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02화 (202/300)

< 네가 거기서 왜 나와. - (1) >

***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윤은 윤범성 부회장을 만나기 성종 호텔 한식 레스토랑에 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고개를 숙인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렇게 VIP실 앞에 도착했다.

이번엔 경호원이 허리를 굽힌다.

“죄송합니다만…….”

성윤은 경호원의 말이 끝나기 전에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건넸다.

“다른 것은 없어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제야 문이 열린다.

그리고 문 앞에는 윤범성 부회장이 서 있다.

“공무가 바쁘실 텐데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부회장님이야말로 많이 바쁘실 텐데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범성 부회장이 몸을 돌려 테이블을 가리킨다.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다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열 명이 앉아도 충분할 식탁에는 색색의 음식이 가득했다.

굴비에서부터 소갈비까지…….

성윤과 윤범성 부회장은 테이블에 앉아 의미 없는 인사말을 나눴다.

날씨가 어떤지 정세가 어떤지…….

그렇게 목적 없이 흘러가던 대화는 윤범성 부회장이 젓가락을 손에 쥐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윤범성 부회장이 성윤의 표정을 살피며 지나가는 투로 말을 던진다.

“노출되고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나요?”

“무슨 말씀이시죠?”

“조용하셨던 분인데, 최근 뉴스를 보면 이성윤 의원님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서울 시장 선거였나? 그때 했던 예언, 그때부터 지금까지 논란의 중심이죠. 혹시 의도한 겁니까?”

성종의 분석은 수준급이다.

성윤의 행동과 표정 그 외에 모든 것을 분석했을 거다.

그런 놈들에게 굳이 거짓말할 필요는 없다.

성윤은 고개를 끄덕인다.

“밑바닥 다지기가 끝났으니까요. 이제 탑을 쌓을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탑이라……. 그 탑이 혹시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인가요? 오만해진 인간이 높은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다던 것.”

“그게 무슨……?”

“이성윤 의원님의 탑이 닿으려는 하늘은 어디일까요? 박무혁?”

성윤의 눈빛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윤범성 부회장은 상관하지 않는다.

젓가락으로 육회를 집으며 다시 묻는다.

“맞나요?”

윤범성 부회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무적인 목소리로 성윤을 대했다.

그리고 이제는 성윤의 머리 끝에 올라 무시하려 한다.

계속 참고 넘어가는 것은 머저리다.

“윤범성 부회장님?”

성윤의 눈빛이 서늘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윤범성 부회장은 상관하지 않는다.

관찰의 눈빛으로 성윤의 모든 것을 샅샅이 살피고 있다.

그 눈빛을 마주하며 성윤이 입을 열었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성종의 하수인으로 보이나요?”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힌다.

사나운 짐승들의 눈싸움.

그런데, 윤범성 부회장의 눈빛이 점차 변한다.

처음엔 성윤을 적대하고 있었는데, 점차 동류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성윤 의원님, 하수인 맞지 않습니까?”

“……!”

“국민의 하수인요. 저도 국민입니다. 하하하하.”

그가 와인은 손에 들며 말을 잇는다.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얼마 전에 우리 아버지와 만나셨죠? 그때, 저는 아버지께 혼이 났어요. 이성윤 의원님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며 뺨까지 맞았죠. 그래서 투덜거려 봤습니다.”

윤범성 부회장은 빙긋이 미소를 짓는다.

여기서 그만 멈추자는 화해의 뜻이다.

“어쩐지 당한 것 같네요?”

“하하, 죄송합니다.”

성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티격태격할 마음은 없다.

상대는 성종의 부회장이다.

가벼운 말싸움이 진짜 전쟁으로 번지면 서로 피곤해지니까.

윤범성 부회장이 지금과 다른 편안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버지가 이 의원님을 만나 보라고 했어요.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죠. 내 비즈니스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며칠 전에 국회에서 있던 일이 제 생각을 바꿨죠. 박동진 의원은 무너졌고 이성윤 의원님의 이름은 포털 사이트를 덮었어요. 제가 뭘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대교체겠죠.”

“맞아요. 세대교체. 정계와 재계는 그 순간에 서 있어요.”

성종과 대정을 비롯해 많은 재벌가의 총수가 뒤바뀌는 중이다.

노병은 뒤로 물러나고 새로운 장수가 정점에 서고 있다.

정계 역시 마찬가지다.

안재열과 한상국 대통령이라는 큰 거목이 물러날 시기가 되었다.

그들의 그늘 아래에 있던 자들도 함께 떠날 순간이다.

윤범성 부회장이 계속 말한다.

“앞서갔던 파도는 바위를 만나 흩어졌어요. 세상은 다음 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윤범성 부회장이 자신의 휴대폰을 뒤집어 화면을 보인다.

