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84화 (184/300)

< 토사구팽. - (1) >

***

오전 9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느새 굵은 빗줄기가 투투툭 쏟아진다.

각 당의 관계자들은 날씨를 걱정한다.

“이거참…….”

콘크리트 지지자들은 태풍이 몰아쳐도 투표장에 나타난다.

하지만 중도는 다르다.

날씨에 따른 영향이 크다.

귀찮다고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덕에 신당은 울상이다.

대한당과 민국당에 비해 이들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의 표심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비가 이렇게 오면…….”

“하…… 투표소에 오는 유권자 숫자가 떨어지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전체 숫자가…….”

신당의 관계자들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하늘만 바라본다.

하지만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야속하게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

신당의 당사에 검은 차량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거 개표 방송을 함께 볼 의원들과 당직자들이다.

성윤의 차도 막 지하 주차장에 주차됐다.

차량에서 내리자 정우가 넥타이를 건넨다.

“땡큐.”

성윤이 넥타이를 맨다.

성윤은 물론 정우의 표정도 굳어 있다.

오늘 아침, 연구소에서 들어온 지지율을 보면 서울 시장 선거는 단 0.4%만 차이난다.

접전이 분명하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성윤이 물었다.

“서안시는?”

정우가 품에서 지지율이 적힌 종이를 꺼내봤다.

“임인혜 시장이 58%, 압도적으로 이길 것 같아요.”

“경기는?”

“접전이죠.”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오가던 당직자들이 성윤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날씨 탓인지 모두 어두운 표정이다.

성윤은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방송을 시청할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하다.

이번 선거로 서울 및 각 지사가 17명, 시장이 226명, 광역 의원과 기초 의원이 3750명 탄생한다.

신당이 노리는 광역 단체장은 서울과 경기, 충청 세 곳, 시장은 서안시를 포함해 스물세 곳, 지방단체장은 여덟 곳, 광역 및 기초 의원은 500석을 노리고 있다.

물론,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와도 대한당과 민국당을 넘어설 수는 없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민심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성윤이 박무혁 의원에게 허리를 굽혔다.

박무혁 의원이 가볍게 손을 흔든다.

“왔어?”

모두가 어두운 가운데 박무혁 의원의 표정만 밝다.

평소처럼 느긋하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틀어 성윤을 향한다.

“이 의원 생각은 어때? 당의 목표가 아니라 내 개인의 목표.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박무혁 의원이 노린 것은 서울과 경기 그리고 서안시 싹쓸이다.

“서안시를 제외하고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적인 대답 말고 이 의원의 생각을 이야기해 봐.”

“네?”

“언제나 딱딱 맞혀 왔잖아?”

그건 꿈을 통해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꿈속에서 봤던 미래와 전혀 다르다.

신당이 창당되었고 없었던 후보들이 튀어나왔으니까.

하지만…….

“이길 것 같습니다.”

“확신?”

“거의.”

박무혁 의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확신한다 이거지?”

“아, 네. 조금은요.”

“됐어. 조금 긴장하고 있었는데, 느긋이 볼 수 있겠네.”

박무혁 의원이 쭉 기지개를 켜며 텔레비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언제 긴장을 했다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긴장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텔레비전에 집중되었다.

화면에 ‘국민의 선택!’ 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 하게 박히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4,3,2,1!

단정한 차림의 아나운서가 나와 빠르고 긴장감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광역 단체장 선거, 민국당 여덟. 대한당 다섯, 한민당 하나, 무소속 하나, 접전 지역은 두 곳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무소속은 제주도, 접전 지역은 서울과 경기입니다. 광역 단체장 열일곱 개 선거구 가운데 민국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화면이 바뀐다.

서울시 지도와 함께 민국당 오항로 후보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관심 지역 출구 조사 결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서울 시장입니다. 접전 지역으로 민국당 오항로 후보가 37.4% 예측 1위로 나타났습니다.

오항로 후보가 1위.

정덕진 후보는 2위다.

그런데, 신당의 의원들이 박수를 보낸다.

“잘했어!”

“충분히 뒤집겠네!”

선거운동이 시작됐을 때 압도적으로 밀렸다.

그런데, 지금의 출구 조사는 단 0.1%의 차.

기적이다.

언제 뒤집어도 이상하지 않다.

화면을 보던 박무혁 의원이 중얼댄다.

“서울과 경기를 잡으면…….”

이번 지방선거 유권자 숫자는 약 4300만 명.

