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92화 (192/300)

< 누구냐 하면... - (1) >

잠시 후, 성윤과 김종혁 의원은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공간은 넓지만 손님이 없는 곳, 그래서 대화를 나누기에 괜찮은 장소다.

“날씨가 더워졌어.”

대화는 날씨, 최근 정세 등 가벼운 주제로 시작됐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이런 시시콜콜한 대화는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본론이 시작되기 전에 예열 과정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커피가 식어 갈 무렵…….

김종혁 의원이 위엄 있는 척 물었다.

“그래, 박무혁 의원님께 무슨 일이 있나?”

“그게…….”

성윤이 잠시 뜸을 들인 후 답했다.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 추측성 첩보입니다. 한 언론사에서 우리를 공격할 거라는 첩보를 들었습니다.”

“언론이 우리를 공격한다고?”

김종혁 의원의 표정이 뒤집어진다.

성윤은 그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박무혁 의원님이나 우리 당의 주요 의원님이 타깃입니다. 악성 루머를 생산할 거라는데, 하……. 좋은 분위기에서 언론이 날린 엿을 먹으면…….”

김종혁 의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리를 왜? 이유가 없잖아!”

박무혁 의원은 평범한 정치인이 아니다.

대정 자동차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각 언론사의 광고를 끊어 버릴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갓 입사한 신입 기자에게도 매너 있는 행동을 하는 박무혁 의원인데, 언론이 공격을 한다니…….

“그렇게 잘해 줬는데, 감히 우리 당을 건드려?”

불만을 토해 내던 김종혁 의원은 급기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멍청한 언론사가 어디야!”

하지만 성윤의 목소리는 침착하게 이어졌다.

“의원님 같은 분이 아실 만한 업체가 아닙니다.”

“상관없으니까 말해, 내 이놈들을 당장!”

“아직은 첩보입니다. 확실하지 않아서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그리고 정체조차 이상한 삼류 지라시 업체입니다. 의원님이 나서시면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제 손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김종혁 의원은 대답하지 않고 성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놈 봐라?

김종혁 의원은 성윤의 얼굴이 참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성윤은 지금 언론사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어물쩡 넘기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감히 독식하려고 해?

혼자 사건을 해결하고 박무혁 의원에게 쪼르르 달려가 “내가 해결했어요!”라고 자랑하는 애새끼처럼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면 박무혁 의원의 신임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쥐구멍 찾는 법을 알고 싶다는 거지?

성윤의 힘이면 삼류 지라시 업체 정도는 손쉽게 모가지를 비틀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찾았을 때의 이야기다.

놈들이 어디 숨어 있는지 찾아내는 게 어렵다.

그놈들은 바퀴벌레처럼 꽁꽁 숨어 있다.

그리고 이어진 성윤의 목소리는 그의 예상과 어긋나지 않았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의원님께서 많은 정보원을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의도 증권가는 물론이고 유흥업소와 경찰 그리고…….”

김종혁 의원이 빙긋이 웃는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고 싶다는 건가?”

“……네, 사람 몇 명만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이 의원, 미안하지만 정보력은 밥그릇이야. 빌려 달라는 것은 안 될 말이야. 그냥 업체 이름을 말해. 그럼, 2~3일 내로 주소를 보내 줄 테니까.”

“그건…….”

“왜? 내가 정보만 얻고 자네 숟가락은 묻어 둘 사람으로 보여? 당원들을 모아 놓고 혼자서 사건을 해결했다고 자랑할 것 같아?”

성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종혁 의원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리기 시작했다.

-까불어 봤자 어린애야.

김종혁 의원은 미끼를 물었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이 성윤을 가지고 노는 중이라 생각한다.

“이 의원, 서로 믿어야 함께할 수 있는 거야.”

김종혁 의원의 다정한 목소리에 성윤이 깊은 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믿고 말해.”

성윤이 눈동자만 들어 김종혁 의원을 바라봤다.

‘방금…….’

성윤은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김종혁 의원과 함께 탔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김종혁 의원이 속으로 이런 말을 지껄였었다.

-이준대 이놈은 베이한으로 뭘 한다는 거야?

성윤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분명히 이준대라고 그랬어.’

성윤은 그 이름 하나를 듣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다.

이제 진실을 들을 시간이다.

“그 언론사의 이름은…… 베이한입니다.”

“어?”

김종혁 의원이 멈칫한다.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본과 중국의 지분으로 만들어진 회사라고 하는데…… 그쪽에서 우리 당을 공격하려 한다고 합니다.”