박무혁 의원과 도제성 의원 그리고 서용우 전 총리의 얼굴, 각 당의 대선 주자들이 있다.

“나이로 따지면 내 또래들, 하지만 이 사람들의 정치 수명은 길어야 3년에서 4년. 나와 함께할 사람들은 아니죠.”

윤범성 부회장이 시선을 들어 성윤을 향했다.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회장에 오르면 못해도 20년은 해 먹을 겁니다. 그 시간 동안 함께할 파트너가 필요해요. 이성윤 의원님이 제 손을 잡아 주셨으면 합니다.”

“손을 잡으면 뭘 해야 하죠?”

“할 일이 따로 있나요? 상속세 이야기에 눈을 감고 세금 문제에 귀를 막으면 되는 거죠.”

처음 보는 성윤의 앞에서 거침없이 말한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성윤이 물끄러미 윤범성 부회장을 바라봤다.

‘지금 파트너를 권하는 건가? 회장이 되었을 때 뒤를 봐 달라고?’

윤범성 부회장이 회장에 오르는 것은 윤 회장의 사후다.

성윤은 잠시 꿈속에서 봤던 미래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성종 윤 회장의 장례식장…….

성윤이 모시던 박대철 의원이 윤 회장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물론 어떤 친분도 없었다.

무작정 찾아온 거다.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은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거물들.

그들과 함께 카메라에 얼굴이 담기면 괜히 거물이 된 것 같으니까.

박대철 의원이 엉덩이를 씰룩이며 여기저기 쑤시고 다닐 때, 성윤은 멀찍이 서서 거인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을 기억하면 참 씁쓸하다.

그곳에 망자를 위한 슬픔과 위안은 없었다.

성종을 차지하기 위한 눈치 싸움만 있었다.

윤범성 부회장과 그 형제들.

비서실장 정기화 그리고 정치인들…….

그들이 모여 앉아 작당 모의를 하던 더러운 행태.

그리고 윤범성 부회장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이준대였다.

꿈을 떠올리며 성윤의 눈빛이 번쩍였다.

‘이준대가 했던 역할을 내게 부탁하는 것인가? 이준대에게도 이렇게 말했을까?’

윤범성 부회장이 성윤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

“우리 손을 잡았을 때의 보상도 말씀드려야겠죠? 돈은 넘치도록 갖고 계시니까…….”

윤범성 부회장은 목소리를 낮추며 성윤을 살핀다.

“계파를 만들어 드릴까요?”

성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확실해졌다.

이준대도 돈은 넘치도록 갖고 있다.

그를 회유했던 방법이…….

‘계파를 만들어 준다고? 이게 이준대가 빠르게 성장한 이유였어?’

윤범성 부회장이 계속 말한다.

“우리 그룹에 친화적인 의원님들이 계십니다. 이름값이 있는 분들이라 베이스로 두기에 나쁘지 않을 거예요.”

성윤은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미친 새끼.’

호랑이의 등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 윤범성 부회장이었다.

‘멍청한 새끼!’

윤범성 부회장은 태어나면서부터 다이아를 쥐고 태어난 인간이다.

내려다보는 것이 익숙해서 그런지 정치인까지 쉽게 보고 있다.

성종의 돈으로 엮인 의원을 계파로 채워 주면 성윤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의원들이 눈과 귀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 거다.

‘이러니까 회사를 망쳐 먹었지.’

계파가 어떤 목적과 이득으로 이뤄지는지 그 메커니즘도 모르고 있다.

‘젠장.’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져야 할 총수가 1차원 적인 생각에 머물고 있다니.

한숨만 나온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 마약이다.

권력 앞에서 돈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정치 판에서 돈으로 엮인 인맥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거다.

‘이준대는 윤범성 부회장이 붙여준 의원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어.’

성윤이 슬쩍 윤범성 부회장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다.

성윤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이준대에게 줬던 것,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성윤은 성종 그룹의 힘을 꿀꺽할 생각이다.

카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계파……. 저도 생각하고 있던 겁니다. 괜찮네요. 그렇게 하죠.”

윤범성 부회장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내숭 부리지 않아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의원님?”

‘그런데요.’라는 말은 어감이 좋지 않다.

윤범성 부회장이 미소를 지우고 확 달라진 눈빛으로 말한다.

“전 입으로 하는 약속을 믿지 않아요.”

“이런 일을 문서로 남기자는 겁니까? 농담이시죠?”

“문서요?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는 없죠.”

“그럼?”

“역사를 생각해 보세요. 국가 간의 동맹이 있은 후 그 다음의 절차가 뭐죠?”

성윤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윤범성 부회장이 와인잔을 손에 쥐며 말한다.

