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만남. - (2) >
성윤과 이준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가식이 뚝뚝 떨어진다.
우애 좋은 형제로 착각할 정도다.
이준대가 입을 연다.
“대단할 것 없습니다. 김종혁 의원님이 과하게 칭찬하신 겁니다.”
이준대는 부드럽게 웃으며 술잔을 입에 댔다.
겸손함과 예의, 그리고 소탈함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성윤은 이 모든 게 계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면 볼수록 소름 끼쳐.’
꼭 바퀴벌레 같았다.
성윤은 이준대의 속마음을 들어 봤다.
아쉽게도 아직은 별것 없다.
그저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신기해할 뿐이다.
벨트를 풀고 고기를 처먹는 모습.
여자 이야기를 하며 낄낄대는 모습.
그런데 그 순간, 이준대의 싸늘한 속마음이 성윤의 귓가를 쑤시고 들어왔다.
-다 죽어야 해.
싸늘하다 못해 어둡고 음침한 목소리.
하지만 이준대의 속마음과 표정은 다르다.
그의 입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다.
‘역시…….’
꿍꿍이가 있다.
성윤은 가벼운 대화를 시작으로 상대의 속마음을 더 확인하기로 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속마음은 적나라하게 들려오니까.
“한국에는 언제 들어오신 거예요?”
“입국은 며칠 전에 했는데, 시차 적응이 어렵네요.”
“그럼, 정치 활동은 아직 계획에 없나요?”
“정치 활동요?”
“네, 계획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때, 이준대가 눈동자만 움직여 성윤을 향한다.
마치 관찰하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 계획이 왜 궁금한 거지?
공간을 얼려 버릴 것 같은 속마음과 눈빛.
하지만 잠시다.
그 눈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후 엷은 미소가 흘렀다.
“정치 활동, 그런 거창한 계획은 없습니다. 그저 신당에 합류했으니까 시키는 일이라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대화는 여기서 끝내야 했다.
여기저기서 불러 댄다.
“이성윤 의원!”
“이준대 대표!”
성윤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이준대를 향했다.
“궁금하신 점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나중에 긴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네요.”
이준대가 살짝 웃는다.
보조개까지 보인다.
“이성윤 의원님께 배우고 싶은 게 많았는데, 아쉽네요. 나중에 시간 봐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가벼운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성윤의 귓가에 이준대의 속마음이 짧게 들려온다.
-정말 보고 싶었다. 만나 보니까 제법이네.
마치 가지고 놀았다는 것 같은 말투…….
성윤은 빙긋이 웃었다.
‘어, 나도. 정말 보고 싶었어.’
겉과 속이 다른 쓰레기.
완벽한 이미지 정치로 국민을 속인 악귀.
미래의 대통령이자 역사상 최강, 최악의 독재자.
놈의 지시에 죽어 나간 사람이 한 트럭이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 정말 보고 싶었다.
‘너 같은 새끼를 박살 내는 게 애국이지.’
성윤은 자신을 부르는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부르셨어요?”
서울 시장 정덕진이었다.
그가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친다.
“앉으세요. 이 의원님께 술 한잔 따라 드리고 싶었는데 워낙 바쁘셔서요.”
성윤이 옆에 앉았다.
정덕진 시장이 성윤의 잔을 채우더니 꾸벅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네?”
“우리 딸…… 아시잖아요?”
정덕진 시장의 딸 정혜성은 암이 있다.
하지만 시술로 해결할 수 있을 극초기다.
성윤이 건강검진을 밀어붙인 덕에 일찍 발견되었다.
“감사합니다. 수술이 끝나면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계속해서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정말로요.”
성윤은 술잔을 입에 댔다.
그 모습을 정덕진 시장이 물끄러미 보고 있다.
성윤이 그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
“왜 그렇게…….”
“아뇨, 보통은 ‘수술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쾌차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지 않나요?”
“네?”
“계속해서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앞으로 또…….”
정덕진 시장은 성윤의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논리적이지 않지만 성윤은 정혜성의 병을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성윤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마셔서 말실수를 했네요. 수술이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술잔을 입에 대며 슬쩍 이준대를 살폈다.
이준대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있다.
주로 술에 취한 의원들에게 훈수를 듣는 중이다.
정치가 어쩌고 대선이 어쩌고…….
똑같은 말의 반복이었지만 이준대는 단 한 번도 인상을 구기지 않았다.
처음과 똑같이 항상 미소를 그리며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
당연히 꼰대 같은 의원들은 그런 이준대의 태도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준대의 등을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 이준대 대표! 사람이 정말 괜찮아!”
