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17화 (217/300)

< 판세. - (2) >

***

성윤이 밖으로 나왔다.

차로 이동하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발신 번호는 박무혁 의원이다.

“……증거는 없습니다.”

-또 꼬리를 놓쳤어…….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방법?

돈을 건넨 사람을 찾아 타깃으로 정했다.

그 사냥감이 숨은 구멍을 알고 있다.

방법은 많다.

“검찰을 이용해서 대정 그룹에 정보를 흘려 주십시오. 전략기획실장의 이동 경로가 도로 CCTV에 잡혔다고요.”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다.

구멍 속에 숨었다면 그 앞에서 연기를 피워 대면 된다.

그럼, 사냥감은 기침을 토해 내며 튀어나올 거다.

분명 무리수를 던질 테니 그 순간을 기다렸다가 올가미를 채워 버리면 된다.

“전략기획실장을 잡으면 국민들은 당연히 박영훈 부회장을 의심할 겁니다.”

그럼, 박영훈 부회장은 여론의 눈치를 보며 시끄러운 입을 닥치게 될 거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박영훈 부회장을 몰아세우려면 대한당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상대는 대정 그룹의 부회장 박영훈이다.

신당이 짖어 봤자 코웃음도 치지 않을 사람.

그를 위협하기 위해서는 대한당의 도움이 필요하다.

힘이 다 빠졌다고 해도 대한당은 여당이니까.

-대한당이 우리를 도와줄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알아서 해 봐.

성윤은 통화를 종료했다.

차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입에 문다.

‘대한당과의 관계를 터야 해.’

대선에서 이기려면 단일화가 필요하다.

1위인 도제성 의원과의 지지율이 20%가량 차이 나기 때문이다.

대선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20%의 지지율을 단기간에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한당과 손을 잡지 않고서는 도제성 의원을 이길 수 없다.

‘박영훈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민국당을 뒤흔들고 이준대를 코너로 몰 수 있는 방법…….’

성윤의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의 계획이 그려졌다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

주말이 지나며 대선 후보 지지율이 발표됐다.

신당이 선거 캠프를 구성한 뒤 처음으로 집계된 지지율이라 의미가 크다.

1위, 민국당 도제성 43.2%.

2위, 대한당 서용우 24.1%.

3위, 한민당 박무혁 22.9%.

4위, 진보당 박유경 3.4%.

지지율을 보던 서용우 전 총리의 표정이 어둡다.

도제성 의원과의 격차는 관심도 없다.

박무혁 의원과의 격차가 단 2%라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젠장…….’

서용우 전 총리 역시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다.

대선이 가까워지면 박무혁 의원과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도제성에게 비벼 볼 수 있다.

숫자로만 계산하면 서용우 전 총리와 박무혁 의원이 가진 지지율의 합은 47%니까.

그럼, 43.2%의 도제성을 압도하는 거다.

‘문제는…….’

단일화를 할 때는 지지율 높은 사람이 유리하다는 거다.

높은 사람을 위주로 합쳐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제 막 캠프를 차린 박무혁 의원과 단 2%.

심지어 이번 지지율은 수해 사건이 반영되지도 않았다.

‘반영됐다면…….’

서용우 전 총리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이대로 있으면 언제 박무혁 의원에게 머리채를 잡혀 쥐어뜯길지 모른다.

정통성 있는 대한당이 신당의 발아래서 박박 길 가능성도 높다.

그만큼 이번 수해에서 박무혁 의원의 지도력은 빛이 났다.

자연재해 속에서 부상자조차 생겨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하지?’

서용우 전 총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얻은 게 없어.’

정말 심각한 것은 이번 수해에서 대한당이 얻은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국민의 힘이 하나로 모여 여당의 지지율이 오르는 법인데…….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었고 병신 취급만 받았다.

여당이 주도해야 할 구조 작전을 신당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들이 임시 다리를 설치하고 사람들을 구조했다.

박무혁 의원과 성윤이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여당이 한 일은 손가락을 빨면서 ‘어? 어?’ 한 게 전부다.

그 뒤의 수재민 대책도 마찬가지.

민국당이 기다렸다는 듯 시민 단체와 봉사자들을 구성해서 투입했다.

대한당이 한 일은 역시 ‘어? 어?’ 한 게 전부다.

서용우 전 총리가 담배를 입에 문다.

‘하…….’

이번 수해에서 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소방관 등 공무원의 활약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활약을 정부 또는 대한당과 연관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민국당과 신당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잡고 대한당과 정부를 욕하고 있다.

그들은 언론사와의 인터뷰 그리고 SNS를 통해 이번 수해의 문제점을 들먹거리며 대한당을 몰아세우는 중이다.

