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은 수단. - (3) >
성윤이 정우에게 고개를 틀었다.
“방법이 있어.”
“있어요?”
“간단하잖아?”
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단할 리가 없다.
지금 김종혁 의원의 아들 병역 비리를 터뜨리면 신당의 지지율은 삐끗한다.
그럼, 되돌릴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삐끗한 지지율을 바로 세우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간단하다니…….
“대한당, 민국당 그리고 법조계, 예체능계. 모든 곳에서 똑같이 병역 비리가 나오면 되는 거잖아? 김종혁 의원은 그 무리 중 하나가 되는 거고.”
“네?”
병역 비리는 민감한 일이다.
친한 사람끼리도 쉬쉬한다.
비밀을 간직한 브로커는 어둠 속에 숨어 있다.
그런데, 정치계는 물론 법조계 그리고 예체능까지 터뜨리겠다고 한다.
“가능해요?”
“아마.”
“브로커를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꿈속의 미래에서 병역 비리 브로커를 만난 적이 있다.
10여 년간 이 바닥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정관계 인사와 얽히고설켜 있던 놈.
지금도 병역을 해결해 주며 수천만 원씩 돈을 받고 있을 거다.
그놈을 찾으면 된다.
“난리가 나겠네요.”
걱정스러운 정우의 표정을 보며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난리가 나도 해야지. 한 번은 뒤집고 싶었어.”
병역은 신성한 거다.
돈 없고 백 없으면 가고, 있으면 안 가고.
그럼, 안 되는 거다.
“40대 중반의 남자, 내시경 중 환자에게 성폭행을 저질러 의사 면허가 취소된 놈 찾아봐.”
“옙.”
***
며칠 후, 신당의 당사.
검은 승용차가 연이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최고위, 정책 조정, 원내 등의 회의가 있어서다.
그런데, 분위기가 딱딱하다 못해 뻣뻣하다.
계파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삭막한 분위기를 지켜보던 당직자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지금 김종혁이 가장 세력이 크지?”
얼마 전, 김종혁 의원의 주도하에 신당의 회식이 이뤄졌다.
비록 박무혁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의원과 시장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들은 고스란히 김종혁 의원의 힘을 보여 준 꼴이 됐다.
“그래도 공대출 의원의 계파가 가장 사람이 많지 않아? 백형욱, 김대성 의원이 있을 때부터 같이 있던 사람들이니까 전통성도 있고.”
공대출 의원의 집단은 스무 명이 넘는다.
게다가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지사를 만들어 내며 결과까지 보여 줬다.
당에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나서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다.
“민국당 출신도 있어, 박무혁 의원이 가장 신경 쓰는 곳이야.”
신당은 대한당 출신과 민국당 출신이 섞여 있다.
그 덕에 중도를 표방할 수 있지만 중요한 사안에서 날 선 대립을 하며 삐거덕거리는 일이 존재한다.
이념이 다르니까.
하지만 그들을 괄시할 수는 없다.
그들이 다시 민국당으로 돌아가면 신당은 청와대로 가는 길이 험난해진다.
“그래서, 누가 중심이 된다는 거야?”
계파 갈등의 이유다.
대선이 시작되면 ‘누군가’가 주도권을 잡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대선에서 승리하면 ‘누군가’의 사람들이 청와대 요직에 앉게 된다.
그것은 청와대 및 각 고위직의 인사권을 손에 쥘 수 있다는 뜻,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김종혁 의원이 가장 유력하지?”
다른 당직자가 고개를 저었다.
“공대출 의원이 유리하지. 그쪽에 이성윤 있잖아.”
성윤은 특별한 계파에 속해 있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공대출 의원의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당직자가 손뼉을 짝 친다.
“아! 이 의원이 있었구나!”
성윤은 신당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과 자주 만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성윤의 당사 출입은 빈번했고 목적지는 언제나 대표실이니까.
당직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누가 이길지 모르겠네.”
“그러니까 싸우는 거지.”
정치인들은 짐승과 같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 싸워서 확인해야 한다.
“시끄러워지겠네.”
“선거 캠프는 누구 하나 죽어야 만들어지는 거야.”
다른 당의 싸움은 대선 주자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끝났다.
하지만 신당은 다르다.
세 개의 계파가 박무혁 의원의 아래에 모였다.
이들의 싸움은 지금부터다.
그 싸움은…….
“민국당 출신은 일단 세력이 약하고……. 그럼, 김종혁 의원과 공대출 의원의 계파가 싸우려나?”
“그렇겠지?”
“힘을 합쳐도 모자란데, 자기 잘났다고 싸우고들 있으니…….”
“그러니까.”
복도에는 무거운 발소리가 저벅저벅 울리고 있었다.
의원들이 무서운 표정으로 복도를 걷고 있다.
당직자들이 예측하는 것을 의원들이 모를 리가 없다.
이들도 예상한다.
곧 싸움이 일어날 것을…….
그리고 정치인의 싸움은 마녀사냥이다.
