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76화 (176/300)

< 거인과의 만남. - (2) >

그리고 성윤의 시선은 오항로의 이름으로 향했다.

‘42.1%…….’

꿈속을 살펴봐도 다음 서울 시장은 오항로였다.

개표 시작 1시간 만에 당선 확정을 지으며 환호성을 지르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그는 좋은 시장이 아니었다.

아니, 서울 시장은 거쳐 가는 징검다리로만 생각하고 권력욕을 드러내며 오직 다음 대선만 노렸다.

대표적으로 다음 대선에 완공을 맞추는, 되도 않는 건설을 강행했다.

난개발이라며 욕을 처먹기도 했지만 나름의 업적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인기를 끌기 위한 정책만 내세웠다.

세금을 뿌리며 돈을 주고 표심을 얻었다.

그가 시장에 있으며 서울시는 계속 퇴보되었다.

‘막아야 해.’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덕진의 현 지지율은 12.3%.

오항로와는 29.8%의 지지율 차가 난다.

넘기 힘든 벽.

하지만 이 사람을 넘지 못하면 정덕진은 시장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의 대권 도전도 어려워질 거다.

‘판을 흔들어야 해.’

다행히 성윤에게는 몇 가지 카드가 있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민국당 탈당과 신당 입당.

그리고 오항로와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의 만남.

마지막으로 AI 회사 리제.

‘할 수 있어.’

***

지방선거는 서울시만 하는 게 아니다.

서안시의 임인혜 시장도 재선을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그녀가 신당에 입당한다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그렇게 각 도시의 후보가 속속 발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윤은 한정식집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박무혁 의원과 공대출 의원 그리고 그 보좌관들이 함께 마주 앉아 있다.

박무혁 의원이 공대출 의원을 향해 입을 연다.

“공 의원님, 경기 도지사에 출마해 보는 게 어떠십니까?”

수저를 들어 국을 뜨던 공대출 의원이 눈을 깜빡인다.

“경기 도지사요?”

“네, 제가 대선에 승리한다면 경기도와 서울의 행정은 정말 중요할 겁니다. 의원님께서 경기 도지사로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성윤과 박무혁 의원이 한참의 의논 끝에 결정한 결과다.

공대출 의원은 다선 의원, 선거를 몇 번이나 치렀고 승리해 왔다.

일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꼰대 같은 이미지도 없다.

도지사 선거에 나서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이번 국회를 끝으로 정치 생활을 그만둘 겁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한다.

박무혁 의원이 묘한 눈으로 그를 향했다.

“그만두신다고요?”

공대출 의원이 손바닥을 쥐었다 피며 말한다.

“처음 배지를 달 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었죠. 하지만 다짐은 흐려졌고 많은 죄를 지었어요. 이 손은 이제 더러워요. 악취가 나요. 그래서 신당에 합류한 것입니다. 정치 인생에 날개를 달기 위함이 아니라…….”

공대출 의원이 성윤을 보며 느릿하게 말을 잇는다.

“죄를 지었으니까 마지막은 일다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성윤 의원이라면 내 마지막을 장식해 줄 것이라 믿었고요.”

“…….”

“권력은 영원하지 않아요.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죠. 저는 그 시기를 스스로 정했습니다. 더 추해지기 전에 그만두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 것이다.

정치판에 뛰어든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권력을 잡기 위해 바동거린다.

이곳은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이다.

그런데 은퇴를 결심하다니…….

박무혁 의원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이제 2년 정도 남았나요?”

다음 총선까지 남은 시간이다.

공대출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아쉽군요.”

저렇게 확고히 말하는데 말릴 수도 없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으니까.

“남은 기간 동안은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그래, 은퇴하면 뭘 하실 생각입니까?”

박무혁 의원이 분위기를 바꿨다.

공대출 의원이 신나서 입을 연다.

“제주도에 작은 땅을 사 놨습니다. 거기서 자연이나 보고 살 생각입니다. 최근에 정치인들이 개인 방송도 하잖아요? 저도 개인 방송에 대한 생각이 있어요. 정치적 이야기는 제외하고 제주도의 자연이나 담을까 합니다. 그러다가 저희 집을 찾는 지지자가 오시면 같이 술도 한잔하고요.”

공대출 의원은 앞으로 펼쳐질 인생을 그렸다.

박무혁 의원과 성윤은 조용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하던 공대출 의원이 물컵을 들어 입을 축인다.

“우리 당의 서울 시장 후보가 정덕진 법원장이죠?”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죠.”

언론에 나가기 전부터 신당의 서울 시장 후보는 정덕진이란 것은 다들 알고 있던 일이다.

