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과 일본? -(2) >
당황한 남자가 잡힌 손목을 빼 보려 한다.
하지만 성윤의 힘이 더 세다.
매일 아침 턱걸이로 다져졌다.
결국 남자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왜, 왜 이러세요! 아파요! 이것 좀 놔주세요!”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거 하나는 잘 알아. 뇌물, 5년 이하의 징역.”
“의, 의원님? 징역이라니요! 적어서 그러세요? 이건 그냥 관례…… 아악!”
성윤이 힘을 꽉 주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성종 아니잖아? 어디서 온 거지?”
남자는 입을 꾹 닫는다.
속마음을 들어 봤지만 마찬가지, ‘씨발, 씨발’ 욕만 들려온다.
“말해!”
벼락같은 호통을 내리쳤다.
그제야 남자의 속에서 다른 마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원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찍고 있지? 잘 찍어야 해! 국회의원이 시민을 폭행하는 영상! 씨발, 한번 뒤져 보자고!
‘동영상?’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영상을 촬영할 만한 직업군이라면…….
“기자?”
남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스러움이 솟았다.
“네?”
“삼류 지라시 기자? 아니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성윤의 눈빛에 남자가 포기한 것처럼 허탈하게 웃는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뒤틀어졌다.
“삼류라니요……. 진짜 병신한테, 병신이라고 말하면 그거 상처 받아요.”
“뭐?”
“그러니까 삼류한테 삼류라고 하지 마! 씨발!”
남자가 충혈된 눈동자로 성윤을 노려본다.
도발하려는 거다.
어차피 걸린 것, 이 장면을 찍고 있는 카메라에 좋은 장면이나 남길 생각.
하지만 성윤은 그런 도발엔 관심도 없었다.
속마음을 듣고 도발이란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어디선가 사진을 찍는 사람…….’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다.
이곳은 천막, 시야에 보이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그중에 카메라 또는 휴대폰을 든 사람을 찾으면 된다.
성윤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 팔짱을 낀 채 이취임식을 지켜보는 여자를 찾았다.
그녀가 손에 쥔 휴대폰의 카메라는 정확히 성윤과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찾았다!’
성윤은 잡고 있던 남자의 손목을 놨다.
남자가 손목을 털며 성윤을 노려본다.
“이 의원님!”
남자는 간간히 찰진 욕을 섞어 가며 뭐라 뭐라 시비조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성윤은 그를 상관하지 않았다.
사진 찍는 여성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남자는 미끼, 정보는 여자가 갖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자 남자의 미간이 확 일그러진다.
“어, 어디 가는 거야! 이리 안 와!”
걸렸다는 걸 안 거다.
“이리 와!”
여자가 잡히면, 그래서 동영상까지 지워진다면 낭패다.
남자는 성윤을 잡기 위해 손을 쭉 뻗었다.
하지만 오히려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콱 잡는다.
방금 성윤의 힘보다 더 한 악력.
“멈춰. 더 움직이면 다칠지도 몰라.”
남자가 고개를 돌려 보자 장한수 실장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여전히 무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은 온통 성윤을 향해 곤두서 있다.
‘어쩌지?’
답은 빠르게 나왔다.
일단 피해야 한다.
사람들 안으로 숨어 버리면 도망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가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걸음을 옮겼다.
그러더니 이내 인파 속으로 숨기 위해 몸을 홱 돌려 달리기 시작한다.
“이봐요!”
성윤도 다리에 힘을 주고 그녀를 쫓았다.
하지만 거리가 꽤 있다.
그녀는 이내 인파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놓치고 만다.
“멈추라고!”
그 말을 듣고 멈출 사람은 없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도망치는 여성과 거칠게 부딪혔다.
“악!”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고 부딪친 두 사람이 땅에 주저앉았다.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정혜성이었다.
그녀가 통증을 참으며 계속해서 사과한다.
“정말 죄송해요.”
정혜성이 다급히 주변에 널브러진 여성의 물건을 챙긴다.
파우치, 휴대폰…….
그리고 꾸벅꾸벅, 허리를 굽힌다.
“괜찮으세요? 다친 곳은 없으세요?”
여성은 굵고 길게 펌 한 머리를 헝클며 인상을 찌푸쳤다.
“됐으니까 그거 줘요!”
정혜성이 손에 든 파우치와 휴대폰…….
정혜성이 머뭇거리자 여성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달라고요! 어서!”
급기야 여성이 얼굴을 구긴다.
“거지 같은 게!”
그녀는 손을 뻗었다.
정혜성의 손에 들린 자신의 휴대폰과 파우치를 빼앗으려 한다.
하지만 정혜성은 그녀의 손을 피해 버렸다.
“뭐야? 안 내놔!”
