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주자. - (6) >
***
민족의 대명절, 설.
가족을 만나 새해 덕담을 나눠도 모자랄 시간이지만 정치인들은 설 민심 잡기에 여념이 없다.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그리며 요양원과 보육원에 들러 인사를 나눠야 한다.
특히 대선 주자들은 더 바쁘다.
그들은 시장을 돌며 어묵과 떡볶이를 먹는다.
친근한 이미지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옆에는 방송국 카메라도 여럿 달라붙었고 오가는 길마다 지지자들의 함성이 시끄럽게 울린다.
“도제성! 도제성!”
도제성 의원이 파전집 앞에 멈춰 섰다.
셔터가 번쩍번쩍 터져 올랐다.
기자들이 묻는다.
“전을 좋아하시나 봐요?”
도제성 의원이 부드럽게 웃는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기자들은 물론이고 전집 주인도 눈을 반짝인다.
“아르바이트요?”
“처음에는 서빙만 했는데 나중에는 전 부치는 일도 했어요. 수만 장은 뒤집었을 겁니다. 오랜만에 한번 해 봐도 될까요?”
파전집 주인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국 카메라가 들이대고 있다.
대선 주자가 전을 부치는 장면이 방송에 나가면 홍보 좀 될 거다.
“전값은 지불하겠습니다.”
전집 사장은 시원하게 자리를 비켜 줬다.
도제성 의원이 자리를 잡더니 전을 부치기 시작한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수준급 실력이다.
“기자님들, 오늘 설인데 제 뒤를 따라다니느라 집에도 못 가고 고생하셨죠? 사과의 뜻으로 전을 부쳐 드리죠. 막걸리도 사겠습니다.”
기자들이 낄낄 웃는다.
“감사합니다. 의원님께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잊지 못할 자랑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설도 반납하셨는데, 반드시 자랑할 수 있게 해 드려야겠죠.”
고소한 기름 냄새가 기자들의 코를 간지럽혔다.
한 장 두 장, 접시에 놓인다.
전이 크게 담긴 접시가 기자들에게 전달됐다.
이어서 막걸리와 파전 파티가 열렸다.
오가던 시민들도 자리를 잡고 도제성 의원이 만든 전을 먹는다.
“진짜 맛있어요.”
“그럼요. 맛집에서 배운 겁니다, 하하하.”
기자들은 실시간으로 기사를 올렸다.
시민들 역시 도제성 의원의 행동을 SNS에 올리느라 바쁘다.
도제성 의원의 모습이 세상에 뿌려졌다.
댓글이 주르륵 달린다.
-아르바이트 한 건 맞는 듯.
-사장이었다고 해도 믿겠다.
-저거 공짜임?
-그럼 돈 받겠냐?
-나도 가서 먹고 싶다.
-처먹는 대통령 후보는 많이 봤지만…… 전 부치는 대통령 후보는 처음인데?
***
그 시각, 성윤도 시장을 돌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도제성 의원의 기사를 보던 정우가 성윤에게 묻는다.
“도제성 의원이 시장에서 전을 만들고 있대요. 수준급이라는데요?”
“그래?”
“의원님은 이런 것 없어요?”
정우가 휴대폰을 보여 준다.
화면에는 도제성 의원과 시민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올라와 있다.
“시장에서 뭔가 보여 줄 수 있는 거요. 아니면 설날에 보일 수 있는 특기 같은 거. 의원님도 아르바이트 많이 해 봤잖아요?”
“글쎄…… 설에 어울리는 거라면 야바위, 판치기, 섯다, 고스톱.”
“……네, 죄송해요. 잘못하다가는 뉴스에 나겠네요.”
두 사람은 계속 시장을 걸었다.
시장의 모든 사람이 성윤을 보며 반갑게 인사한다.
그들의 인사는 가식이 아니다.
진심이다.
“의원님, 오늘 딸기가 좋아요. 하나 가져가요!”
“도미가 제철이야! 돈 안 받을 테니까 가져가서 드세요.”
정우는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성윤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성윤은 도제성 의원처럼 뭔가를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시장 상인들은 성윤을 정말 좋아한다.
성윤만큼 시민을 위해 일한 정치인은 보지 못했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성윤은 길을 걸으면서도 틈틈이 그들을 돕는다.
상자 쌓는 것을 돕고 오며 가며 불편한 점을 해결해 주고.
그렇게 시장을 한 바퀴 돈 후 사무실로 돌아왔다.
정우가 책상에 검은 비닐봉지를 올려 두고 풀어 낸다.
“도제성 의원 기사를 보고 전이 당겨서요, 사 왔어요. 드세요.”
성윤이 젓가락을 손에 쥐며 책상 앞에 섰다.
꼬치와 깻잎, 호박 등 다양한 전이 보인다.