“감사합니다.”
그러다 이준대와 성윤의 눈이 딱 마주쳤다.
이준대가 조용히 웃으며 눈인사를 한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착한 놈이다.
그리고 성윤도 똑같이 웃어 줬다.
‘많이 웃어라.’
회식 자리가 끝난 것은 밤 12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성윤과 정우는 차에 올랐다.
기다리고 있던 장한수 실장이 시동을 걸었다.
성윤이 정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오항로를 감시했던 사람들 있지?”
“아, 네.”
오항로 의원이 극단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여주에 몸을 숨겼을 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흥신소가 있었다.
“일 하나 더 부탁해도 될까?”
“어떤 거요?”
성윤이 시선을 틀었다.
창밖으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이준대가 보인다.
모습을 숨긴 채 굽실대는 마귀…….
성윤이 턱짓했다.
“저 사람.”
***
그날 밤, 성종 호텔 VIP 룸.
이준대가 들어와 재킷을 벗는다.
그러자 금발 미녀인 레이첼이 다가와 재킷을 받아 든다.
“어땠어요?”
이준대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시차 적응이 끝나기 전에 술까지 마셔서 그런지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조용히 웃는다.
“정치인이라는 인간들이 입에 올리는 화두가 뭔 줄 알아?”
레이첼이 재킷을 정리하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이준대가 소파에 앉은 채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며 말한다.
“딱 세 가지였어. 대선과 총선 그리고 정의. 그들의 대화에 국민은 없었어. 오로지 권력만 있었지.”
와이셔츠를 벗자 이준대의 잔근육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레이첼이 이준대가 벗어 둔 와이셔츠를 옷걸이에 걸며 묻는다.
“다 별로였어요?”
“아니,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한 명은 괜찮아 보였어.”
“누구요?”
“이성윤, 끝까지 나를 관찰하고 살폈어. 내가 웃어도 믿지 않았지. 난 그런 놈이 마음에 들어.”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이성윤이라는 이름은 가끔 들어 왔다.
사사건건 이준대의 일을 방해하던 인물로…….
그리고 이준대는 적과 아군을 나누지 않는다.
명분이 아니라 철저한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적이었어도 내일은 이득이 된다면 언제든 활짝 웃으며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준대가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레이첼이 그의 걸음에 맞춰 실내의 불을 껐다.
그러자 서울 시내가 창밖으로 훤히 보였다.
이준대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연다.
“정의란 게 존재할까?”
“그런 섹시한 단어는 동화에서나 존재하죠.”
“난 존재한다고 생각해. 다만 섹시한 단어가 아니라 정적을 제거하는 명분이지. 상대적인 것이고. 정의는 승자의 것이니까.”
잠시 서울을 내려다보던 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창문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낀다.
“내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 이유가 뭔 줄 알아?”
이준대는 평소 이렇게 말이 많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술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이 실망스러워서인지 말이 많다.
레이첼은 조용히 이준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긋지긋한 가난. 부의 양극화, 던져지는 최저임금에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를 외쳤던 내 모습.”
“…….”
“계층 사다리가 무너진 이 시스템에서 가난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어. 내 방에 굴러다니던 라면 봉지가 평생 내 눈앞에 보일 것 같아서 무서웠지.”
“…….”
이준대는 고개를 절래 저었다.
입에서 한숨이 흐른다.
“바뀐 게 없어.”
잠시 그렇게 팔짱을 낀 채 생각에 빠졌던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그곳엔 서울의 밤거리가 보인다.
“……이 나라, 싹 뒤집어 버리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레이첼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곳은 이준대의 조국이다.
그녀는 그의 선택을 따르는 게 전부다.
***
며칠 후, 성윤은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에 있었다.
박무혁 의원이 손에 들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 두며 묻는다.
“어땠어?”
이준대를 묻는 거다.
“다른 사람에게 듣지 않으셨어요?”
박무혁 의원이 손을 저었다.
“다른 사람 의견은 필요 없어. 난 이 의원의 평가가 제일 궁금해.”
그것 참, 기분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운 말이다.
“말해 봐.”
모든 것을 솔직히 까발릴 수는 없다.
이준대는 이제 한국에 왔다.
그의 가식적인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속았고 호감을 갖고 있다.
괜한 뒷말은 삼가야 한다.
“대화를 나눈 게 잠깐입니다. 그래서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 의원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조심해야겠네.”
이준대는 아직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았다.
공격은 잠시 미뤄 둬야 한다.
지금은 무너지지 않을 성벽을 만들 시간이다.
