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10화 (210/300)

< 캠프 구성. - (2) >

***

국회의사당 맞은편에는 정치 골목이라는 곳이 있다.

각 당의 당사가 있고 선거철이 되면 선거 캠프가 들어서는 곳이라 그렇게 불린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또는 계속해서 의원을 배출해 낸 건물은 명당이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임대료도 가장 비싸다.

신당의 선거 캠프가 들어서는 곳 역시 명당 중 하나였다.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은 풍수지리부터 온갖 잡다한 미신까지 다 끄집어내 확인했다.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지금도 그는 풍수지리 전문가를 옆에 끼고 가구를 배치하는 중이다.

“소파는 저쪽으로 놔주세요.”

책상은 이쪽, 책장은 저쪽, 컴퓨터가 놓이고 텔레비전이 일사불란하게 정리된다.

하지만 곧…… 보좌관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철야를 위한 야전침대가 미친 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건 어디에 둬야 하죠?”

“글, 글쎄요.”

풍수지리 전문가도 난감하다.

웬만하면 풍수지리에 맞게 놓고 싶은데 자리가 마땅치 않다.

배달원은 멀뚱멀뚱 기다리고 있다.

결국 보좌관이 힘없이 한쪽 사무실을 가리킨다.

“저쪽 방에 넣어 주세요.”

이어서…….

각 국회의원이 전해 온 화분이 쉬지 않고 들어온다.

배달원이 묻는다.

“어디에 둘까요? 복도에는 둘 곳이 없던데…….”

보좌관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풍수지리는 포기다.

그렇게 정리가 거의 끝나 갈 때쯤, 보좌관의 옆으로 정우가 섰다.

“고생하십니다.”

“아, 왔어?”

정우가 활짝 웃으며 보좌관의 손에 에너지 드링크를 건넸다.

“짐이 들어오니까 그럴듯하네요.”

“그렇지?”

꽤 그럴듯한 사무실이 완성됐다.

이제 몇 가지 짐만 더 들어오면 된다.

정우가 음료를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이제 이 사무실에서 사육되겠죠? 야전침대에서 자고 그 앞에서 라면 끓여 먹고……. 거지가 되겠어요. 흐흐.”

추석 이후부터 캠프의 관계자들은 이곳에서 먹고 자야 할 운명이다.

전국을 누벼야 하고 회의가 끝나면 새벽 3~4시.

집을 오가는 시간에 여기서 잠을 자는 게 이득이니까.

그렇게 대선이 끝나고 거울을 보면 피골이 상접한 거지가 따로 없다.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지. 그런데, 승리하면 거지에서 왕자 되는 거야.”

정우가 힐끗 보좌관을 봤다.

‘그 국회의원에 그 보좌관이라더니…….’

박무혁 의원도 그렇지만 보좌관 역시 패배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기분이 어때요?”

“뭐가?”

“초선 의원이었던 박무혁 의원님을 대선 후보로 만든 느낌이요.”

보좌관이 씩 웃는다.

“안 겪어 보면 몰라. 하하하.”

정우와 보좌관은 같이 한참을 웃었다.

보좌관이 손목시계를 보며 입을 연다.

“조금 있으면 회의가 시작되겠어?”

“한 20분 남았네요.”

오늘 회의로 선거 캠프의 조직이 구성된다.

보좌관의 시선이 정우에게 향했다.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은 이성윤 의원님이 하려나?”

“설마요.”

“왜? 자격은 충분하잖아?”

총괄 선거대책위원장, 대통령 후보의 제1참모로 불리며 선거의 모든 것을 지휘하는 사람이다.

선거가 끝나고 정계 개편까지 손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

그야말로 실세 중 하나.

보좌관의 말처럼 자격이라면 충분한데…….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안 할걸요.”

***

그 시각, 당사.

성윤은 박무혁 의원과 마주 앉아 있었다.

“생각해 봤어?”

박무혁 의원은 성윤에게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을 권했다.

하지만 성윤은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의원, 난 이 의원이 일등 공신이 되었으면 좋겠어.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부담스럽다면 부위원장이나 비서실장…….”

성윤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박무혁 의원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성윤이 권력을 쥐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당을 하나로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대선을 앞두고 최대한 잡음이 들리지 않기 위해선…….

“서안시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역할이나 던져 주십시오.”

“서안시?”

“네.”

“자네가 맡기엔 작지 않아?”

대선 캠프에서 맡을 직책은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권력 중 하나.

권력 지도가 그려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성윤은 완곡히 거절하고 있다.

몇 번 더 설득하던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유를 말해 봐.”

“제가 의원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작은 직책을 맡았다고 무시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래야 조용할 겁니다.”

