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88화 (188/300)

< 주고 받고. - (2) >

“잠깐만요. 갑작스러워서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도제성 의원은 오항로의 위치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상대는 이성윤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엄연히 정치인, 꿍꿍이를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수락하기는 어렵다.

작은 틈을 보였다가 심장까지 찢겨 버릴 수 있으니까.

일단 성윤의 생각을 들어 봐야 했다.

“뭘 원합니까?”

-대선이 시작되면 비방이 난무하겠죠. 제가 사람 한 명을 지정할 겁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네거티브를 하지 말아 주십시오.

“한 명?”

-물론 박무혁 의원님을 지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주자들끼리는 물고 뜯고 싸워야 제 맛이죠.

도제성 의원의 눈빛이 찌푸려졌다.

‘뭐지?’

네거티브를 하지 말아 달라니.

성윤의 말대로 대선이 시작되면 온갖 네거티브가 난립할 거다.

하지만 지정하는 사람을 욕하지 말아 달라니.

저울이 맞지 않는다.

더한 것을 요구해도 허락할 것 같은데…….

도제성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성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나 더.

도제성 의원의 눈이 반짝인다.

‘역시…….’

예상했던 것이다.

주변 사람의 네거티브로 끝나지 않는다.

“말씀하세요.”

-의원님의 주변 사람 중 비리에 얼룩진 사람이 또 튀어나올 겁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방어하지 말고 가차 없이 내쳐 주십시오.

도제성 의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성윤이 지정하는 한 놈은 봐주고, 저쪽의 공격에는 마냥 당하라고?’

지금은 대선 시즌이 아니다.

그런데도 오항로의 일탈로 지지율이 삐걱거린다.

‘만약 대선 시즌 중에 한 명이 날아가면?’

큰 타격을 입을 거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전전긍긍 고민하며 오항로를 놓칠 수는 없다.

“그렇게 하죠.”

-그럼, 변호사를 보내겠습니다.

“변호사?”

-정치인의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죄를 믿어야죠. 계파 인물 중 한 명의 숨기고 싶은 치부, 딱 하나만 던져 주십시오. 변호사가 확인한 후에 숨겨 둘 겁니다. 물론 그 치부는 저도 모를 겁니다. 약속을 지키는 동안 드러나지도 않을 테고요. 마지막으로 대선이 끝나면 자연스레 파기하겠습니다.

도제성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오항로 의원의 소재지……. 박영훈 부회장도 알고 있습니다.

“……!”

-어떤 상황인지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조금만 늦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박영훈 부회장이 노리는 것은 ‘공소권 없음’입니다.

도제성 의원의 입이 꽉 닫혔다.

‘공소권 없음?’

살인이라도 저지르겠다는 말.

도제성 의원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거부할 수 없다.

그 말이 사실이 되면 민국당은 벼랑끝으로 몰려 버린다.

“변호사 보내 주세요.”

짧은 협상이 성립됐다.

-그럼, 변호사에게서 연락 오는 즉시 오항로의 소재지를 말씀드리죠.

전화가 뚝 끊겼다.

도제성 의원은 눈을 감는다.

입가엔 허탈한 웃음만 남아 있다.

‘이거 질질 끌려다녔어…….’

처음부터 끝까지, 성윤의 뜻대로 움직였다.

비록 오항로라는 약점이 있었다고 해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도제성 의원이 얼굴을 슥 매만졌다.

메마른 표정 속에 날카로운 눈빛이 드러난다.

‘이성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도제성 의원의 머릿속에 ‘이성윤’이라는 이름이 각인되고 있었다.

***

성윤이 통화를 종료했다.

운전하던 정우가 눈동자만 움직여 성윤을 본다.

“대선이 시작되면 민국당에서 한 명 보낼 생각이세요? 하긴, 시작부터 한 명 보내면 전략적으로 괜찮기는 하겠네요.”

“보내긴 누굴 보내?”

“네? 방금 도 의원이랑 통화할 때 민국당에서 한 명 보낼 테니까 가차 없이 내치라고…….”

성윤이 픽 웃었다.

“연막이야.”

“네?”

“내가 처음 했던 말이 뭐야? 우리당에서 지정한 사람은 네거티브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게 진짜 원하는 거야.”

정우가 눈을 깜빡인다.

상대 당의 공격을 받지 않을 사람.

상당히 중요 인물이라는 것인데…….

잠시 고민했지만 확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누군데요?”

“감이 안 와?”

“네.”

“안재열 대통령님.”

정우가 손뼉을 짝 쳤다.

“대박!”

안재열 전 대통령은 민국당에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 사람이 신당에 들어오면 민국당은 재해를 맞은 것과 같다.

눈을 시뻘겋게 뜨고 어떻게든 안재열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기 위해 애를 쓸 거다.

어쩌고저쩌고 아님 말고 등등등.

“헐뜯고 물어뜯기 위해 온갖 협잡질을 다 할 게 분명해. 그걸 1차적으로 막는 거야.”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다.

성공적으로 오항로를 빼내는 것.

