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와 다른 오늘 -(1) >
***
새벽 6시, 박동진 의원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왔다.
박동진 의원이 고개를 든다.
뜬 눈으로 밤을 보내서 그런지 두 눈이 충혈 되어 있다.
“어떻게 됐어?”
보좌관은 가짜 후보였던 권수명과 낙마한 진보당 후보를 만났다.
물론 직접 간 것은 아니다.
기자들의 눈에 띌 수 있으니 대신할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밤새 이뤄졌던 미팅의 소식이 이제야 들어왔다.
“진보당 후보는 빚 해결과 함께 생활비 3천만 원을 주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권수명은?”
“……실패했습니다.”
순간, 박동진 의원의 턱에 콱 힘이 들어가더니 볼 살이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실패?”
“죄송합니다.”
“돈 준다고 했지?”
“네.”
“그런데 거부해?”
“네.”
“이 새끼가, 진짜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보좌관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권수명이 우리를 찌른 것은 검찰의 협박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앞으로 쓸데없는 말 지껄이지 않겠다고 하니까…….”
박동진 의원이 손을 저었다
“보좌관, 뒤통수 친 놈은 또 치기 마련이야. 그런데, 그놈 말을 믿는다고? 책임질 수 있어?”
책임이란 단어는 무겁다.
보좌관이 입을 닫자 박동진 의원이 귀찮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책임질 수 없으면 그런 말 하지 마. 내일 다시 찾아가 봐.”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박동진 의원이 몸을 일으킨다.
“그래, 딴따라는 구했나?”
“바른 생활로 소문난 배우가 있습니다. 일등 신랑감으로 꼽히는 놈인데, 이놈이 사실은…….”
보좌관의 말이 이어지지 못 했다.
휴대폰이 품에서 진동했기 때문이다.
보좌관은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확인했다.
‘지금 시간이 새벽 6시 10분. 이 시간에 전화 올 곳이 없는데…….’
보좌관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 발신 번호가 장 차장검사입니다.”
“누구? 장 검사?”
장 검사는 중앙 지검 차장검사다.
그런 사람이 이 시간에 전화를 했다는 것은…….
“장 검사가 왜!”
보좌관이 다급히 통화 버튼과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네, 차장검사님.”
-보좌관님, 새벽부터 죄송합니다. 일어나셨습니까?
장 차장검사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보좌관이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세요. 사무실입니다.”
-일이 좀 시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네? 시끄러워지다니요?”
-제가 막아 보려고 이 시간에 출근까지 했지만 검사장이 강행을…….
오전 9시 30분.
텔레비전 화면에 단발머리의 아나운서가 나타났다.
서류를 손에 쥔 그녀가 긴장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가짜 후보에 대한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던 박동진 의원이 또 다른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박동진 의원이 숨겨 둔 페이퍼 컴퍼니와…….
***
‘삑’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 화면이 검게 변했다.
성윤이 손에 든 리모컨을 소파에 던져 두고 벽에 걸린 거울로 향했다.
소매를 걷고 넥타이를 맨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뒤에 선 정우를 슬쩍 본다.
“민국당 공식 반응은?”
“없어요. 일부 의원들이 SNS를 통해 개인 의사를 밝히는 중이에요.”
“뭐래?”
“뭐, 뻔하죠.”
정우가 휴대폰을 건넸다.
화면에는 박동진 의원 계파에서 내뱉은 SNS 똥 글이 가득 올라와 있다.
-다음 정권이 민국당이 될 것 같으니까 검찰이 겁내고 있다. 검찰은 언제까지 정권의 눈치를 볼 거냐!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 박동진 의원이 제일 무서웠나 보네요. 이제 그 권력, 끝내야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국민은 진실을 알고 있다. 너희의 억지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거다.
“중요한 내용은 없네.”
“뻔하다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들 왜 이럴까요?”
검찰은 웬만해서 국회의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다.
괜히 덤볐다가 머리채가 뽑힐 때까지 귀싸대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도면 구속에 자신이 있다는 뜻.
“그런데, SNS에 똥을 싸고 있는 게 참…….”
똥을 싸는 이유는 하나다.
“지지율 때문이지.”
갑작스럽게 사건이 터지면 지지자들이 충격을 받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떨어진 지지율은 여간해서 회복하기 힘들다.
그런데, 대선이 코앞이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박동진 의원은 죄가 없다. 정부의 음모다. 이런 식으로 몰고 가면 지지율이 폭락하지 않을 테니까.”
성윤이 재킷을 몸에 걸쳤다.
그리고 슬쩍 정우를 본다.
“이 상황에서 펼치는 음모론은 정말 쓸데없는 일이야.”
박동진 의원은 직원 폭행으로 구속된 유아 콘텐츠 회사 대표와 연루됐다.