“허락 없이 찍으면 안 되는 거 몰라요?”
“뭐?”
“계속 동영상 찍고 있었잖아요!”
“미친! 쓸데없는 참견 하지 마!”
“사과하세요.”
여성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너 미쳤니? 죽고 싶니?”
그때, 그녀의 귀에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톱.”
그제야 성윤이 도착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눈으로 여성을 쏘아본다.
여성이 마른침을 삼키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성윤은 시선을 틀어 정혜성을 향했다.
이번엔 따듯한 눈빛이다.
성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입술을 움직이려 할 때…….
“여기.”
정혜성의 입에선 차가운 목소리가 흐른다.
그리고 성윤의 손에 여성의 파우치와 휴대폰을 전했다.
“그럼.”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틀었다.
성윤은 의아한 눈으로 정혜성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불러 세울 수 없었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는 데다 그 모습이 어째서인지 너무나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멀어져 갔다.
정혜성은 성윤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게 되자 인상을 찌푸린다.
‘뭐야? 왜 이래? 왜 쌀쌀맞게 구는 거야? 바보야? 멍청해? 눈은 왜 못 쳐다봐?’
정혜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취임식이 시작될 때부터 계속해서 성윤을 신경 썼다.
그러다가 성윤이 여성을 쫓는 걸 보고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거다.
그녀는 한숨만 푹푹 내쉬며 원래 있던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멍청해, 멍청해!’
그녀의 소리 없는 타박은 한참까지도 계속되었다.
한편, 정혜성이 인파 속으로 사라지자 성윤은 다시 시선을 돌려 여성을 쏘아보았다.
“할 말이 좀 있을 것 같은데.”
“돌려줘요.”
“일단 내 영상은 지우고요.”
“없어요! 이취임식을 찍던 거예요!”
“이취임식 영상에 내 얼굴이 반이네.”
여자가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팬, 그래! 팬이에요! 팬클럽도 가입했어요! 그러니까 그냥 주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래도 영상은 지울게요.”
“이성윤 의원님!”
성윤은 동영상을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휴대폰을 건네며 말한다.
“동영상 복구할 생각이 있다면 하지 마세요. 나도 영상을 찍어 뒀어요. 그 영상에는 그쪽과 저기 계신 남자분 얼굴이 똑똑히 담겼고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다는 사실도 전부 녹화됐어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무적인 목소리에 그녀가 입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 대답 없이 성윤을 노려보기만 한다.
성윤이 손에 쥔 그녀의 파우치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이건…… 조금 이따가 드리죠.”
“네?”
“저쪽에 커피숍이 있으니까 가서 기다리세요. 이취임식이 끝나면 바로 갈 테니까요.”
“의원님!”
“이봐요. 지금 내가 존댓말하는 것도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몰라요? 커피숍 말고 경찰서나 검찰에 가서 이야기할까요?”
여자는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성윤은 파우치를 가볍게 흔들며 몸을 틀었다.
그리고 다시 김미선 기자의 옆으로 가서 앉으며 장한수 실장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방금 그 남자와 여자, 뒤를 밟아 주세요.
바로 메시지가 들어온다.
-네.
성윤이 슬쩍 웃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꽂았다.
옆에 앉은 김미선 기자가 묻는다.
“누구예요?”
“혹시 ‘베이한’이라는 신문사 아세요?”
“베이한? 그 거지 같은 곳은 왜요?”
베이한, 방금 만난 두 사람이 속한 언론사다.
숙녀의 가방을 뒤지는 것은 실례지만 파우치 속에 담긴 명함을 살짝 확인했다.
“방금 그 남자요, 알고 보니 베이한이라는 회사에 다니네요. 이취임식 끝나고 얼굴 보기로 했는데, 제가 모든 언론사를 알고 있을 수는 없어서 여쭤본 거예요.”
김미선 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명진 기자가 리얼팩트를 만들었잖아요? 그게 좀 되는 것 같으니까 파파라치 회사가 우후죽순 생겼거든요? 베이한은 그중에 하난데…… 문제가 많아요. 인터뷰가 약속되어 있다면 적당히 빼세요. 정말 악질이에요, 악질.”
“악질? 왜요?”
“어떻게든 특종 잡으려고 함정을 파 놓기도 하고……. 아, 자본이 외국 자본이에요. 우리나라 언론사가 아니라 중국 반, 일본 반.”
“중국 반, 일본 반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김미선 기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계속해서 베이한에 대해 설명을 이어 갔다.
지분과 본사, 서버, 계열사, 한국의 지라시 등등 복잡한 말이 이어졌다.
중요한 것은 이놈들이 자기들 국가에 대한 기사는 관심이 없다는 것.
오로지 우리나라 연예인, 정치인의 꼬투리를 잡아 악의적으로 폄훼한다는 거다.