“혼인이죠.”

“……!”

“아내의 집안을 박살 낼 수는 없으니까요.”

윤범성 부회장은 금테 안경에 스마트한 외모를 갖고 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런 미친 새끼.’

정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대정 박영훈 부회장이 대놓고 거만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

윤범성 부회장이 성윤의 앞에 휴대폰을 내려 둔다.

“보세요.”

화면에는 한 여성이 있다.

성윤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어?’

알고 있는 얼굴이다.

바로 꿈속에서 봤던 이준대의 아내다.

‘혼인이라며?’

그런데, 이 여자는 성종 그룹의 사람이 아니다.

“부회장님, 이분은…….”

“처음 보시죠? 당연해요. 쉬쉬하니까.”

“네?”

“혼외 자식이에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대정과 달리 형제들의 사이가 나쁘지 않아요. 얘도 마찬가지고요. 아쉬운 것은 유산이 많지 않다는 것? 그래도 리조트와 골프장이 얘 이름으로 들어갈 겁니다. 주말에 같이 골프를 치면 좋겠네요. 하하하하!”

성윤의 머릿속은 계속해서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 엉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윤범성 부회장이 크게 웃는다.

“이 의원님, 설마 정략결혼 이런 것에 거부감 있고 그런 것은 아니죠? 꼭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건가요? 그러지 마세요. 결혼은 비즈니스예요.”

“…….”

“아니면, 혹시 여자 친구가 있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법적인 도장만 찍는 거니까요. 의원님이 다른 여자를 만나든, 남자를 좋아하든, 어떤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더럽네요.”

“비즈니스가 깨끗하면 애들 소꿉장난이죠.”

***

성윤은 윤범성 부회장에게 ‘일단 식사나 한번 같이하죠.’ 라는 말을 전한 후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데 입에서 씁쓸한 미소가 흐른다.

‘또?’

꿈속의 성윤은 정략결혼을 했다.

당시 상대는 현 서울시장 정덕진의 딸 정혜성.

그런데, 현생에서도 정략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재밌게 흘러가네.’

성윤은 한숨을 내뱉은 후 휴대폰을 귀에 댔다.

“정우야, 어디야?”

-서안시 사무실이요.

“일 많이 남았어?”

-아뇨, 거의 끝나 가요.

“오랜만에 소주 한잔할까?”

더러운 기분, 소주나 한잔해야겠다.

정우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린다.

-좋아요!

성윤은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떨친다.

‘일만 생각하자.’

액셀을 밟으며 핸들을 틀었다.

그러자 얼마 전 봤던 사진이 떠오른다.

장한수 실장이 찍어 온 이준대의 사진.

그중에 외국인 여자가 있었다.

많이 봤던 여자.

하지만 정확한 기억은 없다.

‘여기까지 쫓아왔다가 버림받은 사람인가?’

이준대와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가려 하는데…….

‘에이.’

생각은 계속 정혜성의 얼굴로 향한다.

성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잠시 후, 서안시 사무실.

성윤은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너편 시장으로 향했다.

정우가 평소 좋아하는 음식 중에 곱창이 있다.

특히 이 시장의 중앙에서 장사를 하는 집을 참 좋아한다.

곱창을 사고 슈퍼에서 소주를 다섯 병 담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귀에 댄다.

“시장에서 곱창 샀어. 더 필요한 게 있을까?”

-곱창 볶음요? 그거 맵잖아요?

“왜 그래? 너 좋아하잖아.”

-과일 사 주세요. 과일.

“과일? 평소에도 과일은 쳐다보지도 않는 놈이 갑자기 왜?”

-오늘부터 좋아하기로 했어요.

정말 이상한 놈이다.

“알았어.”

성윤은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토마토, 포도 등 골고루 샀다.

먹고 싶다는 데 사줘야지…….

바리바리 싸들고 사무실에 올라갔더니 정우가 테이블에 전지를 깔고 있다.

“왜 평소답지 않게 깔끔 떨어?”

“전 원래 깔끔해요.”

“헛소리한다.”

“그런데, 윤범성 부회장이 뭐래요?”

정우가 말을 돌리고 있다.

성윤이 테이블에 사 온 것을 놔두며 답했다.

“자기 동생이랑 결혼하래.”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온 낯선 여성의 목소리…….

“안 돼요!”

성윤이 시선을 틀어 보니 정혜성이 보인다.

‘착각이야, 아니면 실제야?’

오는 길에 계속 정혜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 앞에 선 것도 착각인 것 같다.

그녀가 여기에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런데,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

“그러니까, 안 된다는 게…… 의원님은 아직…… 음…….”

< 네가 거기서 왜 나와.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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