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15화 (215/300)

< 비가 내리면. - (5) >

***

“임시 다리도 곧 잠길 것 같습니다.”

보좌관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박무혁 의원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다리를 바라봤다.

보좌관의 말대로 다리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차올랐다.

붉은 흙탕물이 굉음을 내며 흘러내린다.

허술하게 만든 임시 다리가 거친 물살을 견디기는 어려울 거다.

“다른 곳…… 다리를 설치할 곳을 찾아봐.”

보좌관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리가 설치될 만한 공간은 주변에 없다.

있다 하더라도 빗줄기가 너무 세다.

이 속에서 뭔가를 하면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박무혁 의원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성윤…….’

짧은 시간에 쏟아진 물 폭탄, 전문가들은 산사태까지 걱정하고 있다.

‘가지 말라니까!’

박무혁 의원은 성윤을 말렸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공장으로 향했다.

‘하…….’

박무혁 의원은 휴대폰을 꺼내 성윤의 이름을 찾았다.

-전화를 받지 않아…….

박무혁 의원은 인상을 찌푸린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때…….

“저기!”

기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어둠속에서 어지럽게 흔들리는 손전등의 불빛이 보인다.

그 불빛은 하나가 아니다.

수백 개다.

“노조원들이다!”

그들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차오른 물살은 다리에 닿을 정도로 찰랑거렸다.

바람이 불면 허술한 다리는 격하게 흔들린다.

지켜보는 사람도 건너는 사람도 모두 긴장된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기자들이다.

“찍어야지!”

그들은 다리를 건너는 노조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플래시가 번쩍인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의 옆으로 보좌관이 다가왔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다리 앞에 기자들을 배치해 달라고 말한 사람이 이성윤 의원입니다.”

보좌관은 성윤에게 온 메시지를 보이며 말을 잇는다.

“이성윤 의원이 만들어 낸 장면입니다.”

빗속에서 다리를 건너는 노조원, 그들을 기다리는 재벌 출신의 정치인…….

꽤 괜찮은 그림이다.

보좌관이 힘주어 말한다.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놓치면 이성윤 의원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야지.”

박무혁 의원이 노조원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우산도 쓰지 않고 우비도 입지 않았다.

그대로 비를 맞고 있었다.

하지만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누구보다 당당해 보인다.

그가 다리를 건너온 노조원의 손을 잡으며 진실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고생하셨습니다.”

기자들은 박무혁 의원이 등장한 이유를 단번에 눈치챘다.

‘찍어!’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한다.

노조와 재벌의 만남은 어떻게든 그림이 될 장면이다.

그렇게 노조원들이 다리를 건너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성윤 의원이다!”

노조원의 끝에 성윤이 보였다.

국민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마지막까지 위험한 곳에 서 있는 국회의원.

지금껏 저런 국회의원은 보지 못했다.

기자들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젊어서 그런 거야! 젊어서! 그러니까 저런 행동도 할 수 있는 거야!’

‘어쨌든…… 멋있네. 괜히 고맙고.’

‘내가 서안시 동구 살거든? 나 이성윤 뽑은 사람이야! 하하하하!’

카메라가 성윤에게 향했다.

터지는 플래시 속에서 성윤은 무사히 다리를 건너 빠져나왔다.

그리고 성윤의 앞에는 박무혁 의원이 기다리고 있다.

다리를 건너온 성윤이 박무혁 의원에게 허리를 굽힌다.

“다녀왔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한숨을 내뱉는다.

“이 미련한 사람아…….”

“죄송합니다.”

“여기서 다치면 안 돼. 할 일이 많아.”

“네.”

박무혁 의원이 성윤의 몸을 살핀다.

“다친 곳은?”

성윤이 손바닥을 보인다.

“넘어져서 까졌습니다.”

아파 보이기는 하지만 꿰맬 필요까지는 없는 상처다.

박무혁 의원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성윤에게 건넸다.

그 모습을 보던 기자들이 마른침을 삼킨다.

‘개 멋있네…….’

남자들의 의리를 주로 다루는 느와르에서나 볼 법한 장면…….

제대로 먹힐 것 같다.

그런데…….

‘야, 이거 어쩌면 뒤집힐 것 같지 않아?’

‘뭐가?’

‘지지율!’

대선 후보 중에서 박무혁 의원의 지지율이 가장 낮았다.

대한당과 민국당은 일찌감치 캠프를 만들고 대선을 준비했지만 신당은 이제야 계파 갈등을 끝내고 캠프가 구성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일로 대한당은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어? 그러고 보니까…… 나도 그럴 것 같아.’

