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캠프 구성. - (1) >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수화기에서 성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칼을 들었으면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했어야죠.
“의, 의원님, 일단 침착하시고…….”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기 전에 김종혁 의원님을 바꾸세요.
보좌관은 어떻게든 수습하려 한다.
“의원님, 그러니까 이게…….”
-바꾸세요.
성윤의 목소리는 싸늘하다.
계속 어물쩍거리다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보좌관이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보좌관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며 태블릿 PC의 동영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젠장.’
몇 번을 확인했지만 그 여자가 맞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작전이 어디에서 샌 거야! 이 여자는 어떻게 찾은 거고!’
짜증을 냈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망가진 계획이다.
그들이 쥐었던 칼이 방향을 바꿔 목을 노리고 있다.
이 영상이 풀리면 그 칼은 가차 없이 그들의 목을 베어 버릴 거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은 시끌벅적했다.
보좌관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여자들은 또 언제 부른 거야!’
반나체의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가녀린 팔로 늙은 의원들의 목을 휘감고 있다.
의원들은 입이 찢어져라 웃는 중이고.
가정적이라고 소문난 의원이 제일 신나 있다.
여자를 간지럽히며 변태처럽 웃는다.
그러면서도 의원들은 성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고 있다.
“그 건방진 새끼 우는 꼴 한번 보고 싶네요.”
“감옥에 보낼 수는 없습니까?”
“아이고, 혐의예요, 혐의. 의혹이고. 경찰 수사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배우들이 한국을 떴을 겁니다. 으핫핫핫!”
여자들이 있어서 그런지 허세가 심하다.
말만 들어 보면 성윤은 이미 두들겨 맞아 쓰러진 것 같다.
보좌관은 꾹 눈을 감았다.
‘하…….’
이 분위기에 찬물을 뿌려야 한다.
김종혁 의원의 옆으로 다가간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의, 의원님.”
술을 입에 대던 김종혁 의원이 눈동자만 틀었다.
“그래, 시작했어?”
“그, 그게…….”
보좌관은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손에 들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김종혁 의원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왜? 무슨 일인데?”
“그러니까…… 전화가…….”
김종혁 의원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보좌관의 휴대폰을 뺏어 귀에 댔다.
“누구야?”
-이성윤입니다.
김종혁 의원의 얼굴이 콱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또 무슨…….”
-동영상 보고 이야기하시죠.
“또 무슨 수작이야!”
김종혁 의원의 목소리가 험악하게 울렸다.
그러자 여자를 끼고 술을 처먹던 의원들의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그들의 시선이 김종혁 의원에게 집중된다.
“김종혁 의원님, 무슨 일 있습니까?”
“왜 그러세요?”
“누굽니까?”
김종혁 의원은 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조용히 보좌관이 내민 태블릿 PC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곧…….
“이 개새끼야!”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수화기 너머에서 성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욕은 하지 마시고.
***
“이성윤입니다.”
신당의 당사,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성윤이 고개를 숙였다.
박무혁 의원이 턱을 괴고 성윤을 바라본다.
“끝났나?”
“네.”
성윤이 박무혁 의원의 앞으로 다가가 USB를 내려 뒀다.
“이걸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USB를 노트북에 꼽는다.
화면에 여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모든 것을 폭로하겠습니다. 저와 뒤에 있는 남자 세 명은 신당의 김종혁 의원과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은 이성윤 의원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만들고 퍼뜨리는 것. 그 증거로 계약서를…….
이 영상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계속 김종혁 의원을 공격하면 신당의 지지율만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종혁 의원을 괴롭히는 것은 병역 비리만으로 충분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다른 꿍꿍이를 부리지 못하게 할 협박용.
박무혁 의원이 영상을 멈추고 성윤을 본다.
그는 성윤과 김종혁 의원의 싸움을 알고 있었다.
그 싸움은 분란과 혼란을 조장했다.
하지만 나설 수 없었다.
짐승의 싸움은 누구 하나 죽거나 꼬리를 말아야 끝난다.
서열이 세워져야 닥치고 있는 게 그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폭발할지 모를 갈등만 쌓인다.
“축하해.”
“죄송합니다.”
성윤은 사과했다.
어쨌거나 김종혁 의원은 박무혁 의원의 사람이었다.
박무혁 의원을 쫓아 신당으로 이동했고 나름 옆에서 잘 보좌했다.
그런데 성윤은 김종혁 의원의 목을 가차 없이 베어 버렸다.
