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08화 (208/300)

< 이념은 수단. - (5) >

***

“앞으로 일주일 정도, 이 사건이 끝날 때까지 뒤를 좀 봐주세요. 혹시 무슨 일이 터지면 경찰을 부르고요.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네.

서초동, 한정식집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앞.

성윤은 장한수 실장과의 통화를 종료했다.

정우가 입을 연다.

“리얼 팩트에 연락했어요. 지금 김종혁 의원 아들이 다니는 회사 앞을 지키고 있대요.”

“잘했어.”

“그런데, 장한수 실장은 왜 김종혁 의원의 아들을 뒤쫓는 거예요? 리얼 팩트가 취재하니까 굳이 갈 필요 없잖아요.”

“죽을 수도 있어서.”

“네?”

“갑자기 아들이 죽으면 김종혁 의원은 동정표를 받고 주가가 올라갈 거야.”

“그게 무슨…….”

“그런 게 있어. 그걸 원하는 사람이 있고.”

이준대는 김종혁 의원에게 병 주고 약 주는 방법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성윤이 김종혁 의원의 아들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을 거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이준대가 좋아하던 말이다.

그는 문제가 터지면 원인을 찾지 않는다.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이준대가 원하던 것은 김종혁을 손에 쥐고 정치 지분을 늘리는 것이야. 김종혁이 사라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성윤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김종혁 의원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하나.’

병역 비리의 원인이 된 그 아들을 죽이는 거다.

‘이준대는 그런 식이야. 자기가 옳고 다른 것은 틀렸지.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은 더러워도 상관없다는 인식. 하지만 그 목적도 결국 개인의 영화를 위한 것이었어. 국민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문이 ‘띵’ 소리와 함께 열렸다.

성윤은 고개를 저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준대에 대한 생각은 잠시 미뤄 둬야 한다.

지금은 병역 비리부터 해결할 시간이다.

미닫이문이 열렸다.

기다리고 있던 김재형 검사가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김재형 검사의 옆에는 중앙 지검 검사장이 앉아 있다.

성윤이 그에게 시선을 틀어 가볍게 웃었다.

“이성윤입니다.”

“진명수입니다.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일 때문에 만나게 됐네요.”

검사장은 박무혁 의원과 손을 잡았다.

언젠가 박무혁 의원은 성윤에게 검사장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사람 인연이라는 게 쉽게 만나지는 것은 아니다.

성윤과 정우 그리고 김재형 검사와 검사장이 자리에 앉았다.

그들에게 가벼운 인사말은 없었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검사장이 입을 열었다.

“어제 김재형 검사에게 들었습니다. 의원님께서 병역 비리 브로커를 잡아다 주겠다는 말을요.”

“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바로 기자회견을 해 버리셔서 검찰의 면이 서지 않습니다.”

검사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속마음을 들어 보면 성윤을 상대로 간을 보고 있다.

어디까지 세게 나가도 되는지, 누가 우위에 있는지…….

직책과 직급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성격과 성향의 문제다.

‘이 사람이…….’

중요한 문제를 앞에 두고 서열 싸움이나 하려는 자.

밟아 줘야 한다.

“검사장님, 그게 문제가 되나요?”

“네?”

“브로커도 우리가 확보했고 자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걸 그대로 넘겨주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닌가요? 기자회견까지 상의를 했어야 했나요?”

“의원님, 그게 아니라…….”

“아니면, 중앙 지검에서 연루된 장두식 차장검사를 빼 주고 싶어서 그런 겁니까?”

공격적인 목소리에 검사장의 미간이 확 일그러진다.

“의원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그럼, 오해될 행동과 말씀을 하지 말아 주세요.”

검사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기분이 나쁘지만 상대는 국회의원.

여기서 더 빽빽거릴 수는 없다.

검사장을 뚫어지게 쏘아보던 성윤이 슬쩍 웃었다.

“제 말이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어제 브로커와 밤새 이야기를 하느라 예민했나 봅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검사장도 기분 나쁜 표정을 풀어낸다.

계속 인상을 쓰고 있어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

“자료를 주시겠습니까?”

정우가 가방에서 명단과 장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검사장이 장부를 착착 넘기기 시작한다.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을 발표하지는 않으셨네요.”

“검찰도 먹을 게 있어야 하니까요.”

검사장의 표정이 민망해진다.

성윤이 먹을 것을 남겨 줬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런데, 오늘 아침에 바로 기자회견을 해 버리셔서 검찰의 면이 서지 않습니다.”라고 지껄였으니까.

“참, 사람 민망하게 만드시네요. 두 손 두 발 다 들 것 같습니다.”

옆에 앉은 김재형 검사가 조용히 웃는다.

