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91화 (191/300)

< 중국과 일본?-(3) >

박무혁 의원의 표정은 ‘내가 지금 잘못 들었지?’라는 말을 하고 있다.

불을 붙이려던 담배는 손에 쥐고 진 그대로다.

성윤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자식이 있냐 없냐…….

없다면 있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냐…….

자식이 없다고 알려진 사람을 향해 내뱉기엔 상당히 무례한 말이다.

뺨을 맞아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말, 주워 담을 수 없다면 진실이라도 들어야 한다.

성윤은 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의원님께 자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무혁 의원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하지만 성윤은 멈추지 않고 입을 연다.

“서울 시장 이취임식에서 기자 한 명을 만났습니다.”

“그 기자가 그런 말을 지껄여? 내가 숨겨 둔 자식이 있다고?”

“꽤 확신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불거져 나올 일이니…….”

“이 의원…….”

박무혁 의원이 손을 저었다.

그만 말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성윤은 이번에도 멈추지 않는다.

박무혁 의원을 위해서다.

이대로 간다면 박무혁 의원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꿈에서 본 미래는 꽤 높은 확률로 맞아떨어지고 있으니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성윤의 강한 눈빛에 박무혁 의원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한다.

“내 기억에는 없어.”

하지만 성윤의 눈빛은 풀어지지 않았다.

박무혁 의원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잇는다.

“어디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여자 문제는 깔끔해. 어릴 때부터 여자 좋아하는 아버지를 지켜봐 왔어. 그래서 넌덜머리가 났는데, 내가 그 짓을 하고 다니라고?”

박무혁 의원의 아버지는 대정 그룹 회장이다.

돈이 많은 만큼 여자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박영훈 부회장, 박무혁 의원 등등 각 형제의 어머니가 모두 다르다는 소문이 있다.

“쓸데없는 소문에 휘둘리지 마.”

그 눈빛은 진심이다.

박무혁 의원의 속마음을 듣지 못해도 알 수 있다.

성윤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괜한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됐어. 그럼 이제 일 이야기를 해야지.”

“네.”

“안재열 대통령님은 언제 만나러 갈 거야?”

박무혁 의원의 눈빛은 평소대로 돌아왔다.

성윤과 나눴던 숨겨진 자식에 대한 문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성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언론사가 만들어 낸 루머일까? 아니면 박무혁 의원도 모르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계속 물고 늘어질 수는 없다.

“안재열 대통령님께는 이번 주에 찾아뵈려고 합니다.”

“이번 주? 나도 가야 할까?”

박무혁 의원은 신당의 대표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큰 결심을 했다면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게 당연한 도리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기자들의 눈을 조심해야 할 시기입니다.”

정치인들은 당에 상관없이 친분을 쌓는 경우가 많다.

성윤만 해도 곧잘 안재열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거물이다.

가벼운 행동도 의미가 붙고 농담 한마디가 입방아에 오른다.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한다.

“아쉽네. 한번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대신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고……. 한상국 대통령은 어떻게 할까?”

두 사람은 한상국 대통령도 신당에 넣을 생각이었다.

안재열 전 대통령과 한상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치의 기둥이며 영원한 라이벌로 불린다.

그런 두 사람이 말년에 손을 잡는다면 신당은 진정한 화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

대선에서 상당히 유리해진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 뜻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허락했지만 한상국 대통령은 거절했다.

자신이 가꿔 온 대한당을 버릴 수 없어서다.

“지난번에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그때와 지금은 달라.”

한상국 대통령의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레임덕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포털 사이트를 살펴봐도 한상국 대통령의 이름을 찾기 어렵다.

그는 잊히는 중이다.

모든 국민의 시선은 다음 대통령에 향해 있다.

게다가 그가 가꿔 온 대한당은 지지율부터 반 토막이 났다.

원로라는 사람들이 비리에 걸려 쫓겨났고 남은 의원들은 각자의 살길만 찾고 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도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오합지졸.

대선 주자로 나온 서용우 전 총리 혼자 전전긍긍할 뿐이다.

그래서 정치 전문가 중에는 대한당이 다음 총선에 신당에 흡수될 것으로 점치는 사람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한당 내에 한상국 대통령의 계파가 없다는 거야.”

서용우 전 총리는 한상국 대통령의 계파였다.

하지만 지난번, 대통령의 사위인 엄대필 사건 때 등을 돌렸다.

서용우 전 총리가 떠나며 한상국 대통령의 계파는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박무혁 의원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입을 열었다.