‘내일 기사 제목, 이걸로 어때? 국민을 버리지 않는 국회의원 이성윤 그리고 대선 후보 박무혁.’

‘오글거리네.’

‘뭐 어때? 오글거리는 게 먹히는 것 몰라?’

기자들은 최대한 멋진 사진을 뽑아내기 위해 쉬지 않고 셔터를 눌러 댔다.

***

대피소로 이용하는 초등학교.

성윤은 한 교실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기자들이 보인다.

“노조 위원장을 어떻게 설득하신 겁니까? 저희는 노조 측이 끝까지 버틸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상황을 잘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산사태 예상이나 홍수 같은 거요. 노조 위원장이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협조해 줬습니다.”

성윤의 대답이 끝났다.

이번엔 창가에 앉은 기자가 질문한다.

“의원님께서는 가장 마지막에 탈출하셨습니다. 1분만 늦었어도 혼자 고립될 수 있었던 위험한 상황인데, 그렇게까지 하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윤이 빠져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살이 다리를 덮쳤다.

기자의 말대로 위험할 뻔한 상황이다.

하지만 성윤은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당연한 거잖아요? 제 직업이 세금으로 월급 받는 국회의원인데…….”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이 오간 후 인터뷰가 끝났다.

“그럼, 나중에 뵐게요.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성윤은 기자들을 떠나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정말 짧은 인터뷰였다.

그런데, 기자들은 만족한 표정이다.

인상적인 사진을 많이 얻었으니까.

“그럼, 슬슬 기사를 써 볼까?”

기자들이 노트북을 열어젖혔다.

이제 그들의 싸움은 누가 더 자극적인 제목을 가져다 붙이느냐다.

그때, 교실 문이 열리고 노조원 한 명이 들어왔다.

그가 멋쩍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영상이 있는데요. 제보해도 되나요?”

기자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노조원이 찍은 동영상은 날것이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노조원이 휴대폰을 꺼내며 말한다.

“이 의원님이 오늘 어떻게 행동했는지 제가 다 찍었거든요.”

기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혹시?’

‘설마…….’

이미지로 먹고사는 국회의원이 많다.

‘이성윤 의원도?’

어쩐지…… 그럴 것 같다.

‘생각해 봐! 누가 그런 위험한 곳에 마지막까지 있겠어? 목숨 내놓고 일하는 국회의원이 어디 있어!’

‘하긴. 뭔가 트릭이 있었던 것 아니야?’

‘극적인 장면으로 사진을 찍히려고?’

‘합리적인 의혹이야!’

가장 나이 많은 기자가 심각한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공장 안에서 노조원들에게 갑질하고 그랬을 수도 있어. 노조 위원장이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한 이유가 뭐겠어? 뭔가 거래가 있었겠지.’

‘그럼, 그게 휴대폰에 찍혔다는 거야?’

‘아마도!’

기자들의 시선이 노조원에게 향했다.

‘국회의원의 민낯을 까발려야지!’

때 아닌 기자 의식이 스물스물 일어난다.

그리고 얼마면 보여 줄 수 있냐는 말을 하려는데 노조원이 휴대폰 화면을 쑥 내민다.

동영상이 보인다.

성윤이 빈 공장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

“이것은 이 의원님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모든 사람이 다 떠났는지 확인하는 모습이고요. 그리고 이건…….”

예상하지 못한 동영상에 기자들은 다시 서로의 눈을 마주봤다.

이들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잘나가시는 분들…….

그분들은 자기 자리를 보존하느라 바빴다.

국정과 국민은 관심은 물론이고 신경 쓴 적도 없다.

그런데 성윤은 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고 있다.

‘이게 정말이었어?’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

성윤은 학교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뿌연 연기를 내뱉으며 시선을 틀어 교실을 본다.

그곳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밖만 보고 있다.

무너진 집, 침수된 차…….

재산상 피해를 걱정하는 거다.

하지만 성윤은 그들을 보며 웃고 있다.

‘다행이네.’

꿈속의 미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실종됐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부상자는 좀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고 어머니며 자식이다.

그들은 가정의 행복을 계속 지켜 나갈 수 있다.

성윤이 슈퍼 히어로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한 보람은 마약처럼 스며든다.

‘괜찮네.’

기분 좋게 담배 연기를 내뱉는데 자동차가 끼이익, 멈춰 섰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정우가 내린다.

가뜩이나 험악하게 생긴 얼굴인데 인상까지 일그러뜨린 채 성윤을 쏘아본다.