죄를 뒤집어씌우고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돌을 집어 던진다.
‘공대출 계파에서 이성윤을 죽인다고 그랬지?’
‘김종혁 의원님이 지금 언론사 사장들과 만나고 있어. 한 번에 터질 거야.’
‘이성윤이면 딱 좋네. 나이가 어리니까 개인 일탈로 밀어붙일 수 있잖아? 그럼, 대선에도 지장이 없을 것 같은데?’
‘공대출 계파는 이성윤과 함께 침몰할 거야.’
김종혁 의원이 성윤을 공격하려는 이유.
건방지고 재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명분이다.
이미 성윤을 앞세워 공대출 의원의 계파를 무너뜨릴 계산이 섰다.
‘그럼, 우리가 신당의 주류가 되는 건가?’
김종혁 의원의 계파 의원들이 눈빛을 주고받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성윤이 내린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들은 살기 넘치는 표정을 지우고 성윤을 향해 웃어 보인다.
“아, 이 의원 왔어?”
“어서 와.”
“오늘 날씨가 좋아. 하하하.”
그들의 속마음은 그대로 성윤의 귓가에 파고든다.
저주에 가까운 폭언 욕설이다.
성윤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가면을 쓰고 웃고 있는 자들.
‘누구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를까…….’
그때…….
“오셨습니까!”
큰 소리와 함께 당직자 그리고 의원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복도의 끝에서 김종혁 의원이 걸어오고 있다.
기름기로 가득한 배를 문지르며…….
성윤이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시 40분.’
김종혁 의원이 들어갈 최고위 회의는 2시 시작이다.
아직 20분이 남았다.
‘좋아.’
성윤이 오늘 당사를 찾은 이유다.
김종혁 의원과 가볍게 대화하며 그의 속마음을 듣기 위해.
어느 언론사와 손잡으려 하는지 알아야 했다.
성윤이 다가가 고개를 숙이자 김종혁 의원이 빙긋이 웃는다.
“이 의원도 오늘 회의가 있나?”
“청년 위원회 회의가 있어서요.”
“그래그래.”
김종혁 의원이 성윤의 어깨를 토닥였다.
성윤이 슬쩍 김종혁 의원을 보며 말한다.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음료수 한잔 사고 싶은데요. 괜찮으십니까?”
“아, 그래. 조용히 할 이야긴가? 20분 정도 시간이 있는데……. 그럼, 소회의실에 들어가 있을까?”
“그럼, 감사하죠. 하하.”
김종혁 의원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 눈빛은 미소와 다르다.
‘이성윤, 널 싫어하는 청년들이 참 많아.’
성윤은 돈 많은 국회의원이다.
취업으로 고민으로 가득한 청년들에게는 운발 좋은 사기 캐릭터.
그들에게는, 자신들은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성윤은 떵떵거리고 사는 것 같을 거다.
시기와 질투는 당연하다.
‘네가 비리에 몰리면 그럴 줄 알았어, 라는 말과 함께 청년들이 즐거워할 거야. 인터넷에 악플을 싸지르며 위안을 삼겠지. 넌 벗어날 수 없어.’
김종혁 의원이 성윤을 보는 눈빛은 원혼을 달래 주기 위해 던져진 산제물을 보는 것 같다.
“회의실에서 기다리지.”
김종혁 의원은 몸을 돌렸다.
성윤은 복도 끝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았다.
덜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이다가 떨어졌다.
성윤이 사이다를 손에 쥐며 날카로운 눈으로 회의실을 쏘아본다.
‘김종혁…….’
성윤은 사이다를 손에 쥐고 김종혁 의원이 기다리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김종혁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 묻는다.
“무슨 이야기지? 해 봐.”
그의 눈빛이 번쩍거린다.
혹시나 고민을 털어놓으면 기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불어 버릴 생각이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김종혁 의원에게 말할 만큼의 고민은 없다.
“대선이 있잖아요.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언론을 컨트롤하고 싶은데, 전 아직 아는 기자가 많지 않아서요.”
“아, 국감…… 언론…….”
김종혁 의원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의원님은 가깝게 지내는 기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성윤은 김종혁 의원의 속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물어봤다.
“어느 언론사인지 궁금해서요.”
노골적인 질문, 그리고 노골적인 대답.
“이 의원, 가깝게 지낸다고 컨트롤할 수는 없어. 요즘 세상에 그런 짓을 하려고 했다간 큰일 나.”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언론사의 이름이 줄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메이저 업체는 물론이고 게릴라 작전을 수행할 인터넷 소규모 업체까지.
이들은 성윤을 무너뜨리기 위한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 중이었다.
***
서안시 사무실.
성윤은 정우와 함께 앉아 있었다.
“어떻게 공격할지 내용은 몰라.”
“시기는요?”
“모르지.”
“그럼, 시간 싸움이네요?”
김종혁 의원이 어떤 거짓말로 성윤을 공격할지 알 수 없다.