그것도 무참하게…….
“뭐, 됐어. 그건 그렇고 김종혁 의원을 어떻게 처분할 생각이지?”
“법에 따를 겁니다.”
성윤은 단번에 답했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법에 따른다……. 그런데, 생각 한번 해 봐.”
“……생각이요?”
“김종혁 의원은 병역 비리 사건이 터지자마자 당에 상관없이 의원들을 모아 손잡았어. 판단력과 행동력이 빠르지. 쓸 만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성윤은 물끄러미 박무혁 의원을 바라봤다.
‘뭐지?’
신당은 사람이 부족하다.
대한당이나 민국당에 비하면 이름값 있는 의원이 거의 없다.
거물이 있다면 지옥에서라도 끌고 와야 할 상황이다.
김종혁 같은 거물을 침몰시킨다는 것은 당연히 아깝고 아쉽다.
‘그러니까 봐주자는 이야기인가? 대선에 필요하니까? 어쩌면 폭탄이 될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자네 사람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어?”
“네?”
박무혁 의원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USB를 성윤의 앞으로 밀어 두며 말을 잇는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사람이 필요해. 타고 달릴 적토마도 필요하고 사냥감을 주워 올 사냥개도 필요하지. 김종혁 의원은 훌륭한 사냥개야. 이 USB에 담긴 동영상은 개목걸이로 충분할 것 같은데…….”
“저기…… 의원님?”
박무혁 의원이 빙긋이 웃는다.
“강요하는 것 아니야.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난 이 의원이 김종혁 의원의 계파까지 손에 쥐는 걸 보고 싶어.”
성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김종혁 의원의 계파까지 얻는다면 신당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얻게 될 거다.
아니, 신당을 넘어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법은 통과시킬 수 있게 된다.
성윤의 시선이 박무혁 의원에게 향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 당은 여당이 되겠지. 그때는 계파 간의 갈등이 있어서는 안 돼. 하나가 되어야 해. 이 의원이 권력을 손에 쥐고 흔들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의 머리에 철퇴를 휘둘러.”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불을 뿜어내고 있다.
“알겠습니다. 신중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조용히 웃는다.
의자에서 일어나 성윤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그리고 성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 의원이 있어서 참 든든해.”
성윤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만약 이 싸움의 승자가 김종혁 의원이었다면? 그때는 김종혁 의원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지금 내게 했던 말과 똑같이 했을까? 철퇴를 휘두르라고?’
모르는 일이다.
박무혁 의원은 자신의 형제인 박영훈 부회장도 가차 없이 찍어 누르려 하는 사람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끝없는 승리.
‘나를 아끼는 것은 분명하지만 패배했을 때도 함께하려고 할지는 모르겠어.’
잠시 후, 성윤은 사무실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박무혁 의원이 조용히 바라본다.
“서른한 살인가?”
성윤의 나이는 이제 서른하나.
그런데, 신당의 주류 계파를 떡하니 차지했다.
그것도 어부지리로 얻은 게 아니라 싸워서 쟁취한 것이다.
“대단해.”
그 계파의 수장은 표면적으로 공대출 의원이다.
하지만 그 계파의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성윤이 주인인 것을…….
박무혁 의원이 의자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다.
“내가 어디까지 끌어 줄 수 있을까?”
박무혁 의원은 의자의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들긴다.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려 있다.
***
며칠 후.
성윤은 서울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공대출 의원 등 다른 의원들과 약속이 있어서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평상시 이뤄졌던 회식.
하지만 진짜 이유는 주류가 된 축하 파티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성윤을 반긴다.
“이 의원 왔어?”
“큰일을 했어!”
의원들은 성윤을 향해 뜨겁게 인사한다.
그들이 주류가 된 이유가 바로 성윤의 힘이니까.
“최고야! 최고!”
성윤은 의원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가까이에 있는 벤처 의원의 옆에 앉았다.
벤처 의원은 벤처에 갈 기금을 꿀꺽했다가 성윤에게 걸렸던 사람이다.
“오늘 사람이 많네요?”
“김종혁 계파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우리 쪽에 붙고 있어. 흐흐흐.”
김종혁 의원의 어깨에 매달려 권력의 꿀을 빨아먹기 위해 붙어 있던 사람들.
김종혁 의원이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공대출 의원의 계파로 피난을 왔다.
그들에게 의리란 없다.
이득에 따른 거래 관계였을 뿐이다.
“우리 계파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지? 조금 있으면 당 전체를 장악할 수도 있겠어.”
