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16화 (216/300)

< 판세. - (1) >

***

다음 날.

밤새 내렸던 비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시 늦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최고위, 모두 모이라고 해.”

박무혁 의원의 지시에 신당의 당사로 의원들이 소집되기 시작했다.

성윤도 마찬가지다.

최고위는 아니지만 박무혁 의원과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다.

당사로 이동하는 중이다.

운전은 정우가 하고 성윤은 조수석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다.

“이것 참…….”

“왜요?”

성윤은 기사를 읽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어리다는 이유로 욕을 먹었잖아?”

지금껏 성윤의 나이를 잡고 트집 잡는 사람이 많았다.

어린놈이 건방지네 어쩌네…….

“그런데요?”

“다른 의미로 날 싫어하는 사람이 많이 생길 것 같아.”

“네?”

“빠가 까를 만든다는 말 알아?”

신호에 멈췄을 때 정우가 성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성윤이 휴대폰 화면을 보였다.

기사 제목이…….

진짜 남자 이성윤

정우의 미간도 찌푸려졌다.

“이건 뭐…….”

사진은 성윤이 비를 꿇고 다리를 건너는 모습이다.

검은 우비를 입어서 그런지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전사 같다.

댓글도 가관이다.

-이런 배짱의 남자가 역사를 통틀어 얼마나 될까?

-이제 장판교 장비라고 부르면 안 됨. 폭우의 이성윤이라 불러야 함.

-ㅋㅋㅋㅋ 장판교 장비라고 하니까 진짜 다리에서 사고를 치다니. 멋지다.

-그런데, 나만 그러냐? 국회의원이 가장 마지막에 나왔다고 하니까. 뜬금없이 국뽕 왔음.

-나도, 나도!

-난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계속 이성윤 영상만 찾아본다. 어쩌냐, 반한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남자 ㅋ

-저 정도 재해가 일어났는데 죽은 사람 없다는 게 진짜 기적 아님?

-이게 다 이성윤 때문이야!

댓글을 읽던 정우가 낄낄거린다.

“남자가 반했대요. 푸하하하하!”

“그게 웃겨?”

“의원님은 예전부터 그랬잖아요. 주변에 남자만 꼬여요.”

정우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당사에 도착했다.

“사람이 많네.”

오늘은 토요일이다.

그런데 많은 의원과 당직자 들이 굳은 표정으로 복도를 오가고 있다.

어젯밤 일어난 수해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구조 작업 등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마무리가 되면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게 정치인이다.

그들은 복도를 오가며 심각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다.

한쪽에서는 기상청을…….

“일본과 미국에서는 호우를 예측했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시청을…….

“구조대가 몇 분 안에 도착했는지, 시청의 대응은 어땠는지 알아와. 이번에 대한당을 끝장내 버리게!”

“네!”

그리고 또 저쪽에서는…….

“민국당 의원들 어제 뭐 했는지 찾아봐. 휴일이니까 술 처먹고 놀던 놈들 많을 거야. 국민이 위험에 빠졌는데, 술을 마셔?”

“어제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를 한 의원이 있습니다.”

“그래? 비싼 걸 먹었는지 알아봐! 비용을 어떻게 계산했는지까지!”

이유 없는 트집을 잡기 위해 저마다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

이 바닥은 남을 짓밟아야 내가 살아남으니까.

씁쓸한 현실이다.

성윤은 그들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도착한 곳은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무혁 의원이 책상에서 일어나 바로 앞 소파로 이동해 앉는다.

박무혁 의원이 찻잔을 손에 쥐며 피곤한 표정으로 물었다.

“잘 잤어?”

성윤과 박무혁 의원은 어제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오전 7시.

이동하고 씻은 시간을 제외하면 1시간 정도 눈을 감은 게 전부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잘 잤습니다.”

“잘됐네.”

박무혁 의원이 들고 있던 서류를 성윤에게 건넸다.

“계획이야.”

수해 현장…….

각 당은 이를 악물고 덤벼들고 있다.

대선으로 향하는 길에 추석과 국감이 정해진 퀘스트라면 이번 수해 현장은 돌발 퀘스트다.

잘만 하면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신당도 마찬가지다.

이번 수해 현장에서 민심을 손에 쥐려 애쓴다.

건네진 서류는 그 계획이다.

