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변확대. - (4) >
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니,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전화를 받으면 또 다른 불길한 내용이 전해질 것 같아서다.
민국당은 짧은 시간에 두 발의 미사일을 처맞았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탈당에 이어 박동진 의원의 가짜 후보 의혹.
거기에 또 다른 무엇이 터진다면…….
모두 마른침만 삼키고 있다.
따르르르릉, 전화벨만 시끄럽게 울리는 중이다.
도제성 의원이 입을 열었다.
“받으세요. 스피커폰을 누르시고…….”
당직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민국당…….”
-진보당 박유경 대표입니다. 다들 듣고 계시죠?
박유경 대표의 날 선 목소리.
그녀는 스피커폰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네, 다 듣고 계십니다.”
-뉴스 봤어요. 소식도 들었고요. 확신도 했죠. 민국당과는 어느 정도 생각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생각이었나 봐요? 우리 당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가짜 후보를 내세웠다고요?
진보당은 의석수가 몇 안 되는 소수 정당이다.
하지만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전투력은 일당백.
그들이 민국당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면…….
당직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만 굴린다.
그때, 박동진 의원이 다급히 전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박동진 의원입니다.”
그는 이 사태의 원흉이다.
어떻게든 매듭짓지 않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대표님,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거짓이에요! 저도 방금 뉴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박동진 의원의 목소리가 간절하게 이어졌다.
“대한당이나 신당의 짓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이런 음모론 때문에 싸운다면……!”
하지만 늦었다.
박유경 대표의 목소리는 여전히 쌀쌀맞다.
-박 의원님, 제가 처음에 확신했다는 말을 한 것 같은데요. 확신이라는 뜻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
“…….!”
-민국당 최고위께 말씀드립니다. 진보당은 박동진 의원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합니다. 오늘 오후 5시까지 연락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전화가 뚝, 끊겼다.
회의실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탈당에 이어 진보당과도 싸워야 한다니…….
내부를 수습하기도 전에 밖에서도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젠장.”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모두의 입에서 끔, 힘겨운 소리가 흐른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도제성 의원이다.
“박 의원님, 진실이 무엇입니까?”
모든 의원의 시선이 박동진 의원에게 옮겨졌다.
일단 해결해야 할 것은 박동진 의원이다.
박동진 의원이 입을 닫고 있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의원이 목소리를 냈다.
“대답해 보세요! 진보당이고 나발이고 거짓 선동에 휩쓸려 우리 당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가만 놔둘 수 없어요!”
“박 의원, 가짜 후보를 내세운 게 맞습니까? 그게 아니면, 저 새끼들 다 죽여 버려야지! 쥐똥만 한 것들이 협박을 해!”
“그러고 보니까, 박유경 대표가 지방선거 끝나고 힘들어 했어요!”
“그래? 그럼, 우리를 탈출구로 쓰려는 거야? 씨발, 많이 컸네?”
지금 입을 연 사람들은 박동진 의원의 계파다.
그들의 발언에 분위기가 이상한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진실’에 대한 확인 보다 작은 정당의 반항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다.
“대답해 보세요!”
박동진 의원이 힘겹게 입을 연다.
“말했잖아요, 거짓이라고……. 내가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얻을 게 뭐가 있다고요. 진보당이 뭐 그리 무섭다고요! 난 억울해요! 억울하다고요!”
급기야 박동진 의원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탕탕 세차게 내려쳤다.
그의 눈빛이 한없이 억울하다.
툭 치면 울 것 같다.
***
“박동진 의원님! 가짜 후보를 만든 게 사실입니까?”
“진보당에서 사퇴를 요구했는데요!”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박동진 의원은 회의를 끝내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벌 떼처럼 몰려든다.
마이크가 쑥 들어오고 녹음기가 눈앞에서 흔들 거렸다.
걷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지방선거에 나섰던 권수명 후보가 직접 인터뷰를 했는데, 거짓이라는 겁니까?”
“네! 몰라요! 난 권수명이라는 사람의 이름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박동진 의원은 기자들을 밀치고 자신의 차량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자들을 뒤로한 채 탁, 문을 닫아 버린다.
기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동차 창문을 두들겨 대며 소리를 지른다.
“의원님! 한 말씀만!”
“의원님!”
박동진 의원은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계속 이곳에 있으면 정신병에 걸려 버릴 것 같았다.
“출발하지.”
“네.”
