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만남. - (1) >
***
김종혁 의원의 목소리는 참 소란스러웠다.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비워! 내가 괜찮은 사람을 소개할 거야. 미국에서 생활해서 한국이 낯선 사람이야. 그래서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환영회를 열 생각인데, 이 의원이 빠지면 안 되지!
“알겠습니다. 시간 비우겠습니다.”
-그럼, 그때 보자고.
김종혁 의원은 마지막까지 시끄러운 목소리로 난리를 피워 댔다.
“네, 그럼.”
성윤이 통화를 종료하며 앞을 바라봤다.
장한수 실장이 보인다.
“사진 몇 장 찍어 뒀습니다.”
장한수 실장에게 김종혁 의원의 뒤를 쫓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찍은 사진을 말하는 거다.
장한수 실장이 휴대폰을 꺼내 책상에 내려 뒀다.
성윤은 그 휴대폰을 손에 쥐고 화면을 넘겨 본다.
대부분 김종혁 의원의 사진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난 사진.
그렇게 한 장, 한 장.
그리고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나자 성윤의 손이 멎었다.
남자의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주름을 그려 넣으면…….
‘이준대…….’
성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올랐다.
몇 번을 생각해도 정말 반가운 얼굴이다.
장한수 실장이 입을 열었다.
“그 남자…… 항상 외국인 몇 명을 대동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이요?”
“넘겨 보시면 사진이 더 있습니다.”
성윤은 사진을 넘겼다.
몇 장이 스쳐 가자 한 여자가 보인다.
헐리웃 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다.
하지만 성윤에게는 그녀의 미모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이 여자, 어디서 봤는데?’
그녀의 얼굴이 기억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희미하다.
언제 어떻게 만났던 인연인지 모르겠다.
‘뭐지?’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존재한다.
꿈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꿨다 해도 마찬가지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인물과 사건은 희미할 뿐이다.
이 당시 성윤은 박대철의 밑에서 보좌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현실 정치보다는 손바닥을 비비며 생존에 목적을 뒀다.
오로지 박대철에게 잘 보이기 위해 꼬리만 흔들던 때다.
정치적 인간관계는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성윤은 기억하려 애를 썼다.
이준대에 관한 일은 가벼운 것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어떻게든 끄집어 내야 한다.
‘이준대와 스캔들이 있었나? 아니면?’
분명한 것은 이준대의 아내는 아니다.
그의 아내가 누구였는지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럼 스캔들 쪽?’
이런저런 생각들이 혼잡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일단 사진을 넘겼다.
이번엔 남자가 보인다.
여자와 반대로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이다.
성윤이 장한수 실장을 보며 물었다.
“누구죠? 러시아 요원처럼 느껴지는데요?”
“경호원입니다. 지근거리 경호원이 다섯 명, 원거리는 파악 못 했습니다. 하지만 세 명 이상 되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성윤은 몇 장의 사진을 더 확인했다.
꿈속에서 봤던 인물들이 계속 스친다.
그들의 업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준대를 도왔던 사람들이다.
그때 지이잉,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박무혁 의원이다.
“네, 의원님.”
느릿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흘렀다.
-김종혁 의원의 전화 받았지?
“네, 받았습니다. 의원님도 참석하실 겁니까?”
-난 번잡한 곳 안 좋아해. 확인 잘하고 얘기해 줘.
“알겠습니다.”
***
경기도 양평에 있는 대형 고깃집.
멋진 정원이 있는 곳으로 주차장도 거대하다.
수백 대도 주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에 계속해서 검은 승용차가 멈춰섰다.
내리는 사람은 모두 정치인,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이다.
“안녕하십니까!”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깡패처럼 허리를 굽히며 인사한다.
그럼, 정치인은 거만하게 손을 흔들며 가게로 들어갔다.
이곳은 김종혁 의원이 이준대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보인다.
“아이고, 장 의원님. 오랜만입니다.”
“잘 계셨죠?”
“하하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서울 시장, 경기 도지사 그리고 공대출 의원 등등등.
김종혁 의원의 계파는 당연하고 그 외의 사람도 들어오고 있다.
신당이 들어서고 처음 있는 대규모 회식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박무혁 의원의 성격 탓에 각개전투만 있었으니까.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그리고 김종혁 의원은 싱글벙글 웃는다.
정치인의 힘은 사람에서 나온다.
지지하는 사람이 몇 명이냐, 따르는 사람이 몇 명이냐, 함께하는 정치인이 몇 명이냐…….
그래서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이 바글거리면 힘을 얻는 법이다.
밖에서 의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기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종혁 의원이 이 정도였어? 집합시키니까 다 모이네?”
