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98화 (198/300)

< 저변 확대. - (3) >

***

바닷가 근처의 오래된 호텔.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한산한 곳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연회장이다.

호텔의 낡은 외관과 달리 100석이 넘는 의자가 채워져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자리가 순식간에 채워지고 있었다.

뒤늦게 온 기자들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

“왜 이렇게 많이 왔어요?”

기자들의 시선이 목소리를 좇아 이동했다.

의자에 편안히 앉은 안재열 전 대통령이 보였다.

기자들이 너스레를 떤다.

“대통령님이 부르시면 외국이라도 가야죠. 하하하.”

“그럼, 외국에서 부를 걸 그랬나요?”

“괌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요. 거기서 부르셨으면…….”

다들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들은 전 대통령을 상대로 편히 이야기한다.

그것이 안재열 전 대통령을 대하는 법이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엷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기자들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

기자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예의를 대신했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킨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안재열 전 대통령의 공식 행사는 정말 오랜만이다.

퇴임 후, 민국당은 물론 국가 행사에도 얼굴을 내민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기자회견을 한다고 연락했다.

예삿일은 아닐 거다.

그리고 안재열 전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늙으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했어요. 간단히 끝내고 식사나 하죠. 그래, 내가 여러분을 왜 불렀냐 하면…….”

하지만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입술만 움찔거린다.

‘탈당’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잠시 입을 닫았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 다시 입을 연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탈당을 선언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다.

안재열 전 대통령에게 민국당은 고향이며 평생의 추억이 담긴 곳이다.

가차 없이 외면하기는 어렵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탕, 탕, 탕 두들기기 시작했다.

일정한 속도로 그 소리가 반복된다.

마음을 정리하는 거다.

기자들은 조용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안재열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테이블을 두들기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 뚝, 행동을 멈췄다.

그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하려고 해요. 민국당을 탈당하겠습니다.”

“……!”

“저는 비록 당을 떠나지만 앞으로 국민과 함께하고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정당이 되기를 바랍니다.”

충격 발언.

기자들은 멍했다.

귀로 듣고도 꿈인가 싶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기자 한 명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대, 대통령님!”

하지만 안재열 전 대통령이 손을 저었다.

“질문은 받지 않을 거예요. 정치 같은 딱딱한 이야기는 끝내고 식사나 합시다.”

“한 말씀만…….”

이번에도 기자의 말을 끊었다.

“내가 어부인 것은 알죠? 직접 잡은 것도 준비했으니까…….”

“대통령님!”

“질문 안 받는다니까요.”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어허…….”

대선이 몇 달 남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민국당이 5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벌써부터 김칫국을 원샷 한 민국당 의원도 있다.

고위 공무원을 만나 인사권 공수표를 남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안재열 전 대통령이 민국당에 똥을 뿌렸다.

그것도 제대로…….

기자들의 눈빛은 다급하다.

탈당의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듣지 않고 물러서는 것은 기자가 아니다.

“혹시, 당적을 옮기거나 창당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탈당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민국당과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도제성 의원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까?”

기자들은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애를 썼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한숨을 낮게 내뱉는다.

“창당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당적을 옮기신다는 겁니까!”

“그만, 식사나 하죠.”

“대통령님!”

“회가 맛있을 거예요. 자연산이거든요.”

“대통령님! 제발!”

안재열 전 대통령은 몸을 돌렸다.

단상을 떠나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 뒷모습을 향해 기자들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기자들의 시선에 보이지 않는 연회장 2층의 구석, 그곳에 성윤이 서 있었다.

떠나는 안재열 전 대통령을 향해 허리를 천천히 굽힌다.

누구도 보지 않지만 예의를 갖추는 거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시 허리를 세운 성윤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발신 번호에 정우의 이름이 떠 있다.

“어, 정우야. 찾았어? 한 시간쯤 걸릴 거야.”

***

잠시 후, 안양 시청 앞 커피숍.

정우가 몸을 일으켰다.

“오셨다네요. 가죠.”

앞에는 턱수염이 삐죽삐죽 나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름은 권수명이다.

그가 한숨을 푹 내쉰다.

“그래요. 가죠.”

권수명이 정우의 뒤를 따랐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민국당 박동진 의원에게 돈을 받고 이번 지방선거에 나갔던 사람이다.

물론 당선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목표는 진보당 후보를 떨어뜨리는 게 전부였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권수명은 입을 꽉 깨문다.

박동진 의원과 단둘만 알고 있던 비밀이다.

보좌관도 모르고 비서관도 모른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성윤이 알고 있다.