“배수로를 미리 확인했다면 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하천이 흐르는 길을 인위적으로 틀었습니다. 단지 미관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자연을 생각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이 이번 사태를 만들어 낸 겁니다!”

“정부는 책임을 지세요!”

서용우 전 총리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음 지지율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박무혁 의원과 순위가 바뀌어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의 눈동자가 신문으로 향했다.

인터뷰를 하는 성윤이 보인다.

‘이성윤…….’

같은 당에 있을 때는 든든했다.

하지만 적이 되니까 정말 껄끄럽다.

모든 활로가 막혀 버린 것 같다.

그때…….

‘아…….’

아직 사용하지 않은 방법이 번뜩였다.

‘있어.’

그가 휴대폰을 손에 쥐고 전화번호를 검색한다.

‘한상국 대통령!’

서용우 전 총리는 한상국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었다.

하지만 지난번 대통령의 사위 사건 때 사이가 틀어졌다.

한상국 대통령이 서용우 전 총리를 믿지 못하고 뒤를 감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서용우 전 총리에게는 한상국 대통령이 필요하다.

썩어도 대통령이니까!

서용우 전 총리가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어차피 정치 바닥에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어. 필요하면 친구야.’

그리고 한상국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오랜만이야.

***

청와대.

서용우 전 총리는 오랜만에 청와대를 방문했다.

닫힌 문을 열면 정말 꼴 보기 싫은 노인네를 만나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서용우 전 총리에게는 한상국 대통령이 필요하다.

‘들어가자.’

서용우 전 총리는 굳어 있던 표정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한상국 대통령이 서용우 전 총리를 보며 말을 툭 내뱉는다.

“그래, 어쩐 일인가?”

상당히 귀찮은 표정, 물론 일부러 짓는 표정과 말투다.

지금 목마른 사람은 서용우 전 총리니까.

알아서 무릎 꿇고 살살 꼬리 흔들기를 바라는 거다.

그래야 지금부터 시작될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뽑아 먹을 수 있다.

서용우 전 총리가 한상국 대통령의 앞에 마주 앉았다.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대통령님께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알아서 다행이야.”

“그런데, 제가 대통령님의 자리를 물려받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실 겁니다.”

한상국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치욕을 당하겠지. 내가 이룬 성과는 모두 무너뜨리고 몸에 묻은 티끌을 똥처럼 만들어 광고하겠지.”

서용우 전 총리가 다급히 말했다.

“제가 대통령님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날 지켜 준다고?”

“네.”

한상국 대통령이 껄껄 웃는다.

“서 총리, 난 입으로 하는 말은 믿지 않아. 적어도 자네를 쏠 총을 쥐여 줘야 늙은이 마음이 안심되지 않겠나?”

개인 비리를 건네 달라는 거다.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서용우 전 총리는 한상국 대통령과 오랜 시간 함께해 왔다.

한상국 대통령의 성격상 서용우 전 총리의 개인 비리는 이미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을 거다.

그런데, 한상국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지. 쿠데타가 혁명이 되고 다시 쿠데타가 되고……. 자네가 흘린 티끌도 마찬가지. 이미 정당화된 것처럼 작업해 뒀을지 내가 어떻게 아나?”

서용우 전 총리는 이를 콱 깨물었다.

‘욕심 많은 새끼.’

하지만 표정을 관리하며 순순히 답한다.

“사촌 동생이 제 이름을 팔아 주머니를 채운 모양입니다. 그 자료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한상국 대통령이 빙긋이 웃는다.

“자네 이름을 팔았다고?”

“네.”

“이름만 팔았는지 정말 자네가 연관되었는지…… 그것은 그림 그리는 사람 마음이겠구만?”

“이 정도면 건네드릴 총으로 충분하겠습니까?”

“괜찮아. 그리고 너무 경계하지 말게. 이 늙은이는 나이가 들어서 방아쇠 당길 힘도 없으니까. 하하하.”

물론 거짓이다.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당장 방아쇠를 당겨 서용우 전 총리의 머리를 박살 낼 생각이다.

서용우 전 총리는 알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좋아, 그럼 이제 이야기를 들어 볼까? 뒷방 늙은이에게 어떤 도움을 받고 싶나?”

“여기서도 신당, 저기서도 신당…… 박무혁, 이성윤…… 이 두 사람의 이름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조용히 시키고 싶습니다.”

“어떻게?”

“대통령님께서 아직 사용하지 않으신 게 있지 않습니까?”

정부의 힘이 뚝뚝 떨어지는 시기가 오면 의례히 하는 일이 있다.

