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78화 (178/300)

< 거인과의 만남. - (4) >

***

선거 때가 되면 많은 후보가 이런 말을 한다.

“이제 네거티브로 얼룩진 선거는 벗어나야 합니다! 정책 위주,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소리다.

지키는 사람도 없고 믿을 사람도 없다.

선거는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 전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한다.

그래야 빚더미를 피하고 영광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시작부터 검증이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내가 하면 검증, 네가 하면 네거티브.

내로남불이다.

“후보의 아들은 병역 면제입니까, 아니면 비리입니까! 저는 권력형 병역 비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고위 공직자로 은퇴한 후 한 기업의 사외 이사로 등재되었습니다. 그런데, 활동은 전무하면서 고액의 월급을 챙겨 갔어요! 이건 도대체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이 시끌벅적한 가운데 신당도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모든 당원이 똘똘 뭉쳤다.

이번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단번에 메이저로 등극할 수 있지만 패배하면 군소 정당으로 몰락할 거다.

가뜩이나 배신자로 몰린 당원들이다.

메이저에 오르지 못하면 다음 총선에서 비참하게 패배한 후 역사의 수면 아래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각 의원과 당원은 지방선거 후보의 선거 유세를 돕기로 했다.

도지사부터 기초 의원까지, 자리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지원한다.

단 한 자리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다.

지방을 잡아야 총선도 유리하다.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그리고…….

“경기 도지사는 내가 전담하지.”

공대출 의원이 나섰다.

자신이 천거한 김태남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다.

자연스레 성윤은 서울 시장에 집중하게 되었다.

서울 시장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민국당의 오항로.

그 뒤로 현 서울 시장이자 대한당 후보인 최광주와 법원장 출신인 신당의 정덕진이 있다.

그 외에도 진보당과 무소속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지만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각, 서안시 사무실.

성윤은 서울 시장 지지율과 서울시 지도를 펼쳤다.

“강남, 서초는 대한당이지?”

“송파도 이번에는 대한당이 유리해요.”

“나머지는?”

“민국당이죠. 압도적이에요.”

“우리는?”

“없어요.”

서울에서 신당이 비빌 곳은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사십여 명 가량이 있지만 아직 브랜드 네임이 약하기 때문이다.

성윤이 지지율 서류에 적힌 최광주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언제 끌어내릴까? 최적의 타이밍을 찾아봐.”

오항로 후보는 잠시 뒤로 제쳐두고 일단은 최광주 후보다.

그는 대한당, 최대한 빠른 시간에 끌어내려야 한다.

그래야 대한당 지지자들이 신당으로 넘어올 거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민국당 오항로를 뽑지는 않을 테니까.

80% 이상은 흡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우가 턱을 쓸어 만졌다.

“최광주…… 전 타이밍이 문제가 아니라 속도가 문제일 것 같아요. 단번에 목을 치지 않으면…….”

“속도?”

“최광주가 발악하면 할수록 여론은 시끄러워질 거예요. 대한당을 지지자하던 사람들은 실망하겠죠. 그럼, 투표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최광주의 비리가 일파만파 퍼지면 민국당이 좋아할 거다.

민국당의 지지자들이 낄낄거리며…….

“뒈져도 대한당이지? 어떻게 그런 새끼들을 지지하냐? 뇌가 없어? 생각 좀 해. 선거는 당을 보는 게 아니야.”

그럼 대한당 지지자는…….

“난 대한당 지지 안 해.”

그렇게 샤이 대한당이 만들어진다.

하도 변태 같으니까.

그 당을 지지한다고 말하면 나도 변태 취급받을까 봐.

부끄러움은 실망으로 변하고 투표까지 포기하게 만든다.

그 여파는 신당까지 올 거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신당은 대한당 2중대니까.

정우가 말을 잇는다.

“단번에 무너뜨려야 해요. 비명도 지를 수 없게…….”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직접 나서야겠네?”

“네.”

두 사람의 입에 낮은 한숨이 흘렀다.

다시 시선을 지도로 옮긴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각 후보들의 움직임을 알리는 중이다.

이번에는 법원장 출신 정덕진 후보가 나온다.

-오늘 오후 4시 30분,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정덕진 후보 그리고 최고 위원 등 신당의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유세를 펼쳤습니다. 신당은 민국당 오항로 의원의 건설 공약을 집중 공격했습니다.

화면이 바뀌고 정덕진 후보가 나타났다.

그가 강한 목소리로 외친다.

-서울을 공사판으로 만들겠다는 겁니까! 건설비는 어디서 나옵니까? 오항로 의원의 균형 개발 공약은 서울시를 빚더미에 앉히겠다는 것입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입니다!