“복구 현장에서 장화 신고 사진 찍기, 수재민들의 손을 잡고 안타까운 표정 보이기…… 복구하러 나온 군인들에게 김밥과 콜라 사 주기…….”

한심하지만 진짜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

오로지 보여 주기 쑈쑈쑈.

“어떻게 생각해?”

“삽 들고 봉사할 생각 아니면 쓸데없이 나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민국당은 이미 시민 단체를 보내서 봉사 활동에 들어갔어.”

“저희는 어제 했던 활동이 있어서 이런 봉사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민국당의 도제성 의원과 의원님은 다릅니다.”

“달라?”

도제성 의원은 수더분하게 생겼다.

밭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 영락없는 농촌 사람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그네를 밀어주는 등 친근한 곳에 잘 어울린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다르다.

모던하고 차가운 그림이 많은 미술관에 서 있어야 할 것 같다.

“죄송하지만 의원님이 나서면 가식적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차라리…… 지갑을 여시는 게 어떨까요?”

박무혁 의원이 흥미로운 눈으로 성윤을 본다.

“말해 봐.”

“이번에 피해를 입은 800가구, 그중에 대정 자동차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침수차로 인정되면 무상으로 교환해 주는 게 어떨까요, 새 차로…….”

“뭐?”

“그럼 대정 자동차는 주민과 함께하는 기업,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얻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의원님은 대정 자동차의 최대 주주죠.”

박무혁 의원이 대정 자동차의 경영진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정 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박무혁 의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민심이 꿈틀거릴 거다.

“삐딱하게 보면 돈을 뿌려 민심을 얻는 것이지만 법에 어긋나는 일은 아닙니다. 자연재해라는 단어만으로 명분은 충분하니까요.”

박무혁 의원이 시선을 옆으로 틀었다.

보좌관이 서 있다.

“그대로 처리해.”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다시 성윤에게 향했다.

“끝인가?”

“아뇨, 또 하나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부를 하는 겁니다. 1억, 10억이 아니라 통 크게…… 100억.”

“……!”

“물론 아무도 모르게…… 소리 소문 없이 하는 겁니다.”

조용히 서 있던 보좌관이 입을 연다.

“죄송하지만 정치는 왼손이 한 일을 세상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100원을 써도 티를 내야 하는 게 정치 바닥인데, 몰래 기부를 한다니요. 그건 돈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로 해야죠. 하지만 추석 전에 기사화해야죠.”

“……!”

“기부, 선행…… 자기가 직접 떠벌리고 다니는 것만큼 우스운 게 없잖아요?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들켜서 민망하다는 인터뷰, 이게 더 파급이 크죠.”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네, 그렇게 하지. 또 할 말이 있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7시 50분이다.

최고위 회의가 8시에 계획되어 있으니 박무혁 의원은 이제 슬슬 올라가 봐야 한다.

“하나 더 있습니다.”

“말해.”

성윤이 잠시 망설였다.

난처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거다.

“괜찮아, 말해.”

“외람된 말씀이지만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님을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선에 걸림돌이 될 것 같습니다.”

박무혁 의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도제성이나 서용우보다 더 큰 난적이다.

썩어 빠질 정도로 많은 돈을 이용해서 훼방을 놓고 있으니까.

이번에 뽑아 버리든지 아니면 입을 닥치게 만들어야 하는데…….

박무혁 의원이 한숨을 내뱉는다.

“입을 막거나 옆으로 치워 뒀으면 좋겠는데…… 몸을 사리는 인간이라 꼬리를 밟기가 어려워.”

박영훈 부회장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없다.

입으로 내뱉으면 손과 발이 되어 줄 사람이 수두룩하니까.

하지만…….

“이번 노조 파업에 대정 자동차 부사장이 끼어 있습니다. 부사장을 타고 올라가면 박영훈 부회장에게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닿을 수 있다고?”

“적어도 입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행복할 줄 알았던 연휴는 재해 복구로 정신이 없었다.

공무원과 봉사자들 그리고 군 장병이 앞장서서 돌을 나르고 흙을 퍼 나른다.

수재민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들의 집으로 들어가 물을 퍼 내며 복구를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렇게 수해는 일단락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존재한다.

대정 자동차의 부사장 이용정은 한정식집에 앉아 찻잔을 입에 대고 있었다.

담담한 척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젠장.’