그 또한 그랬으니까.

두 사람을 보며 성윤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 장부에 있는 사람, 모조리 씹어 주세요.”

“네? 모, 모두요?”

사건이 터지면 대중의 모든 시선이 모아진다.

여기저기 모여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다음은 누가 밝혀질까?”

“여당? 야당?”

“대통령?”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한다.

하지만 검찰과 고위층에서는 이미 시나리오 작업이 끝난 상황이다.

도마뱀 꼬리를 어디서 끊을지, 누구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정리할지.

시끄러워지면 어떤 연예인을 앞세워 난리를 피울지…….

그래야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수 있으니까.

성윤이 장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부. 한 명도 빠뜨리지 말고.”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정우가 휴대폰을 들어 보인다.

녹음 표시가 흐르고 있다.

“장부의 사본은 따로 갖고 있고요. 지금의 대화도 녹음되고 있어요.”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으면 지금의 대화를 공개하겠다는 뜻.

검사장이 울상을 지었다.

“의, 의원님…….”

“돈 많다고 군대를 안 가고. 백 있다고 좋은 보직을 받고. 그럼, 그 나라의 공정성은 무너진다고 생각해요.”

“그, 그럼 민국당 최고위원만 빼 줍시다.”

“안됩니다.”

“그럼, 대한당 원로…… 아니, 우리 지검의 차장검사만이라도…….”

성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의원님! 우리 차장검사의 막내가 고등학생이에요! 앞으로 돈 들어갈 것도 많고요!”

성윤이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 뒀다.

검사장이 했던 인터뷰가 보인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 힘들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인터뷰하셨던 대로 가죠.”

검사장이 얼굴을 쓸어 만졌다.

“의원님…… 이 안에는 여당, 야당, 정관계 인사, 스포츠 스타에서 연예인까지 들어 있어요. 우리 지검이 쑥대밭이 될 겁니다. 그런데, 막아 줄 수 있습니까? 의원님께 그럴 힘이 있습니까?”

“뭐, 저는 없는데요.”

성윤이 휴대폰을 들어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잠시의 통화 연결음 뒤에 성종 그룹 윤 회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검사장이라고? 나를 아는가? 성종 그룹 윤 회장이네.

박무혁 의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당에서 일어난 계파 갈등이다.

박무혁 의원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

그래서 윤 회장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결과는…….

“알, 알고 있습니다!”

검사장은 휴대폰을 향해 허리까지 굽실대고 있다.

병석에 누워 있는 노인이지만 성종의 힘은 크다.

잠시 후.

성윤과 정우는 차에 올라탔다.

“한정이 맞나?”

“기자요?”

안전벨트를 매던 정우가 묻자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왜요?”

“어제, 김종혁 의원이 섭외한 배우가 예쁘다고 했지?”

“아, 네.”

“그건 그 여자를 봤다는 건가?”

“모르겠네요. 한번 물어볼게요.”

정우가 휴대폰을 귀에 댄다.

“기자님? 박정우입니다. 물어볼 게 있어서요. 어제 말했던…….”

한정이 기자와 한참 통화하던 정우가 고개를 틀어 성윤을 본다.

“파파라치 회사를 다닐 때 알게 된 배우라는데요?”

“진짜 연기자였어?”

“네, 엑스트라지만 꽤 많이 출연했다고 해요. 영화, 드라마…….”

“만날 수 있는지 물어봐.”

“옙.”

몇 시간 뒤.

성윤과 정우 그리고 한정이 기자는 여의도의 커피숍에서 마주 앉았다.

한정이 기자와 정우는 힐끗힐끗 눈을 마주치며 배시시 웃고 앉아 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도 배배 꼰다.

정우가 저러고 있으니까 징그럽다.

성윤이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그분을 알고 있다고요? 언제 오는 거죠?”

성윤이 묻자 한정이 기자가 바로 대답한다.

“아, 네. 지금 올 거예요. 그런데, 그 언니가 악의가 있고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지금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고 집이 어려워서…….”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화내거나 그러지 않을 테니까요. 도움을 받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도울 거고요.”

몇 분 뒤, 그 여배우가 나타났다.

성윤과 정우를 보고 그대로 굳어 버린다.

“이, 이성윤 의원님?”

이 자리에 성윤과 정우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왔으니까.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이성윤입니다.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자동차 안을 채웠다.

-검찰은 브로커 김 씨의 증언과 장부를 통해 전, 현 병무청장과 신검을 담당한 병원 관계자, 군의관 등 주요 관련자들의 출국 금지를…….

채널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병역 비리 문제로 시끄럽다.