이준대는 방심을 틈타 뒤통수 치는 것을 즐겨한다.
땀과 노력을 배제한 채 철저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투자자이기도 하다.
지금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신당 의원들의 눈을 속이고 대한당, 민국당과 손을 잡고 있을지 모른다.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을 방어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대선이다.
박무혁 의원과 신당이 커지면 커질수록, 성윤의 이름값이 더 대단해질수록…… 이준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니까.
이준대는 자신의 무력함을 탓해야 할 거다.
성윤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박무혁 의원이 서류를 손에 든다.
“이거야?”
“네.”
대선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
그전에 신당의 존재감을 알려야 한다.
“대한당과 민국당은 역사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신념을 이념화시켰고요. 그래서 국민은 어떤 당이 자신의 이득을 보장해 줄 것인지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신당은 아니다.
국민은 신당을 잘 모른다.
목표가 무엇인지 색은 어떤지…….
신당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많은 표를 받았지만 그게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란 보장도 없다.
“우리 당은 대한당과 민국당 출신 의원이 모여 있어요.”
불가능한 동맹이라 손가락질받는다.
지금은 지방선거 결과에 취해 친한 척하지만 곧 계파 갈등이 극에 다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도 많다.
박무혁 의원이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그래서?”
“당이 튼튼하면 계파 갈등은 없습니다. 있어도 숨어 있죠.”
“그리고?”
“우리 당의 이념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념?”
“모든 국회의원이 가져야 할 목표죠. 사리사욕이 아니라 합리적 논의 끝에 국민의 이득을 생각하는 것.”
하나의 목표가 세워지면 힘을 합치는 것은 당연하다.
신당의 1번 목표는 대선.
하지만 그 바탕엔 국민의 이득이 깔릴 거다.
박무혁 의원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그래서 그 첫 번째가 희귀병에 대한 의료보험 확대?”
성윤이 벤처 사업가 신중석에게 투자하고 처음으로 이득을 남겼을 때다.
기부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 참 많이 돌아다녔다.
그때 병원에도 들른 적이 있다.
“희귀병을 앓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소득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많은 지원을 해 주죠.”
“그런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당시 간호사가 심장병을 예로 들었었다.
심장병은 희귀병에 포함되기 때문에 많은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심장이 비대해지며 눌린 장기들은 희귀병에 포함되지 않는다.
“내야 할 수술비는 몇백만 원.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수술을 해야 하죠. 그럼, 그 돈은 수백을 넘어 수천만 원이 됩니다. 대출을 받고 지인에게 빌리고, 그렇게 집안은 가난으로 빠져들죠.”
박무혁 의원이 다리를 외로 꼬았다.
계속 말해 보란 식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에서 희귀병에 걸린 아이가 울더라고요. 일곱 살짜린데, 자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힘들다면서요. 애들 눈에서 눈물 흐르게 하는 국가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박무혁 의원이 조용히 웃는다.
“우리의 이념, 국민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다……. 괜찮네. 추진하지.”
박무혁 의원이 인터폰을 눌렀다.
그러자 보좌관이 들어온다.
“복지위의 위원장과 간사 그리고 각 위원들의 자료를 가지고 와.”
곧 보좌관이 자료를 들고 왔다.
복지위는 스물두 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대한당이 여섯, 민국당이 열하나, 신당이 셋, 진보당이 둘이다.
자료를 훑어보던 박무혁 의원이 미간을 찌푸린다.
“어렵네.”
대한당과 신당의 사이가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상임위 싸움이 벌어지면 대한당은 신당의 편을 들어 줄 거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대한당과 신당이 손을 잡아도 아홉 명.
민국당은 열한 명이다.
그들이 반대하면 막혀 버린다.
물론,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하나다.
대선을 앞두고 신당이 튀는 게 싫은 거다.
박무혁 의원이 턱을 쓸어 만졌다.
“민국당 의원을 포섭하려면 누가 적임이지?”
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신당의 민국당 출신 의원들은 현재 민국당 의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댄다.
그때.
“제가 추진해 보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물끄러미 성윤을 본다.
“할 수 있겠어?”
“네.”
가능성을 논할 일이 아니다.
해야 하는 일이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무혁 의원이 슬쩍 웃는다.
“돈 필요하면 말해.”
“네.”
“사람이 필요해도 말하고.”
“네.”
“그리고 난 언론을 움직여 주지. 이 법안이 시작되면 자네는 영웅이 될 거야.”
성윤은 고개를 숙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름이 높아지는 것, 거절하지 않는다.
이준대는……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다.
< 첫 만남.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