믿었던 비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비서는 박정우라는 놈에게 돈을 받고 해외로 날아 버렸으니까.

노조 위원장 김두식과 돈을 주고받은 증거를 남겨 둔 채…….

욕이 절로 나온다.

‘씨발, 씨발!’

부사장이란 놈이 노조와 손잡고 일부러 파업을 진행시켰다는 말이 세상에 알려지면…….

‘내 인생은 끝이야.’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

그때, 밖에서 음침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소리는 정확히 이 방으로 향하고 있다.

손에 쥔 찻잔이 더 달달달 떨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드르륵,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성윤이다.

부사장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한참 나이가 어린 성윤을 향해 굽실굽실 허리를 굽혀 댔다.

“이, 이용정이라고 합니다.”

“앉으세요.”

성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이용정 부사장은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겁을 집어먹은 눈동자로 성윤을 본다.

그의 처분은 성윤이 갖고 있으니까.

성윤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그의 앞에 두며 입을 연다.

“박영훈 부회장의 사주를 받았죠?”

“……!”

이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성윤과 박무혁 의원은 이용정 부사장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타깃은 박영훈 부회장이다.

“부사장님이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증거를 넘기고 잠시 여행을 다녀오든가, 박영훈 부회장과의 의리를 지키며 감옥에 가든가.”

“의, 의원님…….”

“대정 자동차의 평사원으로 들어와서 부사장. 누군가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부르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리투성이네요. 하청을 주며 뽀찌를 받고 단가를 맞추며 또 뽀찌를 받고 정직원 인사에 관여하며 뒷돈을 받고.”

이용정 부사의 입술이 허옇게 말라붙었다.

아무도 모르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모른 척해 준 거다.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고민할 시간을 드리죠. 5분이면 충분할까요?”

“의원님, 제발…….”

하지만 성윤은 더 이상 말이 없다.

손목시계를 풀어 책상에 놓은 뒤 조용히 차만 마신다.

“4분.”

“전 가진 증거가 없어요.”

“3분.”

“의원님!”

“2분.”

성윤이 휴대폰을 뒤집어 화면이 보이도록 놓고는 박무혁 의원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통화 버튼만 누르면 전화가 걸릴 거다.

“1분.”

시간은 원망스러울 만큼 빨리 가고 있다.

48초, 47초, 46초…….

성윤이 그의 눈동자를 쏘아보며 말한다.

“되도 않는 의리를 지키는 이유가 뭐죠? 감옥에 갔다 오면 챙겨 준다고 합니까? 나중의 일을 어떻게 믿습니까? 지금의 일만 생각하세요. 전국에 얼굴이 알려져 망신을 당하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생각하세요!”

이용정 부사장은 입술만 달싹거리며 초조한 눈동자로 성윤의 손목시계만 본다.

10, 9, 8, 7, 6, 5, 4…….

“선택지는 끝났습니다.”

성윤이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들린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떻게 됐지?

“고소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아니요! 말, 말할게요!”

이용정 부사장이 벌게진 얼굴로 다급히 외치고 있다.

성윤이 휴대폰에 얼굴을 가져다 대며 입을 연다.

“고소 안 하셔도 되겠네요.”

성윤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후 고개를 들었다.

넥타이를 풀어헤치는 이용정 부사장이 보인다.

입안이 말랐는지 물만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그리고 토해 내듯 말한다.

“대정 그룹의 전략기획실장이 왔다 갔습니다! 식당은 ‘초원’이라고 양평에 있는 한정식집이었습니다! 전략기획실장이 노조 위원장에게 건넬 돈을 공공칠가방에 넣어 줬고…….”

이용정 부사장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성윤의 눈치를 보며…….

“……다른 증거는 없습니다.”

이용정 부사장이 푹 고개를 숙인다.

보지 않아도 뻔하다.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현금이 오갔다.

식당의 CCTV는 박영훈 부회장 측에서 이미 지웠을 거다.

그럼, 그 돈이 박영훈 부회장의 주머니에서 나왔는지 길가다 주웠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박영훈 부회장은 초법적 사람.

혐의만으로 검찰에 앉혀 조사하기는 어렵다.

분명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이다.

그런데, 성윤의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걸려 있다.

“전략기획실장이요?”

“아, 네.”

방법이 있다.

< 판세.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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