“베이한이?”

성윤이 천연덕스러운 눈빛으로 김종혁 의원을 향했다.

“네, 그런데…… 베이한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뭐?”

김종혁 의원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성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 쑤시고 들어갔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아직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다행이네요. 의원님께서 알고 계시면 더 빨리 찾을 수 있으니까요.”

성윤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고 김종혁 의원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몰랐어.”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김종혁 의원의 얼굴에는 찜찜함이 가득하다.

켕기는 게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의 속마음이 성윤의 귓가에 들어왔다.

-이준대 이놈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베이한이 우리 당을 공격한다니!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들으며 꿈속에서 봤던 미래를 떠올렸다.

‘이준대는 다음 총선에 데뷔했어.’

그럼, 이 시기쯤부터 한국 정치판을 빙빙 맴돌았다는 거다.

친분을 쌓고 공천을 받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꿈속에는 대한당이었는데, 현실에서는 신당인가?’

꿈속의 미래와 현실은 심하게 뒤틀렸다.

이준대가 민국당에서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김종혁 의원을 통해 신당을 흔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베이한……. 이준대와 어떤 관계지?’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이준대의 성격…….

그는 논리적인 투자가였다.

하지만 성공이 불확실한 영화, 방송, 언론 등의 콘텐츠에 돈을 쑤셔 박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베이한에도 투자했나?’

베이한은 일본과 중국의 합작 언론사라고 들었다.

하지만 이준대도 지분 몇 퍼센트를 갖고 있을 확률이 있다.

‘한번 찔러봐?’

어차피 말을 내뱉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애초에 이 대화의 시작은 ‘추측성 첩보’였으니까.

성윤이 입을 열었다.

“베이한이라는 곳에 일본과 중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투자를 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지분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툭 던진 미끼.

김종혁 의원은 냉큼 물었다.

눈동자에 부릅 힘이 들어간다.

“……우리나라 사람도?”

“네.”

김종혁 의원이 커피 잔을 손에 쥐고 바짝 마른 입안을 적셨다.

-이성윤 이 새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아니, 그건 그렇고 이준대 이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나를 위로 올려 준다는 게 우리 당을 공격하는 거였어? 고작 지라시 업체로 박무혁을 공격한다고? 이런 미친놈이…….

김종혁 의원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었다.

‘드디어 온다.’

이준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가까운 날에 얼굴을 마주치게 될 거다.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지며 심장이 쿵쾅거린다.

성윤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꿈속에서 봤던 이준대는 무시무시했다.

정말 지랄맞은 악귀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성윤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죽여 버려야지.’

성윤의 눈빛에 살기가 넘쳤다.

그리고 잠시 후, 김종혁 의원의 커피 잔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가 일어서며 힘없는 목소리를 내뱉는다.

“베이한이라고 했지? 알아봐 주지.”

물론 알아봐 줄 생각은 없다.

그는 자신과 베이한의 연결 고리를 끊을 생각이다.

베이한이 박무혁 의원을 공격하는 순간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지만 성윤은 모른 척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김종혁 의원은 성윤의 인사에 가볍게 손을 흔들며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성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김종혁이 완벽히 커피숍을 빠져나간 후 휴대폰을 귀에 댄다.

상대는 장한수 실장이다.

“지금 김종혁 의원 나갑니다.”

-네, 지금부터 감시하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는지 동선만 파악해 주세요.”

-네.

성윤은 휴대폰을 덮었다.

그의 표정이 다시 사나워진다.

‘이준대…….’

***

“제가 언제까지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하죠?”

베이한의 여기자 한정이가 긴 파마머리를 넘기며 정우를 쏘아봤다.

“박무혁 의원님께 가진 의혹, 증거가 있나요? 아니면 떠도는 풍문에 귀가 팔랑거린 것인가요? 듣고 싶은데요.”

그때…….

“됐어. 그만 물어봐.”

뒤에서 성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우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오셨어요?”

“어.”

성윤이 정우의 옆에 앉으며 한정이를 바라봤다.

긴 머리카락, 가슴골이 드러난 원피스, 달달한 향수 냄새가 그녀에게서 풍겨졌다.

“한정이 씨, 제가 지금 좀 바빠서 빙빙 돌리지 않고 묻겠습니다. 베이한에서 포지션이 어떻게 되죠?”

“네?”

한정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에게 포지션을 운운하다니.

“기, 기자죠.”

“기자요? 국회의원을 앞에 두고 무리한 파파라치 코스프레를 하는 기자?”