‘어쩌지? 어쩌지?’

권수명은 긴장되는지 식은땀으로 젖어 있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그러다가…….

‘그래, 오리발을 내밀면 될 거야. 증거 있어? 씨발, 나이도 어린 새끼가 국회의원이라고 사람을 오라 가라 하고 있어!’

그렇게 정우와 권수명은 옆 건물에 있는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자 성윤이 보였다.

성윤이 가볍게 손을 들며 정우를 향한다.

“갈비가 맛있다고 해서 시켰는데, 괜찮지?”

“좋죠.”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윤과 마주 앉는다.

권수명도 의자를 빼서 정우의 옆에 앉았다.

국회의원의 앞이라 긴장은 되지만 최대한 눈을 부릅떴다.

어린놈을 상대로 기 싸움에서 밀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성윤은 그런 눈빛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앞에 젓가락을 두며 입을 열었다.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증거 있습니다. 두 분이 만났던 일식집 복도, 엘리베이터 CCTV 영상을 확보했어요.”

CCTV 영상만으로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르니까.

권수명이 마른 입술을 혀로 핥는다.

“박동진 의원님은 가끔 뵙는 사이입니다.”

“아, 그래요?”

“네.”

“정말 친한가 봐요? 돈도 주고받고.”

“네?”

성윤이 휴대폰을 꺼내 권수명의 앞에 내려 뒀다.

기사 제목이 보인다.

“요즘 시끄러운 AHF의 대표, 들어 봤죠? 유아 교육 콘텐츠를 만든다는 사람이 직원 폭행에 갑질을 일삼았다는 거요.”

권수명은 성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이게 왜……?”

“권수명 씨 계좌에 들어간 돈, 이 대표가 가진 차명 계좌를 통해 입금된 거예요. 물론, 그 돈의 진짜 주인은 박동진 의원이고요.”

“……!”

“제가 이만큼 안다는 것은 검찰에서 어디까지 쑤시고 들어갔다는 뜻일까요? 이제 그만 솔직해지죠.”

권수명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우왕좌왕이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되도 않는 법률 용어가 떠올랐다.

‘묵비권?’

그 생각과 동시에 권수명이 입을 꽉 닫고 눈을 감는다.

그 표정이 ‘너는 짖어라 나는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성윤의 눈에 불이 확 치솟는다.

“권수명 씨!”

안재열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했다.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는 모두 안재열 전 대통령이 차지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관심이 쏠린 상태다.

최대한 빠르게 ‘박동진’을 제물로 삼아 안재열 전 대통령의 탈당에 명분을 실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선을 앞두고 엿을 먹였다며 오히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권수명 씨, 입 닫고 있다가는 모두 뒤집어쓸 거예요. 갖은 욕을 다 처먹으며 교도소에 가겠죠. 그럼, 밖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제 초등학교를 들어간 딸이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겠습니까?”

권수명의 얼굴이 움찔거린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성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듣겠습니까?”

권수명이 실눈을 뜬다.

“……살 수 있는 방법요?”

***

안재열 전 대통령 탈당

오늘 오후, 안재열 전 대통령이 민국당 탈당을 선언했다.

탈당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국민이 기댈 정당이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최근 오항로 전 의원 등 민국당의 비리에 실망한 것으로 여겨진다……(후략)…….

-헐, 이러다 대한당 서용우나 신당 박무혁이 대통령 되는 거 아니냐?

-생각 좀 해라. 안통 지지자들이 대한당이나 신당 뽑겠냐?

-민국당이 뻘짓만 안 하면 도제성이 승리함. 저쪽은 대한당과 신당으로 표가 갈려서 어려움.

-너희 지금 행복 회로 돌리고 있는데, 안통 지지자들은 정당 안 따져. 안통이 가면 거기가 지지 정당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인터뷰 보면 창당 생각 없다고 했지 당적 옮기는 것엔 대답 안 했음.

-당적은 옮길 수 있다는 거?

-응.

-안통이 당적을 옮기면 민국당 지지율 썰물 된다.

-대한당과 좋아할 기사.

-ㅆㅂ, 이거 위기네?

이 댓글을 시작으로 악의적인 글이 주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재열…… 왜 이 시점에 똥을 싸는 거냐?

-와, 그동안 좋게 봤는데…….

-지금은 좀 큰 걸 봐야 하지 않냐?

-그러니까, 자기만 도덕적이야? 안통도 까 보면 먼지 날 텐데…….