그 시나리오가 어디까지 완성되었는지, 터뜨릴 시기는 언제인지도 마찬가지다.
모른다.
깜깜이 상태로 싸워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는 상대의 공격을 알고 있다는 것. 하지만 상대는 우리의 공격을 모른다는 것.”
정우가 다리를 외로 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먼저 터뜨려야 한다는 거죠?”
“그쪽도 질질 끌지는 않을 거야. 이번 스캔들이 대선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하니까.”
그때 ‘똑똑똑’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장한수 실장이 들어왔다.
“1층 커피숍에 있어요.”
성윤과 정우가 몸을 일으켰다.
사무실이 있는 1층에는 테이블 네 개의 작은 커피숍이 있다.
그곳에 구창범이 앉아 있었다.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이준대의 지시를 받아 성윤을 감시하는 사람.
얼마 전, 잡힌 후에는 오히려 성윤의 일을 돕고 있다.
성윤은 의자를 빼내고 구창범 앞에 마주 앉았다.
구창범이 품에서 A4 용지를 꺼내 테이블에 올린다.
“오늘 보고할 내용입니다.”
성윤의 일과가 쭉 적혀져 있다.
이준대는 성윤의 일과를 관찰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구창범은 성윤의 허락을 받은 후 이준대에게 보고한다.
성윤이 눈으로 살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대로 보고하세요.”
“네. 그리고…….”
구창범이 품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며칠 전에 말씀하신 거요.”
정우가 그에게 부탁한 게 있다.
내시경 환자를 성폭행하고 의사 면허가 취소된 놈.
“40대 중반 나이에는 딱 한 명이 있었습니다. 실형을 받고 출소한 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성윤이 그 서류를 훑어보며 물었다.
“이 사람…… 지금 뭐 하고 살죠?”
“글쎄요. 뚜렷한 직업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여기…….”
그가 서류 봉투에서 사진을 꺼냈다.
여섯 장의 사진.
남자의 얼굴이 확실하게 보인다.
‘맞네.’
꿈속에서 봤던 브로커의 얼굴이다.
사진을 몇 장 넘겼다.
브로커와 만나는 고위 공직자가 보인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우야, 장한수 실장님. 가죠.”
“옙.”
초를 다투는 일이다.
상대가 어디에 사는지 알았으면 움직여야 한다.
잠시 후, 장한수 실장이 안전벨트를 매며 묻는다.
“주소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강남이요.”
장한수 실장이 내비게이션을 만질 때 정우가 인터넷을 보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와…… 성폭행으로 실형 살다가 나온 놈이 집값 20억짜리에서 사네요.”
“부러워하지 마. 다시 교도소로 들어갈 거니까.”
“그동안 돈을 번 것도 다 뺏을 수 있겠죠?”
“아마?”
정우가 실실 웃는다.
불법으로 번 돈을 흥청망청 쓰며 편안히 사는 꼴을 보면 속이 쓰리니까.
“오늘은 브로커를 잡고 내일은 김종혁 의원 아들을 잡으면 되는 거죠?”
김종혁 의원의 아들만 잡으면 신당만 욕을 먹는다.
하지만 브로커를 잡으면 다 같이 쓸어버릴 수 있다.
“일단 김재형 검사에게 전화 넣을게요.”
브로커를 잡아 정치적 목적을 해결하면 그 뒤에는 검찰의 도움이 필요하다.
멍하니 있다가 사건을 받는 것보다 미리 알고 있는 게 더 좋다.
정우가 김재형 검사의 전화번호를 찾아 귀에 댔다.
“네, 검사님. 보좌관 박정우입니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한참 후, 통화를 종료한 정우가 성윤을 향했다.
“병역 비리 브로커를 잡아 준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네요. 국회의원 하지 말고 경찰 하라는데요? 흐흐. 검사장에게 보고하고 팀 만들어 기다린대요.”
“응.”
그들이 탄 차는 점차 브로커의 집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성윤의 표정이 좋지 않다.
뭔가 쉽다.
브로커를 잡으면 고위직들의 비리로 대한민국이 뒤집힐 수도 있는데…….
‘너무 술술 풀리고 있어.’
순간, 장한수 실장이 운전하던 차가 ‘끼이이익!’ 소리와 함께 갑자기 멈춰 섰다.
“죄송합니다.”
장한수 실장이 긴장된 숨을 내뱉는다.
자동차 앞으로 고양이가 달려가고 있다.
성윤은 주변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능력을 개방했다.
밤이 늦을수록 취객의 본능이 더럽게 실려 오기 때문에 능력 개방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찝찝한 것보다야 낫다.
그 순간…….
‘어?’
취객들의 아우성 속에서 뭔가 이질적인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뭐지?’
성윤은 다시 그 소리에 집중했다.
-씨발, 이성윤? 그 새끼가 뭔데? 경찰도 아닌 새끼가 왜 날 잡으러 와!
브로커가 도망치고 있었다.
< 이념은 수단.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