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05화 (205/300)

< 이념은 수단. - (2) >

“여긴 어쩐 일이세요?”

성윤의 질문에 이준대는 들고 있던 편의점 커피를 흔들어 보였다.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그건 그렇고…… 이 근처에 의원님 댁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마주칠 줄은 몰랐네요.”

이준대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지만 그 미소에 넘어갈 성윤이 아니다.

처음부터 이준대의 속마음을 듣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지금의 마주침, 우연한 만남이 아니다.

이준대는 의도를 갖고 성윤을 찾아왔다.

어떤 생각인지 듣고 싶었다.

성윤이 손가락으로 편의점을 가리켰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편의점에서 맥주 어때요?”

이준대가 완벽한 미소를 그려 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야 감사하죠. 하하하.”

두 사람은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 마주 앉았다.

열대야라 그런지 바람이 뜨겁다.

말없이 한 캔, 두 캔…….

이준대가 입에 댔던 맥주를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저는 의원님 같은 분을 좋아해요. 아니, 존경하죠. 메마르다 못해 쩍쩍 금이 간 개천,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으니까요.”

“과찬입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이준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운이 계속되면 실력이죠.”

성윤을 바라보는 눈빛에 존경심이 뚝뚝 떨어진다.

완벽한 표정 관리와 가식이다.

이준대가 말을 잇는다.

“그래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것 알지만…….”

이준대는 말끝을 줄인다.

이제 본론을 꺼내겠다는 뜻이다.

그럼, 멍석을 깔아 줘야 한다.

“말씀하세요.”

이준대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의원님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 중 한 분이 언론을 이용해 의원님을 폄하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캔 맥주를 입에 대던 성윤이 멈칫거렸다.

속마음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하려는 사람이 누군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바로 김종혁 의원이다.

문제는…….

‘뭐지? 왜 나에게 알려 주는 거지?’

성윤은 이준대와 단 한 번 만났다.

그게 전부다.

그 이상의 친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성윤을 찾아와 미주알고주알 떠들 필요가 없다.

성윤은 눈동자를 올려 이준대를 향했다.

그런데, 이준대 역시 성윤을 관찰하고 있다.

뱀의 혓바닥처럼 불쾌한 눈빛으로 성윤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중이다.

‘……설마, 날 따라 하려는 거냐?’

그는 성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해결하는지…….

이준대의 나이는 서른여덟,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정계에서는 핏덩이다.

게다가 어떤 정치 지분도 없다.

돈만 있는 물주다.

그래서 성윤을 보고 배우려 한다.

성윤은 나이의 한계를 이겨 내고 승승장구하는 사람의 표본이니까.

‘많이 관찰해라.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거야.’

성윤은 캔 맥주를 꽉 쥐었다.

이준대가 찾아온 하나의 이유를 알았다.

이제 두 번째 이유를 찾을 시간이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언론을 이용해서 저를 깎아내리려 한다고요?”

싸늘한 표정에 이준대가 멋쩍게 웃는다.

“이간질이나 뒤 담화로 꺼낸 말이 아닌데,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며칠 동안 많은 의원님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양심은 없었고 국가 이익은 뒷전이었죠. 그런 사람들에게 의원님이 당하는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어요. 조심하셨으면 해서요.”

“감사합니다. 조심하죠.”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런데, 이준대 대표님은 김종혁 의원님을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김종혁 의원님요?”

성윤은 김종혁 의원을 시작으로 빙빙 말을 돌리다가 조금씩 이준대의 이야기로 들어갔다.

그럼, 성윤을 찾아온 또 다른 이유가 나타날 거다.

잠시 후, 이준대가 떠났다.

성윤은 한참 동안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다.

‘날 찾아온 이유가 두 가지…….’

하나는 성윤의 행동을 보고 배우기 위해.

“두 번째는…….”

김종혁 의원을 손에 넣어 정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이준대는 물주에서 벗어나 김종혁 의원의 머리채를 잡으려 한다.

‘내가 김종혁 의원을 공격하면…….’

이준대가 나서서 김종혁 의원을 보호할 생각이다.

‘미친놈.’

이준대는 김종혁 의원의 비리를 확보했다.

성윤이 공격하면 살살 빠져나갈 길도 만들어 뒀다.

김종혁 의원을 앞에 두고 성윤과 간접적으로 싸우며 그 방식을 배우려 한다.

어쨌든, 김종혁 의원에게 병 주고 약 주고…… 정말 미친놈이다.

“의원님?”

고개를 틀어 보니 정우가 서 있다.

성윤의 전화를 받고 온 거다.

정우가 의자를 꺼내 앉으며 투덜댄다.