“박무혁 의원의 오른팔이잖아. 신당에서 이인자, 삼인자를 노리고 있는데, 이 정도는 모여야지.”
“야, 이 정도면 이인자가 아니라 일인자를 노린다고 해도 믿겠어.”
“쉿! 이성윤도 왔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다급히 움직였다.
렌즈에 성윤이 담긴다.
차에서 내린 성윤은 경호원들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힌다.
그리고 다른 의원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고깃집으로 향했다.
셔터를 누르던 한 기자가 입을 연다.
“대선이 끝나면 중심을 노리겠지?”
그동안 성윤은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권력의 주변을 배회하며 지역구 일에 집중한 것으로 느껴졌다.
다른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다음에 또 당선되면 3선이야. 이제 슬슬 존재감을 보여야지. 알잖아? 일만 잘해서는 주류가 될 수 없어.”
주류가 되려면 지역구를 넘어 전국구가 되어야 한다.
이름만 알려지는 게 아니라 가벼운 행동 하나까지 모든 사람의 주먹을 받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류를 넘어 권력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 평가받는 시간이 될 거다.
“그렇게 되려면 계파를 만들어야지. 그런데, 이성윤 의원이 계파를 만들 수 있나? 아직 어리잖아?”
기자들의 시선이 고깃집으로 향했다.
한 기자가 중얼댄다.
“어리다고? 내 생각엔 저 고깃집에 있는 모든 의원들이 이성윤 의원의 계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또 다른 기자가 픽 웃었다.
“야, 저 중에 절반만 손에 얻어도 당 하나를 만들 수 있겠다. 그런데, 전부? 아무리 이성윤이 대단해도 그건 아니지 않냐? 3선을 해도 30대 중반인데?”
“30대 중반?”
순간 다들 조용해졌다.
30대 중반인데 3선…….
“씨발, 괴물은 괴물이네.”
어쩌면 전무후무한 괴물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고깃집 내부는 광란의 도가니였다.
오랜만에 만난 의원들이 소주를 퍼부으며 위장을 소독하는 중이다.
“마셔!”
“거참, 우리가 대학생도 아니고 이렇게 건전하게 놀아서야 되겠습니까? 애들 좀 부를까요?”
얼굴이 붉게 변한 2 대 8 가르마 의원의 말에 다른 의원들이 눈을 반짝였다.
“누구?”
가르마 의원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입술을 핥는다.
“연습생도 있고 텐프로 애들도 있어요. 똑같이 입 무겁고 가격은 비슷하니까 말씀만 하세요. 흐흐흐.”
“여배우는 없어?”
“여배우 누구요? 의원님에게 뒤를 봐줄 능력이 있으면 부르고.”
“내가 그럴 능력이 어디 있어? 마누라 책임지기도 힘든데.”
“그럼, 여배우는 패스하고. 텐프로? 콜?”
의원들이 묘한 웃음을 짓는다.
“콜.”
그들의 작당을 막은 것은 김종혁 의원이다.
“그만.”
의원들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김종혁 의원은 서늘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자신이 주체한 모임이다.
일이라도 터지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이준대를 소개할 시간이다.
김종혁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목해 주십시오.”
얼굴이 붉어진 사람들이 김종혁 의원을 향했다.
성윤 역시 마찬가지다.
‘드디어 왔구나.’
성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차량 한 대가 들어서고 있는지 주차장으로 헤드라이트가 비춰진다.
김종혁 의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 여러분께 사람 한 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은 고아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접시를 닦고 세차장에서 일하며 공부에 대한 열망을 꿈꿨죠. 그래서 주경야독 끝에 하버드에 입학했습니다.”
개천에서 태어난 용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어려운 환경에서 이뤄 낸 성공은 매력적이니까.
그리고 정치인들은 거기에 또 다른 생각을 더 한다.
‘이런 콘텐츠면 선거에 나가서 당선될 수 있겠네?’
김종혁 의원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졸업 후 월가에 입성해서 승승장구를 한 끝에 지금은 직접 회사를 차렸습니다.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계속해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않았죠.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에게 기부한 금액만 지금껏 150억이 넘어갑니다.”
“…….”
“우리 신당의 미래와 함께할 이준대 대표를 소개하겠습니다.”
고깃집의 문으로 이준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구겨진 양복, 김종혁 의원의 칭찬이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멋쩍게 웃고 있다.
그가 김종혁 의원의 옆에 서서 살짝 허리를 굽혔다.
“이준대라고 합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똑같았다.
‘어?’
금융의 메카 월가에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고 하면 차갑고 지적인 인상일 줄 알았는데…….