그런데, 다시 언급하는 이유…….

“정덕진 법원장은 정치판에서 보면 새파란 신인이죠. 잔인하게 말하면 이성윤 의원보다 지분이 없어요.”

성윤은 재선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선거에서 두 번이나 승리했고 자신만의 지지층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정덕진 법원장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법원장 출신이란 타이틀이 전부다.

국회에서 그 정도의 스펙은 눈에 띄기 어렵다.

공대출 의원의 말처럼 애송이다.

“그래서 말인데, 경기 도지사 역시 신인을 내세울 생각은 없으십니까?”

박무혁 의원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쓸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건 박 의원께서 생각할 일이죠.”

“누굽니까?”

공대출 의원이 지사직을 거부하며 잠시 소강상태로 빠졌던 방안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정치는 사람으로 이뤄지는 것,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성윤과 박무혁 의원은 공대출 의원의 말을 기다렸다.

“……용접공입니다.”

“용접공요?”

공대출 의원은 슬쩍 성윤과 박무혁 의원의 눈치를 살핀다.

경기 도지사 후보에 용접공을 천거하는 것이 미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성윤과 박무혁 의원의 눈빛은 진지하다.

두 사람 모두 흙속에 묻힌 진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대출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한국 대학교를 다니다가 가정 형편 때문에 성종 건설에 들어갔었어요. 비록 중퇴자였지만 뛰어난 실력으로 젊은 나이에 쭉쭉 올라갔죠.”

“그런데요?”

“건설이라는 게 그랬잖아요? 조합장을 매수해서 수주를 맡았고 그 돈을 채우기 위해 자재비를 빼돌렸죠. 인건비를 낮추고 헐값에 집을 지으면서 공사비를 뻥튀기시켰고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건설사와 싸웠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사람이 날뛰면 날뛸수록 누가 분노하는지 아십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이 입을 연다.

“성종 그룹이 움직였겠죠?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면 피곤해지니까요?”

공대출 의원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성종 건설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침묵했죠. 그런데, 주민들이 분노했어요. 부실시공이 드러나면 집값이 떨어지니까요.”

그는 구석에 몰렸다.

언론도 경찰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주민의 분노를 담아낼 욕받이로 선택되었다.

“받은 돈이라고는 월급밖에 없는데 사기죄로 몰려 징역을 살다 왔어요.”

공대출 의원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연다.

“그 후에 용접을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겁니까?”

“찾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강태공을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뛰어나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면 낚시나 하다 끝났을 인생입니다. 한명회 역시 마찬가지예요. 수양대군을 만나지 못했다면 경덕궁 직으로 이름을 남겼겠죠.”

궤변이다.

그런 말에 혹하고 넘어갈 박무혁 의원도 아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 뒤로 이력이 약한데 민국당의 후보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민국당의 경기 도지사 후보.

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대학교 교수였으며 재선 의원이다.

그동안 써 내려간 책만 해도 스무 권이 넘는다.

인지도 자체가 전국구급이다.

용접공이 붙어 이길 사람이 아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성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용접공 출신? 한국대 중퇴?’

어디서 들어 봤던 이야기다.

‘뭐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은 컴컴하기만 하다.

‘아는 사람 같은데…… 꿈속에서 봤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에 불쑥 한 인물이 튀어나왔다.

이 시기쯤 등장했던 인물.

박대철의 비서관으로 있던 시기였기에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올바른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며 권력자들과 반대되는 법안을 밀어붙였던 사람이란 것은 알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컸다.

나타난 악귀 이준대에게 처절하게 깨지며 의혹만 남긴 채 교도소로 향한다.

검찰의 포토 라인에 서서 카메라를 노려보던 거친 눈빛은 지금도 소름 끼칠 만큼 강렬했다.

당시 짐승남이라며 이상한 별명까지 얻었으니까.

‘이름이…… 김태남이었나?’

성윤이 시선을 들어 공대출 의원을 향했다.

공대출 의원이 술잔을 손에 쥐며 말한다.

“그 사람이 정치 바닥에 어울릴지 민국당 후보를 이길 수 있을지, 논리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 의원이 한번 만나 본 후 결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박무혁 의원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한다.

그는 성윤의 사람 보는 눈은 인정하고 있다.

“이 의원, 시간이 괜찮나?”

성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사람이 김태남이 맞는다면 앞으로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거이 분명하다.

그리고 공대출 의원이 술잔을 입에 댄 후 입을 열었다.

“이름은 김태남, 지금 홍성에 있어. 주소지를 옮기려면 서둘러야 할 거야.”

김태남이 맞다.

성윤은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악귀 이준대와 싸우기 위한 무기 하나를 또 얻는 기분이다.