그 옆으로 신당의 최고 위원과 고위 공직자 그리고…….

성윤이 꿈속에서 봤던 아내인 정혜성이 보인다.

“댓글 확인해 볼까요?”

“어.”

인터넷 민심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댓글 몇 개가 나비 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우가 휴대폰을 들고 정덕진을 검색했다.

기사를 찾아 댓글을 확인한다.

“어?”

정우가 눈을 깜빡인다.

“왜?”

“이것 좀 보세요.”

성윤이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댓글이 보인다.

-이름이 정혜성이라고? 존예.

-대학 때 같이 교양 들었는데 실물이 훨씬 예쁨.

-예쁜 것은 인정. 그런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나? 예쁜 게 옳은 게 되어 가는 거야?

-예쁘면 용서됨.

-예쁘니까 성격은 안 좋을 거야. 암, 그럴 거야.

-로스쿨 수업 같이 듣는 중인데, 아빠가 법원장이었다니……. 몰랐네. 조별 과제할 때도 뒤로 안 빼고 열심히 했음. 성격 조용조용함.

-봉사도 많이 할걸?

-착하기까지 함? 예쁜데 착하다고!

-장인어른!

-지지합니다.

정덕진에 대한 댓글은 없다.

오직 정혜성에 관한 거다.

장인어른이라는 댓글이 열댓 개는 되는 것 같다.

“어때요?”

“뭐가?”

정우가 다시 휴대폰을 가져가며 말한다.

“의원님의 여자 친구로.”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건 싫다.

“이름이 정혜성이죠? 정덕진 후보가 당선되면 정치인의 생활을 자연스레 겪을 거잖아요. 그럼 강단도 생길 테고. 그리고 여기 댓글 보면 같이 수업 듣던 사람들이 아빠가 법원장인 걸 몰랐다고 하잖아요? 입도 조심스러운 것 같고 얼굴도 예쁘고.”

“……정우야, 내 여자 친구 찾지 말고 네 여자 친구부터 찾을래?”

정우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퇴근을 해야 찾을 수 있죠. 악덕 고용주가 퇴근을 안 시켜 주는데 여자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제가 여자 사람과 대화할 때는 편의점에 가서 담배를 살 때, 그리고 정효순 주임님과 대화할 때가 끝이에요. 흐흐흐.”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장한수 실장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퇴근을 못 하니…….”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됐고. 제임스한테 전화해서 아시아 지부를 더 끌지 말고 서안시로 최종 결정해 달라고 해. 일단 당의 지지율부터 끌어 올려.”

“옙.”

정우는 몸을 돌려 방을 벗어나며 다시 휴대폰으로 정덕진의 기사를 본다.

그리고 중얼댄다.

“하긴, 예쁜 여자가 의원님과 어울리지는 않죠. 의원님의 여자라면 좀 싸움 잘하게 생겨야 해.”

이번에도 장한수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함께 일하는 동료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웬수들이다.

***

다음 날.

대한당 최광주 서울 시장 후보 선거 캠프.

오전 5시부터 회의가 시작됐다.

출근 시간에 맞춰 선거 유세를 하려면 지금부터 움직여야 한다.

최광주 후보가 지지율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1위, 민국당 오항로, 44.1%

2위, 대한당 최광주, 18.7%

3위, 한민당 정덕진, 15.3%

지난번보다 소폭 상승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1위 오항로와의 차이는 컸다.

‘약 25%…….’

짧은 선거운동 기간으로 뒤집기 어려운 스코어다.

게다가 신당의 정덕진이 야금야금 표를 빼먹고 있으니 더 미칠 것만 같다.

‘씨발, 정덕진만 없었어도…….’

신당이 없었다면 대한당이 아무리 똥을 싸질러도 30%는 먹고 들어갔을 거다.

그럼 역전도 가능한데…….

아쉬웠다.

지지율이 적힌 종이를 뒤집으며 최광주 후보가 앞을 바라봤다.

선거 캠프의 주요 인사가 보인다.

“네거티브로 가야겠지?”

“네, 일단 신당의 정덕진부터 밟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최광주 후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털어 봤나?”

조용하다.

정덕진은 강직한 판사로서 일생을 살아온 사람, 적어도 법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워낙 신인이라 걸릴 게 없습니다. 게다가 자식이 딸이라 병역 비리를 걸 수도 없고…….”

최광주의 눈썹이 날카롭게 휘어진다.

“없으면 만들어, 딸이 로스쿨 다닌다며? 아빠가 법원장이었어. 부정 입학 의혹이라도 터뜨려!”