신당에서 성윤의 이름값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거기에 김종혁 의원을 무자비하게 짓밟기까지 했다.

그런 성윤이 큰 직책을 맡아 권력을 휘두른다면 불안할 사람이 많다.

시퍼렇게 벼려진 칼이 옆에 있으면 두려운 법이니까.

하지만 성윤이 작은 직책을 맡는다면…….

“이성윤 같은 놈도 저런 직책을 맡았는데, 내가 이런 일을 한다고 불만 가지면 쪽팔리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책을 얻은 의원들도 입을 꾹 닫고 있을 거다.

박무혁 의원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권하기는 어렵다.

“그럼, 이 의원이 생각하는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은 누구야? 천거할 수는 있지?”

“글쎄요. 저는…….”

잠시 후, 신당 당사의 대회의실.

고위 당직자와 최고위 등 신당의 거물들 스무 명이 앉아 있다.

그곳에 성윤도 보인다.

당직자가 스크린 앞에 서서 한창 브리핑을 하는 중이다.

현재 각 지역별 정당 지지율이 어쩌고 박무혁 의원의 지지율은 저쩌고 상승세는 이렇고…….

“……이상입니다.”

당직자가 자리로 돌아갔다.

박무혁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 선다.

한참 동안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의원들의 얼굴을 살핀다.

동시에 의원들은 마른침을 삼킨다.

‘이제 시작…….’

캠프의 조직이 결정된다.

‘위원장이라도 하나 맡아야지.’

그래야 어디 가서 박무혁 의원의 라인이라고 지껄이며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다.

의원들의 시선이 스르륵 성윤에게 향했다.

‘이성윤은 총괄일까? 아니면 부위원장? 적어도 비서실장은 하겠지?’

예상했던 대로 의원들의 기준은 성윤이다.

성윤의 보직이 정해지면 그다음에 자신들의 이름이 호명될 거라고 예상한다.

‘비서실장? 글쎄…… 그것도 좀 높지 않아? 최근에 잘나가기는 하지만 아직 어리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른 당 1급 참모끼리 붙으면 좀 약해 보일 것 같은데…….’

그 말이 맞다.

1급 참모끼리 모이는 자리에 성윤이 끼면 약해 보인다.

그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언론에 실리면 나이 든 아버지를 모시는 아들이다.

거기서 인상이라도 찌푸렸다간 싸가지 없는 놈이 되는 거고.

그래서 성윤이 거부한 이유도 있다.

그때, 박무혁 의원의 입술이 움직였다.

“공대출 의원님, 선거를 맡아 줄 수 있겠습니까?”

순간 조용했던 회의실이 웅성거렸다.

‘공대출 의원님?’

의원들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다.

박무혁 의원은 방금까지 성윤과 밀실 회의를 했으니까.

하지만 곧…….

‘하긴 공대출 의원님은 이성윤과 같은 계파잖아?’

‘이성윤이 추천했겠네.’

웅성거림 속에서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열었다.

“공대출 의원님,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대출 의원이 껄껄 웃는다.

“늙은이를 써 준다면 해야죠.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공대출 의원님을 도울 부위원장은…….”

다시 의원들이 마른침을 삼킨다.

‘부위원장? 이번엔 이성윤인가?’

‘공대출 의원을 앞세우고 뒤에서 조종하겠다는 의도?’

‘확실히 약았어.’

하지만 이번에도 의원들의 예상은 엇나갔다.

“김종혁 의원, 도와줄 수 있겠나?”

이번에는 모두 놀랐다.

회의실이 순식간에 적막해진다.

놀란 것은 김종혁 의원도 마찬가지다.

“제, 제가요?”

그는 성윤과의 계파 싸움에서 무참히 깨지며 병역 비리에 걸려 들었다.

연루된 다른 당의 의원들과 손잡고 법의 준엄한 심판을 겨우 피해 가고 있지만…….

‘이제 힘없잖아?’

김종혁 의원은 이빨 빠진 사자며 발톱 빠진 호랑이다.

입도 뻥끗 못하고 앉아 있다.

‘그런데, 왜?’

의원들이 눈을 깜빡이며 성윤과 김종혁 그리고 박무혁 의원을 번갈아 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김종혁 의원이 대답을 하지 않자 박무혁 의원이 다시 입을 연다.

“김종혁 의원, 어떻게 생각해?”

김종혁 의원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성윤에게 향했다.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의 인사는 성윤의 손에서 휘갈겨진 거다.

그의 눈이 성윤과 마주쳤다.

‘……날 놀리는 거냐?’

쏘아보는 눈빛에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딱 하나 남은 동아줄입니다. 꽉 잡으세요.’

