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과 일본? -(1) > 끝
***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고 잠적했던 오항로 전 국회의원이 오늘 새벽 1시, 경기도 여 주의 한 여인숙에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모든 방송사가 오항로의 생존 소식을 알리느라 분주하다.
채널을 돌리면 속보라는 문장과 함께 오항로의 얼굴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각, 박무혁 의원이 통째로 산 건물.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의 전원을 종료한 박무혁 의원이 시선을 틀어 성윤을 본다.
“어떻게 된 거야? 펜션에 있었다고 했잖아?”
“오항로가 도제성 의원에게 애걸복걸했어요. 창피하니까 펜션에 있었다는 것만 숨겨 달라고요.”
박무혁 의원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오항로는 극단적인 선택의 글을 SNS에 올린 후 남한강이 보이는 펜션에 앉아 여유를 즐겼다.
그 사실이 그대로 드러났다면 쪽팔리기는 했을 거다.
박무혁 의원이 담배를 입에 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건 그렇고 깡패들은?”
“뻔하죠.”
오항로를 테러하려던 깡패들, 아직 경찰의 조사를 받는 중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청부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돈만 받고 움직였으니까.
“국적은?”
“우리나라는 아니에요.”
박무혁 의원이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
그 중심에 자신과 같은 피를 타고 태어난 박영훈 부회장이 있다.
박무혁 의원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잇는다.
“박영훈은 사람 목숨을 돈 아래에 두고 있어. 오래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박무혁 의원은 언젠가 박영훈 부회장과 싸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앞당길 생각이다.
“힘든 싸움이 될 거야. 어쩌면 대선보다 더 힘들지도 몰라. 국회, 검찰, 각 정부 부처 모든 곳에 대정의 돈이 들어가 있으니까. 하지만 빨리 뿌리 뽑지 않으면 썩어서 악취가 날 것 같아.”
박영훈 부회장은 회장의 자리에 앉기 위해 괴물이 되어 가고 있다.
계속 날뛰게 내버려 뒀다가 나라꼴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박무혁 의원은 한숨을 내쉬며 담뱃재를 털어 낸다.
그리고 다시 성윤을 본다.
“그래서? 또 있잖아?”
갑작스러운 화재 변화에 성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라니요?”
“도제성에게 받아 낼 것.”
박무혁 의원은 성윤이 도제성 의원과 어떤 합의를 봤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성윤이 한 말을 전부 믿지 않는다.
성윤의 성격을 생각하면 고작 네거티브 방어권 하나를 얻기 위해 비까지 맞으며 생고생할 사람이 아니니까.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게 있기는 합니다.”
“뭐지?”
“오항로를 회유하려고요.”
오항로는 얍삽하게 느껴질 정도로 계산이 빠른 사람이다.
도제성 의원의 주변을 맴돌아도 얻을 게 없다는 것을 알았을 거다.
“오항로가 마지막 발악을 했던 이유가 도제성이었어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도제성이 다시 거둬 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겠죠.”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고?”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대가 무너졌을 때의 그 표정을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갔어요.”
“표정?”
“버려진 얼굴요.”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무너진 얼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숨기고 있던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박무혁 의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해 봐.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고.”
***
며칠 후, 성윤은 삼성동의 일식집에 앉아 오항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었을 때, 미닫이문이 열리고 오항로가 들어왔다.
그는 구속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며칠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초췌해졌다.
안으로 들어온 그가 두리번거린다.
“공대출 의원님은요?”
“죄송합니다. 의원님을 뵙고 싶어서 공 의원님의 이름을 빌렸습니다.”
오항로가 인상을 찡그린다.
그는 성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성윤 덕에 목숨을 건졌지만 온갖 찌질한 모습도 보였다.
도제성 의원을 향해 살려 달라고 빌던 것, 여관에서 발견 된 것으로 해 달라고 징징대던 것…….
그는 성윤이 껄끄러웠다.
“허, 참.”
혀를 차는데, 성윤이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정중한 말투에 오항로는 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바쁘니까 짧게 말합시다.”
거짓이 아니다.
오항로는 지금 바쁘다.
구속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를 수십 명 선임했다.
그리고 시간만 되면 안면 있는 판사와 검사를 만나 돈을 찔러줘야 했다.
그가 성윤의 말을 기다리며 젓가락을 들고 회를 먹기 시작한다.
이 시간에 배라도 채울 기세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먼저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세요.”