김미선 기자의 말을 들으며 성윤은 턱을 쓸었다.
‘뭐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었다.
분명 남자는 ‘협박’이라고 말했다.
협박은 무엇인가를 얻어 내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
‘기사로 쓰는 게 아니라, 날 미끼로 뭔가 얻어 내려고 했다는 것인데…….’
생각만으로 답이 나오는 경우는 없다.
일단 만나 봐야 한다.
잠시 후, 성윤이 들어간 곳은 작은 커피숍이었다.
손님은 딱 둘, 그 남자와 여자다.
두 사람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성윤을 쏘아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윤은 그녀의 파우치를 테이블에 내려 둔 후 악수를 권했다.
“이성윤입니다.”
남자가 더듬더듬 입을 연다.
“조민현입니다.”
여자도 토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한정이에요.”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성윤이 자리에 앉았다.
곧 정우가 케이크와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에 놓는다.
그러자 성윤이 다리를 외로 꼬며 입을 열었다.
“케이크와 커피는 제가 사죠. 그럼, 이제 왜 저를 골탕 먹이려 했는지 말씀해 주실까요?”
두 사람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대답이 없다.
성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를 협박하려 했죠? 대충 알고 있으니까 빙빙 말 돌리면서 시간 끌지 말죠.”
한정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알았어요. 말할게요. 의원님이 뇌물을 받았다는 현장을 만들어 사진에 담으려 했어요.”
“이유는?”
“협상하려 했거든요.”
“협상? 협박이 아니라?”
한정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협상요. 사진을 없애 주는 대신 우리가 알고 싶은 정보를 얻는 것.”
성윤이 픽 웃었다.
“그래서 성종 그룹 대관 담당자의 명함에 흰 봉투까지 준비한 건가요?”
“네.”
참 유치하고 1차원적인 계략이었다.
이런 것에도 속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있으니까 이런 걸 하고 있는 거겠지.
성윤이 한심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들어 봅시다. 어떤 걸 협상하려고 하셨죠? 나한테 궁금한 정보가 뭐였습니까?”
“말씀해 주실 건가요? 우린 악질 언론사에 소속된 기잔데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을 듣고 판단하죠.”
“의원님은 알고 계시죠?”
“뭘?”
“박무혁 의원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잖아요. 알고 있죠?”
“그러니까 뭘요?”
한정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몰라요?”
“그러니까 뭘요?”
“박무혁 의원이 버린 사생아.”
성윤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그 표정을 본 그녀가 눈을 깜빡인다.
“몰, 몰랐어요?”
***
뜨거웠던 커피가 차갑게 식었다.
“뭐야? 제사 지내는 거야?”
성윤이 앞을 바라봤다.
박무혁 의원이 보인다.
평소처럼 느긋한 표정으로 성윤을 보고 있다.
‘사생아?’
잠시 꿈속에서 봤던 미래를 떠올렸다.
꿈속의 박무혁 의원은 지금이 아니라 다음 대선에 나갔다.
하지만 처참하게 깨지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정계를 은퇴해 버렸다.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른다.
‘그게 자식 때문이었나?’
가능성은 존재한다.
박무혁 의원은 결혼한 경력이 있다.
게다가 재벌이다.
자식이 많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그가 재벌로 남지 않고 대권까지 노리고 있다는 것.
대한민국은 대통령, 정치인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으니까.
‘아니지, 잠깐만…….’
박무혁 의원 같은 거물에게 자식이 있었다는 소식이 있었다면 세상이 떠들썩거렸을 거다.
‘그런데, 조용했잖아?’
그런 이야기는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두 가지 이유로 좁혀진다.
하나는 박무혁 의원의 힘으로 언론의 힘을 틀어막았을 경우.
은퇴를 조건으로 ‘쉿’ 하는 것을 민국당과 거래했다면 모두 입을 닫았을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면…….’
자식이 있다는 게 거짓일 경우다.
이유는 모르지만 중국과 일본의 합작 언론사는 우리나라 정치인과 연예인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최근 주가가 오르는 신당과 박무혁 의원을 흔들기 위해 거짓 뉴스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박무혁 의원이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본다.
“의원님?”
“말해.”
성윤은 입을 떼지 못한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한다.
만약 거짓이라면 헛소문을 준비하는 일본과 중국의 합작 회사를 박살 내야 한다.
그리고 진실이라면…….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계획을 뒤집어야 해.’
성윤이 힘을 내어 입술을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외람되지만 혹시 숨겨 둔 자식이 있나요? 아니면, 가능성이라도…….”
박무혁 의원은 테이블에 놓인 담배를 손에 쥐고 불을 붙이던 중이었다.
그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했다.
< 중국과 일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