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18화 (218/300)

< 판세. - (3) >

서용우 전 총리는 입을 꾹 닫았다.

한동안 어떤 말도 없었다.

그가 하는 일은 맞은편 성윤의 표정을 살피는 게 전부였다.

비서가 가져다준 커피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그의 싸늘한 눈동자가 성윤을 향했다.

‘박영훈 부회장을 공격해 달라고?’

일반 사람들은 박무혁 의원과 박영훈 부회장을 우애 깊은 형제로 생각한다.

언론과 잡지가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형제로 만들어 줬으니까.

하지만 진실을 보면 두 사람은 정말 끔찍한 형제다.

서로를 원수라고 생각하며 쉴 틈 없이 견제하고 틈만 있으면 칼을 쑤셔 넣으려 한다.

‘박영훈의 견제 때문에 박무혁의 활동 범위가 좁은 거야.’

박영훈 부회장이 신당에 대한 관심을 꺼 버리는 것.

그것은 박무혁 의원의 족쇄를 푸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 손으로 족쇄를 풀어 주라고?’

지금의 박무혁 의원도 위협적이다.

그런데 견제하는 상대가 없어지면 지금보다 더 거침없이 청와대로 진격할 게 분명하다.

여기까지 생각한 서용우 전 총리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내 손으로 풀어 줄 수는 없어.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서용우 전 총리의 지지율은 침체되고 있다.

변화가 없다면 미래의 결과는 뻔하다.

박무혁 의원에게 2위 자리를 내주게 될 거다.

그럼 대선은 도제성과 박무혁의 싸움…….

‘난 들러리가 될 거야.’

서용우 전 총리가 눈동자만 들어 성윤을 향했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한상국 대통령의 손을 잡는 것과 성윤과 한배를 타는 것.

‘한상국 대통령의 손을 잡으면 노예가 되어야 해.’

한상국 대통령은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을 거다.

지금도 도움을 주는 대가로 서용우 전 총리의 비리를 원하고 있다.

분명 개목걸이를 채우고 질질 끌고 다닐 거다.

‘이성윤과 한배를 타면 박무혁을 자유로 만들어 주는 거야.’

서용우 전 총리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어쩌지?’

긴 고민 끝에 서용우 전 총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노예로 사느니 날뛰는 박무혁 의원과 싸우는 게 낫다.

“그래, 박영훈 부회장을 어떻게 흔들어 주면 되지?”

성윤의 눈이 반짝인다.

드디어 불가능한 동맹이 결정 났다.

이 동맹은 몇 달 뒤 끝날 시한부 동맹이다.

그때는 단일화라는 이름 아래 멱살 잡고 싸울 거다.

그리고 어느 한쪽은 무릎을 꿇고 흡수되어야 한다.

그래야 도제성 의원을 이길 수 있다.

어쨌든, 지금은 동맹 관계다.

“검찰이 대정 그룹의 전략기획실장을 타깃으로 세울 겁니다.”

“전략기획실장? 그림자를 밟았나?”

대정 그룹 전략기획실장은 국회의원, 검찰, 고위 공무원 등 이 나라의 중추와 연관되어 있다.

제대로 된 증거 없이 전략기획실장을 건드렸다가 짓밟힐 수도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아뇨, 없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리기도 어렵고요. 하지만 기획실장은 스스로 증거를 갖고 튀어나올 겁니다.”

“이 의원…… 그런 대책 없는…….”

걱정으로 가득한 서용우 전 총리를 보며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대한당이 위험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일을 터뜨리는 것은 신당에서 할 겁니다.”

“신당에서?”

국민은 박무혁 의원과 박영훈 부회장의 관계가 우애 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정 그룹의 비리가 터지면 박무혁 의원의 지지도가 떨어질 게 분명하다.

비리에 대한 조사부터 재판까지 걸릴 시간은 적어도 1~2년이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거다.

“박무혁이 대통령이 되면 다 봐줄걸.”

“하긴, 자기 형을 감옥에 넣고 있을 대통령이 어디 있어? 흐지부지 끝나겠지. 검찰도 그걸 아니까 대충 조사할 테고.”

대통령이 되려면 이런 의혹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이번에 대정을 공격하며 재벌이라는 약점을 벗어 던지고 당당히 설 생각이다.

서용우 전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박영훈 부회장에게 용돈 받는 검사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훼방을 놓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이 의원, 용돈을 누가 받는지 알기는 어려운…….”

서용우 전 총리의 말소리는 줄어든다.

누가 돈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만큼 쉬쉬하는 게 뇌물이니까.

그런데 성윤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에 올리고 있다.

서류를 펼치자 검사들의 이름이 나온다.