“만약이란 것은 없지만…… 만약 의원님이 서울 시장에 당선됐고 도제성 의원님이 대통령에 오른다면, 권력자는 누가 됐을까요?”
오항로의 젓가락질이 멈칫거렸다.
이건 예의가 아니다.
낙선한 사람에게 당선 운운 하다니.
그가 눈동자만 움직여 성윤을 본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게 무슨…….”
“의원님은 오른팔이라 불렸으니까요.”
권력자의 오른팔, 흔히 실세라 말한다.
때로는 권력자보다 더 거침없는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게 실세다.
모든 이권이 그들의 입을 통해 권력자의 귀에 박히고 그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니까.
며칠 전까지 그 오른팔은 오항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성윤이 자신의 오른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도제성 의원님의 오른팔은 바뀌겠네요. 아니, 바뀌었겠네요. 오항로 의원님에서 다른 분으로…….”
오항로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쾅!’ 하고 내려 뒀다.
“시비를 걸기 위해 불렀습니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개는 죽기 직전까지 꼬리를 흔든다.’ 하지만 우리는 개가 아니에요. 인간입니다! 버림받았으면 한번 꿈틀대야 하는 것 아닙니까?”
“……!”
“도제성 의원에게 알려 주고 싶지 않습니까?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내 노력이었다. 내가 없으면 당신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이성윤 의원! 그만해요!”
“뭘 그만합니까! 그날! 겨우 목숨을 건진 바로 그날! 의원님이 도제성 의원의 전화를 받았을 때! 도제성 의원의 첫마디가 뭐였습니까?”
당시, 성윤이 도제성 의원에게 걸려 온 전화를 건넸다.
그리고 도제성 의원의 첫마디는…….
-미쳤어?
오항로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러자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의원님은 도제성 의원과 수십 년을 같이했어요! 아무리 틀어진 관계라고 해도 극단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잠적한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잖아요!”
성윤의 몰아치는 목소리에 오항로 의원은 고개를 숙였다.
‘젠장.’
그가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담배를 손에 쥔다.
칙, 불을 붙이며 나직이 말한다.
“그만해.”
하지만 성윤은 멈출 생각이 없다.
“단지 도구였던 겁니다! 쓰다가 고장이 나면 쓰레기통에 툭 버려도 되는 도구!”
“그만하라고!”
오항로 의원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눈동자는 흰자까지 벌겋다.
마음은 분노로 가득하다.
성윤의 귓속에도 그의 흔들리는 속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오고 있다.
이제 쐬기를 박을 때다.
“만약 도제성 의원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면 의원님은 어떻게 될까요?”
“……!”
당연하지만 그 흔한 사면도 기대할 수 없다.
정권의 마지막까지 오항로를 교도소에 꾹꾹 숨겨 두려 할 거다.
버려진 놈은 언제고 폭탄이 될 수 있으니까.
성윤이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저는 의원님을 돕고 싶습니다.”
오항로가 바짝 마른 입술을 술로 적셨다.
그리고 하염없이 담배만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갈등하고 있다.
도제성 의원과의 의리 때문이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종교와 같은 이념의 문제다.
“세상 참…….”
어제까지 아군이었던 도제성 의원과 등을 돌리고 적이 었던 성윤과 마주 보는 상황.
성윤은 손을 내밀었고 이제 그의 선택만 남았다.
그런데, 성윤의 손을 잡으면 지금까지의 인생을 버리는 것과 같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어차피 민국당에는 그를 위한 자리가 없다.
그것은 출소를 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제명당했으니까.
그가 다시 성윤을 바라본다.
눈에 영혼이 빠진 것 같다.
“그래, 도제성 의원 측의 선거 전략이 궁금한 겁니까? 그리고 작은 비리도?”
“네.”
오항로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거래 조건을 이야기해 봅시다.”
오항로는 한숨을 내뱉으며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성윤은 눈을 반짝였다.
이번 사건으로 네거티브 방지권은 물론 오항로까지 손에 넣었다.
조금씩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고 있다.
***
7월, 지난 번 당선된 각 지방단체장의 이취임식이 열렸다.
이취임식이 끝나면 각 당은 대선을 위한 당론을 정하고 상대의 논리를 깨부숴야 한다.
대대적인 전쟁의 시작이다.
성윤은 서울 시장 이취임식에 참석했다.
의례 하는 식순이다.
멍하니 단상을 보다가 때 되면 박수나 보내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한동일보 김미선 기자다.
성윤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김미선 기자가 옆에 앉으며 입을 연다.
