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고 받고. - (1) >
***
“내가 운전할게.”
“옙.”
지하 주차장, 정우는 오항로를 감시하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운전은 성윤이 해야 한다.
정우가 조수석에 앉으며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읽는다.
“오항로를 감시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펜션에 도착했대요. 거기서 자리 잡을 것 같아요.”
“같이 간 사람은?”
“보좌관요.”
성윤이 시동을 걸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말고 관찰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해. 오랫동안 정차된 자동차, 일정 시간을 반복하면서 오가는 사람, 단 하나도 빼놓지 말고.”
“옙!”
정우가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성윤은 시선을 앞으로 향한다.
‘오항로…….’
오항로는 극단적인 메시지를 SNS에 올리고 잠적했다.
그 이유…….
검찰의 타깃이 되어 곤란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감옥에 가게 될 것이 뻔하다.
하지만 도움 받을 곳은 없다.
믿었던 민국당에서 버림받았다.
손을 잡았던 박영훈 부회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한 주사위를 굴렸다.
그게 잠적이다.
***
“아마추어처럼 내 이름으로 예약한 것은 아니지?”
남한강이 시원하게 보이는 펜션, 오항로가 캐리어를 풀며 물었다.
앞에 앉은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제 조카 이름으로 예약했습니다. 아무도 모를 겁니다.”
“전화는?”
“서울에서부터 꺼 뒀습니다.”
“잘했어. 일주일 동안은 뉴스만 확인하자고.”
오항로는 종료된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 뒀다.
그리고 비스듬히 앉아 텔레비전을 켠다.
-오항로 전 국회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고 잠적했습니다. 경찰은 오늘 오후 2시부터 소재 파악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오항로 전 국회의원은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서 대정 건설과 커넥션 문제로 검찰의 수사를…….
오항로의 입술이 뒤틀어졌다.
“개새끼들이 입은 살아서 주절주절……. 내가 손가락이나 빨다가 감옥에 갈 줄 알았지?”
옆에서 들리는 부스럭 소리에 오항로가 보좌관을 바라봤다.
백팩을 열고 뭔가 꺼내는 중이다.
“뭐 해?”
보좌관이 태블릿 PC를 꺼낸다.
“와이파이 전용 기기입니다.”
“댓글 읽을 수 있겠네?”
“네.”
오항로가 기분 좋게 태블릿 PC를 손에 쥐었다.
백팩에서는 뭔가가 계속 나온다.
시간을 때우기 위한 술과 담배, 과자…….
오항로가 담배를 입에 물며 태블릿 PC를 통해 기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항로의 잠적으로 각 당은 잘잘못을 따지는 중이다.
물론 공식 입장은 아니다.
SNS를 통해 각각의 의원들이 나불대는 중이다.
신당과 대한당 의원들이 민국당 의원들을 향해 말한다.
-너희가 오항로를 잔인하게 버렸잖아? 잔인한 새끼들, 그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질래?
민국당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책임? 미친놈들아! 시작은 너희였어. 검찰의 발표 하나에 설레발치며 공격한 것은 너희들이야!
기사를 확인하던 오항로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흐릿한 연기와 함께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병신 새끼들…….”
폭탄 돌리기, 오항로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경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민국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수사도 시작하기 전에 제명을 시켰으니까.
***
그 시각, 펜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
“저기야?”
“네.”
성윤은 정우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을 바라봤다.
오항로가 잠적한 바로 그 펜션이다.
성윤은 시선을 돌려 주변을 향했다.
바로 앞으로 남한강이 보이고 주변은 산책하기에 딱 좋다.
“신선놀음하고 있네.”
세상이 시끄럽든 말든 인생을 즐길 생각인가 보다.
성윤은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외부로 향하는 길은 이곳 하나만 있는 것 같다.
“길은 여기 하나?”
“네, 산을 넘지 않는 이상 도로는 이게 유일해요.”
“마트는?”
“마트는 좀 걸리고요. 가까운 편의점이 차로 15분 걸려요.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큰 가방 몇 개를 들고 들어갔대요. 먹을 것은 충분히 준비한 것 같아요.”
오항로는 서울 시장 후보까지 했던 사람이다.
곳곳에 얼굴이 알려져 있다.
밖에 나가면 곧바로 신고당할 게 분명하다.
담배를 사러 가는 간단한 일도 보좌관 혼자 움직여야 할 거다.
성윤은 시선을 다시 펜션으로 향했다.
오항로는 살기 위한 도박을 하는 중이다.