“첫 장은 박영훈 부회장과 골프를 치는 검찰 고위직입니다. 다음 장은 전략기획실장과 룸살롱에 드나드는 검사 명단이고요. 다음은…….”

“이, 이걸 어떻게……?”

박영훈 부회장의 비서실장 김용준에게 받은 거다.

하지만 정보 제공자를 밝힐 수는 없다.

성윤이 서용우 전 총리의 앞으로 명단을 내려 뒀다.

“이 사람들을 치워 주십시오.”

“그, 그러지. 그리고 또 있나?”

“검찰의 브리핑이 요란했으면 좋겠습니다. 검사 스무 명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조사, 재벌과의 전쟁이라는 타이틀을 포함해서요.”

연기를 내면 낼수록 박영훈 부회장은 불안할 거다.

검찰이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칼끝이 어디서 멈출지 알 수 없으니까.

서용우 전 총리는 명단을 손에 쥔다.

이 명단이 있으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압박할 명분은 충분하다.

게다가 대한당은 집권당이다.

정권의 막바지이기는 하지만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에 똥을 뿌리면 다들 힘들어진다.

‘명분도 있고 힘도 있고…….’

잠시 생각하던 서용우 전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서용우 전 총리가 인터폰을 꾹 눌렀다.

비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후보님.

“오늘 저녁은 검찰총장과 하지. 그리고 술은 법무부 장관과 마실 거야. 약속이 있다고 하면 취소하라고 해. 나를 만나는 게 우선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인터폰을 종료하고 시선을 든다.

“됐나?”

“감사합니다.”

“이제 신당을 위한 일은 했고, 내가 원하는 일은 어떻게 할 거지?”

서용우 전 총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언론에서 대선 후보의 이름이 사라져야 도제성, 박무혁 의원의 기세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안 내부를 단속하고 추석 이후 대선 레이스를 준비하면…….’

서두르지 않고 계획대로만 된다면 청와대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대대적인 스캔들인데…… 있나?”

“민국당 유원희 의원님께 기억될 만한 은퇴식을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유원희?”

“네.”

“은퇴식?”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용우 전 총리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빛난다.

유원희 의원, 정치 경력으로만 치면 한상국 대통령이나 안재열 전 대통령보다 위다.

그는 국회의 어른이며 민국당의 산 역사다.

문제가 터지면 난리가 날 거다.

“유원희 의원이 정치권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얻은 이득을 독식하지 않고 다 같이 나눠 먹은 거죠. 계파에게 떼어 주고 자식은 물론 친척에게도 공평히 돌려줬습니다. 심지어 수행 비서까지 챙겼죠.”

유원희 의원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가족이잖아?”

유원희 의원은 함께하는 모든 사람을 가족이라 부른다.

말이 전부가 아니라 정말 잘 챙겨 주기도 한다.

그 덕에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거대 권력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은 수행 비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아니면 가장 측근이라 불리는 자들이 나불거리는 탓에 벼랑 끝에 서게 되죠. 그 이유는 비리로 얻은 고깃덩이를 혼자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원희 의원은 모두에게 공평히 나눠 줬다.

작게는 토지나 아파트 등의 개발 정보부터 크게는 재벌에게 받아먹은 돈까지.

“그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위험하지 않겠나?”

서용우 전 총리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유원희 의원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다.

딸은 강남 노른자 땅에 수십 채의 아파트와 빌딩을 가진 부동산 재벌.

그 돈으로 엮인 정재계 인물이 한 트럭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유원희 의원의 아들.

아니, 아들의 아내…… 즉 며느리다.

“유원희 의원의 며느리가 진영일보 양씨 일가야.”

진영일보는 메이저 언론사 중 하나.

정치인 킬러로 유명하다.

그들의 선동과 거짓 기사에 무너진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

대한당과 민국당을 가리지 않고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목을 잘라 버린다.

방법은 간단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내내 타깃으로 잡힌 사람만 공격하는 거다.

그럼, 버틸 정치인은 없다.

언론만 믿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진영일보를 보며 ‘언론 권력의 배후’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원희 의원을 공격하면 진영일보와 날을 세울 수도 있어.”

“언젠가 짚고 넘어가야 할 언론사입니다.”

“이 의원, 이건 그냥 스캔들이 아니야. 위험해.”

“욕은 조금 먹을 수도 있겠죠.”

“조금 먹는 게 아니야. 진영일보가 씹어 대면 대한당이고 신당이고 또 분열될지도 몰라. 예전처럼 거대했을 때면 몰라. 지금 우리 당은 작아. 이 상황에서 언론의 공격을 받으면 우리 당은 존폐 기로에 서는 거야. 대선은 패배할 거고!”

성윤이 이해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인다.

