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96화 (196/300)

< 저변확대. - (1) >

***

서안시 사무실.

서류 넘기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성윤의 책상은 민원과 법안 그리고 각종 전문서적으로 가득하다.

전문서적……. 국회의원들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한다.

어떤 의원은 새벽 6시 30분에 시작되는 첫 일정을 영어 공부로 잡는 경우도 있다.

성윤의 책상에는 의학과 의료법에 관한 서적이 가득했다.

정혜성의 문제도 있고 이번에 희귀병에 관한 법안을 발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고 정우가 들어왔다.

“법안이요. 국회 사무실에 넘기고 왔어요. 김현석 보좌관이 우리 당 의원님들 위주로 도장 받을 거예요.”

성윤이 서류를 덮고 고개를 들었다.

“명단 결정되면 감사 인사로 모바일 상품권 보내라고 해.”

“옙.”

법안을 준비하려면 열 명 이상 국회의원의 도장이 필요하다.

법안을 샅샅이 확인한 후 도장을 찍어 주는 의원도 있지만 품앗이로 찍어 주는 경우도 많다.

품앗이는 ‘지난번에 네가 찍어 줬으니까 이번엔 내가 찍어 줄 게.’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당 정책실에 문의해서 미비한 부분 채우고.”

“옙!”

정우가 수첩을 꺼내 성윤의 지시 사항을 슥슥 적어 나간다.

성윤은 책상 달력으로 시선을 옮겼다.

‘벌써 여름.’

여름은 짧다.

이 계절이 지나면 성큼 대선이 다가온다.

‘그 전에 신당의 존재감을 알려야 하는데…….’

다행이 굵직한 이벤트가 존재한다.

바로 국정감사.

‘이 법안을 통과 시키고 국정감사로 이어지면…….’

희귀병에 대한 법안, 국정감사에서의 존재감이 이어지면 정치의 중심에 신당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 뒤는 곧바로 대선이다.

‘문제는.’

성윤이 알고 있는 것은 상대도 알고 있다.

상대 역시 정치 바닥에서 굴러 먹은 이무기다.

그들은 멍청하지 않다.

성윤과 같은 생각을 하며 어떻게든 정치의 중심에 서기 위해 애를 쓸 거다.

대선은 민심을 잡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으니까.

성윤이 툭툭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다른 당은 자극적인 이벤트를 준비할 가능성이 높아.’

지금까지의 국정감사를 떠올리면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의원들이 많았다.

한복, 맷돌 같은 소품은 물론 구렁이, 낙지, 뱅갈 고양이 같은 동물까지…….

예상하는데 이번에는 더 심할 거다.

튀고 주목을 받아야 다른 당의 존재감을 없앨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성윤의 생각은 달랐다.

모두가 또라이 짓을 하면 평범한 게 튀는 법이다.

제대로 된 국정감사가 오히려 주목을 받을 거다.

성윤이 턱을 매만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성윤의 상임위는 국방위다.

수십조 원의 국방 예산과 60만 대군을 좌지우지 하는 곳.

겉으로 보면 엄청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비주류, 의원들이 기피하는 상임위 중 하나다.

기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지역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다음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역구에 도로 하나 깔지 못하면…….

“우리 지역 국회의원은 힘이 없어. 다음에는 힘 있는 사람 뽑아야 해.”

이런 말을 들으며 지지율이 쭉쭉 빠져 나간다.

그런데, 국방위는 도시 개발과 관계가 없으니 의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후원금의 문제도 있다.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상임위에 들어가면 대관 담당들이 돈 다발을 들고 찾아온다.

하지만 국방위는 그런 것 없다.

남들 후원금 받는 걸 보며 손가락이나 빨아야 한다.

또 하나의 이유로 국정감사가 있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의원들은 호통을 치고 싶어한다.

각 지방의 시장, 고위 공무원, 기업인을 증인으로 불러 놓고 윽박을 질러야 주목을 받기 때문이다.

그게 존재감을 드러낼 방법이며 전국구로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국방위는 다르다.

군인을 증인으로 앉혀야 한다.

그것도 장군…….

그들을 상대로 화를 내고 손가락질하면 오히려 욕 처먹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 새끼가 장군을 앞에 두고 삿대질을 하네? 국회의원부터 군인을 무시하니까 우리나라 군대가 이 지랄이지!”

“야, 저 새끼 군대 갔다 왔냐? 씨발, 뭘 안다고 수십 년 군 생활 한 장군 앞에서 주름을 잡아?”