-이러다 또 정권 뺏기면? 돈 많은 놈들의 세상 되는 거냐? 없는 놈들은 계속 죽고?

-하…… 안재열, 이번 선택은 좀…….

끼이이이익!

민국당 당사, 검은 차량이 몰려들었다.

거칠게 문이 열리더니 민국당 국회의원들이 다급히 내린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썩어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안 대통령님이 탈당한다고? 사실이야?”

“그럼, 거짓이겠어? 씨발, 기자회견까지 했잖아!”

의원들은 물론 당직자의 표정도 모두 굳어 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진위를 알아보느라 난리다.

그리고 회의실.

민국당 최고위가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성윤이 타깃으로 잡은 박동진 의원도 보인다.

박동진 의원이 애꿎은 당직자에게 짜증을 낸다.

“전화해 봐!”

“안 받습니다.”

“안 대통령 말고 비서 실장은?”

당직자가 전화기를 귀에 댄다.

마찬가지다.

-전화를 받지 않아…….

당직자가 고개를 저었다.

“안 받습니다.”

“씨발!”

박동진 의원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회의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최고위원들의 시선이 모두 문으로 향한다.

도제성 의원과 그 계파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있다.

“대통령님께서 왜 이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알고 계십니까?”

도제성 의원이 상석에 앉으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당황스러운 것은 최고 위원들도 마찬가지니까.

며칠 전에는 안부 전화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비서실장조차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모르겠어요. 연락을 안 받으세요. 방금 몇 명 의원들이 자택을 찾았는데, 안 계시는 모양이에요.”

그 말에 모두 한숨을 크게 내쉰다.

비참한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의원도 보였다.

“씨발, 정통성이 흔들리는데, 어쩌지?”

“그러니까, 네티즌이 우리 편을 들어 준다고 해도 대통령님 지지자들이 우리 핵심 중 하나인데…….”

“빨리 찾아서 마음을 돌려야 하지 않아?”

“어디 계신 줄 알고?”

수군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도제성 의원이 깍지를 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탈당 이유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런 거물이 다시 말을 바꿀 리도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지지율은?”

당직자가 옆에 섰다.

“연구소에서는 의원님과 당의 지지율이 각각 최대 4%, 7%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도제성 의원은 눈을 감았다.

“4%와 7%…….”

대선 후보가 된 후 위기가 없던 적이 없지만 이번은 진짜 큰일이다.

아직 다른 후보, 다른 당보다 지지율이 높지만 한 번 흔들리면 어디까지 떨어질지 알 수 없다.

박동진 의원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번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크게요?”

“최고위 모두 카메라 앞에 서서 무릎 꿇고 절하는 겁니다. ‘안재열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돌아와 주세요.’라고요. 연기했던 인간들 몇 불러서 눈물을 흘리면 더 좋겠네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사람들은 다윗의 승리를 즐거워한다.

“안재열 대통령님이 강자, 우리가 약자가 되는 겁니다. 그럼, 여론은 우리 손을 들어 줄 겁니다.”

다른 의원이 벌떡 일어섰다.

“그거 좋네요. 안재열 대통령님이 우리를 버린 겁니다. 이유는…… 청탁을 안 들어 줬다고 하죠.”

박동진 의원이 짝, 손뼉을 쳤다.

그리고 도제성 의원을 본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제성 의원은 한숨을 내뱉었다.

“저는 정치 음모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박동진 의원이 인상을 팍 구겼다.

“도 의원님! 상대가 총을 들고 설치는데 우리는 비무장으로 손만 흔들 겁니까? 똑같이 해야죠!”

도대체 안재열 전 대통령이 어떤 총을 들고 설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최고위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 끄덕.

박동진 의원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박동진 의원이 입을 연다.

“대통령이 편한 자리인 줄 알았습니까? 올라가기 전에 똥도 만지고 오물도……!”

그때, 문이 다급히 열리며 도제성 의원의 보좌관이 들어왔다.

예의 없는 행동.

하지만 그의 표정이 무척 다급하다.

모두 보좌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가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켰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긴박하게 흘러나온다.

-민국당 박동진 의원이 진보당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가짜 후보를 내세웠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박동진 후보가 눈동자를 좌우로 굴린다.

아직 현실 파악이 되지 않은 거다.

그러다가…….

핏줄이 죽죽 그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아니야, 난 아니야.”

현실 부정의 목소리가 입에서 중얼중얼 나온다.

동시에 따르르릉, 회의실에 놓인 전화기가 울렸다.

모두의 불안한 시선이 전화기로 향했다.

< 저변 확대.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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