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81화 (181/300)

< 뜬 구름 잡기. - (2) >

자신은 압도적인 힘으로 무엇이든 해 줄 수 있다고 전하는 중이다.

하지만 성윤은 알고 있다.

그가 내민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질질 끌려다녀야 한다는 것을…….

“오항로 후보에 관한 일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필요한 게 없습니다.”

“편히 말해요. 때 묻은 것을 깨끗이 씻어 주는 게 내 장기니까요. 나랏일을 하는 데 필요한 게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정말 없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회장님께서 건강하시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성윤은 달콤한 말을 입에 담으며 다시 정중히 거부했다.

윤 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더 제안해 봤자 내민 손만 민망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알았어요. 아들놈에게 잘 일러 두겠습니다. 이 의원님께서 청와대로 가는 길을 잘 닦아 두라고요.”

말만 들으면 윤범성 부회장이 성윤을 위해 일할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반대다.

성윤을 윤범성 부회장의 손발로 만들려는 거다.

법안부터 시작해서 여러 비리를 묻어 주고 용돈이나 받아 처먹는 사람으로…….

빤히 알고 있지만 성윤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종종 놀러 와요. 노인네 혼자 앉아 있으니 영 적적해서 심심해요.”

이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자주 찾아오려 했으니까.

윤 회장의 눈과 귀를 막아야 윤범성 부회장의 세습을 막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윤범성 부회장과 식사 자리를 약속하겠습니다.”

“좋은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윤 회장은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진 상태다.

정정한 척하지만 피곤한 눈빛을 숨기기는 힘들다.

성윤은 고개를 숙인 뒤 병실을 떠났다.

복도로 나온 성윤은 몸을 돌려 닫힌 문을 바라봤다.

‘윤 회장…….’

정치와 손잡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사람.

‘당신이 직접 만든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져오겠습니다.’

직접 만든 회사는 몇 개 없다.

정치의 힘을 빌려 빼앗은 것이 대부분이다.

‘당신의 사후, 윤범성 부회장은 원래의 것만 갖고 있을 겁니다.’

성종 그룹, 사람들은 윤씨 일가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윤씨 일가가 소유한 지분은 단 5%.

그 5%와 순환 출자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성종은 왕조라 불린다.

세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의 이씨 왕조를 생각하면 세종 대왕 같은 성군도 있었지만 암군도 존재했다.

윤 회장은 성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그것은 인정해야 하지만 그 아들인 윤범성 부회장은 암군이 될 거다.

성종의 경쟁력을 후퇴시킬 게 분명하다.

호랑이의 배에서 호랑이 태어난다는 믿음.

그 믿음 하나로 대한민국의 경제를 맡길 수는 없다.

성윤은 몸을 돌렸다.

언젠가 성종 그룹을 손에 넣을 거다.

그리고 ‘바르게’ 되돌려 놓을 계획이다.

‘죄송합니다. 그때까지 철저히 이용하겠습니다.’

그리고 병실에는 윤 회장만 남았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이성윤이라…….”

문이 열리고 정기화 실장이 들어왔다.

그가 윤 회장의 앞에 서서 묻는다.

“어떠셨습니까?”

“호랑이야, 호랑이. 그것도 이무기를 잔뜩 처먹은 호랑이야.”

“네?”

알 수 없는 말에 정기화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 회장이 벽에 등을 기대며 말한다.

“처음 봤어. 내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내 반응을 관찰하더라고. 고약한 놈이야……. 하긴, 그 정도 배짱이 있으니까 저 나이에 재선 의원을 해 먹고 앉아 있겠지.”

정기화 실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윤 회장이 말을 잇는다.

“이성윤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겠어. 지금은 새끼 호랑이지만 곧 날개를 달 것 같아. 적이 되면 가장 무서운 놈이야. 그런데, 저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어. 돈 많은 놈에게 돈을 주는 것만큼 미친 짓은 없고…….”

윤 회장은 오랜 세월 정상에 서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가 만난 사람 중에는 대통령도 있었으며 세계적인 기업인도 있었다.

사람 보는 눈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여기까지 즐거운 목소리로 말한 윤 회장이 표정을 굳혔다.

“범성이 불러.”

“알겠습니다.”

잠시 후, 윤범성 부회장이 병실로 달려들어 왔다.

아직 승계가 완벽히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노인네의 변덕에 의해 후계 자리에서 밀려날 수도 있으니 부르면 재깍 달려와야 했다.

“부르셨습니까?”

잠시 누워서 휴식을 취하던 윤 회장이 몸을 일으켰다.

“질문 하나 하자.”