-백여 명이 연루된 대규모 병역 비리, 검찰은 오늘 아침 이성윤 의원이 발표한 인물 외에 장, 차관급 인사 아들의 병역 비리를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양평의 한정식집.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병역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다.

대한당과 민국당 그리고 진보당 의원도 한 명 보인다.

평소에는 지지고 볶고 싸우는 사람들.

그런데, 오늘은 한마음이다.

그리고 민국당의 의원이 지금 중앙 지검 검사장과 통화를 하고 있다.

“검사장, 덮어. 다른 사건을 터뜨려 줄 테니까, 덮으라고!”

검사장의 목소리는 난처하다.

-의원님, 저희는 정권의 칼이잖아요. 지금 청와대 라인으로 지시가 내려왔어요.

“레임덕에 빠진 늙은이를 왜 신경 써! 연예인 병역 비리에 포커스를 맞추고 우리 애들은 입대하는 걸로 마무리 지을 거야. 알았어?”

-의원님…….

“검사 중에 옷 벗고 싶은 놈을 골라서 총대 메고 수습하라고 해.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성윤이 지랄한 거다.’ 그렇게 말해. 그럼, 그놈이 옷 벗고 변호사가 되었을 때, 우리가 뒤를 봐줄 테니까.”

민국당 의원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성윤 이 새끼…… 제 몸에 묻은 똥은 모르고 깐죽거리다니…….”

그의 시선이 다른 의원들을 향했다.

“이대로 당하면 억울하잖아요? 이성윤한테 엿 먹일 방법 없나요? 없습니까!”

상석에 앉은 김종혁 의원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나 있어요.”

그 목소리에 모두 김종혁 의원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브로커에 끼지는 않았지만 그는 괜히 불똥을 맞았다.

리얼 팩트라는 거지 같은 언론사가 김종혁 의원 아들의 근무태만을 세상에 알렸으니까.

김종혁 의원이 국그릇에 담뱃재를 툭툭 털며 말한다.

“부끄럽지만 당내 계파 싸움 때문에 준비하던 게 있어요. 이성윤이 일본 대부 업체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는 시나리오죠.”

“……!”

“원래는 2주 잡고 천천히 예열한 뒤에 폭죽을 터뜨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원님들이 도와주시면 예열할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겠네요.”

의원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성윤을 엿 먹이는 거라면 도와야죠. 예열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습니까?”

“글쎄요. 그래도 배우들을 인터뷰하고 선동하려면 사흘 정도 걸릴 것 같네요. 제가 기사를 쏘겠습니다. 그럼, 각자 손잡은 시민 단체에 연락해서 시위해 주세요. 댓글 부대를 움직여서 여론을 조작해 주시고요. 그럼, 이성윤은 끝입니다.”

국민의 눈을 성윤에게 돌리면 병역 비리 사건이 덮어질 수도 있다.

한 의원이 히죽 웃는다.

“일본과 손잡았다? 이거 최상의 시나리오잖아요?”

“돈 좀 들었습니다. 하하하하.”

김종혁 의원이 호탕하게 웃으며 멀리 떨어진 보좌관을 향해 눈짓했다.

‘시작해.’

보좌관이 고개를 숙인 후 방을 빠져나간다.

미닫이 문을 닫으며 방 안을 슬쩍 둘러본다.

모인 의원만 아홉 명.

그것도 서로 당이 다르다.

서로 쌍욕을 하던 이들이 도원결의를 외쳤다.

위기 앞에서는 악마와도 손잡는 자들이다.

보좌관은 문을 닫고 가게를 벗어났다.

주차장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여배우에게 전화를 거는 거다.

그런데 여린 여자 목소리가 아니라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아, 잘못 걸었습니다.”

보좌관은 통화를 종료하고 물끄러미 번호를 확인했다.

‘어? 맞는데.’

다시 통화 버튼을 눌러본다.

-네.

또 남자 목소리다.

보좌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현서 씨 전화 아닌가요?”

-맞는데요.

“누, 누구시죠?”

-이성윤입니다.

“네? 이성윤 의원님?”

-김종혁 의원님의 보좌관이시죠? 메일로 동영상 하나 보낼게요. 재밌으니까 한번 보세요.

보좌관의 눈빛이 흔들린다.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일, 일단…….’

동영상을 확인해야 한다.

태블릿 PC를 꺼내 메일을 확인하는데 동영상이 보인다.

일단 꾹 눌러 봤다.

‘뭐, 뭐지?’

화면에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배우로 섭외했던 그 여자다.

그 여자가 입을 연다.

-모든 것을 폭로하겠습니다.

보좌관이 휘청였다.

“씨, 씨발…….”

게임은 끝났다.

< 이념은 수단.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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