수행 비서가 액셀을 밟았다.
기자들의 모습이 멀어진다.
그러자 박동진 의원의 표정이 변한다.
억울했던 눈빛이 사라지고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두꺼비가 되고 있다.
그가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도대체!”
나쁜 일은 몰아서 온다고 했다.
지금 박동진 의원의 상황이 그렇다.
돈을 숨겨 둔 유아 교육 업체 대표가 검찰에 끌려갔고 가짜 후보까지 드러났다.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 담기고 있었다.
“씨발!”
유아 교육 업체의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페이퍼 컴퍼니가 드러난다 해도 거기가 끝이다.
검찰은 자금이 흐른 통장까지 확인할 능력이 없으니까.
그저 펑펑 쓰던 돈을 마음껏 사용 못 하는 게 불편할 뿐이다.
“씨발! 씨발! 씨발!”
박동진 후보가 조수석을 쾅쾅쾅 발로 차기 시작했다.
조수석에 앉은 보좌관은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 있다.
“보좌관, 권수명이 전화해 봤어?”
지금 박동진 후보에게 가장 큰 문제는 진보당 후보를 낙선 시킨 가짜 후보 사건이다.
조수석에 앉은 보좌관이 몸을 돌렸다.
“권수명이요?”
“그래!”
“아직…….”
“이 미친 새끼야! 그럼, 뭐 했어! 놀았어? 넌 뭐 하는 인간이야!”
보좌관은 최대한 죄송한 표정을 짓는다.
“이유를 듣고 싶었지만 권수명은 지금 우리에게 적대적입니다. 기자와 함께 있을 수도 있고 통화를 녹음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멍 때리고 당하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보좌관의 목소리엔 힘이 없다.
그 모습을 보며 박동진 의원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직하니 입을 연다.
“딴따라 새끼들…… 요즘 뭐 없는지 찾아봐. 일단 조용히 만들어야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야 일을 해결하는 게 수월해진다.
이럴 땐 연예인이 최고다.
국민의 관심은 말초적인 곳으로 이동하고 박동진 의원은 다시 평소처럼 맛있는 식사를 즐기면 되는 거니까.
박동진 의원은 연예인을 사건을 덮는 소모품으로만 생각했다.
“알아보겠습니다.”
“내 이름이 더 논란되기 전에 터뜨려야 해. 적당한 놈을 잡아서 매장시켜.”
“네.”
“그리고 권수명 그 새끼…… 죽일 방법을 생각해 봐.”
“알겠습니다.”
“꼴 보기 싫으니까 앞에 봐.”
보좌관이 다시 몸을 돌렸다.
박동진 의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손에 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기사 제목이 주르륵 나온다.
박동진 의원 가짜 후보?
영화보다 충격적인 현실
진보당, 투쟁할 것!
-위선자 ㅋㅋㅋㅋ
-민국당 지지자 새끼들 거품 물고 쓰러지겠네.
-안재열이 떠난 이유다!
-증거 없잖아? 왜 난리?
-증거가 없기는……. 가짜 후보로 나섰던 사람이 인터뷰 한 거잖아.
-저 사람이 거짓말 한다는 생각은 안 해 봤냐?
-아 좀! 그만 인정해라!
-인정하겠냐? ㅋㅋㅋ
-이러고도 민국당 뽑겠지?
-그럼, 대한당 뽑냐?
-신당이 있잖아. 대안이 버젓이 있는데 또 민국당 뽑는 개돼지.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라. 신당이 보여 준 게 뭐가 있는데? 걔들도 대안이 아니야. 민국당과 대한당의 찌꺼기가 모인 곳이지.
-당 보지 말고 사람 보자며? 그런데, 이럴 땐 또 당을 이야기하네?
-박동진 때문에 이게 뭐야?
온라인에서도 싸움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들은 박동진 의원을 비난한다.
그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이번 사건에서 벗어날 방법이 생각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입을 연다.
“보좌관.”
“네.”
“이거 질질 끌 사안이 아닌 것 같아. 기자들 중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놈을 찾아서 권수명이 접선해. 원하는 게 있으면 다 준다고 해.”
“네.”
“그리고…… 권수명이 요구하는 게 있으면 녹음해. 그리고 바로 언론사에 뿌려.”
“네?”
보좌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구하는 게 있으면 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언론사에 뿌리라니.
그는 박동진 의원의 말을 이해 못 하고 있었다.
