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거기서 왜 나와. - (2) >
“정혜성 씨?”
“아, 네. 정혜성이에요.”
“맞죠?”
“네?”
성윤의 눈빛은 여전히 의문으로 물들어 있었고 정혜성의 얼굴엔 난처함이 가득했다.
그 순간 지이잉,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에겐 탈출구와 같다.
표정이 확 밝아진다.
“잠, 잠시만요? 전화가 와서.”
그녀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황급히 사무실을 벗어났다.
소란스러웠던 사무실이 적막해졌다.
성윤의 시선이 다시 정우를 향한다.
“설명이 필요한데…….”
“음, 마침 이 근처를 지나가는 중이라고 해서……. 겸사겸사, 뭐 그런 거죠.”
“설명 끝?”
“세상사가 매번 논리적으로 풀릴 수 없잖아요. 하하하하.”
정우는 성윤과 정혜성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 나름 노력하는 중이다.
성윤이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다.
“됐다.”
정우가 히죽 웃는다.
“윤범성 부회장 동생 보다는 정혜성 씨가 백배는 괜찮죠.”
흔히 아는 윤범성 부회장의 미혼 여동생은 모피를 좋아하는 40대 초반 여성이다.
돈 많고 표독스러운 시어머니처럼 생겼다.
“그 사람 아니야.”
“네? 아니라뇨?”
“나중에 얘기하고 세팅이나 해.”
“옙!”
정우가 비닐봉지를 뜯는다.
맛있는 냄새가 올라오고 있다.
“아싸, 곱창!”
정우는 방긋방긋 웃으며 음식을 준비했고 성윤의 시선은 정혜성이 떠난 복도로 향했다.
“그런데……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왜 온 거야?”
뭔가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성윤과 정우 그리고 정혜성은 나란히 소파에 마주 앉았다.
테이블에 과일과 곱창 그리고 소주가 보인다.
성윤이 정혜성의 앞에 물을 두며 물었다.
“아직 수술 안 했죠?”
어쩐지 혼을 낼 것 같은 목소리다.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처럼 말한다.
“다음 주 화요일로 잡았어요. 의사 선생님이 바쁘시기도 하고 또 시술 후 이틀은 입원해야 한다고 해서……. 제가 쉴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
“건강이 우선인 것 몰라요?”
변명하면 맞을 것 같은 목소리다.
정혜성이 꾸벅 허리를 굽힌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과일은 먹어도 된데요?”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면 괜찮다고 했어요. 그리고 균형 잡힌 식사가 중요하다면서…….”
그녀가 토마토를 입에 대며 눈치를 본다.
정우가 입을 연다.
“의원님, 왜 자꾸…… 혼을 내세요?”
“어? 내가?”
“네.”
성윤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정혜성을 향했다.
“제가 혼을 냈나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혼내셨어요. 화도 내시고.”
“혼을 낸 게 아니라, 건강이 우선인데 시술도 안 받고 또 집이 서울인데 이 시간에 서안시를 돌아다니면…….”
정혜성이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인다.
“건강을 우선으로 하겠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한다.
“토마토 드실래요?”
성윤은 고개를 저으며 소주를 입에 댔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꿈속에서 봤던 그녀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지금도 시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차분하기보다는 발랄해 보인다.
‘다르네.’
성윤이 소주를 입에 댈 때 정우가 물었다.
“로스쿨에 다니신다고 그랬죠? 시장님처럼 판사가 꿈인가요? 아, 요즘은 바로 판사는 할 수 없나?”
“네, 판사는 경력을 쌓아야 해요. 하지만 나중에는 되고 싶어요.”
성윤이 슬쩍 그녀를 바라봤다.
‘꿈도 있었어?’
꿈속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그녀는 건강의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성윤이 기억하는 모습은 집에서 식사를 차리고 옷을 다리던 게 전부였다.
항상 미안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도 있었네.’
그런데, 그녀에 대해 생각하면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다.
그녀의 묘에서 주저앉아 울던 모습까지.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또 씁쓸해진다.
생각을 지우며 물었다.
“어떤 판사가 되고 싶어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정의로운 판사요.”
“그런 게 존재하나요?”
“당연히 존재하죠.”
그녀는 큰 눈을 뜨고 반론한다.
이어서…….
“이 세상의 정의는 사람의 숫자만큼 있잖아요. 그런데, 법은 사람이 인정하는 최소한의 정의. 저는 법대로 하는 판사가 될 거예요.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법에 따라 똑같이…….”