“이 시간에 불러 놓고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 준 후에 집에 가라고 하는 것은 아니죠?”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야.”

“다행이네요.”

“먹고 싶은 것 있어?”

“밤 12시 30분에는 삼겹살이죠.”

“문 안 닫았나?”

“먹자골목에 24시간 하는 집 많아요. 흐흐.”

“장한수 실장도 부를까?”

“자고 있지 않겠어요?”

성윤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장한수 실장에게 전화하기 위해 휴대폰을 귀에 대며 먹자골목을 향해 간다.

그 옆을 정우가 쫓았다.

그리고 건너편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끈 후 성윤의 뒤를 쫓는다.

성윤과 정우는 삼겹살집에 마주 앉았다.

지글지글 소리를 들으며 성윤이 정우의 잔에 술을 채운다.

이번엔 정우가 술병을 건네받아 성윤의 잔을 채우며 말한다.

“한정이 기자 있잖아요. 그때, 파파라치.”

“어? 어.”

“사람이 참 똑똑해요.”

“그래?”

“제 유머를 이해하는 고차원적인 사람이에요.”

“설마…….”

정우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성윤을 향한다.

“한정이 기자가 빵 터졌던 것 말씀드릴게요. 들어 보세요.”

“싫어. 하지 마.”

“트랜스포머가 여자 친구가 없는 이유, 아세요?”

“하지 마.”

“차여서. 푸하하하!”

성윤은 말없이 소주를 입에 댔고 정우는 배를 잡고 웃는다.

정우의 웃음소리가 잠잠해졌을 때, 성윤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국회의원에게 하는 말이 있잖아? 제 밥그릇 그만 챙기고 여야 구분 없이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아, 네.”

정우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성윤의 말에 집중한다.

성윤이 말을 계속 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있어. 여야 구분 없이 힘을 모으려면 독재밖에 없다고. 그게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독재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우가 픽 웃는다.

“그것참 일차원적인데요.”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게 일차원적인 신념이야.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까.”

이준대에 관한 이야기다.

성윤이 입에 소주를 털어 넣은 후 말을 이었다.

“그놈은 정치인 때문에 배고픈 애들이 굶는다고 생각해.”

“그래서 독재를 하려는 놈이 있어요?”

“응.”

“미친놈이네요. 이 시대에 독재는 불가능해요. 사람들은 자유가 뭔지 알고 있잖아요.”

독재를 기억하는 국민이 다시 그 선택을 한다니…….

미래를 모르는 정우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다.

성윤이 술잔을 입에 댔다.

“각 당이 제 이득을 위해 손잡고 언론으로 국민의 눈을 속이며 혓바닥으로 귀를 막으면 가능한 일이야.”

“아, 언론…….”

성윤이 정우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삼겹살집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편의점 건너편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다.

성윤이 슬쩍 미소를 그렸다.

‘이제 왔어?’

계속해서 성윤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준대가 성윤의 옆에 붙인 사람.

성윤의 눈동자가 다시 정우를 향했다.

“아, 김종혁 의원 주변 좀 확인해 봐.”

갑자기 대화의 주재가 바뀌었다.

성윤의 눈동자가 옆에 앉은 남자를 향했다가 되돌아온다.

정우는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다.

성윤이 어떤 뜻으로 행동했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어떤 것을 확인할까요?”

“응, 최근에 만나는 언론사가 있는지 알아봐. 자주 접촉하는 곳이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탈탈탈 털어 볼게요.”

옆에 앉았던 남자가 몸을 일으킨다.

직원에게 담배를 피우고 온다며 테이블에 가방을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창을 통해 가게 안에 앉은 성윤을 힐끗 본 후 휴대폰을 귀에 댄다.

“지금 삼겹살집입니다. 김종혁 의원의 주변을 확인할 모양입니다. 언론사부터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네, 계속 확인하겠습니다.”

남자가 휴대폰을 종료한다.

담배를 입에 무는데…….

“누구한테 보고하는 거예요?”

남자의 얼굴이 구겨진다.

“젠장.”

그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성윤이 손을 흔들고 있다.

남자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데 턱, 누군가의 가슴에 부딪혔다.

남자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장한수 실장이 보인다.

“도망치면 척추를 부숴 버릴 거야.”

공갈 협박이 아니다.

진짜 그렇게 할 눈빛이다.

남자가 마른침을 삼켰다.

장한수 실장이 성윤에게 묻는다.

“어떻게 할까요?”

성윤이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라이타를 꺼내 남자의 입에 물린 담배에 가져다 댄다.

“불 붙여요.”

남자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성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어서.”