싸늘한 목소리에 윤범성 부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질문?’

시험을 치르자는 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받는 평가.

또 시작됐다.

“정치권에는 문제가 없지?”

“네, 없습니다.”

“이번 지방선거,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줄 건가?”

우습지만 정치권이 변하면 기업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반기업 정서를 가진 정치인이 득세하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총수는 검찰을 드나들어야 하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다.

그래서 기업은 어느 당이 권력을 얻을 것인지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현 정부의 문제로 대한당이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국당 인사들과 교류를 이어 가는 중입니다. 물론 대한당도 섭섭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윤 회장이 원하는 답이 아니다.

윤범성 부회장의 입에서 ‘신당’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양다리를 걸친다는 건가? 그래, 대한당은 그렇다 치고 민국당은 이미 대정에서 빨대를 꽂았다고 하던데?”

“한 당에 뿌리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은 한 치 앞을 모르는데, 갑자기 대한당이 치고 올라오면 대정은 골치 아파질 겁니다.”

정치권에서 마음만 먹으면 기업 하나 흔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검찰을 움직여 망신을 주고 국세청을 통해 업무를 마비시킬 수 있다.

그래서 윤범성 부회장은 한쪽에 올인하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런데, 윤 회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신당은?”

“네?”

“박무혁이하고는 잘 지내나?”

“……최근에는 연락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성윤은?”

“아직 어리고 국회에서의 지배력이 약하기 때문에…….”

급기야 윤 회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10년, 20년을 그려야 하는 놈이 바로 앞만 보고 있어!”

“네?”

윤범성 부회장은 윤 회장이 성윤을 만났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변명을 하면 더 욕을 처먹을 것 같다.

그만큼 윤 회장의 표정은 사나웠다.

입을 꾹 닫고 윤 회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네가 지금 만나는 정치인들, 다 내가 만들어 준 사람이잖아? 그 인간들이 언제까지 네 옆에 있을 것 같아?”

“아버지, 초선, 재선 의원의 절반은 다음 선거에서 갈립니다. 그들에게 투자하는 것보다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신당은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고 대선이 지나면…….”

윤범성 부회장은 끝까지 변명하지 말았어야 했다.

윤 회장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이미 권력을 가진 놈에게 투자해?”

“그, 그게…….”

“그런 놈들은 널 발아래에 두고 깔보고 있어! 장사치라며 비웃고 이용만 할 거야!”

“누, 누가 성종을 비웃고 이용하겠습니까?”

“이런 멍청한 놈! 정치하는 인간들을 이렇게 몰라서야…….”

윤 회장이 보기에 자신의 아들 윤범성 부회장은 세상 읽는 눈이 부족하다.

그런 아들에게 성종이라는 그룹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 참…….

가뜩이나 성윤을 만나서 더 그렇다.

성윤은 새파랗게 어리다.

그런데, 윤 회장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고 팔딱팔딱 피해 다녔다.

그걸 생각하면 윤범성 부회장과 비교가 된다.

윤 회장은 윤범성 부회장의 뺨이라도 갈기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당장 이성윤을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셔서 네 사람으로 만들어!”

“아버지, 이성윤은 신당이에요. 신당은 정통성이 없고 더 클 수가 없어요. 게다가 거기는 박무혁이 있어요. 무혁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박무혁을 생각하지 말고 이성윤이라는 사람을 생각해야지! 어린 나이에 비례대표가 아니라 재선 의원이야. 거기까지 올라갔다면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게 한계일 겁니다. 신당에 들어간 이상 다음 총선에서…….”

부들부들 떨리던 윤 회장의 표정이 딱 굳었다.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 입 다물어.”

“……!”

윤범성 부회장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정기화 실장은 몸을 돌려 병실을 떠났다.

지금은 부자지간의 대화가 있을 시간이다.

***

-오항로 후보의 집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월세를 산다고 알려져 있는데, 보증금 5억에 월세 400만 원입니다. 자신은 서민이니 서민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 오항로 후보은…….

성종 그룹 윤 회장이 오항로를 찍었다.

모든 언론사가 일제히 오항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거론되지 않았던 월세, 그가 주말에 이용하는 외제 차, 심지어 아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까지.

“꺼!”

오항로 후보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삑’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 화면이 검게 물든다.

“명품 가방 하나 없는 여자가 어디 있다고!”

그가 치아를 콱 다문다.

잠시 분노를 참은 후 고개를 돌려 보좌관을 향했다.

“지지율은?”

“다행히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정덕진의 지지율은?”

“마찬가지입니다. 시민들은 네거티브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댓글을 보면 가관도 아니다.