“……!”

“한정이 씨, 기자들이 국회의원을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괴물이라고 불러요. 우리는 괴물 같은 힘이 있거든요. 그런데, 괴물에게 뻔히 잡아먹힐 것을 알면서 그런 유치한 작전을 짠다고요?”

한정이가 입술을 잘근 씹는다.

그 표정을 보며 성윤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너무 어설퍼서 오히려 믿고 있었네.”

베이한의 주주 중 하나가 이준대다.

이번 사건 역시 이준대의 머릿속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성윤은 이준대가 좋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준대는 오른쪽을 공격하는 척, 왼쪽을 때리는 야비한 놈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박무혁 의원을 공격하는 척 온갖 호들갑은 다 떨어 놓고 정작 미사일 발사 버튼은 다른 쪽을 향해 있을 거야.’

아직 이준대가 노리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

하지만 방법을 알게 된 이상 호락호락 당해 줄 마음은 없다.

“한정이 씨, 회사가 마음에 드세요?”

“네?”

그녀의 나이는 스물아홉.

대학을 졸업하고 메이저 업체의 문을 두들겨 봤지만 대한민국의 취업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떨어졌고 또 떨어졌다.

그래서 선택한 게 신생 파파라치 회사인 베이한.

열정적으로 입사했지만 인식이 좋지 않다.

어딜 가도 다른 회사의 기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

“쟤들이 그 악질들이래.”

“상도덕도 없는 애들?”

“응, 비밀로 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해도 가차 없이 쓴대.”

“지난번에 자살 시도한 여배우도 쟤들 때문이었잖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월급 때문에 다니는 거지 좋아서 출근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마른침을 삼켰다.

“마, 마음에 들죠. 그러니까 다니는 거죠.”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그대로 들려오고 있었다.

성윤이 눈을 깜빡거리는 그녀를 똑바로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큰 회사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 없나요? 월급도 지금보다 많을 테고 복지도 좋을 겁니다.”

“네? 이 회사 마음에 든다니까요?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방금 말했죠? 빙빙 돌리지 않겠다고요. 그러니까 한정이 씨도 간 보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첩자 역할 한번 해 주십시오. 베이한의 내부 정보를 빼 주면 큰 회사로 이직을 도와드리죠.”

한정이는 잠시 갈등했다.

베이한이 노후를 책임져 줄 것도 아니고 평생 몸담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직이라는 것, 특히 간첩질을 통한 이직은 생각을 깊이 해 봐야 한다.

거기에 성윤을 믿을 수 있을지가 문제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성윤을 바라봤다.

적어도 눈빛은 진심이다.

멍하니 있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

“큰 회사면 어디죠?”

“한동일보 또는 리얼 팩트.”

“제가 어떤 정보를 빼 오면 되는 거죠?”

그녀는 말단이다.

고급 정보를 손에 쥐락펴락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회사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성윤이 입을 연다.

“베이한이 노리는 곳요. 박무혁 의원이 아닐 겁니다. 다른 게 있을 거예요. 그걸 알아봐 주세요.”

박무혁 의원은 거물이다.

베이한은 그런 거물을 미끼로 사용한다.

그럼, 본질은 박무혁 의원에 비해 떨어지지 않을 누군가라는 것.

확인해 봐야 한다.

한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회사 실장이 참 가볍거든요.”

베이한의 실장, 어떻게 그런 사람이 파파라치 회사에서 실장을 해 먹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금만 손바닥을 비비면 술술술 진실을 말해 준다고 한다.

그녀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실장님, 한정이에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콧소리가 애교 있게 들린다.

-말해.

“박무혁 의원요, 실제로는 그 사람 말고 다른 쪽에 특종이 있는 것 아니에요?”

-다른 거? 무슨 소리야? 어디서 정신 나간 소리 들은 것 있어?

“아뇨, 박무혁 의원이 워낙 깔끔하잖아요. 그래서 박무혁 의원은 위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저를 미끼로 삼고 혜원이 그 계집애를 밀어주시는 것은 아니죠?”

-아니야, 아니야.

“있으면 말해 주세요. 저도 이제 특종 하나 잡고 싶어요. 나중에 커피 살게요.”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술 사.

실장은 그녀를 안쓰러워했다.

남들보다 늦게 이 바닥에 들어와 땅바닥을 박박 기고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왔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살짝 미소가 걸린다.

“술요? 네, 술 살게요.”

-그게 누구냐 하면…….

< 누구냐 하면... - (1)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