그중 경기도가 약 970만 명이고 서울이 약 840만 명이다.

두 지역만 잡아도 대선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다.

물론 모든 서울 시민과 경기 도민이 박무혁 의원에게 투표하지는 않겠지만 얻을 수 있는 상징성은 크다.

본격적으로 개표가 시작됐다.

한 곳, 한 곳, 당선자가 나타났다.

그 순간마다 당사의 복도는 여러 감정이 오간다.

고개를 숙이고 풀 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당직자.

그 옆을 지나치며 애써 기쁨을 숨기는 사람.

이게 선거다.

승리한 사람은 꽃다발을 목에 걸고 환호를 지른다.

방방 뛰고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눈다.

하지만 패배한 사람은 다르다.

선거를 위해 직업까지 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감정을 추슬러야 한다.

그렇게 새벽 3시.

경기도는 용접공 김태남이 극적으로 승리하며 당선 확정을 지었다.

신당에서 경기도 지사를 만들어 내며 모두가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다.

접전 지역인 서울 시장은 아직 소식이 없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실시간으로 순위만 바뀌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항로 후보가 갑자기 앞서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일 정도다.

동시에 오항로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신당 의원들의 입에서는 “아…….” 하는 탄식이 흐른다.

절망감, 패배감, 어떻게 말할 수 없는 무력감.

“끝인가?”

그 말에 한 의원이 신경질적으로 일어섰다.

“몇만 표 차이도 안 나는데 왜 한숨이야! 복 나가니까 한숨 쉬려면 밖으로 나가!”

“현실은 인정해야죠! 이제 남은 선거구가 몇 개 없어요! 상자 다 깠다고요! 이 상황에 몇만 표를 어떻게 뒤집어요. 지금 방송국 놈들도 당선 확정이냐 유력이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걸요?”

의원들의 옥신각신하는 소리를 들으며 박무혁 의원은 시선을 돌려 성윤을 바라봤다.

성윤은 초조해하지 않는다.

담담한 표정으로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박무혁 의원이 빙긋이 웃는다.

“마지막까지 모르는 겁니다. 조용히 지켜보죠.”

“네?”

“이 의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이 의원은 언제쯤 우리의 승리가 확정 날 것 같아?”

“30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30분이라…….”

모두의 시선이 벽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

박스가 몇 개 안 남았는데 30분 후에 신당의 승리라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박무혁 의원이 기분 좋게 웃었다.

“우리 중에 이 의원의 촉이 가장 뛰어날 거예요. 믿어도 좋을 겁니다. 느긋하게 지켜보세요.”

의원들이 어색하게 웃는다.

믿는 눈치는 아니다.

하지만 정확히 30분 후.

“어?”

“저, 저거!”

정덕진 후보가 다시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당선 유력이라는 글씨가 ‘쾅!’ 하고 박힌다.

신당의 의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벌떡 일어섰다.

함성이 들린 것은 한참 후다.

***

“30분은 어떻게 맞힌 거예요?”

신당 당사 옥상에 마련된 흡연실, 정우가 성윤에게 담배를 건넸다.

“아, 30분? 그건 찍었어.”

“네?”

“오항로가 앞서던 상황이었잖아. 시간은 거의 끝났고. 30분 안으로 뭔가 확정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거야.”

“하하, 맞혀서 다행이지 틀렸으면…….”

“뭐, 잘 얼버무렸을 거야.”

성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난간으로 몸을 돌렸다.

새벽의 시원한 공기와 함께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우리가 서울, 경기, 충청이지?”

“네, 서안시는 신당의 깃발로 뒤덮였고요.”

정우에게는 서안시가 더 중요하다.

성윤의 정치적 고향이자 기반이 될 곳이며 앞으로 이곳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해 나갈 것이다.

다행히 이번 선거에서 서안시는 신당의 물결로 채워졌다.

시장은 물론 구청장, 각 기초 의원은 모두 신당의 사람이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대선을 준비해야겠네.”

“네.”

유리한 고지는 섰다.

이제 이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성윤의 입에서 내뱉어진 흐린 연기가 흩어졌다.

***

며칠 후 밤, 서울 시장 당선 파티가 열렸다.

캠프 관계자와 당직자가 모이는 자리인 만큼 3층까지 있는 대형 고깃집 전체를 전세 냈다.

당선 파티는 언제나 광란의 도가니다.

특히 이번처럼 기적 같은 승리 뒤에는 모두 미쳐 있다.

잠 한숨 못 자고 쉼 없이 달려온 자리다.