서용우 전 총리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진영일보는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아. 정권을 잡은 직후의 허니문 기간, 권력이 펄떡펄덕 살아 숨 쉴 때 안전하게 가는 게 좋아.”

성윤이 시선을 들어 서용우 전 총리와 눈을 마주쳤다.

“총리님, 당의 존재 이유는 집권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의 국회의원들에게만 좋은 이유죠.”

“뭐?”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 동기, 후배를 각 공기업에 꽂아 주고 술한잔 얻어먹을 수 있고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라며 고위 공직자 앞에서 거드름을 피울 수 있고……. 그런데 국민에게 당의 존재 이유는 뭡니까? 얻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바라고 지지하는 걸까요?”

대한당이나 민국당 그리고 신당 또는 진보당…….

지지하는 당은 다르지만 원하는 것은 하나다.

바꿔 주길 바란다.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그 안에는 경제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문화 강대국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 또는 스포츠 강국도 있죠. 그리고 일본이 침략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떵떵거리고 살았을 진영일보에 대한 척결도 존재할 겁니다.”

도발적인 질문에 서용우 전 총리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성윤은 멈추지 않는다.

“진영일보…… 권력이 있을 때도 안 건드렸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진영일보는 권력자의 앞에서 배를 까뒤집고 꼬리를 흔드니까요. 권력자는 진영일보를 보며 귀여운 애완견으로 생각하겠죠. 하지만 걔들, 애완견 아닙니다. 권력이 사라지면 언제든 발목을 물려고 하는 뱀 새끼들이지.”

“이 의원!”

서용우 전 총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상국 대통령의 집권 초기, 총리는 서용우였다.

그때 그는 진영일보를 놔뒀다.

성윤의 말대로 배를 까뒤집고 손바닥을 비볐으니까.

진영일보가 가진 대한당의 비리가 두렵기도 했고…….

“총리님, 민국당 도제성 의원을 이기려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보여 줘야 합니다.”

서용우 전 총리는 성윤의 시선을 피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모 아니면 도…….’

그의 앞으로 성윤이 슥 뭔가를 내민다.

‘……!’

지지율이다.

1위, 민국당 도제성 43.2%.

2위, 대한당 서용우 24.1%.

3위, 한민당 박무혁 22.9%.

성윤이 입을 연다.

“이대로 있으면 도제성 의원이 승리합니다. 우리는 이길 수 없습니다.”

더하기 빼기로 결정이 된다면 박무혁 의원과 서용우 전 총리가 단일화를 하는 순간 47%로 앞서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산수다.

선거에서 단일화를 한다고 모든 지지자가 따라가는 게 아니다.

많게는 10% 가까이 등을 돌린다.

서용우 전 총리가 거칠게 얼굴을 쓸었다.

“이 의원, 상대는 진영일보만이 아니야. 민국당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대대적으로 일어나겠지. 유원희 의원은 민국당의 어른이니까. 유원희 의원의 비리가 터지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

“민국당은 조용할 겁니다.”

“뭐?”

“민국당 개개인의 의원이 단독적으로 SNS나 인터뷰를 할 수는 있어도 민국당이 당차원적으로 나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눈을 찌푸린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그게 무슨……?”

하지만 성윤의 눈동자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일전에 도제성 의원과 약속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성윤이 민국당의 한 명을 공격해도 입 닫고 있기로…….

도제성 의원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다.

유원희 의원이 사라져야 도제성 의원도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이제 도제성 의원과 약속했던 카드를 쓸 때가 왔다.

한참을 망설이던 서용우 전 총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지.”

서용우 전 총리는 어렵게 고민하고 결정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국민의 시선이 대선에서 멀어졌을 때 내부를 단속해야겠어. 그게 우선이야.’

서용우 전 총리의 머릿속에서 앞으로의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유원희가 무너지면 민국당도 타격을 받겠지. 신당도 마찬가지야. 박영훈 부회장이 흔들리는데 박무혁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니까. 민국당과 신당의 지지율은 떨어질 거야. 아니, 폭락할 거야.’

서용우 전 총리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진영 일보를 박살 낼 때 숟가락을 얹어야겠어. 그럼, 대한당이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겠지? 이미지를 만들고 계획대로 된다면 추석이 지날 때쯤 도제성과 같은 라인에 설 수 있을 거야. 많아야 3~5% 차이가 나겠지. 박무혁은 뒤에 있을 것이고. 그 상황에서 단일화를 하면…….’

서용우 전 총리가 주먹을 꽉 쥔다.

‘내 승리야.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어!’

악마 같은 한상국 대통령과 손잡지 않아도 된다.

이번 일에서 신당과 성윤을 철저히 이용하면 자력으로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모두 듣고 있었다.

성윤이 빙긋이 웃는다.

갑자기 타이슨의 명언이 떠올라서다.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 판세.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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