완벽한 팩트로 무장하지 않으면 별 볼일 없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팩트만 손에 쥐면 세상의 모든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국방은 정말 민감한 곳이니까.

‘양날의 검이네…….’

생각을 마친 성윤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정우야.”

“네.”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자.”

“어떤 거요?”

“국감.”

정우의 시선이 달력으로 향했다.

“어떤 식으로 준비할까요?”

“생계형 방산 비리. 또는 말도 안 되는 돈 낭비.”

병사들은 6.25때 쓰던 수통을 지금도 사용한다.

교도소의 죄수보다 못한 밥을 먹는다.

그런데, 300억이란 예산을 쓰며 장군들을 위한 골프장을 건설한다.

“국방부,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여기 중점적으로 확인해 보고. 장군들 운전병, 연대장, 대대장 당번병 알아봐.”

“……잘못하면 국방부와 척 지겠는데요?”

“상관없으니까 시작해.”

“옙.”

정우가 다시 수첩을 펼친 후 지시 사항을 적던 중 ‘지이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정우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댄다.

“아, 넵. 고생하셨습니다. 명단 보내주세요. 상품권이라도 보내게요.”

통화를 종료한 후 성윤을 본다.

“김현석 보좌관이요. 도장 다 받았대요.”

김현석 보좌관이 다른 의원들에게 희귀병 법안의 도장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정우가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말한다.

“그런데, 상임위에서 통과될까요?”

각 당은 대선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떻게든 정권을 쥐어야 앞으로 5년을 내 세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신당이 좋은 법안으로 국민에게 칭찬 받는 꼴은 보지 못 할 거다.

“통과 시켜야지.”

“숫자가 모자라잖아요?”

스물 두 명의 복지위, 민국당이 열한 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진보당이 두 명이다.

양 당이 손을 잡고 낄낄 거리면 신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정우가 휴대폰을 들고 복지위 의원들의 이름을 살핀다.

“민국당에서 세 명을 섭외하면 좋겠는데……. 넘어올 사람이 안 보여요.”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민국당에서는 한 명, 진보당에서 두 명, 섭외할 거야.”

정우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진보당이 우리 손을 잡을까요?”

진보당과 대한당의 사이는 좋지 않다.

국회에서 쌍욕이 들려오면 진보당과 대한당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만나기면 으르렁대는 개와 원숭이.

그런데, 신당의 별명이 대한당 2중대다.

진보당이 호락호락 신당의 손을 들어 줄 리 없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대표가 박유경 의원이지?”

“아, 네.”

“연락해. 한번 보자고.”

“거절당할 것 같은데요.”

“탈출구를 준비해 준다고 말해. 그럼, 좋아할 거야.”

“탈출구요?”

지난 지방 선거, 진보당은 기대가 컸다.

대한당이 무너졌고 민국당 민유헌 대표가 삐끗하며 그 파급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지지율이 두 자리 수를 돌파하는 등 이번 선거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박유경 대표는 그 시점을 기회로 생각했다.

평소보다 더 많은 후보를 선거판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막상 선거 날이 되자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이 그들을 찍지 않았다.

‘될 놈 될’이라는 생각 속에 다른 당 후보를 찍었다.

말 그대로 진보당은 박살났다.

얻은 것은 시 의원 스물아홉 명이 전부.

광역단체장은 물론 지역단체장, 그 어디에도 진보당의 이름은 없었다.

그리고 지방 선거의 후유증이 터지고 있다.

바로 돈 문제다.

선거비용 보전 제도가 존재하지만 일정 득표를 넘어야 받을 수 있다.

진보당 후보의 대부분은 그 비율을 넘지 못 했고 은행에서 대출 받은 사람은 억 단위의 빚을 지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박유경 대표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당선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몰라. 다 떨어졌잖아?”

“쌩돈만 날린 거야!”

박유경 대표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정우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설마 그 돈을 갚아 주려고요?”

“미쳤어?”

“그럼요?”

“탈출구를 준다고 했잖아. 욕받이 한 명을 만들어 줄 생각이야.”

성윤의 시선이 다시 달력으로 향했다.

‘이 시기쯤…….’

꿈속을 기억하면 이 시기에 대형 사건이 터졌다.

국회의원이 딸 명의로 파나마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뒷돈을 받아먹었던 사건.

연이어서 그 국회의원의 더러운 짓이 함께 밝혀졌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진보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니까 두려웠던 거야.’

그 의원은 진보당이 커지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신당이 커지며 대한당이 찌그러지는 걸 눈으로 봤으니까.

