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86화 (186/300)

< 토사구팽. - (3) >

“어떻게 할까요?”

정우의 말에 성윤이 팔짱을 끼며 되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오항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토사구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사람이란 게 그렇잖아요. 자기 잘못은 모르고 언제나 남 핑계를 대죠. 특히 오항로가 그래요. 내로남불의 끝판왕……. 어쩌면 복수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하지만 민국당은 오항로를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버린 사람, 낙선한 인물, 밟아도 비명조차 지를 수 없으니까요. 지금 민국당이 신경 쓰는 것은 하나, 이 사건을 어떻게 포장해서 미담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니 고민하겠죠.”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미담은 잔혹하다.

지켜 줄 것이라 생각했던 계파는 오항로를 버렸다.

수사가 시작하기도 전에…….

의리란 없으니까.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해.”

“제가요?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어.”

꿈속의 미래, 오항로는 서울 시장에 당선된 후 평생 꿀을 빨며 살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는 낙마했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다리가 박살나 버렸다.

정우는 지금부터 오항로의 다친 다리를 치료해 주며 그를 회유할 거다.

도제성 의원의 머리를 노릴 탄환을 준비하기 위해.

이 바닥에 영원한 친구는 없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손을 잡을 뿐.

“그럼, 그렇게 할게요.”

“응.”

정우가 나가기 위해 서류를 정리한다.

그러다가 힐끗 책상에 놓인 책을 바라봤다.

낯선 책이 산더미처럼 있다.

“그런데, 이게 뭐예요?”

“뭐가?”

“의원님 책상이랑 어울리지 않잖아요?”

의학 서적이 가득하다.

위내시경부터 시작해서 위염, 위암…….

정우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어디 아프세요?”

“걱정하지 마. 난 건강하게 살다가 다리 잃고 병 걸린 후에 총 맞아 죽을 거니까.”

“요즘 이상한 말씀 자주 하는 거 아세요?”

“쏘리.”

정우는 성윤을 이상한 눈으로 째려본 후 방을 떠났다.

성윤은 다시 의학 서적을 손에 쥔다.

“위암…….”

대한민국은 위암 발생률이 가장 높은 국가다.

미국보다 10배 높은 수준, 인구 10만 명당 오륙십 명의 위암 환자가 발생한다.

조기에 발견하면 80%가 넘는 생존율을 보이지만 말기에는 5~10%.

‘이번에 나왔으면 하는데…….’

성윤은 그녀의 암세포를 조기에 찾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수술 후 건강해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

주말, 성종 병원.

정덕진 시장과 그 가족이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이 위내시경을 받은 후 잠에 취해 있을 때…….

담당 의사의 진료실이 ‘딸칵’ 열렸다.

그리고 성윤이 나타났다.

의사는 지난번 만났던 위암의 권위자.

성윤을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서 오세요.”

“어떻습니까?”

“글쎄요. 정덕진 시장님은 특별한 것이 없어요. 그리고 사모님은…… 역류성 식도염이 보이지만 역시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고요.”

“정혜성 씨는요?”

“염증이 있는데…….”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겁니까?”

성윤은 의사의 말까지 끊으며 다급히 물었다.

하지만…….

“아뇨. 가벼운 염증이라…….”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없나? 아직인가?’

혹시 모른다.

성윤은 책을 읽고 얻은 어설픈 지식으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암이 변형되었거나 내시경이 잘 닿지 않는 곳…… 또는 염증 속에 숨어 있을 경우에는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어떤 확신을 가지셨는지 모르겠지만 피검사도 했으니까 수치가 나올 겁니다. 뭔가 이상이 보이면 정밀 검사를 할 테니까…….”

“죄송합니다. 사진을 한 번만 더 확인 부탁드립니다.”

성윤의 간절한 눈빛에 의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니터를 응시하며 영상을 넘기기 시작했다.

“여기가 상부입니다. 깨끗하죠. 그리고 중부…… 이어서 하부…….”

영상은 슥슥 지나간다.

그러다가 의사의 손이 뚝 멎는다.

“어?”

그가 사진을 되돌렸다.

그러더니 최대한 확대한다.

