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04화 (204/300)

< 이념은 수단. - (1) >

“타깃을 바꾸다니요?”

박무혁 의원이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민국당.”

“……!”

“그쪽은 사생결단으로 반대할 거잖아?”

박무혁 의원이 인터폰을 눌렀다.

그러자 보좌관이 들어와 옆에 선다.

“민국당 지지율이 빠져나가는 중이지?”

“네. 30%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뒤는 걷잡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망과 비난이 민국당을 지배하겠죠. 안재열 대통령이 돌아와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당에 던질 폭탄, 민국당에 넘길 거거든? 복지위에 있는 민국당 의원 열한 명, 털어 봐. 비리 같은 것 말고…… 지금까지 했던 발언.”

“발언요?”

“정치인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의 혓바닥이야.”

국회의원들은 약자를 도와야 한다느니 어째야 한다느니 같은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지껄인다.

하지만 막상 약자를 도울 일이 생기면 당의 논리를 앞세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박무혁 의원이 말을 이었다.

“이 불씨, 키워 봐.”

보좌관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수첩에 박무혁 의원의 지시사항을 적는다.

그사이 박무혁 의원의 시선은 성윤에게 향했다.

“이 의원과 손잡은 곳이 한동일보와 리얼 팩트지?”

“네.”

“보좌관이 민국당 의원들 발언 뽑아 주면 그쪽을 통해서 기사를 때려. 복지위에 있는 민국당 의원 모두를 철저히 악당으로 만들도록 해. 기사는 특집으로 해서 한 5회 정도로 잡을 수 있을까?”

“부탁해 보겠습니다.”

“그럼, 특집 내용은…….”

박무혁 의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다가 입을 연다.

“계획했던 대로 건강, 의료 특집으로 준비해. 감성적인 것을 시작으로 점차 자극적인 것까지. 눈물을 흘리며 보다가 화를 낼 수 있도록 기획해. 특집 기사가 끝나면 영상화시켜서 유투브에 올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복지위에 있는 민국당 열한 명을 쓰레기로 만들 계획이 착착착 준비되고 있었다.

그들을 땔감으로 민국당은 활활 타오를 거다.

박무혁 의원이 달력을 손에 들었다.

“추석이 9월, 그때까지 이번 법안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면 민심은 민국당을 버릴 거야.”

대한민국 정치는 민심의 정치다.

당의 이득만 챙기다가 민심이 외면하면 끝이다.

권모술수를 펼치지 않아도 알아서 무너질 거다.

그럼, 대선에서 민국당의 도제성 의원은 들러리다.

박무혁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연다.

“민국당의 숨통을 끊어. 차가운 민심에 몸서리치게 만들어.”

***

당사에서 나온 성윤은 의원 회관에 섰다.

담배를 입에 물며 생각에 빠진다.

‘꿈과 다른 현실.’

계획대로 진행되면 도제성 의원은 대선에서 참 힘들어할 거다.

거침없이 청와대를 향해 진격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는 거니까.

신당의 입장에서는 참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표정이 왜 그러세요?”

성윤의 옆에 정우가 섰다.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박무혁 의원님이 뭐라고 하세요?”

“아니, 그런 것 없는데.”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좋은 상황 아닌가요? 전 의원님이 폭죽을 터뜨리면서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요.”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성윤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박무혁 의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민국당의 숨통을 끊어.

성윤도 비슷한 계획을 세웠었다.

대한당과 민국당을 한 통속으로 만들어 완벽히 구겨 버리는 계획.

어렵지는 않을 거다.

언론을 이용하여 민국당의 이미지에 더러운 권력자의 프레임을 씌우면 되니까.

그 후에 삿대질을 하며 외치면 된다.

“거대 양당이 손을 잡고 아픈 애들 병원비 하나 도와주지 못합니까! 대한당이나 민국당은 언제 국민을 생각합니까?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지 마세요! 밥그릇 말고 국민을 신경 쓰세요!”

평소의 민국당이었다면 콧방귀도 끼지 않았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흔들리는 중이다.

가볍게 던진 돌이 이마가 깨진다.

대한당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최근까지 지옥을 맛봤다.

겨우 일어서고 있는데 돌덩이를 맞으면 다시 일어서기는 어렵다.

그렇게 대통령은 신당에서 나와야 한다는 명분이 만들어 지는 거다.

양 당을 동시에 박살 내고 명분까지 얻어낼 계획.

이 계획을 박무혁 의원도 비슷하게 생각해 냈다.

‘그런데, 왜 꿈속에서는 처참하게 패했지?’

박무혁 의원은 냉철한 계획을 세울 줄 안다.

확신이 서면 거침없이 움직이는 행동력도 갖추고 있다.

그런 사람이 어이없이 박살 났다.

