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07화 (207/300)

< 이념은 수단. - (4) >

“차 세워 줘요.”

성윤의 말에 장한수 실장이 다시 브레이크를 꾹 밟았다.

차는 비상등을 켠 채 갓길에 세워졌고 성윤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약 100m 앞으로 브로커가 사는 주상 복합 아파트가 보인다.

성윤은 아파트를 보며 정신을 최대한 집중했다.

‘어디지?’

브로커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찾아낸다면 놈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

성윤은 수없이 들려오는 잡음 속에서 그 목소리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매상을 걱정하는 가게 주인.

술에 취해 이성을 찾는 남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대는 목소리다.

하지만 성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집중한다.

그때…….

-일단 차를 타고 빠져나가야겠어.

브로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층 아니면 지하?’

들려온 목소리의 방향은 1층 아니면 지하.

성윤이 다시 차에 올라탔다.

“정우야, 저 아파트의 출입구가 몇 개지?”

“잠시만요.”

정우가 지도를 확인한다.

성윤은 입술을 쓸었다.

‘위험하려나?’

출입구가 두 개 이상이라면 성윤과 정우, 장한수 실장은 서로 떨어져야 한다.

궁지에 몰린 쥐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혼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하다.

성윤은 한숨을 내뱉으며 구창범에게 받은 사진을 착착 넘겼다.

브로커가 자동차에서 내리는 사진이 보인다.

‘독일 차, 차량 번호가…….’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다.

‘어?’

사진에서 보던 차가 신호등 앞에 서 있다.

“저 차!”

성윤의 말과 동시에 장한수 실장이 액셀을 꾹 밟는다.

***

깡마르고 눈이 쭉 찢어진 남자, 병역 비리 브로커였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담배를 입에 문다.

‘씨발, 이성윤이 어떻게 눈치챈 거지?’

초조한 입술에서 담배 연기가 뱉어졌다.

‘신호는 왜 이렇게 안 바뀌는 거야?’

빨리 고객 명단과 장부를 숨겨야 한다.

그럼, 대통령이 와도 상관없다.

그때…….

맞은편에 선 차가 굉음을 울리며 달려온다.

“뭐야!”

사고가 날 것 같다.

저 속도로 부딪히면 크게 다친다.

브로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끼이이이익!

굉음이 들렸지만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적막하다.

브로커가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달려온 자동차가 바로 앞에서 멈춰 서 있다.

“운전 개같이 하네!”

그 순간, 브로커의 눈이 부릅떠졌다.

멈춰 선 차의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한눈에 봐도 크고 단단한 덩치를 갖고 있었다.

장한수 실장이다.

문제는…….

“손, 손에 든 게 뭐야? 빠, 빠루?”

손에 쇠붙이를 든 장한수 실장이 운전석으로 다가와 똑똑 노크를 했다.

“문 열어.”

당연히 열지 않는다.

브로커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후진 기어를 넣었다.

하지만 늦었다.

장한수 실장이 손에 쥔 쇠뭉치가 운전석 창문을 향해 휘둘린다.

쾅, 쾅, 찍기 시작했다.

곧바로 창문이 와장창 부서지고 장한수 실장의 거친 손이 브로커의 멱살을 쥔다.

“후진하면 다칠 텐데.”

“누, 누구세요?”

“내려.”

장한수 실장이 손에 든 쇠붙이를 흔들어 보였다.

브로커가 가진 선택지는 없었다.

“젠장…….”

브로커는 차에서 내렸다.

“어디 가는 길이었어요?”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을 틀자 성윤이 보인다.

“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법치국가잖아요! 씨발! 국회의원이면 남의 차를 부숴도 되는 겁니까! 깡패 같은 갑질! 언론에 고발할 겁니다!”

장한수 실장 앞에서 조용하던 사람이 성윤을 보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바로 앞에 아파트가 있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국회의원이라면 이런 소란을 원치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원래 겁먹은 개가 짓는 법이기도 하고.

하지만 성윤은 침착했다.

브로커의 말을 무시하고 정우에게 턱짓한다.

“조수석 의자 밑을 뒤져 봐.”

“조수석요?”

“어. 의자에 달라붙어 있을 거야.”

동시에 브로커의 목소리는 음소거가 된 것처럼 조용해졌다.

의자 밑에 붙어 있는 것은 명단과 장부다.

다른 장소로 옮겨 두기 위해 조수석 의자 아래에 숨겨 둔 것.

“어…… 어떻게……?”

당연히 속마음 듣고 알았다.

성윤이 담배를 입에 물며 당황한 브로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알죠, 내가 왜 찾아왔는지?”

싸늘한 눈빛에 브로커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 간다.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미국에 플리바겐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검찰과 죄인의 거래. 죄인이 죄를 인정하거나 증언하는 대가로 형을 낮춰 주는 거죠.”

“네?”

“우리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때요?”

브로커가 멍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인다.

***

잠시 후, 서안시 사무실.

성윤과 정우 그리고 장한수 실장과 브로커는 사무실에 들어왔다.