성윤과 정우가 탄 차는 빠르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자동차의 와이퍼가 흔들거렸고 창문에는 툭툭툭 빗물이 묻기 시작했다.

그 시각, 오항로가 잠적한 펜션에도 빗줄기가 쏴아아, 쏟아지고 있었다.

“젠장.”

장한수 실장은 순식간에 진흙으로 변해 버린 길을 걷고 있었다.

갯벌도 아닌 곳인데 발이 푹푹 빠진다.

“하…….”

빗줄기가 굵어 시야를 가린다.

얼굴을 씻어 내며 한숨이 절로 내뱉어졌다.

그는 며칠 전부터 혹시 모를 테러의 위협에서 오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방금 성윤의 전화를 받았다.

‘대정에서 이쪽의 소재지를 파악했다고?’

대정의 직원이 직접 오지는 않을 거다.

만약 잘못됐을 경우 법적인 책임을 피해야 하니까.

아마 이런 일을 업으로 삼은 양아치를 고용했을 게 분명하다.

‘위험한데…….’

목숨을 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거침없이 상대를 죽일 수 있는가.

그런 놈들의 특징은 사람 목숨을 똥으로 안다는 거다.

규칙이 있는 승부라면 모를까, 룰이 없는 싸움은 부담스러웠다.

장한수 실장은 어느새 오항로가 잠적한 건물 앞에 섰다.

펜션 주인의 거처와 꽤 먼 거리에 있는 독채 건물이다.

장한수 실장은 귀를 대고 안의 소리를 들어 봤다.

상황도 모르고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저 병신 새끼, 크크크크.”

“요즘 저놈이 제일 핫하다고 합니다. 하하하.”

다행히 잠을 자거나 술을 처먹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텔레비전이나 보고 앉아 있다.

장한수 실장이 초인종을 꾹 눌렀다.

‘딩동’ 소리와 함께 안쪽이 확 조용해졌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다시 초인종을 누른다.

역시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게 몇 번 초인종을 누르던 장한수 실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성윤 의원님이 보냈습니다! 이곳으로 대정에서 보낸 깡패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피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말에 벌컥 문이 열렸다.

눈살을 찌푸린 오항로의 보좌관이 장한수 실장을 쏘아본다.

“대정에서 깡패를 보냈다고요?”

하지만 장한수 실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보좌관의 뒤로 오항로가 서더니 인상을 구기며 말했기 때문이다.

“누가 여기를 밝혔지? 대정에 알린 게 누구야! 이성윤이야!”

장한수 실장은 짜증이 났다.

지금 이런 실랑이를 할 때가 아닌데…….

“펜션 주인이 말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할 테니까 일단…….”

장한수 실장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나직이 욕설을 내뱉는다.

“씨발…….”

언덕에서부터 내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보인다.

성윤이 탄 승용차는 아니다.

저건 승합차…….

장한수 실장의 시선이 다시 오항로와 보좌관에게 향했다.

“어서!”

언덕에서 내려온 차량이 주차장에 멈춰 섰다.

승합차 두 대.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열 명 정도의 사내들이 모여 섰다.

그들의 중심에 한 남자가 섰다.

키는 180, 몸무게는 140, 턱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사람이다.

그가 입에 담배를 물며 휴대폰을 손에 쥔다.

“104호. 거기에 숨어 있다고 하니까 뒤져 봐. 온전한 상태로 죽여야 하니까 상품에 상처 안 나게 잘하고.”

“네!”

“가 봐.”

비가 거칠게 쏟아지지만 사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성큼성큼 독채를 향해 걸었다.

짐승같이 눈빛을 빛내며 이내 독채에 도착했다.

품에서 슥 칼을 꺼낸다.

굵은 빗방울이 칼날을 타고 흐를 때 벌컥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화장실을 열어 봐도 마찬가지.

“없습니다!”

“이미 눈치챈 것 같습니다!”

턱수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 의뢰인이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대포통장으로 어마한 돈이 들어왔다.

게다가 일을 끝낸 후 도망칠 루트까지 마련해 줬다.

이런 VIP 고객의 일은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없다고?”

그는 진흙 묻은 신발을 털지도 않고 거실로 들어갔다.

부하들의 말대로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소식을 듣고 튀었다는 것.

그가 텔레비전의 뒤를 만져 본다.

온기가 느껴진다.

‘이 새끼들이…….’

턱수염은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후레쉬를 들고 땅을 비춘다.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이 보인다.

발자국이 향한 곳은 산이다.

“이리 모여!”

부하들이 그의 앞으로 빠르게 모였다.

턱수염이 발자국을 비추며 입을 열었다.

“멀리 못 갔어. 이 주변에 있을 거야. 발자국을 쫓아서 추격하도록 해.”

부하들이 비가 쏟아지는 숲을 향해 빠르게 달려 들어갔다.

턱수염은 담배를 입에 문다.

‘이제 곧…….’

숨을 곳은 많지 않다.

게다가 비가 왔기 때문에 발자국까지 선명하다.

타깃은 금방 부하들에게 잡혀 올 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의 시선이 주차장으로 틀어졌다.