주량을 생각하지 않고 컵에 소주를 채워 마시고 있다.

“그동안 욕을 처먹었으니까 소주로 위장을 소독시켜야 해! 안 그러면 처먹은 걸 소화 못 해요!”

“그러다 죽을 것 같은데요.”

“에이에, 이래야 건강해지는 거야. 소주는 약이라고! 알지?”

허리띠를 풀고 고기를 쉬지 않고 쑤셔 먹는 사람도 보인다.

1시간이 흘렀을 때, 테이블마다 만취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다.

기쁜 날이니까.

그리고 방송국 인터뷰다 뭐다 그동안 바쁘게 지낸 정덕진 시장이 캠프 관계자들 앞에 섰다.

“모두 잔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 덕에 제가 시장이라는 과분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덕진을 도와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보다 지루한 건배 제의다.

하지만 취한 사람조차 또릿또릿한 눈으로 경청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시장이니까.

그것도 서울 시장.

“앞으로 멋진 시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덕진 시장이 잔을 들어 올렸다.

사람들은 옆에 앉은 동료와 잔을 부딪치며 기분 좋게 웃는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 있는 성윤의 옆으로 공대출 의원이 앉았다.

이미 많은 소주를 마셨는지 얼굴이 붉다.

그가 성윤을 보며 묻는다.

“안 좋은 일 있어?”

“네? 아뇨. 없는데요.”

“그래?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공대출 의원은 성윤이 보고 있던 곳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그곳에 정덕진 시장의 딸 정혜성이 보인다.

“아…….”

공대출 의원이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선남선녀지.”

“네?”

“나도 처음부터 나이가 들었던 게 아니야. 이 의원처럼 젊은 시절이 있었어. 그 나이에는 예쁜 여자만 보면…….”

“스물여섯에 결혼하셨잖아요? 제 나이에 예쁜 여자를 보고 다른 생각을 하셨다면 불륜인데요.”

“어허, 상대 당에서도 벨트 아래 이야기는 봐주는 것 몰라?”

“모르겠습니다.”

공대출 의원이 낄낄 웃으며 음료를 마신다.

“서울 시장의 딸, 정치적으로도 괜찮고. 게다가 예쁘고 참하기까지 하네. 딱이야, 딱.”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힐끗 정혜성을 본다.

‘술을 마셔?’

건강이 좋지 않던 그녀다.

가벼운 맥주 한 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주는 대로 술을 마시고 있다.

‘저러다가 아프면 어쩌려고. 아니, 저렇게 술을 마셔서 아팠던 것 아니야?’

갑자기 욱하는 감정이 솟구친다.

루빨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라도 그녀를 병원에 보내야겠다.

그때, 정혜성과 딱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살짝 웃은 후 자리에서 일어선다.

성윤에게 다가오려 하는 것 같다.

눈치 빠른 공대출 의원이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다른 자리로 옮겨 간다.

“난 이 의원 편이야.”

이렇게 능글맞은 말을 남기면서…….

그리고 정혜성이 성윤의 옆에 앉았다.

“선거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뵙기 힘들겠네요.”

성윤은 국회로 향하고 그녀는 학교로 돌아간다.

어쩌다 한 번 볼 수는 있겠지만 못 본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성윤의 눈치를 살핀다.

“가끔 연락드려도 될까요?”

거절하려고 하는데, 눈치 없는 놈이 쑥 끼어든다.

“물론입니다.”

정우다.

이놈이 명함까지 건네고 있다.

“우리 의원님의 전화번호는 언제나 열려 있어요. 형수님으로 모실 테니 새벽에라도 전화 주십시오.”

어디서 술으르 마셨는지 이놈도 취했다.

눈동자에 알코올 기운이 가득하다.

“……형수님요?”

“아하하하, 뭐 그렇다는 거죠.”

정혜성은 당황했다.

하지만 정우는 자신의 무릎을 치며 좋아한다.

그런데, 이 모습…….

‘데자뷔 같아.’

본 적이 있다.

병원 침대에 정혜성이 앉아 있고 그 앞에 정우가 앉아 있었다.

정우가 낄낄대며 “역시 이겨 낼 줄 알았어요! 이제 재발은 없을 겁니다. 하하하.” 하고 무릎을 치며 좋아하던 모습.

하지만 그녀는 얼마 후 사망했다.

‘술 마시지 말라니까!’

기억났다.

어디가 아팠었는지…….

< 토사구팽.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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