“많이 담아 왔네? 돈 제대로 냈지?”
“덤을 좀 많이 받기는 했지만 돈은 제대로 냈죠, 흐흐.”
정우는 기분 좋게 웃으며 전 하나를 들어 입에 댔다.
성윤도 전을 먹으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도제성 의원의 기사가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실검에 올랐다.
확실히 난사람이다.
전 부치기 하나로 지지율 몇 퍼센트는 끌어 올린 것 같다.
사람을 끌어 들이는 능력만큼은 정말 으뜸이다.
“예사롭지 않지?”
“네.”
“대선에서 이기려면 지방선거에서 기세를 꺾어야 해. 반드시…….”
꿈속의 미래를 기억하면 민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과 경기 부산을 먹어 버리며 우위에 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제성 의원이 있었다.
이 기세를 꺾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선은 힘들어질 거다.
정우가 턱을 매만진다.
“그런데, 우리는 대한당하고 표를 나눠 먹어야 하잖아요. 확실히 불리해요.”
“민국당하고도 나눠 먹게 될 거야.”
“네? 우리는 대한당 2중대란 말을 듣고 있는데요? 어떻게 민국당하고 표를 나눠 먹어요?”
성윤은 조용히 웃었다.
때가 되면 안재열 전 대통령이 움직일 거다.
그는 민국당의 대부 같은 사람.
그가 민국당을 떠나 신당에 합류하면 그 파장은 상상할 수 없을 거다.
표를 갈라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다.
***
그 시각, 박무혁 의원 역시 시장에서 민심 잡는 일정을 끝냈다.
그리고 대정 호텔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그가 시선을 돌린다.
허리를 굽힌 보좌관이 보인다.
“고생했어. 오늘은 이만 들어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명절은 가족하고 보내야지.”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잠깐만.”
박무혁 의원은 품에서 봉투를 꺼내 보좌관에게 건넸다.
“내 조카들에게 세뱃돈 좀 대신 전해 줘. 얼굴 못 봐서 미안하다 말해 주고.”
박무혁 의원이 거론한 조카는 보좌관의 아들, 딸이다.
그는 항상 보좌관의 자식들도 챙겨 준다.
“감사합니다.”
“그럼, 연휴 끝나고 보자고.”
박무혁 의원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보좌관은 안타까운 눈으로 닫히는 박무혁 의원을 바라본다.
박무혁 의원이 들어가는 곳은 대정 호텔 VVIP 룸이다.
그곳엔 대정 박 회장의 자식들이 모여 있다.
비록 형제지간이지만 원수 같은 자들.
돈은 많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보좌관이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고생하십시오.”
잠시 후, 서른 명이 앉아도 남을 것 같은 긴 테이블.
그곳에 단 네 명만이 앉아 있었다.
상석에 앉은 박영훈 부회장과 시집간 여자 형제 두 명 그리고 박무혁 의원이다.
시간이 지났지만 누구도 수저를 들지 않는다.
앞에 놓인 떡국은 식어만 간다.
침묵 속에서 박영훈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지배 지분을 재정리할 거야. 지주회사는 건설. 각 계열사의 비율도 조정할 테니까 일단 건설로 모두 옮겨. 값은 제값을 줄 것이고 섭섭하지 않게…….”
“그걸 왜 오빠가 정해?”
막내딸 박연희가 쌍심지를 켰다.
박영훈 부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정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어떻게 될 것 같아? 없이 사는 놈들에게 손가락질받으며 싸울 수도 있어. 그 전에 수순에 맞게…….”
이번에도 박영훈 부회장의 말은 막혔다.
박연희가 다시 치고 들어온다.
“그러니까 그 수순이 왜 오빠한테 유리한 거냐고!”
“박연희!”
박영훈 부회장이 호통을 내질렀지만 박연희는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그리고 지주사를 건설로 한다고? 멍청하게 상장된 회사를 지주사로 정한다는 거야? 난 반대야!”
“뭐, 멍청?”
“차라리 리조트로 해! 상장도 안 되어 있고 지주사로 가져가기에 최적화되어 있어!”
“리조트는 네 거잖아!”
“그럼, 건설은 누구 건데!”
서로가 노려보는 눈빛이 강해진다.
조금만 더 감정이 상하면 식은 떡국을 집어 던질 것 같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조용히 앉아 있던 맏딸 박시아가 입을 연다.
“무혁아, 넌 어떻게 생각해?”
박무혁 의원이 차갑게 답한다.
“마음대로 해. 관심 없으니까.”
박영훈 부회장이 픽 웃는다.
“관심 없어?”
“어.”
“고고하게 정치하는 양반이라 장사꾼들 돈놀이는 더럽다 이거냐?”
박무혁 의원이 박영훈 부회장을 바라봤다.
그 눈빛도 차갑다.