꿈을 이야기하는 그녀는 멋져 보였다.
성윤이 조용히 웃었다.
“그 꿈, 꼭 이뤘으면 좋겠네요. 정의로운 판사, 없다고 생각하는데 한번 보여 주세요.”
“판사는 꿈이 아니에요, 목표지.”
“다른가요?”
“다르죠.”
“그럼, 꿈은?”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비밀이에요.”
***
잠시 후, 세 사람은 1층에 있는 지상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정혜성이 빨간색 경차에 오르며 손을 흔든다.
“그럼, 나중에 뵐게요. 꼭 시술 받을게요. 건강한 모습으로 봬요.”
그녀가 떠났다.
정우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한다.
“괜찮지 않아요? 저는 의원님이 정혜성 씨랑 좀 꽁냥꽁냥 했으면 좋겠는데요.”
“너나 꽁냥꽁냥해.”
“제가 시간이 있나요?”
“난 있냐?”
“없죠, 흐흐.”
그때, 정우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누구야?”
술을 마실 때도 계속 울리던 휴대폰이다.
짧게 짧게 온 것이 메시지가 온 것인데…….
“한정이 기자요.”
“한정이?”
“그때 의원님이 취직시켜 준 파파라치 여기자.”
“아.”
“계속 전화가 오네요, 귀찮게.”
정우는 귀찮다고 말하면서 곧장 답문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신중히, 글자 하나에 영혼을 담아서.
메시지를 보낸 정우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묻는다.
“그런데 법안요, 대한당이 도와줄까요?”
박동진 의원을 박살 낸 것은 과정이다.
목표는 의료보험 확대 법안의 통과다.
정우가 말을 잇는다.
“대한당에서 안 도와줄 것 같은데요.”
대한당은 바보가 아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신당의 지지율이 올라갈 것을 알고 있다.
놈들이 남 잘 되는 꼴을 보고 있을 리 없다.
성윤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글쎄…….”
***
며칠 후, 대한당.
당사 회의실에 스무 명의 의원이 앉아 있다.
모니터 앞에 선 당직자가 입을 연다.
“민국당 지지율이 3% 떨어졌습니다.”
성윤이 박동진 의원을 박살 낸 결과다.
민국당은 단번에 3%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현재 지지율은 32.4%.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벤트가 가을의 국정감사다.
그런데 국정감사는 10월.
그때까지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민국당은 떨어지는 지지율을 바라만 봐야 한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달이 끝나기 전에 30%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대한당 의원들이 낄낄 거린다.
사이다를 원샷 한 표정이다.
“민국당 이 새끼들…… 지금 불 끄느라 정신없겠지?”
“대선 끝날 때까지 박동진 걸고 넘어지자고.”
“특검 걸까? 질질 끌려면 특검이 최고잖아?”
“그것 좋네. 크크.”
그동안 민국당에 치욕을 당해서 그런가 보다.
남의 불행을 즐기며 여기저기 웃음꽃이 피고 있다.
하지만 대한당의 대선 후보인 서용우 전 총리는 웃지 않는다.
그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계속.”
당직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연다.
“반면에 신당은 24.2%. 1% 상승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성윤의 지지율은 올랐지만 신당으로 옮겨 가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2% 상승해서 22.3%입니다. 신당과 정확히 1.8% 차이 납니다.”
대한당은 열혈 지지자가 존재한다.
그들은 온,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대한당의 장점을 쏟아낸다.
“그래도 대한당은 능력이 있잖아. 감성팔이 안 해. 실력 팔이 하지.”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욕한다.
“정치병에 걸린 놈들.”
하지만 그들이 바탕이 되기에 기회가 생기면 단숨에 치고 올라갈 수 있다.
서용우 전 총리가 흥미로운 눈으로 화면을 바라본다.
“여름 끝나기 전에 신당을 잡을 수 있을까?”
의원들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쪽팔린 3위를 끝내고 2위.
모두의 시선이 서용우 전 총리에게 향한다.
그러자 서용우 전 총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은 1위지. 어쨌든 청와대는 우리 것이야.”
의원들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가능하죠. 시간도 충분하잖아요?”
“그렇지, 지금 기세를 받아서 치고 올라가면 되는 거야!”
그때, 한 의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일단 막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막아? 뭘?”
“신당이 추진 중인 법안이 있습니다. 의료보험을 확장하자는 것인데 얼마 전에 우리 당에 도와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서류를 들춰봤다.