“한상국 대통령도 우리 당에 합류하는 게 깔끔한 모습일 거야. 다시 설득해 보지.”

잠시 후, 성윤은 박무혁 의원과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고생했어.”

성윤이 고개를 숙인 후 몸을 돌리는데…….

“잠깐만.”

성윤이 다시 그를 향했다.

박무혁 의원이 성윤을 조심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그 이야기 어디서 나온 거지?”

“어떤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게 자식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 기자가 누구야?”

박무혁 의원의 눈빛은 희미하지만 불쾌감이 가득하다.

“어제 서울 시장 이취임식 때, 베이한이라는 언론사의 기자를 만났습니다.”

“베이한? 중국 쪽인가? 중국으로부터 원한을 살 일은 없는데…….”

“일본과 중국의 합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윤은 어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박무혁 의원이 팔짱을 낀다.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 기자들 연락처는 갖고 있지?”

“네.”

쓰레기 같은 언론사라도 필요할 때는 있는 법이다.

게다가 신당을 노리는 언론사다.

연락처를 알아 두는 것은 필수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숨겨진 자식, 사생아……. 루머라고 넘기기엔 고약해.”

정치인에게 ‘성’ 스캔들은 치명적이다.

이미 몇 명이나 성 스캔들에 휘말리며 은퇴하고 말았다.

그런데, 박무혁 의원은 정치인이며 재벌이기도 하다.

국민은 그에게 다른 정치인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민다.

자식 문제는 헤드샷이다.

한참 생각에 빠졌던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 내가 알아보지. 이 의원은 신경 쓰지 말고 있어.”

“알겠습니다.”

성윤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떠났다.

문을 닫고 복도를 걸으며 성윤의 눈빛도 차가워진다.

‘신경 쓰지 말고 있으라고?’

미래를 모르니까 속편한 소리를 하는 거다.

성윤은 뒷목을 꾹꾹 주무르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마침 당직자와 미팅을 마친 정우가 성윤의 옆으로 다가왔다.

“여쭤보셨어요?”

“어.”

“뭐라고 하세요?”

“사실 무근. 베이한에서 악의적인 루머를 퍼뜨리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아.”

정우가 턴을 매만진다.

“어제 그 여자 기자의 행동을 생각하면…… 확신에 찬 것 같았는데요.”

성윤은 잠시 여기자를 떠올렸다.

정우의 말대로 그녀의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

“나도 그게 꺼림칙해. 그러니까 만나 봐야지. 그리고 선동당한 것인지 아니면 의혹을 가질 만한 혐의가 있는지 찾아봐야지.”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연락해 볼까요?”

“어.”

정우가 휴대폰을 꺼내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에는 김종혁 의원이 서 있다.

그는 박무혁 의원을 쫓아 신당에 들어온 사람이다.

꽤 큰 계파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박무혁 의원의 오른팔이라고 주장한다.

얼마 전, 서울 시장 선거에서 성윤이 ‘패배성 짙은 말’, ‘예언이라 불리는 말’을 했을 때, 가장 크게 비난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성윤을 싫어한다.

자신이 박무혁 의원의 오른팔인데, 성윤이 자꾸 주위를 얼쩡거리는 것 같아서.

그리고 성윤을 치우면 신당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윤이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박 의원님을 뵙고 오나?”

“아, 네.”

“왜?”

“그냥,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김종혁 의원의 입술이 뒤틀어진다.

성윤은 질문을 받으면 재깍 대답해야 할 나이다.

그런데, 모호한 답이나 지껄이다니…….

기분이 나빴다.

‘새끼가…… 끝까지 건방지게.’

그 속마음은 성윤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성윤은 내색하지 않고 바뀌는 숫자만 바라본다.

쓸데없이 신경전을 해 봤자 피곤할 뿐이다.

-왜 이성윤을 신경 쓰는 거야?

그의 속마음이 계속해서 전해져 들어온다.

여전히 모른 척했다.

그리고 1층,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김종혁 의원이 내리기 위해 몸을 움직이자 성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들어갑시오.”

“어, 이 의원도.”

속으로는 쌍욕을 한 김종혁 의원이다.

목소리만 들으면 지극히 평온한 관계처럼 여겨진다.

김종혁 의원은 손을 흔들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여기까지도 지극히 있을 수 있는 상황.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할 수 있는 그런 상황……..

그런데, 그때.