“아, 네.”

마케팅을 담당하는 캠프 관계자가 수첩을 꺼내 지시 사항을 빠르게 적는다.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는 게 정치판이다.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아니면 말고!’라는 말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으니까.

최광주 후보의 시선이 다시 지지율로 향했다.

“도대체…….”

지난 몇 년 동안 서울 시장으로 최선을 다해 봉사했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따위 지지율이라니.

노력해도 시민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그가 중얼댄다.

“어느 영화에서 국민을 개돼지로 표현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잘못된 거야. 개돼지에게 미안하잖아? 국민은 개돼지보다 못해. 적어도 개돼지는 밥을 던져 주는 주인은 알아봐. 그런데, 이 새끼들은…….”

최광주 후보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자 캠프 관계자들은 슬금슬금 엉덩이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속 이곳에 있다가는 저 성질머리에 재떨이를 집어 던질 수도 있다.

유세를 나가야 한다는 핑계로 빨리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다.

최광주 후보는 혼자가 됐다.

텔레비전은 계속해서 혼자 떠들어 댄다.

그런데…….

-AI 회사 리제의 아시아지부가 서안시에 설립되기로 최종 결정됐습니다. 제임스 회장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다른 국가를 물망에 올렸지만 임인희 시장이 적극적으로…….

최광주의 미간이 확 찌푸렸다.

“저건 뭐야?”

서안시 임인희 시장은 신당이다.

그리고 대한당은 신당과 표를 나눠 먹는 상황이다.

신당이 잘나가면 잘나갈수록 대한당의 표가 질질 빠져나간다.

그가 곧장 인터폰을 눌렀다.

“보좌관 들어오라고 해!”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며 보좌관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저거 봤어?”

보좌관이 눈을 깜빡이며 텔레비전을 본다.

아나운서는 리제의 아시아 지부를 설명하느라 바쁘다.

동시에 보좌관의 얼굴도 흐려진다.

최광주 후보와 정덕진 후보의 지지율 차는 약 3%.

신당이 잘나가면 3%는 금방 뒤집힐 거다.

그리고 대한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될 놈을 뽑아 주자는 마음으로 정덕진에게 합류할 수도 있다.

“……몰, 몰랐습니다.”

빡!

최광주 후보가 보좌관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끕!”

보좌관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절룩거렸다.

“이 새끼야, 네가 해야 할 일이 뭐야? 가뜩이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데, 신당에서 저 지랄 하는 것도 모르고 뭘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당장 언론사에 연락해! 임인희 저년이 하는 짓이 모두 정치 쇼였다고 떠들라고 해! 국민의 취직 자리를 두고 리제와 거래를 했다고 전해! 어서!”

벼락처럼 떨어진 호통에 보좌관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그, 그런데…….”

“그런데 뭐?”

“그러다가 리제가 정말 등을 돌리기라도 하면…….”

보좌관은 최선을 다해 간언했다.

하지만 지금은 간언을 들을 시간이 아니다.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겨야 하니까.

최광주 후보의 눈썹이 도깨비처럼 휘었다.

“미친 새끼야,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당장 나가!”

보좌관은 절뚝거리며 방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최광주 후보는 그 뒷모습을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 씹는다.

‘이대로라면…….’

선거운동의 시작.

그런데, 시작부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최광주 후보가 눈을 부릅떴다.

“보좌관.”

“네, 의원님.”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던 보좌관이 몸을 돌렸다.

“신당의 정덕진 후보에게 연락해 봐.”

“네?”

“그쪽도 후보 단일화를 고민하고 있을 거야.”

단일화를 하지 않고서는 이번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생각을 했으면 빠르게 합쳐야 한다.

물론 포기하는 것은 정덕진이고 시장에 오르는 것은 최광주 본인이 될 것이다.

“오늘 저녁도 좋고 내일 점심도 좋아. 빠른 시간에 식사 한번 하자고 해.”

“알겠습니다.”

최광주 후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정덕진에게 무엇을 던져 줘야 후보를 포기할지 고민해야 한다.

‘돈? 아니면 부시장? 그래, 부시장 정도면 괜찮네. 정치 경력을 쌓을 동안 내 밑에서 배우면 좋은 거잖아? 신인이 서울 시장을 앉기는 무리지. 부시장에 돈까지 얹어 주면…….’

보좌관은 최광주 후보를 향해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몸을 돌렸다.

문고리를 잡고 끼리릭, 돌렸는데…….

“어?”

열린 문 밖으로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서 있다.

사납고 날카로운 눈빛, 그가 최광주 후보를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힌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이성윤입니다.”

< 거인과의 만남.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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