레임덕을 벗어나기 위해 만만한 놈을 잡고 두들겨 패는 거다.

그게 비리로 가득한 정치인인 경우도 있고 기업인일 때도 있다.

보통은 밟아도 찍소리 못 하는 연예인이나 깡패들이다.

그렇게 한 명을 멱살 잡고 두들겨 팬다.

그럼, 언론에서 쥐어 터지는 놈을 카메라에 잡으며 외친다.

“이 새끼가 마녀입니다!”

그럼, 국민이 손을 잡고 타깃을 짓밟는다.

검찰은 칼춤을 추고 권력은 다시 반짝반짝 힘을 낸다.

그런데, 한상국 대통령은 아직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상국 대통령이 껄껄 웃는다.

“서 총리, 내가 왜 그 짓을 안 했을 것 같나? 하나! 그런 짓을 해 봤자 효과가 오래가지 못해. 언 발에 오줌 누기야. 그리고 둘!”

한상국 대통령의 미소가 짙어진다.

서용우 전 총리의 표정은 긴장으로 물들고…….

“너 같은 놈에게 비싸게 팔기 위해서야. 서 총리…… 내 뒤를 봐준다는 것 따위로 먹으려고 하지 마. 더 괜찮은 조건을 내밀어 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자네는 알잖아?”

한상국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영원한 권력이다.

은퇴해서도 계속 위세를 떨치고 싶어 한다.

대통령을 아래에 두고 죽을 때까지 떵떵…….

바로 이게 한상국 대통령이 박무혁 의원과 손잡지 않는 이유다.

박무혁 의원이 누구 밑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을 성격이 아니니까.

서용우 전 총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한상국 대통령이 말을 잇는다.

“자네가 원하면 사건을 터뜨려 주지. 시차를 두면서 찔끔찔끔……. 원하는 대로 국민을 조련할 수 있어.”

이미 결과가 난 사건을 두고 조금씩 흘리는 것.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거다.

자극적인 기사를 조금씩 흘리며 국민을 이곳저곳, 양몰이 하듯 움직여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

한상국 대통령의 악마 같은 목소리가 서용우 전 총리의 귀에 박힌다.

“자네에게 필요한 거잖아!”

서용우 전 총리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한상국 대통령을 단순 보호하는 것으로 거래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더 큰 것을 원하고 있다.

한상국 대통령이 조용히 웃으면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천천히 생각해. 다음에 올 때는 자네 이름을 팔아먹은 사촌 동생도 데려오고.”

***

서용우 전 총리가 청와대를 벗어났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청와대까지 찾아온 것은 앞으로 있을 단일화.

그런데, 단일화는 각 당의 이득이 얽히고설키는 복잡한 작업이다.

단일화를 결정했어도 중간에 파토 나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이뤄질지, 이뤄지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다.

‘불확실성한 단일화 때문에 악마와 손을 잡아야 하는 가?’

오늘 만난 한상국 대통령은 악마 같았다.

권력에 미쳐 있는 악마.

‘하지만 한상국 대통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앞으로 남은 이벤트는 추석과 국감.

그런데, 추석은 물가가 높아졌다며 어쨌다며 여당에 호의적이지 않을 거다.

남은 것은 국감인데, 이 역시 악재다.

각 당이 정부 기관을 까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게 분명하니까.

진퇴양난…….

‘어쩔 수 없나?’

고민에 고민을 이어 갔지만 세상은 수학 문제가 아니다.

딱 떨어지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착했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는 다시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가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사무실 앞에 섰는데, 비서가 입을 연다.

“이성윤 의원이 찾아왔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 누구?”

“서안시 동구 이성윤 의원입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있던 성윤이 몸을 일으켜 허리를 굽힌다.

“오셨습니까?”

서용우 전 총리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성윤과 손잡아서 이득 본 일이 없다.

다 신당 좋은 일만 시켰지…….

그의 반응은 당연하다.

“거래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거래?”

“총리님이 원하시는 것을 드리겠습니다.”

재킷을 벗어 던지던 서용우 전 총리가 멈칫거린다.

“내가 원하는 것?”

마치 알고 온 것만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역시…….

“이번 자연재해, 사람들의 관심이 신당에서 떠나는 것.”

“그게 무슨……?”

서용우 전 총리의 눈에 의문이 가득 채워졌다.

성윤이 한 말은 서용우 전 총리가 원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신당에 이로울 것은 전혀 없는 일이다.

정치인은 계속 거론되어야 좋은 거니까.

“그럼,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박영훈 부회장의 관심이 신당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 입을 막아 버리고 싶습니다.”

< 판세.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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