네티즌들에게 끼리끼리 논다며 비아냥을 듣고 있다.
계파 의원들이 SNS를 올리며 쉴드를 치고 있지만 국민 정서상 여론을 뒤집기는 힘든 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국회가 열리는 날이야.”
모든 당이 모이는 날이다.
서로 욕을 내뱉으며 삿대질 할 수 있는 콜로세움.
오늘의 타깃은 박동진 의원이다.
박동진 의원을 어떻게 씹어 먹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치솟아 오를 수도 있다.
“지지율이 어떻지?”
정우가 품에서 종이를 꺼낸다.
“지지율이 그러니까…….”
지방선거가 끝나고 대선으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각 정당 지지율은 다시 한번 날뛰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또 내일이 다를 거다.
그만큼 큰 폭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현재 지지율 1위는 민국당이다.
35.5%로 몇 달째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좋지 않다.
지방선거 기간에 40%까지 넘었던 것을 기억하면 초라한 성적표니까.
안재열 전 대통령의 탈당을 비롯해 민유헌 대표, 오항로 의원 그리고 박동진 의원 등 여러 악재가 터지며 흔들거리고 있다.
2위는 23%의 지지율을 얻은 신당이다.
지방선거에서 화려한 신고식을 했지만 선거가 끝난 후 점차 하락하고 있다.
신당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신당은 또렷한 이념도 없고 아직 보여 준 것도 없다.
대권에 올리기엔 신당이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다.
그래서 유권자 중 냉철한 사람들은 등을 돌리는 중이다.
게다가 신당은 대한당과 민국당 출신의 의원이 함께 있는 곳.
좋게 보면 화합이지만 나쁘게 보면 언제 깨질지 모를 불안한 동맹이다.
SNS나 뉴스를 보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통합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다.
지금 가장 즐거운 곳은 대한당이다.
20.4%로 3위를 찍고 있지만 한 때 지옥으로 들어가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다.
최근 민국당의 비리가 연이어 터지며 썩어도 준치라고 ‘차라리 대한당!’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불안한 점은 존재한다.
잘해서 올라간 지지율이 아니라 반사이익 때문이니까.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4위는 지방선거 기간에 10%를 넘겼던 진보당이 6%.
마지막으로 무당층이 15.1%다.
성윤은 지금부터 이 지지율을 뒤집을 생각이다.
성큼성큼 사무실을 벗어나며 입을 연다.
“지금부터 민국당 지지율 5%는 갉아 먹어야지?”
정우가 성윤의 뒤를 따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옙!”
***
말 그대로 얼어붙은 정국, 국회의 분위기는 서늘했다.
당은 다르지만 만나면 인사를 나누던 의원들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여기는 대한당, 저기는 민국당 이곳은 신당.
각 당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굶주린 짐승처럼 서로를 견제하는 중이다.
이들이 기다리는 먹잇감은 하나다.
바로 박동진 의원이다.
신당과 대한당 그리고 진보당은 박동진 의원을 뼈까지 씹어 삼켜 지지율을 올릴 생각이다.
그러려면 다른 당보다 더 자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때…….
“야, 저기.”
“선빵 시작됐다.”
신당 의원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틀어졌다.
손에 피켓을 들고 선 진보당 대표 박유경이 보인다.
그녀의 피켓에는 ‘박동진 의원 사퇴’라는 글씨가 붉게 적혀 있다.
그 뒤로 몇 안 되는 진보당 의원들이 선다.
다들 붉은 글씨로 피켓을 들고 있다.
박유경 대표가 외친다.
“본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들 주목해 주십시오! 민국당 박동진 의원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꺾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국민의 세금을 뒤로 빼돌려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국당은 이런 범죄를 버젓이 알면서도…….”
참고 있던 민국당 의원이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들어와! 아직 수사가 시작된 것도 아니잖아!”
들어오라고 들어올 진보당 대표가 아니다.
계속 입을 연다.
“처음엔 화가 났습니다. 그다음엔 부끄러웠습니다. 박동진 의원은 대한민국 거대 야당 민국당의 최고 위원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만해!”
“가짜 후보가 증언했고 유아 교육 콘텐츠 대표가 인정했어요! 도대체 뭘 더 수사해야 하죠!”
“좀! 순서대로 해! 순서대로!”
계속되는 반말.
박유경 대표의 뒤에 있던 진보당 의원이 시뻘겋게 눈을 뜬다.
“왜 반말이야! 반말하지 마!”
“씨발, 먼저 자극한 게 누군데? 수사하고! 체포 동의안 보고! 그때 얘기해도 늦지 않아! 무죄 추정 몰라?”
그 말에 대한당 의원이 발끈했다.