집중하지 않았으면, 다시 보지 않았으면 모를 무엇인가가 보였다.

아니, 숱하게 위암 수술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면 몇 번을 봤어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다.

“이거…… 너무 작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되는 거죠? 초기입니까? 아니면…….”

성윤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의사가 긴장된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 크기가 작아 깊이도 얕을 겁니다. 점막만 잘라 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어요. 의원님 덕에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었네요.”

성윤은 의사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오히려 의사가 허리를 굽힌다.

“아이고, 이러지 마세요. 의원님이 저를 도와준 겁니다. 서울 시장의 따님에게 오진을 했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 아찔합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의사의 앞에 정덕진 시장과 그 가족이 앉았다.

건강검진을 받고 나면 모두 똑같이 불안하다.

모르고 있던 병이 불쑥 튀어나오지는 않았을지 두려우니까.

의사는 최대한 따듯한 목소리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시장님은 건강하세요. 하지만 당뇨가 약간 있으니까…….”

이후에는 시장의 아내다.

“사모님께서는…….”

역류성 식도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리고 의사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정혜성에게서 멈췄다.

“조금 더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지금 제 소견으로는 암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정혜성의 눈빛이 흔들린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암이라니…….

딱딱히 굳어지는 표정을 보며 의사가 최대한 안심시키려고 노력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위암은 초기와 말기로 나뉘는데 지금은 초기입니다. 내시경 시술로 점막만 제거하면 예후는 좋을 겁니다.”

그녀의 엄마가 신음을 내뱉으며 물었다.

“다행인 건가요? 괜찮은 건가요?”

“네. 좋게 생각하세요. 만약 나중에 발견됐다면 기적만 바라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발견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난 거라고 할 수 있죠.”

의사의 말을 듣던 정덕진 시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성윤…….’

이 건강검진을 준비한 사람이 성윤이다.

가족을 데리고 가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도대체……?’

성윤이 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윤만 생각하면 미칠 것처럼 감사하기만 했다.

정덕진 시장이 정혜성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괜찮을 거야. 다행이야, 다행…….”

정혜성도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정덕진 시장의 가족들은 진료실을 벗어났다.

시장과 아내는 잠시 다른 곳에 갔고 정혜성만 혼자 대기실에 남았다.

그녀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암……?’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괜찮다고?’

의사는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괜히 무섭다.

일반인에게 ‘암’이라는 단어는 사형선고처럼 느껴지니까.

그때, 그녀의 옆을 간호사들이 지나쳤다.

“이성윤 의원이?”

낯익은 이름에 그녀가 고개를 틀어 간호사들을 향했다.

간호사들은 계속해서 재잘 거린다.

“그래.”

“그런데, 김 선생님이 다시 봐 줬어? 그 자존심이 센 사람이?”

“그치?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통령이 부탁해도 안 해 줄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성윤 의원이 확신하는 눈으로 간절히 말하니까 자기가 놓친 게 있는지 의심이 든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상을 다시 본 거지.”

“그런데, 암이 발견됐다고?”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박이지? 김 선생님도 이성윤 의원이 나가고 그랬어. 암이 있는 걸 알고 있던 것 같다고.”

“그걸 어떻게 알았대? 다른 병원에서 검진받은 적 있나? 아니, 처음이라고 그러지 않았어? 그럼, 신기 있는 거야?”

“왜? 신기 있으면 물어볼 거 있어?”

“로또 번호?”

간호사들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정혜성은 조용히 간호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순간, 그녀의 귓속에 의사가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기적이 일어난 거죠.

그녀가 성윤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이성윤 의원님……?”

***

그 시각, 성윤은 서안시 사무실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출근한 사람은 정우 혼자다.

정우는 테이블에 앉아 뭔가를 뒤적이고 있다.

“오셨어요?”

“어.”

성윤은 자리에 앉아 넥타이를 풀었다.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데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의사다.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 정혜성 씨, 바로 우리 병원 암 병동에 정밀 검사 예약 잡고 시술 날짜까지 결정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몇 번의 감사를 전하고 휴대폰을 내려 뒀다.