잠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국민의 시선이 집중될 테고 논란이 거세지며 각 당이 난처해질 것은 분명하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를 버린 민국당은 물론이고 신당과 대한당도 튈지 모를 불똥에 전전긍긍이다.
오항로는 그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도박이 성공만 한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겠지.’
민국당은 오항로를 통해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잃을 게 생겼다.
잠적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지율이 흔들릴 거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지지율 문제가 아니게 된다.
국민은 민국당을 향해 분노할 거다.
어서 빨리 협상 테이블을 준비해야 한다.
이게 오항로의 도박이 성공했을 경우다.
하지만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논란만 만들 뿐이야…….’
오항로는 이 도박 속에 자신의 목숨이 담보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가 엮인 상대는 민국당이 끝이 아니다.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이 있다.
그는 권력도 돈으로 만들어진 관계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다.
모든 인간은 돈에 지배된다고 생각한다.
‘진짜 죽을 수도 있어.’
성윤이 담배를 입에 물며 정우에게 말했다.
“장한수 실장에게 연락해서 당분간 여기에 있으라고 전해. 길지는 않을 거야.”
“장한수 실장도요?”
정우가 눈을 깜빡였다.
장한수 실장이 할 일은 성윤의 경호다.
그런데, 오항로를 감시하라니…….
성윤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답했다.
“오항로가 극단적인 메시지를 쓴 채 잠적했어. 이 상황을 이용해서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지?”
잠시 생각에 빠졌던 정우가 눈을 깜빡였다.
“설마…… 박영훈 부회장요?”
“어.”
“설마요. 사람이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한다고요?”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이득만 생각해 봐. 박영훈 부회장에게는 최적의 상황이야. 그 메시지가 현실로 일어나면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잖아?”
대정 그룹은 오항로의 뇌물 사건과 연관됐다.
그것도 200억 원의 거대 뇌물…….
열심히 돈을 풀어 검찰의 입을 막고 있지만 여론이 좋지 않다.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피의자가 사망한다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을 수 있어.”
성윤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지금은 잘 숨어 있는지 확인만 하면 됐다.
서울로 끌고 갈 수는 없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오항로는 언제고 다시 숨어 버릴 테니까.
그럼, 다음번에는 감시의 눈을 피해 사라질 거다.
그리고…….
‘내가 얻을 것도 없어.’
조금은 기다려야 했다.
***
“오항로는 국회의원이 아닙니다. ‘전’ 국회의원이죠. 아무것도 아니란 겁니다.”
박영훈 부회장은 다리를 외로 꼰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는 그룹 전략 기획실, 전략3팀장이 앉아 있다.
이름만 전략3팀이지 갖은 뒤처리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평소 막대한 연봉을 받으며 떵떵거리며 놀다가 한 번씩 더러운 일에 손을 담그는 자들.
박영훈 부회장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본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겠어? 전화기도 꺼 둔 것 같던데.”
“일주일……. 대한민국에 있다면 어디에 숨어 있어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리스크는?”
“크지 않습니다. 해안가, 하천에서 발견되는 변사체가 해마다 400에서 500건입니다. 이번 사건도 그렇게 만들어질 겁니다.”
전략3팀장이 을씨년스럽게 웃는다.
박영훈 부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그건 그렇게 하고.”
김용준 비서실장이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눈을 빛냈다.
이제 이 이야기는 모두 성윤에게 흘러갈 거다.
***
며칠 후.
성윤은 여주로 향하는 중이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퇴근 후에는 오항로가 있는 펜션 근처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번 운전은 정우가 하고 있다.
그가 라디오 버튼을 꾹 누른다.
오늘도 오항로에 관한 이야기로 시끄럽다.
-오항로 전 국회의원의 잠적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민국당은 ‘민국당 책임론’이 확산될까 우려하는 중입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에서 기자의 목소리로 변한다.
웅성대는 것이 시끄러운 현장을 대변해 주고 있다.
-도제성 의원님! 오항로 전 의원의 제명을 주장하셨습니다. 지금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오항로 전 의원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지 걱정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한 말씀 해 주십시오!
기자들은 오항로가 도제성 의원의 계파였던 것을 안다.
그래서 질문에 흥분한 도제성 의원이 돌발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도제성 의원이 기자들의 도발에 넘어갈 사람은 아니다.
굳은 표정으로 스쳐 갔을 거다.
“지지율은 변화 없지?”
“1~2%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각 당의 지지율은 변화가 크지 않다.