박동진 의원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한다.
“권수명이 우리를 협박했다고, 돈을 요구했다고 해. 우리가 약자였다는 식으로 포장해서.”
“아.”
박동진 의원이 계속 말한다.
“그리고 진보당에서 낙선한 후보를 찾아봐. 선거비용 때문에 생활이 어려울 거야. 그거 해결해 주고 우리에게 유리한 인터뷰를 부탁해.”
보좌관의 얼굴이 환해진다.
앞일이 막막했었는데 탈출구가 보이는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딴따라 터뜨리고.”
“네!”
“이 정도로 그림을 그려 줬으면 색칠은 알아서 할 수 있지?”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하시는 일이 없도록 잘 끝내겠습니다.”
“그래.”
박동진 의원은 입에 물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가 차 안을 채운다.
“좆 같은 하루야.”
***
그날 밤.
한강이 훤히 보이는 레스토랑 VIP실.
성윤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진보당 박유경 대표가 보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성윤의 말에 박유경 대표가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앉으세요.”
성윤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박유경 대표의 표정은 지난번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르다.
경계의 눈빛이 많이 사라졌다.
“스테이크 시켰는데, 입에 맞을까 모르겠네요?”
“뭐든 잘 먹습니다.”
성윤은 기분 좋게 미소를 그렸다.
곧이어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왔고 식사가 시작됐다.
박유경 대표가 스테이크를 썰며 입을 연다.
“이 의원님 덕분에 당에서의 제 입지가 탄탄해졌네요.”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요. 다 대표님의 덕이죠.”
박유경 대표가 살짝 웃는다.
“뭐, 어쨌든요. 고마워요. 그런데…….”
그녀가 성윤의 앞으로 휴대폰을 밀어 넣었다.
화면에 한 남자와 가짜 후보 권수명이 만나는 사진이 보인다.
“박동진 의원 측에서 권수명을 접선하는 것 같아요.”
그녀가 화면을 넘겼다.
또 다른 사진이 보인다.
“이 사람은 우리 당 후보였던 사람인데 박동진 의원에게 연락을 받았나 봐요. 선거로 인한 빚을 없애 주겠다, 생활비를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했겠죠? 넘어간 것 같아요.”
박유경 대표가 가리킨 후보, 그는 권력자와 싸웠던 사람이다.
당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며 후보가 되어 시장에 도전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다.
빚이 쌓이고 은행이 독촉을 시작하면 견디기 어렵다.
“권수명과 우리 당 후보, 이 두 사람은 내일 아침 인터뷰를 할 거예요. 박동진에게 유리한 쪽으로. 그럼, 우리 당은 민국당과 싸울 명분이 없어져요.”
민국당과 싸우지 못하면 박유경 대표도 어렵다.
민국당이라는 거대한 적을 만들어 두고 진보당의 갈등을 없애는 게 그녀의 목표였으니까.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박동진 의원, 국가의 돈을 빼돌려 개인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죠. 자신의 권력을 위해 가짜 후보까지 만들었고요. 악마들이 더 잘 먹고 잘 사는 세상…… 소시오패스 깡패 두목이 발 뻣고 자는 세상, 도덕적 위선자. 내일 아침이면 세상에 알몸이 되어 까발려질 거예요.”
“네?”
박유경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페이퍼 컴퍼니는 몰라도 통장이 세탁되면 짧은 시간에 찾을 수가 없다고 들었는데…….”
“우리 당의 대표는 박무혁 의원님이세요.”
박무혁 의원은 재벌이다.
그것도 정점에 있는 사람 중 하나다.
“박동진 의원의 페이퍼 컴퍼니나 300억을 숨기기 위한 통장 세탁은 애들 장난이죠.”
박유경 대표가 속 시원한 표정으로 웃는다.
“처음으로 재벌이 마음에 들었어요.”
한참을 웃던 그녀가 성윤을 향해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
“앞으로 신당과는 계속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이성윤 의원님과는…….”
“감사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두 사람의 잔이 부딪쳤다.
민국당과 손을 잡았던 진보당이 그 손을 뿌리치고 신당으로 옮겨 왔다.
사실 이념에 의한 동지는 어렵다.
하지만 극렬한 반대는 벗어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그들이 반대하기 시작하면 정말 피곤해지니까.
그리고 도제성 의원과 박무혁 의원의 지지율 차.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지만 10%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진보당이 민국당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
< 저변확대. -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