긴장으로 답답하던 차에 한숨이 내뱉어진다.

‘이제 끝.’

정혜성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그녀의 행복과 건강한 미래를 빌어 주면 된다.

그리고 성윤은…….

‘난 지옥으로 가야지.’

잠시 그녀의 건강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성윤이 서 있을 자리는 그녀의 옆이 아니라 더러운 정치판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가면을 쓰고 칼을 숨긴 사이코패스들의 놀이터.

“정우야?”

“옙.”

정우가 성윤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항로 의원은 연락해 봤어?”

“아뇨, 아직요. 지켜만 보고 있어요.”

“지켜봐?”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항로는 거물이에요. 잘못 접근했다가는 놓칠 거예요. 그래서 24시간 지켜보다가 이때다 싶을 때 미끼를 던지려고요. 오늘은 여주에서 놀고 있네요.”

“이유는?”

“박무혁 의원님이 대정과 연관 있잖아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섣불리 만났다가 역공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정우는 오항로를 향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중이다.

그는 검찰의 조사를 기다리는 사람이며 상대 당의 후보였던 사람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생각한 대로 역공을 당할 수 있다.

“좋아, 그럼 안재열 대통령님 카드는 언제 꺼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잠시만요.”

정우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에서 종이 한 장을 손에 들었다.

이번 주에 최종적으로 발표된 각 당의 지지율이다.

지방선거는 성공적이었지만 당의 지지율은 민국당에 비하기 어렵다.

잠시 지지율을 살펴보던 정우가 입을 연다.

“안재열 대통령님의 민국당 탈당 카드는 지금쯤. 신당 입당은 10월쯤? 더위가 끝나고 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가 좋을 것 같아요.”

“탈당 카드는 지금?”

“네, 지방선거 끝나고 오항로 의원의 커넥션으로 바람몰이를 하려고 했거든요?”

정우는 오항로를 통해 민국당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민국당은 도마뱀처럼 꼬리를 끊어 버렸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제명을 시켜 버렸으니 닭 쫓던 개 지붕이나 쳐다보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 정치권에는 이슈가 없다.

“이럴 때 안재열 대통령님의 탈당 카드로 한번 흔들어 주면 민국당은 흔들리고 우리 당은 공고해질 것 같은데요. 지지자들이 대한당으로 이동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오케이. 안재열 대통령님께는 직접 찾아뵙고 부탁드리는 게 맞겠지?”

“네.”

“다음 주쯤에 스케줄 잡아.”

“옙.”

“그리고 복지 법안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은 좋은 복지 제도가 있어도 혜택을 받기 힘들다.

주로 온라인을 통해 홍보되기 때문이다.

컴퓨터나 휴대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 또는 장애인의 경우 확인하기 어렵다.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잖아? 우편 배송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 소요 예산과 재원 조달 방법을 생각해 봐. 아니, 직접 찾아가서 설명할 방법은 없나?”

“알아 볼게요.”

지방선거 그리고 정혜성으로 인해 잠시 멀리했던 업무다.

하지만 이제 그 일은 끝났다.

다시 업무를 몰아쳐야 한다.

지금까지 들어온 민원을 확인하는 시간만 몇 주는 걸릴 것 같다.

정우가 수첩을 꺼내 성윤의 말을 적는다.

“또 있어요?”

“잠깐만.”

성윤이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러던 중…….

지이잉,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어?’

공대출 의원이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전화가 온 것은 처음이다.

“네, 의원님.”

-소식 들었어?

반갑게 인사를 하려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채웠다.

“소식요?”

-오항로!

목소리가 불길하다.

뭔가 일이 터졌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틀어 봐!

성윤의 눈짓에 정우가 텔레비전을 틀었다.

속보라는 글씨와 함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린다.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섰던 오항로 전 의원이 자신의 SNS에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고 잠적했습니다.

성윤이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을 내려 뒀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틀어 정우를 향했다.

“알아?”

정우는 계속해서 오항로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말씀드렸잖아요, 오늘 여주에 갔다고…….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성윤이 재킷을 손에 들었다.

“가자.”

오항로는 숨자마자 잡히게 생겼다.

< 토사구팽.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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