잠적이 며칠 되지 않았고 오항로 개인의 일탈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하지만 민국당에서는 한숨을 내뱉는 중이다.
지지율은 횡보하지만 악재는 악재.
도제성 의원이 매일같이 오항로라는 이름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러다가 진짜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면 지지율이 땅으로 곤두박질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라디오를 종료하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이성윤입니다.”
-김용준 실장입니다.
김용준 실장은 대정 박영훈 부회장의 비서실장이다.
성윤이 정우도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을 눌렀다.
“네, 말씀하세요.”
-우리 전략3팀에서 오항로의 위치를 파악한 것 같습니다.
위치를 파악했으면 움직여야 속이 풀리는 집단이다.
성윤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지금이 11시 40분.
“……혹시 이미 도착한 것은 아니겠죠?”
-출발한 지 30분 정도된 것 같습니다. 서둘러야 할 겁니다.
성윤은 휴대폰을 종료했다.
‘30분…….’
강남에서 여주의 펜션까지, 차가 밀리지 않으면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문제는 성윤이 도착할 예정 시간과 비슷하다는 것.
‘아슬아슬하겠네.’
성윤이 입을 연다.
“밟아.”
“옙.”
정우가 시원하게 답하게 액셀을 꾹 밟았다.
그러자 엔진이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성윤은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
같은 시각, 도제성 의원의 사무실.
그의 계파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린 채 모여 있다.
테이블 위로 험한 소리가 오가는 중이다.
“오항로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까? 강 의원, 오항로랑 친했잖아요!”
강 의원이라 불린 사람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지금도 친하겠어요? 그렇게 쫓아냈는데? 그러는 장 의원님은요? 매일같이 술 마셨잖아요?”
구석에 있던 흰머리 의원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 씨발……. 죽은 거야, 산 거야?”
“죽었다니! 말조심해요!”
그럼, 진짜 큰일이다.
대권을 노리는 민국당에는 최악의 악재.
도제성 의원의 이미지는 쓰레기가 될 거다.
흰머리 의원이 겸연쩍게 입맛을 다셨다.
“에잉…… 답답하니까 그런 거지. 미안해요, 미안해.”
다들 한숨만 내뱉고 있다.
어느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던 중 한 젊은 의원이 턱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을까요?”
“뭐? 연예인 같은 거요?”
“네, 연예인 비디오도 좋고……. 터뜨릴 만한 것, 기획된 것 없어요?”
열애설이야 시시각각 터진다.
하지만 연예인 범죄는 다르다.
꽁꽁 숨겨 둔 채 잘 기획해 뒀다가 국민의 눈을 돌려야 할 때 ‘쾅!’ 하고 터뜨리기도 한다.
검사장 출신의 의원이 휴대폰을 들었다.
“검찰에 전화해서 한번 물어볼게요. 이런 것은 외곽이 아니라 중심부터 쳐야 하거든요.”
모두 눈을 반짝이며 검사장 출신 의원을 바라봤다.
그의 전화 한 통에 기대는 거다.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국민의 눈이나 돌리려 하고……. 참 한심한 일이다.
도제성 의원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의 휴대폰이 지이잉, 울린다.
눈동자만 움직여 발신 번호를 확인한다.
모르는 번호, 평소라면 받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회의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도제성 의원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일어섰다.
“말씀들 나누고 계세요.”
그가 회의실을 벗어나 복도로 나가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서안시 동구 이성윤 의원입니다.
도제성 의원의 눈에 의문이 차올랐다.
“누구요? 이성윤? 신당의 이성윤?”
자신이 아는 이성윤이 맞는지 다시 확인하는 거다.
신당의 이성윤이 도제성 의원에게 전화할 일이 없으니까.
‘그런데, 왜?’
도제성 의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죠?”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거래요?”
도제성 의원과 성윤의 레벨은 맞지 않다.
성윤은 당에서 어떤 당직도 맡지 않았다.
하지만 도제성 의원은 대한민국 거대 정당인 민국당의 대통령 후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아 거래를 운운할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성윤은 단호히 말한다.
-네, 거래.
도제성 의원은 성윤을 무시하지 않는다.
적어도 회의실에서 떠벌리는 의원들과는 다를 것 같다.
그가 차분히 입을 연다.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오항로 의원을 건네드리겠습니다. 소재지를 알고 있습니다.
“오항로?”
-네.
도제성 의원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뭐지?’
오항로의 잠적이 길어져야 신당에 유리하다.
그런데, 넘겨주겠다니.
그럼, 더 큰 걸 원한다는 건데…….
< 주고 받고.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