***

“갑자기 일거리가 생겼네.”

성윤은 정우 그리고 장한수와 함께 홍성의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비포장도로라 차가 덜컹거린다.

장한수가 핸들을 틀며 묻는다.

“그런데, 의원님이 보기에 괜찮으면 바로 후보가 되는 건가요?”

그때 가진 술자리가 괜찮았나 보다.

장한수도 제법 말이 늘었다.

하지만 대답은 정우가 했다.

“우리 당이 코딱지만 한 곳이 아니잖아요. 우리 의원님도 그렇고 박무혁 의원님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전략 공천이라지만 최고위 회의는 거칠 거예요.”

정우와 장한수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성윤은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 주소지가 보인다.

“그런데, 이런 곳에 커피숍이 있어?”

약속 장소는 용접 공장 근처의 커피숍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비포장도로를 지나쳐야 나타나는 커피숍이라니…….

장한수가 답한다.

“내비게이션은 이쪽 길이 맞는다고 하는데요?”

정우가 낄낄댔다.

성윤은 엉덩이가 아픈데 정우는 흔들리는 차가 꽤 재밌나 보다.

“이색 커피숍인가 보죠. 아니면 등산하는 분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거나. 요즘에 그런 곳 많잖아요?”

잠시 후, 나뭇가지가 차를 긁을 정도로 좁은 길을 벗어나자 거짓말처럼 약속 장소가 나타났다.

황토로 지어진 곳으로 들어가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

성윤은 차에서 내리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았다.

“커피나 마시고 있자.”

성윤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정우와 장한수가 뒤쫓는다.

메뉴는 별것 없다.

아메리카노, 라테, 각종 전통차와 인절미.

음료와 인절미를 주문해서 가져온 정우가 테이블에 앉는다.

“그래도 손님이 많네요? 우리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정우의 예상대로 등산객들이 잠깐 쉬어 가는 곳인 것 같다.

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 여섯 명이 음료를 마시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코앞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대화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중이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워낙 목소리들이 커서 자연스레 듣게 되었다.

“대한당이 살아나려면 신당하고 합당해야 해. 그리고 대권주자로 서용우를 밀어야지. 이대로 가면 통합은 물 건너가고 민국당 도제성이가 손쉽게 먹는다니까?”

“왜 서용우야? 박무혁이도 있는데.”

“대통령은 욕먹더라도 투쟁심이 있어야지. 그런데 박무혁이가 나서는 거 본 적 있어? 뒷짐만 지고 있잖아?”

“박무혁이든 서용우든 무슨 상관이야? 개새끼들, 누가 되든 똑같아. 다 더러운 새끼들이야.”

“그러니까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뽑아야 한다는 것 몰라? 이번엔 도제성이야, 도제성!”

말만 들으면 그 당의 고위 당직자며 정치 전문가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몇몇 정치인의 이름이 거론된다.

공대출 의원이 배신을 때렸다는 둥 주진만 의원의 계파가 대한당을 망쳤다는 둥.

그러다가…….

“이성윤은 요즘 뭐 하나? 돈 많이 벌었다고 돈놀이하나?”

성윤은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정우는 장난기로 가득한 표정으로 실실 웃고 있다.

등산객들이 떠나면 성윤을 잔뜩 놀릴 생각이다.

“이성윤 그 새끼…… 처음에는 좀 괜찮은 정책을 내놓고 국민의 편에 서는 것 같았는데, 지금 보면 몸 사리고 있잖아?”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게 꽤 되었다.

가장 마지막 기사가 짐 레이너의 친구 어쩌고 하는 이상한 제목이었던 것 같다.

정치인은 열심히 일을 해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으면 노는 것으로 보인다.

“그놈도 똥물에 물들었어.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영감행세를 하고. 에이, 나라 꼴이 어떻게 되려고.”

“그래도 이성윤 정도면 괜찮지. 기부도 잘하고 해외 투자, 유치도 하고.”

“그거 다 언론 플레이야. 몰라?”

그때…….

커피숍의 문이 ‘딸랑’ 소리와 함께 열렸다.

두툼한 검은 패딩에 낡은 청바지, 붉은 캡을 푹 눌러쓴 남자가 들어왔다.

성윤은 한눈에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 김태남이다.

입구에 선 그가 천천히 커피숍을 둘러본다.

그 시선은 등산객을 지나 성윤과 정우 장한수가 모인 곳에서 멎었다.

“이성윤 의원님?”

그 한마디에 등산객들의 시선이 팩, 성윤을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진, 진짜 이성윤이잖아?”

커피숍은 단번에 적막해졌다.

< 거인과의 만남. - (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