“왜 그래? 기분 나쁜 일 있어?”

“사람들이 장판교 장비라고 하니까 진짜 영웅인 줄 알아요!”

“어?”

어쩐지 혼나는 기분이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국회의원이 뭐 하는 거예요!”

정우는 라디오로 소식을 들으며 이곳으로 달려왔다.

-이성윤 의원이 노조원을 설득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성윤 의원이 아직 빠져나오지 않았습니다!

-물이 불어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는 중입니다!

정우의 무지막지한 인상을 보면 화가 잔뜩 난 것 같다.

성윤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쏘리.”

“하…… 의원님이 나보다 어렸으면 진짜…….”

“가끔 내가 너보다 형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

정우는 크게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고 성윤의 몸을 살핀다.

“다친 곳은 없는 거죠?”

“자빠져서 손이 쓸렸어.”

성윤이 손바닥을 보였다.

정우가 손바닥을 보며 혀를 끌끌 찬다.

“부러졌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뭐?”

“그래야 다시는 이런 짓 안 하죠.”

성윤은 초등학교의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정우가 성윤의 옆에 나란히 서며 묻는다.

“그런데, 노조 위원장은 어떻게 했어요? 고소? 아니면 회사 내부적으로 해결하나요?”

노조 위원장 김두식, 돈을 받고 파업을 했다.

그 죗값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묻는 거다.

고소를 할 수도 있지만 박무혁 의원의 대선 이미지 때문에 내부적으로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다친 사람 없잖아. 일단 킵해 뒀어.”

“킵해 두다뇨?”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노조 위원장을 잡는 것 따위로 일을 끝낼 생각 없다.

성윤은 이준대를 박살 내려 한다.

이준대의 손가락부터 하나씩 부숴 버리고 다리와 팔 그리고 몸통과 대가리를 찍어 버릴 거다.

그 계획에 노조 위원장도 필요하다.

계획대로 된다면 역사상 최악의 게이트가 열릴 예정이다.

일단 그건 그렇고…….

해결해야 할 일은 또 따로 있다.

성윤이 정우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리고…… 이거 봐 봐.”

“뭐예요?”

“갤러리에 들어가서 동영상을 확인해 봐.”

정우가 휴대폰을 만졌다.

동영상을 확인하며 눈빛이 찌푸려진다.

“이건…….”

화면에 노조 위원장 김두식이 보였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이번 파업, 한민당 박무혁 의원과 대한당 서용우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시작된 파업입니다. 저는 이 파업을 일으키는 대가로 돈을 받았고 동료들을 속였습니다. 이 파업을 지시한 사람은 민국당 도제성 의원입니다.

동영상을 보던 정우가 성윤을 향했다.

“의원님?”

“알아, 거짓말이야. 대정자동차 부사장의 지시를 받고 찍은 동영상이라고 하더라. 일단 가지고 있어. 그걸로 민국당과 거래할 수 있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유치한 거짓으로 도제성 의원을 꺾을 수는 없다.

차라리 거래를 하는 게 이득이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인다.

“네, 알겠어요. 그런데…….”

“그런데, 뭐?”

“박영훈 부회장, 이준대 대표 그리고…… 민국당 유원희 의원이 낀 사건이잖아요?”

“그렇지?”

“유원희 의원이 왜……?”

이런 동영상을 손에 쥐고 히든카드로 사용할 사람은 정치인밖에 없다.

그런데, 같은 당 후보를 상대로 히든카드라니…….

“글쎄…… 사이가 틀어졌나 보지.”

알아봐야겠다.

어쩌면 대선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앞으로 또 바빠지겠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힌트가 쏟아지는 것만 같다.

다 주워서 사용하려면 바쁠 거다.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몸을 돌려 학교로 들어가는데, 휴대폰이 또 진동한다.

‘아…….’

발신 번호가 어머니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뉴스에 나오는 게 사실이야?

전화를 걸까 말까…… 한참 고민하셨을 게 분명하다.

아들이 다칠 뻔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시니까.

“다친 곳 없고요. 원래 언론이 부풀리기를 잘하잖아요. 별일 없었어요.”

최대한 잘 설명했다.

애써 안심시킨 후 통화를 종료했는데 또 진동이 울린다.

아마…… 아버지일 거다.

화면을 보지도 않고 통화 버튼을 누르며 귀에 댔다.

“진짜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정말요?

낯익은 목소리.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네?”

-아, 정혜성이에요. 정말 다친 곳 없으신 거죠?

< 비가 내리면.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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