-서민 코스프레 하더니 독일 차 탄다!

-씨발, 보증금 5억에 월세 400? 오항로 전 재산이 1억이라던 놈 어디 갔냐?

-민국당은 가난해야 하나요? 무슨 개소리?

-가난할 필요는 없지만 서민 코스프레로 감성 팔이했잖아? 그게 역겨운 거지.

-시민이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나. 밑장 뺴다 걸렸으면 손모가지를 잘라야 한다. 구라 치다가 걸리면 피 보는 것 안 배웠냐?

-자기 돈으로 뭘 타든 상관없음. 그리고 저분들 입장에서 5억 보증금은 거지 맞음.

-5억 월세가 거지면 우리는?

-우리는 개돼지지…….

지금의 지지율 차는 9%.

이 상황을 내버려 두면 나비효과가 되어 지지율이 역전될 수도 있다.

오항로 후보의 시선이 달력으로 향했다.

‘이제 일주일.’

선거운동의 날은 아직 많이 남았다.

언론이 계속해서 불을 쑤셔 대면 떡밥에 즐거워할 네티즌들이 환호성을 지를 거다.

‘막아야 해.’

단순한 네거티브로 만든 후 언론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

단기간에 언론을 주무를 방법은 단 하나다.

그가 천천히 휴대폰을 귀에 댔다.

“박영훈 부회장님, 오항로입니다.”

박영훈 부회장은 오항로 후보에게 수백억을 쑤셔 넣었다.

오항로가 낙선하면 수백억의 투자금을 날리는 거다.

재벌이라는 인간들은 십 원짜리 하나 손해 보기를 싫어한다.

“어디서 손을 탔는지 언론이 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아는 언론사 사장들에게 전화를 돌려 봤는데, 출처를 밝히지 않습니다. 이건 제 힘으로 막기 힘들어서…….”

-아, 그래요? 언론사에 연락 한번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당선되면 첫 사업으로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네?”

-경제가 어려운 시기이니 건설 경기를 부양할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그거 저희가 도와도 되겠습니까?

오항로 후보는 건설 붐을 일으킬 계획이다.

그 종점은 5년 후, 다음 대선.

업적을 남기는 데 건설만큼 좋은 것은 없으니까.

그런데, 박영훈 부회장이 오항로 후보의 계획에 숟가락을 얹으려 하고 있다.

‘거부할 명목이 없어.’

대정의 건설사는 브랜드 종합 순위에 항상 이름을 올린다.

게다가 지금은 대정의 힘이 필요하다.

오항로 후보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천천히 열었다.

“당연하지요. 대정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언론을 좀 막아 주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그렇고 바쁘신데 시간이 되십니까? 식사 한번 하고 싶은데요.

약속을 정한 후 오항로는 전화를 내려 뒀다.

그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흐른다.

‘스폰…….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야.’

***

늦은 저녁.

성윤은 정덕진 후보의 선거 유세를 돕고 있었다.

번화가를 돌며 쉬지 않고 악수를 했으며 계속해서 명함을 뿌린다.

상당히 고된 일이다.

하지만 표정은 밝아야 한다.

“기호 3번, 정덕진 후보입니다.”

“어? 이성윤 의원님 아니에요? 선거운동 돕는 중이세요?”

성윤을 알아본 사람들이 “와!” 하고 달려들었다.

사진을 찍고 난리도 아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성윤 의원님이 서울 시장에 나왔으면 했는데……. 다음에는 꼭 나와 주세요!”

술집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취객들이 주는 술을 한 잔씩 받아먹어야 했다.

“이거 드시면 정덕진 찍을게요! 하하하.”

“내가 언제 국회의원에게 술을 줘 보겠어요.”

그렇게 몇 바퀴 돌고 나자 정우가 옆에 섰다.

“의원님 인기가 대단하네요. 진짜 서울 시장 나왔어도 당선됐겠어요.”

“되겠냐?”

“솔직히 아직은 아니죠. 흐흐흐.”

서울 시장은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어린 나이는 안정감보다 도전의 이미지가 크다.

“그런데, 9% 차를 어떻게 뒤집어야 할까요?”

성종 윤 회장을 통한 언론의 공격은 대정 박영훈 부회장이 막아 낼 거다.

그건 예상하고 있다.

그 전에 시민들의 공감을 통해 최대한 오항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후…….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어느 카드를 쓸지 고민 중이야.”

“두 가지요?”

성윤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누군가 등을 톡톡 두들긴다.

고개를 돌렸는데 꿈속의 아내, 정혜성이 보인다.

< 뜬 구름 잡기.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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