성윤이 브로커를 소파로 안내하며 입을 열었다.

“정우야, 음료수 하나 드려.”

브로커는 긴장이 심했는지 탈수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

답답한 한숨만 쉬지 않고 내뱉는다.

“예.”

정우가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를 꺼냈다.

테이블로 걸어가는데 지이잉, 휴대폰이 울린다.

“어?”

발신 번호를 확인한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윤이 물었다.

“누군데?”

“한정이 기자요. 이 시간에 어쩐 일일까요? 잠시만요.”

11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다.

늦은 시간에 연락한다는 것은 뭔가 있다는 것.

정우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박정우입니다.”

-한정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를 듣던 정우가 픽 웃는다.

“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정우가 브로커의 앞으로 다가와 꺼낸 음료수를 내려 둔다.

“드세요. 그리고 의원님은 잠깐만…….”

정우의 표정을 본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브로커가 음료를 홀짝일 때 성윤은 정우와 함께 방으로 향했다.

“왜? 무슨 일인데?”

“김종혁 의원이 만들던 시나리오 있잖아요? 지금 한정이 기자한테 들었어요.”

한정이 기자는 파파라치였지만 성윤을 도운 후 지금 한동일보로 이직했다.

성윤의 신상에 이상이 생길 것을 알고 정우에게 연락한 거다.

“뭐래?”

“의원님이 서안시에 있는 사채업자들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하네요. 그것도 일본 자금이요.”

“뭐?”

사채업자와 인사조차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뒤를 봐준다니.

“미쳤네.”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현직 국회의원이 일본 사채업자의 뒤를 봐줬다면…….

“한정이 기자가 당황해서 전화할 정도면 김종혁 의원의 시나리오가 괜찮은 것 같아요.”

성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걸 누가 믿는다고…….”

“예쁘대요.”

“누가?”

“사채업자에게 돈을 뜯기고 의원님 앞에 끌려갔다고 주장할 여자. 되게 예쁘다는 소문이 있대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뻔하죠.”

거짓된 시나리오.

한 여자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지만 갚지 못했다.

사채업자는 ‘몸으로 갚아!’라는 쌍팔년도 대사를 내뱉는다.

그리고 그 여자를 악당의 왕 성윤의 앞으로 끌고 간다.

여자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싹싹 빌지만 악당의 왕 성윤은 봐주지 않는다.

“그걸 누가 믿어?”

“예쁜 여자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 대부분 믿어요. 하지만 국회의원이 울면 가식이라고 손가락질하죠. 우리가 불리한 게임이에요.”

정우의 시선이 방의 창을 통해 사무실로 향했다.

음료를 마시는 브로커를 보며 나직이 말을 잇는다.

“내일이라도 터뜨려야 할 것 같아요. 이건 진짜 시간 싸움이네요.”

선동은 쉽다.

단 하나의 거짓말로 여론을 불신하게 만드는 정치적 괴물을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해명은 어렵다.

사실을 말해도 변명으로 여겨진다.

결국, 선동을 덮는 것은 해명이 아니라 더 악랄한 거짓.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네. 김종혁 의원, 내일 은퇴시켜야겠어.”

성윤은 다시 사무실로 나와 브로커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러자 브로커는 마시던 음료를 내려 두고 긴장된 눈빛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하나씩 하죠.”

“……네.”

“제가 그쪽 집에 찾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죠? 누구에게 들은 거죠?”

성윤이 브로커에게 향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김재형 검사다.

아니, 김재형 검사가 보고한 검찰의 라인이다.

일단 검찰 측에 존재하는 의심의 씨앗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브로커가 입을 연다.

“그러니까…….”

***

그 시각, 중앙 지검.

장두식 차장검사는 초조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오가고 있었다.

시선이 슬쩍 시계로 향한다.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장두식 차장검사 역시 브로커를 통해 병역 비리를 저질렀다.

옥이야 금이야 하며 키운 아들이 군대에서 다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군대는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자신의 아들이 군대에 가는 것은 막고 싶었다.

그런데, 이성윤이 치고 들어왔다.

평검사였다면 힘으로 막았을 텐데, 상대가 국회의원이다.

손가락이나 빨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젠장.’

장두식 차장검사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브로커가 잡히면 증거가 드러난다.

그럼, 명예롭던 검사 생활의 마지막을 치욕스럽게 끝내야 한다.

‘어쩌면 실형?’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브로커에게 성윤이 찾아가는 것을 알려 줬는데, 잘 도망쳤다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때, 차장검사실의 문이 ‘딸칵’ 소리와 함께 열렸다.

장두식 차장검사가 몸을 돌렸다.

김재형 검사가 보인다.

“왜?”

장두식 차장검사가 김재형 검사를 보는 눈빛이 좋지 않다.

그가 보는 김재형 검사는 성윤과 붙어먹은 원흉이기 때문이다.

김재형 검사가 허리를 천천히 굽힌다.

“검사장실에서 부릅니다.”

“검사장님이? 날 왜?”