“요새 어때요? 신당은 분위기 좋죠? 어딜 가나 신당 분위기가 제일 좋다는 말을 들어요.”
신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 경기, 충청을 먹었고 시장은 물론 기초 의원까지 상당수 손에 얻었다.
데뷔전 치고는 기적 같은 일.
축게 분위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당은 어때요?”
“뭐, 대한당은 침울하고 민국당도 마찬가지죠. 오항로 의원 덕에 한 방 먹었으니까요.”
그녀가 두리번거리더니 성윤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그런데, 전 신당이 잘나갔으면 좋겠어요. 양 당 체제는 불안하잖아요. 한 당이 삐끗하는 순간 독제가 되어 버리니까요.”
그녀는 대한당을 취재하는 기자다.
신당에 대한 칭찬은 몰래 할 수밖에 없다.
성윤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축하 공연으로 무대에 올라온 어린이 합창단이 내려간다.
시장 연설까지는 한참 남았다.
김미선 기자가 말을 잇는다.
“그런데, 사적인 질문을 해도 될까요?”
“기사로 쓰시려고요?”
“아뇨, 정말 개인적인 질문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미선 기자는 적어도 뒤통수를 치지는 않는다.
“말씀하세요.”
“결혼은 언제 하세요?”
“네?”
뜬금없이 결혼 이야기라니…….
성윤이 눈을 깜빡이자 김미선 기자가 빙긋이 웃는다.
“요즘 소문이 자자해요. 의원님이 서울 시장 딸이랑 연애 한다고요.”
“지금 그게 무슨……?”
듣기만 해도 무서운 말이다.
성윤의 표정을 본 김미선 기자가 눈을 깜빡인다.
“아니에요?”
“네, 아닙니다.”
“맞는 것 같은데…….”
그녀가 고개를 틀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자 행사에 참석한 정혜성이 보인다.
그런데, 이곳을 보고 있었나 보다.
성윤과 눈을 마주치더니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목석처럼 앉아 있다.
‘얼굴은 왜 빨개지고 있어?’
김미선 기자의 시선이 다시 성윤을 향한다.
“맞죠?”
“아닙니다.”
“정말?”
“네.”
성윤의 단호한 표정에 김미선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라고요? 이런 소문이 이유 없이 날 리가 없는데…….”
그때, 톡톡톡.
누군가 성윤의 어깨를 찔렀다.
잘 빗어 넘긴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가 살짝 고개를 숙인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이성윤 의원님?”
“누구시죠?”
의아하게 쳐다보자 명함을 꺼내 건넨다.
‘성종 그룹?’
성윤이 명함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향했다.
남자가 씩 웃는다.
“성종 그룹 심영민 과장입니다.”
“대관 담당자가 또 바뀌었나요?”
“흔한 일이니까요. 잠깐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성윤은 성종 그룹 윤 회장을 직접 만났다.
그리고 그의 비서실장 정기화와 손을잡고 있다.
대관 담당자가 바뀌면 곧장 연락이 온다.
그런데…….
‘말도 없이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정기화 실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듣기 시작했다.
사기꾼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성윤을 협박해서…….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를 협박해?’
성윤이 대답하지 않자 남자가 다시 입을 연다.
“여기는 시끄러우니까 저쪽에서 말씀을 좀 나누고 싶은데요.”
“좋습니다.”
성윤은 김미선 기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자를 쫓아 먼 곳으로 걸어갔다.
가던 중 휴대폰을 손에 쥐고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최소한의 준비는 해 둬야 한다.
잠시 후, 천막의 아래, 사람들의 시야에서 가려지는 곳.
7월의 뜨거운 바람이 훅 불어올 때, 남자가 테이블에 흰 봉투를 슥 내려 둔다.
“이거…….”
성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봉투 안에 얼마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누가 봐도 뇌물이다.
성윤의 시선이 다시 남자에게 향했다.
“뭡니까?”
남자가 입술을 뒤틀며 웃고 있다.
“약소해서 죄송합니다.”
남자는 뇌물을 통해 성윤을 협박할 생각이다.
물론 속마음을 듣는다 해도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뒷배에 누가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의 의도를 역으로 이용하면 더 큰 것을 얻는 법이다.
성윤이 봉투를 손에 들고 툭툭 흔들기 시작했다.
남자의 눈이 반짝인다.
순간, 성윤이 남자의 손목을 콱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가 보냈지?”
< 중국과 일본?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