‘뭐지?’

박무혁 의원을 알면 알수록 불안함이 짙어진다.

이 찝찝함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도제성 의원이 무너진다고 해도 기쁘지 않을 거다.

***

며칠 후, 한동일보의 건강 특집 페이지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희귀병을 앓는 아이의 아빠가 벤치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모습.

그 아버지는 참 힘든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기사는 수기 형식으로 아버지의 힘든 삶을 그려 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한동일보의 평범한 특집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댓글을 봐도 ‘ㅠㅠ’ 같은 이모티콘 또는 ‘힘내세요.’ 등의 응원으로 채워져 있는 게 전부다.

그리고 같은 시각, 리얼 팩트에서는 성윤을 인터뷰했다.

추진하는 법안에 대한 간략한 설명.

역시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에 ‘법안’이라고 치면 주르륵 나오는 기사 중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민국당을 개미지옥으로 빠뜨리는 계획이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할 계획이야.”

차이나 레스토랑이다.

김종혁 의원이 자장면 그릇을 치우며 티슈로 입을 닦고 있다.

그의 앞에는 이준대와 레이첼이 보인다.

이준대가 입을 연다.

“민국당이 넘어갈까요?”

“당연하지. 이건 알아도 넘어갈 거야.”

새파랗게 어린 이성윤에게 박동진이라는 중진 의원이 자근자근 밟혔다.

“이거 그냥 넘기면 안 되는 일이야.”

“왜죠?”

“이 바닥이 그래, 한 번 병신 취급받으면 그걸 뒤집기가 힘들어. 약육강식의 세계니까.”

“법안이 민생에 도움 된다고 해도요?”

김종혁 의원이 픽 웃는다.

“이준대 대표, 왜 그래? 그런 것 생각하는 의원이 어디 있어? 자네는 투자할 때 그 회사의 노동자가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생각하나?”

“…….”

“그 회사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떨어졌다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나? 아니잖아? 정치도 똑같아. 자네가 수익률을 본다면 우리는 지지율을 보는 거지. 사업 잘한다고 수익률 올라가는 것 아니지? 민생 위한다고 지지율 올라가는 것 아니야.”

김종혁 의원이 이과두주를 들더니 작은 잔에 또르르 술을 채운다.

킁킁 냄새를 맡는다.

“난 이 냄새가 참 좋아. 뭐 어쨌든,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국민을 위하는 것과 지지율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거지. 우리가 할 일은 지지자들 중에 돈 있거나 세력 있는 놈들이 있어. 그놈들과 술 한 잔씩 하면서 찔러주는 돈을 받고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거야.”

김종혁 의원의 기름진 미소에 이준대가 자신의 잔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가 콱, 잔을 쥔다.

김종혁을 향해 집어 던질 것처럼…….

그 순간, 레이첼이 그의 어깨를 손으로 툭 친다.

“대표님?”

“어?”

“먼지 묻었어요.”

“고마워.”

이준대의 시선이 다시 김종혁에게 향했다.

날카로웠던 표정이 한순간에 누그러져 있다.

“이 일이 잘되면 이성윤 의원은 스타가 되겠네요.”

김종혁 의원이 탕수육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지. 그런데, 이성윤이 웃는 것도 얼마 안 남았어. 개인적인 감정은 없는데, 그놈이 있으면 내 위치가 애매해져. 그래서 대선 전에 치울 생각이야.”

“치우다니요?”

“이성윤 그 새끼의 역겨운 영웅 심리, 계속 볼 수 없잖아? 찍어 눌러야지.”

이준대의 눈빛이 흥미롭게 변했다.

“방법이 있나요?”

“선동이지 뭐. 프랑스의 여왕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 그 말 하나로 국민이 일어났어. 결국 그 여왕은 목이 잘려 죽었고. 그런데, 그 말이 진짜였을까? 선동이었을걸? 거짓말을 개같이 보도해서 진실로 만드는 것, 어렵지 않아. 흐흐.”

말을 하던 김종혁 의원이 갑자기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아, 이준대 대표…… 내가 지금 술 한잔했다고 이런저런 말을 떠들었는데, 알겠지만 내가 여기서 떠든 말을 다른 곳 가서 하면 안 돼. 알지? 이런 얘기는 비밀이야. 특히 우리가 민국당을 타깃으로 잡은 것은 최고위 말고는 모르는 일이거든. 그리고 이성윤에 대한 것도 부탁해.”

이준대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죠.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고맙고. 흐흐.”

김종혁 의원은 다시 술잔에 이과두주를 채운다.

그리고 쭉쭉 소리를 내며 마신다.

잠시 후, 김종혁 의원이 떠났다.

이준대가 고개를 틀어 레이첼을 본다.