책상 위의 전화기가 ‘따르르릉’ 불길하게 울렸다.

장두식 차장검사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손에 쥔다.

“장두식…….”

-이 미친 새끼야.

검사장의 목소리다.

-취조실에서 조사받고 싶지 않으면 당장 튀어 올라와.

“네?”

-당장!

“예!”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장두식 차장검사는 눈을 꾹 감는다.

***

다음 날 오전 9시.

김종혁 의원이 사무실에 출근했다.

보좌관의 앞에서 절절매는 중년의 남성이 보인다.

“좀 도와주세요. 제발요…….”

간절한 목소리에 김종혁 의원이 빙긋이 웃으며 남성의 옆에 섰다.

“무슨 일이세요?”

보좌관이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의, 의원님…….”

“말해. 무슨 일인데?”

“막내아들이 군대에서 다쳤는데 그게 제대로 된 보상을 못 받았다고…….”

김종혁 의원이 한껏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성을 향했다.

“막내아들이요? 아이고…… 어쩌다가…….”

잠시 후, 남성은 떠났다.

김종혁 의원이 재킷을 벗으며 옷걸이에 걸어 둔다.

옆에 섰던 보좌관이 입을 연다.

“방금 그 남자요,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네?”

“정치적 이슈가 없잖아? 내 표에 도움이 될 만한 일도 아니고. 감성적인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물어보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고개를 숙인다.

김종혁 의원이 자리에 앉으며 말을 잇는다.

“10시에 회의 있는 것 알지?”

“네,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10시.

김종혁 의원의 계파 주요 인물들이 사무실에 하나하나 도착했다.

총 여섯 명.

그들이 테이블에 자리하자 김종혁 의원이 입을 연다.

“우리와 공대출 의원의 계파,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는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야. 다들 알고 있지?”

“예!”

의원들의 눈에 힘이 꽉 들어간다.

이제 신당의 주류가 누구인지 확실히 해야 할 시간이다.

“타깃으로는 이성윤을 잡았어. 이성윤은 이름은 알려졌지만 힘은 없어. 그래서 쉽게 무너뜨릴 수 있고 쉽게 타격을 줄 수 있지.”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종혁 의원이 의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입을 연다.

“시나리오를 공개하지. 들어 본 후에 수정할 곳이 있으면 가감 없이 이야기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김종혁 의원이 손뼉을 짝 친다.

그러자 보좌관이 들어와 고개를 숙인다.

“그럼, 배우를 소개하겠습니다.”

그 뒤로 아름다운 여성이 들어온다.

보좌관이 여성을 보며 말한다.

“이 여자가 맡을 배역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 역할입니다. 100%가 넘는 이자로 계약을 했고 결국 돈을 갚지 못 했습니다. 사채업자들은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으란 말을 했죠. 그리고 이성윤의 앞에 끌려갔습니다.”

여성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헐렁한 티셔츠가 흘러내리며 가슴골이 보인다.

의원들이 마른침을 삼킬 때 보좌관이 말을 잇는다.

“시작은 유투브입니다. 가면을 쓰고 이성윤을 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론몰이를 할 겁니다. 그렇게 세 개의 동영상을 찍고…… 메이저 언론사와 인터뷰하겠습니다.”

“그다음은?”

“사채업자를 맡은 배우들이…….”

그때,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비서관이 굳은 표정으로 들어온다.

다른 의원도 있는데 노크도 없이 들어오다니.

김종혁 의원이 소리를 버럭 지른다.

“예의 없이 뭐 하는 짓이야!”

“죄, 죄송합니다. 그, 그런데…….”

“그런데 뭐!”

비서관이 다급히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성윤이 보인다.

아래에는…….

-속보 : 대규모 병역 비리.

그리고 화면 속 성윤이 입을 연다.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병역 비리에 대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문서는 브로커에게 입수한 명단입니다. 이곳에 적힌 병역 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중앙 지검 차장검사 장두식…….

성윤의 입에서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김종혁 의원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의 아들은 브로커를 끼고 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불안하다.

성윤에게 뒤통수를 맞을 것 같은 기분이 소름 끼치게 들고 있다.

“대, 대환이는?”

“네?”

“대환이 지금 어디 있어?”

대환이는 김종혁 의원의 아들 이름이다.

뜬금없는 말에 보좌관은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 그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모, 모르겠습니다.”

“집에 있을 거야! 당장 회사로 가라고 해. 어서!”

김종혁 의원의 집.

김대환은 어젯밤에도 새벽 4시까지 여자를 끼고 술을 마셨다.

전화 한 통에 일어나기는 어렵다.

전화를 받고 일어난 시간은 12시 20분.

씻지도 않고 모자만 눌러쓴 채 집을 나섰다.

“하…… 술이 안 깨네.”

비틀비틀…….

아파트를 나와 차에 올라탔다.

그가 회사를 향해 떠난다.

그 뒤를 장한수 실장이 뒤쫓는다.

“타깃이 지금 나왔습니다. 뒤쫓겠습니다.”

< 이념은 수단.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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