남자가 겁먹은 눈빛으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러자 성윤이 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쥐며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알죠?”

남자가 고개를 다급히 끄덕인다.

“누구한테 보고하는 거죠?”

“회, 회사에요.”

“회사?”

“네!”

경찰만 마주쳐도 겁이 나는 게 일반 사람이다.

그런데, 상대는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의 괴물.

남자가 발발발 떨며 명함을 내민다.

심부름 센터다.

이름은 구창범.

“죄, 죄송합니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다섯 배를 준다는 말에…….”

“의뢰인이 누구죠?”

“전화로만 이야기해서 잘 모릅니다. 전화번호를 알려 드릴까요?”

의뢰인은 뻔하다.

이준대다.

심부름센터와의 거래는 대포폰, 대포통장으로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중의 큰 싸움을 위해서는 하나의 흔적이라도 손에 넣어야 한다.

정우가 대포폰의 번호를 받아 적는다.

그리고 성윤이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 하죠. 앞으로도 그 의뢰인에게 내 일정을 그대로 보고하세요.”

“네?”

“하지만 나한테도 똑같이 보고하세요. 그럼, 계속해서 용돈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구창범은 멍하니 있다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겐 나쁠 것 하나 없는 조건이었으니까.

“그럼, 퇴근하세요. 오늘 일정은 여기가 끝입니다.”

“아, 네.”

“내일 봐요.”

“예!”

구창범이 허리를 굽히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성윤이 정우와 장한수의 등에 손을 대며 가게로 향했다.

“이제 편하게 삼겹살이나 먹죠.”

성윤은 이준대의 눈과 귀를 막을 생각이다.

원하는 정보를 내주고 원치 않는 정보는 막아 버릴 거다.

이준대가 철저히 손바닥 위에서 놀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금 우선해야 할 것은…….

성윤이 정우에게 속삭였다.

“김종혁 말고, 아들.”

“네?”

“호랑이 새끼부터 잡아.”

이준대는 성윤이 김종혁 의원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윤은 그 아들부터 칠 거다.

***

이른 아침, 김종혁 의원의 집.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종혁 의원의 아내 그리고 딸과 아들이 보인다.

“어제 몇 시에 들어왔어?”

김종혁 의원의 습한 목소리에 아들이 주눅 든 표정을 짓는다.

“일찍 왔어요.”

동시에 김종혁 의원이 손바닥으로 ‘쾅!’ 테이블을 내리쳤다.

“새벽 3시가 일찍이야!”

호통 소리에 일하는 아주머니까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김종혁 의원은 상관 않고 아들을 노려본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공부나 해. 그러라고 빼 준 거야. 알았어!”

“……네.”

아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금 병역을 위해 특례를 받고 있다.

외국인이 대부분인 공장의 생산직에서 산업 기능 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물론 출근은 하지 않는다.

그날 밤, 강남의 룸살롱.

테이블에는 양주가 가득하다.

그곳에 김종혁 의원의 아들이 친구와 함께 앉아 있다.

옆에는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달라붙어 술을 따른다.

“오빠, 몇 개월 남은 거야?”

여자의 말에 아들이 담배를 입에 문다.

“씨발, 9개월 남았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낄낄 댄다.

“그러니까 그냥 빼 달라고 하지. 귀찮게 그 짓은 왜 하는 거냐?”

“몰라, 요즘 면제받기가 어렵대. 그리고 우리 아빠 알잖아. 군대는 나와야 한다고 명령하더라.”

“난 면젠데. 크크크.”

웃는 친구를 보며 아들이 씁쓸한 표정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부럽다.”

여자가 양주를 따르며 묻는다.

“오빠는 뭘로 면제야?”

“무릎이 병신이라 면제야.”

친구의 말에 아들이 재떨이에 담배를 털며 픽 웃었다.

“미친 새끼, 그래서 축구가 취미냐?”

“무릎은 병신인데 축구는 해도 된대.”

흥청망청, 양주가 테이블에 쌓인다.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하룻밤 술값으로 버리기엔 상상할 수 없는 돈.

이 두 사람에게 군대란 돈 없고 백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

“매일 술독에 빠져 산다고 합니다.”

정우의 말에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산업 기능 요원으로 있는데…… 출근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성윤이 턱을 매만졌다.

“대선이 문제네.”

병역 문제는 민감하다.

김종혁 의원 개인의 비리로 인해 신당의 지지율이 흔들릴 수도 있다.

정우도 고개를 끄덕인다.

“네, 대선이 문제죠.”

생각에 빠졌던 성윤이 슬쩍 웃었다.

< 이념은 수단.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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