“의료보험? 복지위잖아? 대한당이 여섯, 신당이 셋. 우리가 도와줘도 아홉. 그런데, 민국당이 열한 명이야. 어차피 통과 안 될 거야. 이런 것은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
평소였어도 민국당은 찬성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지금 신당을 향한 그들의 감정은 분노를 넘어 살의에 가깝다.
절대 찬성할 리가 없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선 의원이 고개를 젓는다.
“진보당에 두 명 있습니다.”
“어?”
“이성윤이 박동진을 잡으며 가장 이득을 본 게 진보당 박유경 대표입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흔들거리던 지배력이 단단해졌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물끄러미 서류를 본다.
“진보당이 손을 들어 두면…….”
법안이 상임위를 넘을 수 있다.
서용우 전 총리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성윤이 진보당과 손잡았나? 일시적인 거래가 오갔을 가능성은 있어. 상임위를 통과하면? 그 시기가?’
대선이다.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이지만 국민을 아낀다며 홍보를 할 수 있다.
생각을 마친 서용우 전 총리가 서류를 덮었다.
“신당이 하는 모든 일에 반대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마. 상대는 박무혁이야. 돈도 있고 권력도 있어. 이런 법안이 통과되면 대대적으로 선전하겠지. 모두가 외면할 때 신당은 아픈 아이들을 돕고 있다! 이런 게 진짜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이다! 박무혁은 신당을 천사처럼 만들 능력이 있어.”
“네!”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지이이이잉, 서용우 전 총리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발신 번호가 이성윤.
‘뭐지?’
전화가 올 이유가 없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천천히 휴대폰을 귀에 댔다.
“말해.”
-한번 뵙고 싶은데요.
“언제?”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지금?”
-네.
***
잠시 후, 서용우 전 총리는 자신의 사무실 앞에 섰다.
비서가 고개를 숙인다.
“이성윤 의원이 와 있지?”
“네, 30분쯤 됐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있던 성윤이 허리를 굽힌다.
“오셨습니까?”
서용우 전 총리는 차가운 눈으로 슥 성윤을 본다.
“오랜만이야.”
그는 대한당에 함께 있을 때 성윤에게 더없이 잘해 줬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당.
게다가 그의 입장에서 보면 성윤은 배신을 하고 떠난 사람.
성윤을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은 없다.
그가 재킷을 걸어 둔 후 몸을 돌렸다.
“그래, 어쩐 일이지?”
“도와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어떤?”
서용우 전 총리가 소파에 앉아 다리를 외로 꼰다.
“의료보험 범위 확대 법안, 꼭 통과시키고 싶습니다.”
“안 돼. 도와줄 수 없어. 이미 결정했어.”
“총리님.”
서용우 전 총리는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가 봐.”
서용우 전 총리의 입장은 이해한다.
민국당의 지지율은 떨어지는 중이고 신당의 지지율은 보합이다.
이 상황에서 신당 좋은 일을 시키는 것은 멍청이다.
대한당이 치고 올라갈 순간이니까.
“총리님.”
“가.”
서용우 전 총리는 손을 흔들고 있다.
성윤이 한숨을 내뱉었다.
서용우 전 총리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당은 대한당이 반대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뭐?”
“대한당이 반대하는 순간, 기사가 올라갈 겁니다. 아파서 수술받은 아이,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비용이 몇천만 원. 뒤이은 수술이 또 몇천만 원. 막대한 수술비에 아빠는 끊었던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감성을 건든다는 건가!”
“다음 기사는 우리 당이 그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걸 알릴 겁니다.”
“뭐?”
“마지막 기사의 제목은 ‘아픈 아이를 외면하고 정권만 노리는 대한당’이 될 겁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서용우 전 총리의 눈빛에 불길이 이글거린다.
하지만 성윤은 그 눈빛을 마주하며 고개를 숙인다.
“도와주십시오. 마녀 사냥으로 먹고사는 정치판, 이번에는 좋은 일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
“아쉽네, 대한당이 반대했으면 했는데…….”
박무혁 의원이 깍지를 끼며 말했다.
“계속 반대했으면 춤을 췄을 텐데.”
그 시건이 성윤에게 향했다.
“뭐, 상임위 통과가 우선이었겠지?”
“네, 죄송합니다.”
“됐어.”
박무혁 의원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아쉬워,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리는 것이……. 던지면 폭탄이잖아?”
그 말을 끝으로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한참 후 담배를 비벼 끄며 입을 연다.
“타깃을 바꾸지.”
< 네가 거기서 왜 나와.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