진보당이 크면 같은 꼴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지역구에 진보당의 표를 갉아 먹을 후보를 내세웠다.

그 후보는 같은 공약을 썼고 비슷한 행동을 하며 진보당으로 표가 가는 것을 막아 버렸다.

‘그 사람이…….’

***

“처음 뵙겠습니다.”

며칠 후, 성윤은 레스토랑에서 진보당 박유경 대표를 만나고 있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눈 후 마주 앉았다.

그녀가 앞에 놓인 접시를 치우며 입을 연다.

“제가 밥을 먹고 와서…….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하는데요.”

성윤을 보는 눈빛이 벌레를 보는 것 같다.

성윤은 진보당과 견원지간인 대한당 출신이며 신당의 의원이니까.

“대표님을 돕고 싶습니다.”

“이유는? 당신들이 대가 없이 남을 도울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속마음도 마찬가지, 성윤을 향해 계속해서 욕을 쏟아내는 중이다.

하지만 성윤은 상관하지 않는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도움 받을 일이 있으니까요.”

“도움?”

“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복지위에 들어갈 건데, 진보당 의원님이 두 분 계시더라고요.”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신당의 손을 들어 달라?”

“네.”

성윤이 서류를 꺼내 그녀의 앞에 내려 뒀다.

“희귀병 아동에 관한 겁니다.”

“미안한데요. 대한당이나 신당의 말이면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어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어요. 이런 법안? 지금 대선을 앞두고 이미지 메이킹하는 거잖아요? 거기에 동조해서 당신들이 청와대 가는 길을 도와 달라고요? 그럼, 그 다음은? 당신들의 꿍꿍이는…….”

호의적인 태도는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적대적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꿈속에서도 진보당과 직접적으로 부딪친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의 말이 ‘다다다’ 쏟아져 나온다.

이해는 한다.

그들은 이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계속 비난을 받을 생각은 없다.

성윤이 손을 저었다.

“믿지 마세요.”

“뭐요?”

“거래라고 생각하세요.”

그녀가 입을 꾹 닫는다.

이렇게까지 적대적인데 여기까지 나온 이유는 하나.

그녀에게 탈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표님이 원하는 것을 얻고 제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 물물교환이죠. 큰 의미는 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실력 한번 보죠. 지금 제가 처한 상황,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요?”

“한 국회의원이 진보당의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도록 뒷 공작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뒷 공작?”

상당히 좋지 않은 어감이다.

“우선 사람을 풀어 술자리나 식사 자리에서 선동을 했죠. 진보당 후보가 당선되면 끝이다. 진보당의 시장이 있는 곳에 누가 투자를 하겠냐? 기업은 이 지역을 외면할 거다. 전철 사업도 무산될 거다. 집값을 떨어뜨릴 거다. 그런 생각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흔히 듣는 이야기다.

그런데…….

“진보당의 표를 빼앗을 후보를 만들어 세웠어요.”

“그게 무슨…….”

성윤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박유경 대표의 눈에 분노가 치솟는다.

그녀가 주먹을 꽉 쥔다.

파르르 떨리는 주먹을 보며 성윤이 말을 이어갔다.

“그 의원님은 돈이 많아요. 선거 쯤이야 푼 돈이죠. 파나마에 유령 회사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돈을 받아먹고 있으니까요.”

“누구죠?”

그녀의 속마음을 들어 보면 분노가 가득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 진보당의 분노를 그 의원에게 돌릴 수 있으니까.

성윤이 슬며시 웃었다.

“알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꽁꽁 숨겨 둔 페이퍼 컴퍼니를 찾을 수 있나요? 아니면 그 후보를 찾아가 진보당을 떨어뜨리기 위해 고용됐었다는 증언을 받아낼 수 있나요? 대표님은 못 하실 겁니다.”

성윤은 단언했다.

대한당과 민국당, 신당과 진보당. 각자 잘 하는 것이 있고 못 하는 것이 있다.

“증거를 찾으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검찰이 움직여야 하고요. 하실 수 있겠습니까?”

박유경 대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도움을 받죠.”

“좋은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세요.”

“단지 법안을 통과 시켜 주는 것만으로 도와준다는 건가요?”

목소리가 많이 나긋나긋해졌다.

그녀가 생각해도 저울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다.

“대선을 앞두고 인기를 끌 법안……. 중요하죠. 하지만 대한당이나 신당이 많은 상임위에서 해도 되잖아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보당에는 대표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네?”

< 저변확대.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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