‘소똥을 치울 것같이 생겼잖아?’
그만큼 수더분하고 인상이 좋아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가서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마셔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
“의원님과 다르네요.”
조용한 목소리에 성윤이 고개를 틀었다.
정우가 술잔을 손에 들고 있다.
“뭐가 달라?”
“의원님은 다가가기 힘든 얼굴이잖아요. 항상 화난 것 같고.”
“얼굴 평가해 줘서 고맙다.”
“하지만 친해지면 알죠. 껍데기는 페이크였다는 것을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이준대는 달라요.”
정우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한다.
“보고 있으면 찝찝하고 기분이 나빠요.”
성윤이 슬쩍 웃었다.
‘저놈이 너를 죽여.’
정우에게 남은 인생을 스포해 주고 싶었지만 꾹 참는다.
어차피 그 미래는 바뀔 테니까.
이준대가 적당한 자리에 앉자 술자리가 다시 시작됐다.
“이 의원! 여기!”
여기저기서 성윤의 이름을 불러댄다.
찾는 곳으로 이동해 자리에 앉으면 물컵에 소주가 가득 담긴다.
이번에는 벤처 의원이었다.
그러니까 벤처에 가야 할 자금을 빼돌려서 꿀꺽했던 사람.
그가 성윤의 앞에 소주가 찰랑이는 물컵을 두며 입술을 뒤틀었다.
“새끼…… 난 네가 싫었어.”
얼굴은 붉고 눈동자는 한 곳을 보지 않고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
딱 봐도 많이 취한 것 같다.
이럴 땐 일단 고개를 숙여야 한다.
“죄송합니다.”
“건방진 새끼. 지금은 좋아, 이 새끼야.”
“……칭찬이죠?”
“그럼 욕이냐?”
“새끼, 새끼 하셔서…….”
“뭐라고? 지금 나한테 새끼라고?”
“아뇨.”
“이 새끼가!”
벤처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공대출 의원이 두 사람 사이에 꼈다.
“이 사람, 적당히 마시라니까.”
벤처 의원이 눈을 치켜뜬다.
“공 의원님, 지금 이 새끼가 저한테 새끼, 새끼 했어요!”
“자네 취했어. 잘못 들었다는 생각 못 하나?”
“그건 그렇죠. 으핫핫핫!”
벤처 의원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며 크게 웃는다.
공대출 의원이 성윤을 향했다.
“이 친구가 요즘 기분이 좋아.”
성윤이 밀어붙인 법안과 예산이 꽤 많다.
그중에 다자녀 가정 혜택이 있다.
거기에 벤처 의원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 덕에 지역구의 지지도가 높아진 모양이다.
국회의원도 사람이다.
매일 욕만 먹는 중에 칭찬을 받으면 춤을 출 수밖에 없다.
벤처 의원이 푸푸, 한숨을 내뱉으며 성윤을 바라봤다.
“고마워.”
“아닙니다. 의원님이 도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저놈은 왜 자꾸 여길 보는 거지?”
벤처 의원의 말에 성윤과 공대출 의원의 시선이 틀어졌다.
그가 가리킨 곳에 이준대가 보인다.
성윤과 눈이 마주치자 눈이 안 보일 정도로 활짝 웃는다.
그리고 주섬주섬 젓가락과 숟가락 소주잔을 챙기더니 몸을 일으킨다.
그 모습도 참 서민적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준대는 성윤의 옆으로 올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맞았다.
살짝 웃더니 성윤을 향해 온다.
‘좋아.’
성윤도 기다리던 거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다가가지를 못했는데, 저쪽에서 친히 와 준다고 하면 오히려 이쪽이 감사하다.
그가 성윤의 옆에 앉았다.
“이성윤 의원님이시죠?”
참 겸손한 목소리.
“네, 이성윤입니다.”
“미국 한인 사회에서도 이성윤 의원님의 이름이 자주 거론됩니다. 멋진 분이라고요. 그리고 저도 의원님을 응원해 왔습니다.”
이준대가 활짝 웃으며 정말 예의 있는 행동으로 성윤의 잔을 채웠다.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준대라는 사람을 몰랐다면, 주고받는 소주 한잔과 수더분한 외모 그리고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행동에 마음을 줬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준대는 완벽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속았다면 뒤통수가 깨질 때까지 처맞았을 거다.
마지막에는 총까지 맞았겠지.
‘하지만 이번엔 내 차례야.’
성윤은 더 활짝 웃으며 이준대의 잔을 채웠다.
“감사합니다. 방금 김 의원님께 이준대 대표님의 약력을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 첫 만남.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