비서실장이 서 있었다.

“전부 알아봤어?”

박영훈 부회장은 심경로 실장이 노조 위원장에게 건넨 돈의 출처를 찾는 중이다.

평소엔 시켜 놓으면 그만이었다.

“노조 위원장에게 돈 좀 먹여.”

이렇게 말하면 아래 직원들이 삶고 굽고 난리를 피우며 알아서 처리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검찰이 냄새를 맡고 움직이고 있다.

대응을 하려면 박영훈 부회장도 돈의 출처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심경로 실장이 모르게 김용준 비서실장을 통해 확인하는 중이다.

“명동에서 쇼핑하고 해외여행 다녀온 자금입니다. 알아본 결과 독거노인과 노숙자 등 명의만 아홉 번 바뀌었습니다.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명동 사채업자의 손을 거쳐 해외에서 자금 세탁되어 돌아왔다는 거다.

그것도 명의만 아홉 번…….

“마지막에 지문을 묻힌 놈은 누구야?”

“명동 박 영감입니다.”

“우리 회사랑은 관계없지?”

“없습니다.”

박영훈 부회장이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박 영감이 몇 살이지?”

“여든셋입니다.”

“여행 가기 좋은 나이네. 유럽이나 몇 달 돌고 오라고 해. 우리 지문은 묻어 있지 않지만 노인네 입에서 우리 이름이 나오는 것은 막아야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금은 해결됐다.

이제 희생양을 결정해야 한다.

“심경로 실장, 재산 변동 사항을 조사해 봐. 아들, 딸, 아내, 친척…… 모두.”

심경로 실장은 사원으로 입사해 대정 그룹 전략기획실장까지 올랐다.

오르는 과정은 무한 경쟁…….

스포츠처럼 규칙이 있는 사움이 아니다.

조금만 찾아봐도 온몸에 묻은 피와 똥으로 악취가 풍겨질 거다.

“알겠습니다.”

“빨리 처리해. 검찰로 시작해서 금융위까지 나댈 수 있으니까. 심경로 넘겨주고 입을 막아야지.”

박영훈 부회장은 다리를 외로 꼬며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개새끼들…….”

박영훈 부회장은 이 사건의 창끝이 자신을 노린다고 생각했다.

재벌이 수갑을 차고 비참한 모습으로 검찰 포토 라인에 서는 모습.

절대 강자를 끄집어 내린 대한당과 신당.

“대한당은 재벌이 아닌 서민을 위한다고 선전하겠지. 박무혁은 자신이 제 형의 죄조차 봐주지 않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알릴 테고.”

박영훈 부회장은 양 당의 인기를 끌기 위한 제물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난다.

“유원희 의원에게 전화 걸어. 도제성을 한번 만나야겠어.”

만나서 거절할 수 없는 돈을 건넬 거다.

돈 많은 사람이 선거에서 유리하니까.

그리고 제안할 거다.

“대통령이 되면 신당의 박무혁과 대한당 서용우를 감옥에 넣어 주십시오. 죄가 없다면 제가 만들어 주겠습니다.”

복수는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하는 거다.

김용준 실장이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유원희 의원의 전화번호를 찾는데…….

휴대폰이 진동을 울린다.

“네, 김용준입니다.”

-성욱진 기자입니다. 재밌는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신당의 이성윤 의원과 민국당 도제성 의원이 같이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 목소리가 박영훈 부회장의 귀에 쑤셔 박혔다.

“이성윤과 도제성이?”

박영훈 부회장의 얼굴이 구겨지고 있었다.

‘사냥꾼에 민국당도 포함된 것인가?’

대한당, 민국당 그리고 신당.

이들은 이 나라의 권력이다.

그 검은손이 박영훈 부회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목을 조르고 송곳니를 쑤셔 넣을 거다.

“이런…… 미친 새끼들……. 김용준 실장, 유원희 의원 전화해. 당장 튀어 오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전화해 보겠습니다.”

김용준 실장은 허리를 굽힌 후 조심스레 밖으로 빠져나왔다.

옆에서 전화를 해도 되지만 괜히 욕이나 처먹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유원희 의원보다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할 상대가 있다.

김용준 실장이 복도를 걸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통화음이 흐르고 성윤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이성윤입니다.

김용준 실장이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본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최대한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의원님…… 도제성 의원과 함께 식사하신다고요? 그거 박영훈 부회장이 알아 버렸습니다.”

걱정되서 전화한 것인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밝다.

-아, 일부러 흘린 거예요. 당당히 만났거든요.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사람이며 거대한 권력기관이다.

그 덕에 일거수일투족이 공유되고 있다.

작정하고 몰래 만나지 않으면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지라시에 돌고 돌아 모두 알게 된다.

그런데, 오늘 성윤은 대놓고 도제성 의원을 만났다.

소식이 안 들어가는 게 이상한 거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용준 실장이 성윤과 통화를 종료했다.

가볍게 한숨을 내뱉는데…….

“휴대폰 내놔.”

뒤에서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용준 실장의 심장이 쿵쿵쿵 뛰기 시작한다.

고개를 틀어 보니 역시 박영훈 부회장이다.

손을 내밀고 흔들고 있다.

“내놔.”

어디서부터 들었는지,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김용준 실장의 눈에 긴장이 가득 채워진다.

“부, 부회장님?”

“내가 유원희 의원에게 전화하라고 했을 텐데?”

“부회장님…….”

“왜 갑자기 나가나 했더니……. 누구와 통화한 거지?”

“유원희 의원에게는 지, 지금 연락하려고 했습니다.”

“내놔!”

호통이 벼락처럼 내리쳤다.

김용준 실장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내밀었다.

박영훈 부회장이 휴대폰을 들고 화면을 확인한다.

“이성아?”

최근 통화 내역에 ‘이성아’라고 적혀 있다.

이성윤이라고 적어 둘 수 없어서 바꿔 넣은 거다.

“누구지? 뭔데 다행이라고 했지?”

박영훈 부회장의 눈빛이 김용준 실장을 타고 내린다.

의문과 불신으로 가득한 눈빛.

김용준 실장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통화 내용은 마지막 인사말만 들었어. 그럼…….’

김용준 실장은 어떻게 얼버무려야 하나 고민하며 말을 최대한 끈다.

“그, 그게…….”

하지만 박영훈 부회장은 그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이어서 스피커폰 버튼도 눌러 버린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는 동안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김용준 실장을 노려본다.

“대답해. 누구랑 통화한 거지? 설마…… 첩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네가 첩자였던 건가?”

김용준 실장은 박영훈 부회장의 시선을 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박영훈 부회장의 성격은 잔혹하다.

만약 성윤과 내통하고 있었던 게 알려지면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

‘받지 마, 받지 마, 받지 마! 제발!’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어?’

김용준 실장이 눈을 깜빡였다.

‘뭐지?’

수화기에서 성윤이 아니라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

서초동의 고깃집.

성윤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성윤의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는 꿈속의 아내가 보인다.

< 약속.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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