김종혁 의원은 입술을 꽉 깨문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아래로 들어오라는 거다.

그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킬지…….

똥밭에 굴러도 권력이 좋다고 성윤 앞에 손바닥을 비빌지…….

‘씨발, 어쩌지?’

그때 공대출 의원이 입을 연다.

“김종혁 의원이 부위원장을 맡아 준다면 정말 편할 것 같습니다. 경험도 많고 능력도 좋은 분이니까요. 그리고…….”

공대출 의원이 자리한 의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잇는다.

“다들 알죠? 우리는 얼마 전까지 물과 기름이었던 것. 김종혁 의원과 제가 함께하면 하나로 섞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대선에서 승리할 때까지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김종혁 의원, 도와주세요.”

김종혁 의원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거절할 명분이 없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비서실장이 발표될 시간이다.

다시 모두의 시선은 박무혁 의원에게 향한다.

‘이번에는 이성윤이겠지?’

‘당연하지. 이성윤일 거야.’

하지만 이번에도 틀렸다.

“이영범 의원, 해 줄 수 있겠어?”

그 말과 동시에 한 의원이 벌떡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답답해서 그러는데, 이성윤 의원부터 발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이 의원은 경기도 중소기업대책위원장을 맡아 주기로 했어.”

“경기도 중소기업대책위원장이요?”

“그래.”

의원들이 뻣뻣해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본다.

‘이성윤이 경기도?’

성윤의 나이를 보면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나 부위원장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청년위원장이나 기획위원장에는 들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중소기업대책위원장도 아니고 앞에 경기도가 붙다니…….

그럼, 성윤보다 네임 밸류가 낮은 사람들은 알아서 찌그러져야 한다.

‘왜지? 대한당 주진만 의원이 이성윤을 킹메이커로 불렀었잖아?’

‘맞아. 이성윤은 채정학 의원을 대표로 만들었었어.’

‘그런데 왜?’

이후의 분위기는 성윤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이름값 있는 성윤이 낮은 직책을 맡자 누구 하나 불만을 토해 내지 않는다.

주어진 직책에 수긍하고 있다.

“자, 다음은…….”

그렇게 긴 회의가 끝났다.

성윤이 회의실을 벗어나는데 누군가가 등을 톡톡 두들긴다.

뒤를 돌아보니 민국당 출신의 의원이 보인다.

이름은 김정만……. 재선 의원으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다.

“이 의원, 담배 어때?”

“아, 좋죠.”

성윤은 김정만 의원과 함께 흡연실로 향했다.

회의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하자 흡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정만 의원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한다.

“금방 추워지겠어.”

“그러게요.”

“국감 준비는 잘되고 있어?”

“아뇨. 어렵네요.”

“그럼, 그 법안? 그거 어떻게 됐어? 상임위로 넘어갔나?”

성윤이 힐끗 김정만 의원을 바라봤다.

영양가 없는 질문만 하고 있다.

말을 빙빙 돌리며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성윤이 그의 속마음을 들으며 입을 열었다.

“편히 말씀해 주세요.”

김정만 의원이 멋쩍게 웃었다.

“이 의원, 오해하지 마. 이건 나도 부탁을 받아서 하는 이야긴데…… 민국당에서 한번 보고 싶다고 하네.”

“네? 민국당이요?”

김정만 의원이 난감한 얼굴로 손을 저었다.

“내가 민국당과 내통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민국당 출신인 것 알잖아? 아는 의원들이 많이 있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부탁이 들어오는 게 많아.”

횡설수설 변명을 이어 간다.

얼마 전, 민국당의 친한 의원이 김정만 의원을 찾아와 부탁에 부탁을 했다.

“이성윤 의원에게 전해 줘. 밥 한번 같이 먹자고.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얼굴 보면 좋잖아? 어쩌면 같은 식탁에 앉을 수도 있고.”

김정만 의원은 처음엔 거절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성윤에게 입을 열고 있다.

“……저를 왜 보자고 하는 거죠?”

“왜겠어? 영입하려고 하는 거지.”

“이 시기에요?”

오랜만에 듣는 참신한 개소리다.

신당으로 옮기며 대대적으로 얼굴이 팔린 게 불과 몇 달 전.

그런데 또 당적을 옮기면 배신의 상징 박쥐가 된다.

앞으로의 정치 인생에서 스스로 자살골을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신당에서 입지를 확고히 하는 중인데 옮기라니…….

그것은 김정만 의원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한다.

“그것은 그쪽도 잘 알겠지. 그런데, 알면서도 베팅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몸값을 후하게 쳐준다는 게 아닐까? 몸값이나 알아봐.”

< 캠프 구성.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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