“뭐? 씨발? 이럴 때만 무죄 추정?”
대한당에서 많은 의원들이 성범죄로 걸려 들어갔다.
그때, 무죄 추정은 없었다.
특히 비례대표 이주혜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원동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을 때, 민국당은 풍악을 울리기까지 했었다.
당시 그들이 했던 말이…….
“침대에서 셀카를 찍었어도 유죄야!”
“원동현은 무조건 성폭행 범! 유죄! 사형! 거세!”
“대물당은 물러나라!”
그때를 기억하며 대한당 의원들이 우르르 일어난다.
팔을 걷어붙이고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내뱉는다.
엄마 욕, 아빠 욕 등등.
그리고…….
“개새끼들아! 억울하면 당장 박동진을 사퇴시켜!”
“이건 특검을 해야 해! 민국당에서 모르고 있었겠어?”
진보당도 지지 않는다.
“박동진은 국민께 사과하고 사퇴하라!”
민국당도 밀리지 않는다.
“절차대로 하자고! 절차대로!”
민국당은 철저히 방어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다른 당은 그들의 상처를 들춰내는 것으로 모자라 소금을 뿌려야 한다.
그래야 민국당의 지지율을 자신들의 당으로 가져올 수 있으니까.
그들이 시끄럽게 싸우는 동안 조용한 것은 신당뿐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다.
오가는 쌍욕 속에서 미소를 그리는 중이다.
그리고 흡연장.
소란스러운 본회의장을 떠나 모인 민국당 의원들이 보였다.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한 의원이 말한다.
“박유경 눈 봤지?”
“눈을 어떻게 봐? 마주치면 죽일 것 같던데.”
“씨발……. 아직 결정된 것도 없는데. 검찰 말만 듣고 왜 저래? 대한당도 폭죽을 쏘고 있던데? 조금 있으면 무도회 하겠더라.”
“개새끼들.”
의원들이 나직이 욕을 토해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한 의원이 묻는다.
“그런데, 박동진 의원님은 왔어?”
“오겠냐?”
“오실 걸요?”
낯선 목소리였다.
의원들의 시선이 틀어졌다.
성윤이 보인다.
민국당 의원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 의원, 도청하는 취미가 있었나? 몰래 듣고 있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먼저 여기 있었어요. 의원님들이 나중에 오셨고요. 어쨌든…… 박동진 의원님 오늘 오실 겁니다.”
변명하기 위해 올 거다.
체포 동의안이 올라오기 전에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돌려야 하니까.
그리고 성공만 하면 검찰이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체포할 수 없다.
그게 국회의원이다.
“이 의원, 박동진 의원님 오시면 다른 의원들처럼 같이 욕하고 그러면 안 돼. 이 의원하고 몇 살 차이 나는지 알지?”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는 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 때문에 찌그러져 있으면 저를 뽑아 준 유권자에게 죄송한 건데요.”
“여기도 선후배가 있어. 나대지 마. 새끼야.”
성윤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새끼, 새끼……. 한 번만 더 욕하면 똑같이 하겠습니다.”
사나운 눈빛에 민국당 의원들은 가소롭다는 듯 웃는다.
“이 의원, 내 아들이랑 몇 살 차이 안 나. 알지?”
그들은 그 말을 끝으로 담배를 비벼 끈 후 그 자리를 떠난다.
마지막에 쏘아보는 것은 잊지 않고.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똑같이 해야겠네.”
성윤도 담배를 비벼 끄고 흡연장을 떠났다.
잠시 후, 본회의장.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의사일정에 들어가기 전에 자유 발언이 신청이 있습니다. 이성윤 의원 나오셔서 발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전까지 폭언욕설로 소란스러웠던 본회의장이다.
그런데, 성윤의 자유 발언 소식에 찬물이 쏟아진 것처럼 조용해진다.
그들의 머릿속에 방금전 일이 스쳤다.
‘신당은 조용히 있었지?’
박동진을 씹어 삼켜야 지지율이 오르는데 가만히 있었던 이유.
그리고 이런 상황에 어린 성윤이 나섰다는 것은…….
‘이성윤을 저격수로 배치했나?’
대한당과 민국당 의원들의 시선이 빠르게 신당 의원들의 표정을 살핀다.
신당 의원들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다른 의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성윤이 뭔가 하는 구나!’
대한당 의원들은 구경꾼이 되어 침을 삼킨다.
반대로 민국당 의원들은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주먹을 꽉 쥔 채 여차하면 방해할 생각으로 마른침만 삼키고 있다.
그리고 성윤이 그들의 앞에 섰다.
“서안시 동구 이성윤입니다.”
모든 카메라가 성윤을 비추고 있었다.
< 어제와 다른 오늘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