“아까…… 내가 잔을 던질 거라고 생각했나?”

“네.”

“난 정신병자가 아니야. 분노조절장애도 없고. 그러니까 앞으로 괜한 짓 하지 마.”

이준대의 목소리는 나긋하다.

하지만 그 눈빛은 서늘하다.

레이첼이 이준대의 눈을 피하며 입을 연다.

“죄송해요.”

“됐어.”

이준대가 일어섰다.

하얀 와이셔츠의 팔을 걷으며 레이첼에게 말한다.

“그리고…… 오늘은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네? 어디 가시는데요.”

“친구를 만들고 싶어졌어. 경호원은 한 명만 데리고 갈 거야.”

“대표님! 위험해요!”

“걱정하지 마. 여기 한국이야. 미국과 달라.”

레이첼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며 이준대는 휴대폰을 흔들었다.

“걱정되면 메시지 보내. 답할 테니까.”

그리고 몸을 돌린다.

***

서안시 성윤의 사무실.

늦은 시간이지만 분주하다.

여기저기서 전화벨이 울리고…….

“의원님! 국회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예산 사용 내역 받았고 지금부터 일일이 확인할 거래요.”

“야근한다고 하지?”

“그렇겠죠?”

“야식으로 치킨 보내. 인당 한 마리.”

“옙.”

정우의 목소리가 끝나자 이번엔 정효순 주임이 말한다.

“연구소에서 메일 왔어요. 확인 부탁드려요.”

“네!”

열대야가 후끈한 여름밤이다.

이때부터 국회의원 사무실은 가을의 국정감사를 대비하고 있다.

성윤은 국방위.

수십 년 군 생활을 한 장성과 팩트로 맞서려면 완벽한 준비를 해야 한다.

성윤이 메일을 확인하며 사전보다 두꺼운 자료집을 책상에 올렸다.

“정효순 주임님, 먼저 퇴근하세요. 애들 저녁…….”

하지만 성윤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사무실의 전화벨이 따르르릉, 시끄럽게 울린다.

정효순 주임이 받는다.

“네, 국회의원 이성윤 사무실 정효순 주임입니다. 네? 보좌관요? 잠시만요.”

정효순 주임이 눈짓한다.

그러자 정우가 전화를 손에 들었다.

“박정우 보좌관입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네, 네…….”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은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통화를 종료한다.

“왜? 누구야”

“국방부장관님요. 지금 우리가 쑤시고 다니는 게 소문났나 봐요. 살살 하라고 하네요.”

“그걸 왜 너한테 말해? 날 바꾸라고 해야지.”

정우가 슬쩍 웃는다.

“만만한 게 보좌관이잖아요. 흐흐.”

“그런데, 때 아닌 국방부 장관이 연락을 했다는 것은…… 냄새나지?”

“글쎄요.”

“털어 봐.”

“옙.”

다시 업무가 시작됐다.

그렇게 일이 끝난 시간이 11시다.

물론 정효순 주임은 먼저 퇴근시켰고.

“오늘은 여기까지.”

더 늦게까지 일하면 내일 지장이 있다.

정우가 하품을 하며 뒷목을 꾹꾹 잡는다.

“먼저 들어가세요.”

“넌?”

“좀 더 하다가 가려고요.”

“퇴근해, 컴퓨터 부숴 버리기 전에.”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요.”

성윤의 시선이 장한수 실장에게 향했다.

그는 복사 등의 잡일을 돕고 있었다.

“혼자 갈 수 있으니까 실장님도 퇴근하세요. 고생하셨어요.”

“네? 그래도 모셔다드려야죠.”

성윤이 손을 저었다.

“오늘은 집까지 걸어가고 싶어요. 생각할 것도 많고.”

완강한 거부에 장한수 실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성윤이 손뼉을 짝짝 쳤다.

“그럼, 퇴근합시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성윤은 집을 향해 걸었다.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다.

큰길과 꼬불꼬불 골목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면 성윤이 사는 원룸이다.

저렴한 가격에 적당한 평수, 거기에 조용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제 슬슬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이 된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다.

서민 코스프레하네 어쩌네 하는 말.

“아파트로 가 볼까?”

멀리 아파트 하나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앞집에 살던 여가수가 떠올랐다.

저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지금은 훨씬 좋은 곳에 살 게 분명하다.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니까.

그녀와 맥주를 한잔 마셨던 편의점을 지나는데…….

“의원님?”

낯선 목소리에 성윤이 고개를 틀었다.

“어?”

이준대가 보인다.

그가 성윤을 향해 다가온다.

“기억하시죠? 이준대입니다.”

“아, 네.”

“늦으셨네요?”

이준대가 하얀 얼굴에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성윤은 더 착한 척 환하게 웃어 보였다.

< 이념은 수단.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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