‘오늘 이 펜션에 숙박한 사람이 타깃 말고는 없다고 그랬는데…….’

그런데, 자신들이 타고 온 차량 말고 낯선 차가 세 대 더 있다.

하나는 펜션 주인의 자동차일 테고.

그의 시선이 다시 비에 젖은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이놈들 봐라. 장난질을 해?’

다른 독채 건물의 담벼락 뒤.

장한수 실장과 오항로 그리고 보좌관은 그곳에 숨어 있었다.

밖을 살피던 장한수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을 향해 달려갔어요. 우리가 만든 발자국에 속은 것 같습니다. 일단 큰길로 나가죠. 방금 이성윤 의원님께 메시지를 보냈으니까 금방 경찰이 올 겁니다.”

오항로와 보좌관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틀어 막 담벼락을 벗어나려 할 때…….

“개새끼들아!”

큰 소리가 비를 뚫고 울렸다.

동시에 장한수 실장의 입이 콱 다물렸다.

빗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덩치, 턱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란 남자다.

그가 비에 젖은 담배를 입에 물며 재수 없게 웃는다.

“머리카락 보였어.”

장한수 실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놈은 살인의 경험이 있다.

눈빛부터가 다르다.

장한수 실장과 달리 턱수염 남자는 느긋하다.

젖은 담배에서 빨아들인 연기를 내뱉으며 주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친다.

“다시 집합!”

그 한마디에 산으로 달려갔던 부하들이 몸을 틀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턱수염 남자는 부하들을 기다릴 생각이 없다.

그가 담배를 툭 던지며 입을 연다.

“누구부터 죽여 줄까?”

잔인하게 웃으며 품에 손을 넣는다.

칼을 꺼내려 하는 거다.

그런데, 턱수염 남자가 모르는 게 있었다.

장한수 실장은 유도 선수 출신이다.

그것도 국가 대표…….

깡패 한 명 정도는 문제도 아니다.

“어?”

턱수염 남자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이미 장한수 실장은 그의 옷깃을 쥐었다.

그리고 땅으로 메다꽂는 것은 찰나였다.

쾅!

턱수염 남자는 멍한 눈으로 검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투투툭, 빗줄기가 쏟아진다.

그대로 널브러진 거다.

일어나서 싸워야 하는데,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일어날 수 없다.

그가 충혈된 눈으로 피를 토하듯 외친다.

“씨발! 이 새끼들 다 죽여 버려!”

장한수 실장이 오항로와 보좌관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가요! 언덕만 넘으면 인가가 있어요!”

두 사람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장한수 실장도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힐끗 뒤를 바라보자 비에 젖어 마귀같이 달려오는 놈들이 보인다.

“미친 새끼들!”

하나같이 번쩍이는 칼을 들고 있다.

영화도 아니고 칼 든 사람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그것도 열 명.

가장 앞선 오항로가 빨리 달려 주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전직 국회의원의 체력은 좋지 않았다.

돌에 걸렸는지 제풀에 꺾였는지 자빠진다.

“크악!”

“의원님!”

보좌관이 오항로를 부축했다.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된 오항로가 발버둥 치며 어찌저찌 일어났다.

하지만 깡패들은 이미 근처까지 다가온 상태.

그들이 번들번들 웃으며 다가온다.

장한수 실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성윤은 그에게 위험할 것 같으면 피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씨발.’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장한수 실장이 한숨을 내뱉으며 깡패들을 바라봤다.

“한 놈은 확실히 죽인다.”

깡패들이 킬킬거렸다.

“지금 저 새끼가 뭐라고 한 거야?”

“영화를 많이 봤나 보네. 븅신 새끼.”

그때…….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깡패들의 시선은 모두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으로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며 계속해서 자동차가 내려온다.

경찰차, 승합차, 버스…….

“버스가 여길 왜 와!”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의 앞에 멈춰 선다.

경찰 병력이 내렸고 그들을 포위했다.

깡패들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욕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윤이 차에서 내렸다.

그가 장한수 실장 앞에 섰다.

“위험하면 빠지라니까요.”

장한수 실장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위험하지 않아서요.”

성윤은 장한수 실장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오항로를 물었다.

“어디 있어요?”

장한수 실장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틀었다.

진흙 범벅이 된 오항로가 보인다.

주저앉아 멍하니 있는 모습.

누가 봐도 오항로인지 모를 거다.

성윤이 그를 보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의원님? 이성윤입니다.”

상대는 도제성 의원이다.

“오항로 의원, 찾았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부터는 의원님 뜻에 맡기겠습니다.”

-바꿔 주겠습니까?

성윤이 오항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휴대폰을 쑥 내밀었다.

“받으세요. 도제성 의원님입니다.”

그 말에 오항로가 겁에 질린다.

‘난 이제 죽었다.’라는 표정이다.

멍하니 있는 그를 향해 성윤이 휴대폰을 흔들었다.

“받으세요.”

오항로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받아 귀에 댄다.

“여, 여보세요……?”

< 주고 받고.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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