-이준대 이놈은 베이한으로 뭘 한다는 거야?

‘이준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악귀의 이름이 맞다.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으로 김종혁의 모습이 점차 사라진다.

‘안 돼!’

성윤이 문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닫히던 문이 ‘텅!’ 소리와 함께 다시 열린다.

김종혁의 뒷모습이 다시 눈에 보인다.

“정우야, 먼저 여기자 만나고 있어. 금방 갈게.”

“네? 의원님은요?”

“잠깐 일이 있어서.”

성윤은 김종혁 의원을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

성윤이 떠났지만 박무혁 의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중얼거린다.

“내가?”

그는 다시 생각에 빠진다.

자신도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설마, 어쩌면…….

꾹 인터폰을 눌렀다.

그러자 곧바로 보좌관이 들어온다.

“부르셨습니까?”

“물어볼 게 있어. 허심탄회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보좌관은 박무혁 의원이 이런 식으로 나올 때가 가장 무서웠다.

하지만 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술에 취해서 사고를 쳤던 적이 있나?”

“네?”

“여자를 호텔로 끌고 간다던지 뭐 그런 거.”

보좌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최근 많은 국회의원이 성 스캔들에 휘말렸다.

“혹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말씀하시면 언론에 나오기 전에 처리하겠습니다.”

보좌관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난다.

박무혁 의원이 손을 저었다.

“아, 그런 것 아니야. 그냥 물어보는 거야.”

보좌관이 물끄러미 박무혁 의원을 바라봤다.

아무 일도 없는데 이런 시답잖은 질문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입을 꾹 닫고 있는데 꼬치꼬치 질문할 수는 없었다.

그가 할 일은 질문이 아니라 대답이다.

“의원님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드시는 인간적인 분이 아닙니다.”

“없다는 거지?”

“네.”

박무혁 의원이 손뼉을 짝 친다.

“뭐, 보좌관이 아니라면 아닌 거지. 좋아, 그럼 하나만 조사해 줘.”

“말씀하십시오.”

“베이한이라는 언론가 있어. 중국과 일본 자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쪽의 지분 구조를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1시간이면 되는 거지?”

“30분이면 충분합니다.”

보좌관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은 다시 혼자가 됐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잠시 후…….

보좌관이 다시 들어왔다.

그가 책상에 종이 한 장을 내려 둔다.

“파악했습니다.”

베이한의 지분 구조다.

일본인과 중국인의 지분을 합치면 과반을 넘는다.

그런데…….

“이준대?”

10%가 넘는 지분을 소유한 한국인이 있다.

박무혁 의원이 이준대라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누구지? 실제 투자자야? 아니면 바지?”

박무혁 의원은 이런 루머가 퍼진 이유로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원한.

또 하나는 재벌 등 박무혁 의원의 대권을 반대하는 세력.

그래서 뜬금없이 나타난 한국인에게 의심을 가졌다.

“이 사람, 어떻게 자금을 조달했는지 알아봐. 뒷배에 박영훈이 있을 수도 있어.”

보좌관이 고개를 저었다.

“미국에서 꽤 큰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바지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박무혁 의원은 조용히 서류를 바라봤다.

***

김종혁 의원은 휴대폰을 들고 열심히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찾고 있었다.

“김종혁 의원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김종혁 의원이 몸을 튼다.

성윤이 보인다.

“왜?”

성윤이 멋쩍게 미소를 그렸다.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예의가 없었던 것 같아서 사과드리고 싶었습니다.”

“예의?”

“대표실에 들렀던 이유, 의원님께서 질문하셨는데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던 거요. 죄송합니다.”

“아……..”

김종혁 의원이 몰랐다는 식으로 호탕한 척 웃는다.

속마음으로는 쌍욕을 다 해 대고 있었으면서.

성윤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은 그 일 때문에 연륜이 있는 의원님과 상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조언을 듣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 있었나?”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좀 그래서…….”

김종혁 의원은 물끄러미 성윤을 바라봤다.

-상의? 조언? 이 새끼가 무슨 꿍꿍이지?

김종혁 의원도 1, 2년 정치밥을 먹은 게 아니다.

성윤에게 뭔가 흑심이 있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내색하지 않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지.”

그의 말에 성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성윤의 목적은 김종혁 의원과 일단 마주 앉는 것이다.

그리고 이준대와의 관계를 밝힌다.

아무리 속이려 해도 상관없다.

속마음을 듣는 능력이 있으니까.

< 중국과 일본?-(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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