당 전체…….
성윤의 머릿속에 박무혁 의원이 했던 말이 스쳤다.
-권력을 손에 쥐고 흔들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의 머리에 철퇴를 휘둘러.
‘어떻게 해야 하나…….’
성윤이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벤처 의원이 고기를 집어 성윤의 앞 접시에 둔다.
그리고 소주를 홀짝이더니 주변의 눈치를 본다.
“이 의원, 캠프 구성은 우리가 주도하겠지?”
“네?”
“쉿! 대선 캠프! 다른 당은 다 했잖아. 이제 주류가 결정 났으니까 우리도 만들 텐데……. 우리가 주도하는 것 맞지?”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글쎄요. 박무혁 의원님은 그런 것을 싫어하는 분이라 능력에 따라 배치할 것 같은데요.”
“에이, 그래도 이 의원과 상의하고 이 의원의 말에 더 귀 기울일 게 분명하잖아.”
그건 그렇다.
성윤의 의견을 따라 줄 것은 거의 확실하다.
벤처 의원이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입을 연다.
“만약에 우리가 대선을 먹으면…… 박무혁 의원에게 장관 자리 하나 부탁할 수 있을까?”
“예? 장관요?”
캠프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뜬금포로 장관이라니.
이건 또 무슨 참신한 소린가 해서 들어 봤다.
“내 지역구에서 시만 단체를 운영하던 사람이 있어. 대선 캠프에서 요직에 배치하고 이후에 장관 하나 주면…….”
그런데, 신나서 떠들던 벤처 의원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어라? 왜 다 여기를 보는 거야?’
그는 분명 최대한 조용한 목소리로 인사 청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시선이 성윤과 벤처 의원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들도 선거 캠프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 구성하는 거야?’
‘다른 당은 이미 구성되지 않았어?’
‘우리가 제일 늦어.’
대선을 앞둔 의원들의 마음은 초조하다.
여당과 야당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야당은 인사권이 없다.
어떻게든 여당의 발목을 잡아 빽빽 소리 지르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공무원들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어 뽑아 버리려면 여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빨리 선거 준비해야지!’
모두 성윤의 목소리만 기다린다.
적막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때, 멀리 떨어져 앉아 있던 공대출 의원이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큼, 큼…… 이 의원, 궁금한 게 있어. 우리 캠프 구성은 언제 하는 거야? 다른 당은 다 시작한 모양인데…….”
물꼬를 트는 게 어렵지 한 번 터지면 여기저기서 지방방송이 시작되는 거다.
공대출 의원을 시작으로…….
“그래, 이 의원! 박무혁 의원님이 뭐래?”
“계파 갈등도 마무리된 것 같은데, 선거 캠프를 돌려도 괜찮지 않아?”
“시간이 없어. 이제 4개월 남았잖아! 팔 걷어붙이고 싸워야 해!”
대선캠프는 보통 선거 6개월 전에 가동된다.
이미 대한당과 민국당은 선거 캠프를 차려 두고 주말마다 그놈의 어묵과 순대를 먹으러 다니는 중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서민 코스프레를 하며 민심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신당은 선거 캠프를 열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까 답답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의원은 알고 있지?”
“이 의원은 박무혁 의원님의 참모잖아?”
“얘기 좀 해 줘! 답답해!”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겠다는 제스처.
고깃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고기 굽는 소리만 지글지글 들린다.
“그동안 계파 갈등과 내부 사정으로 선거 캠프를 구성하지 않았습니다.”
단결되지 않은 조직은 쉽게 무너진다.
특히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 바닥에서는 더 그렇다.
상대 당은 첩자를 쉽게 집어넣을 수 있고 어렵지 않게 배신자를 섭외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주류가 결정됐다.
주류를 중심으로 당이 뭉칠 거다.
“이번 금요일에 있을 최고위 회의를 시작으로 선거 캠프를 구성할 겁니다. 다른 당보다 2개월 뒤처진 만큼 분주히 움직여야 할 것으로 예상되죠. 캠프 장소는 의사당 맞은편의 빌딩으로 계약했고…….”
의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성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가고 있다.
잠시 후, 성윤은 고깃집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입에 무는데 바람이 불어온다.
열대야가 끝나서 그런지 선선한 기운이 얼굴을 스친다.
‘이제 가을이네…….’
할 일이 참 많은 가을이다.
국정감사와 예산은 물론이고 대선까지 치러야 하니까.
< 캠프 구성.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