하지만 박영훈 부회장은 멈추지 않는다.
비웃음을 한껏 머금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너 대통령 나간다고 시끌시끌하더라. 경제인 모임에 가면 부끄러워 죽겠어. 집안에 경사 났다고 지랄하는 꼴들 보고 있으면!”
“안 부끄럽게 해 줄게.”
“안 부끄럽게 해 주려면 네가 거기서 멈추는 거야. 집안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난 형이 부끄러워질 거야. 형의 이름이 치욕스럽게 느껴질 만큼.”
박영훈 부회장을 감옥에 보내겠다는 뜻이다.
인상이 확 일그러진다.
“뭐, 이 새끼야!”
“국 식었다. 먹어.”
“끝까지 건방 떨지!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 것 같아?”
“난 계속 웃을 거야.”
1년에 몇 안 되는 형제들의 모임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으르렁대다가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이들은 형제지만 경쟁자일 뿐이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박영훈 부회장은 구겨진 인상으로 차량에 올랐다.
“박연희 그년은 힘의 차이를 보여 주면 무릎을 꿇을 거야. 박시아 그것은 박무혁을 무너뜨리면 알아서 고개를 숙일 거고. 그런데, 박무혁…….”
박영훈 부회장이 주먹을 꽉 쥔다.
박무혁 의원의 입을 좌우로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잠시 분노를 쏟아 내던 박영훈 부회장이 고개를 들었다.
“김용준 실장.”
“네, 부회장님.”
“이번 지방선거가 대선의 기점이 될 거라고 하지?”
“네, 그런 말이 많습니다.”
“유력한 곳은 민국당?”
“아무래도 대한당과 신당은 표를 나눠 먹어야 할 테니까요.”
박영훈 부회장이 턱을 쓸어 만졌다.
“민국당이 도제성이지?”
“네.”
“돈을 좋아할 인물인가?”
김용준 비서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리 작업을 치려고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아직 타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업에 호의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새롭게 정권에 오르면 재벌을 찍어 누를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박영훈 부회장이 픽 웃는다.
“재벌을 찍어? 미친 새끼들……. 그런 소리는 항상 들어 왔어. 헛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그놈 주변을 뒤져 봐. 정치판에 모두가 깨끗할 수 없어. 더러운 놈을 찾아서 돈을 던져 주고 살살 긁어 줘. 내가 직접 만날 수 있게 약속 잡고.”
“알겠습니다.”
박영훈 부회장은 박무혁 의원을 무너뜨리기 위해 민국당에 압도적인 자금을 건넬 생각이다.
민심은 돈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지방선거의 윤곽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곳은 단연 서울 시장이다.
대한당은 현 시장을 다시 한 번 밀어주기로 했다.
후보는 최광주 현 서울 시장.
법학 대학교수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후 국회의원 그리고 서울 시장까지 당선됐다.
그야말로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최근 한강변 개발 사업으로 집값 폭등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 덕에 부자들에게는 박수를 받지만 서민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서울을 만들었다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리고 민국당의 후보는 도제성 의원의 오른팔인 오항로 의원이다.
자격수, 스나이퍼, 싸움꾼 등으로도 불리며 민국당 지지자들에게는 사이다 의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유투브를 치면 가장 많은 영상이 올라온 사람 중 하나일 거다.
그 덕에 시원하다며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너무 나댄다.’, ‘시끄럽다.’, ‘오항로의 적은 오항로’ 등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예상대로 대한당과 민국당의 후보는 새로울 사람이 아니다.
그놈이 그놈이다.
그리고 그 시각.
성윤은 한정식집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성종 그룹의 대관 담당 박근서 부장이 보인다.
그가 시커먼 서류 가방을 테이블에 올렸다.
“서울시에서 새는 세금입니다.”
성윤이 서류 가방을 열자 박근서 부장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도둑놈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일단 가장 앞이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사는 입주자들인데요.”
월 임대료 5~10만 원을 내는 영구 임대주택.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그런데 벤츠, 포르쉐 등 고급 외제차가 주차장에 가득하다.
자산가들이 편법과 불법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앗은 거다.
“그리고…….”
그 외에도 세금이 새는 곳은 상당하다.
특히 벤처 기업 육성은 공고를 내기 전에 이미 지원받을 회사가 내부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순수한 벤처 사업가가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신청을 하지만 들러리로 끝날 운명이다.
이미 고위 관료 또는 권력자와 끈이 닿은 회사가 다 처먹고 있으니까.
그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운영되는 게 한두 건이 아니었다.
서류를 쭉 훑은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광주 서울 시장이 재선에 도전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해 본 놈이 잘한다. 서울시를 완성하고 싶다.’. 그 말 곧 취소해야겠네요.”
이게 터지면 난리가 날 거다.
말단 공무원부터 시장까지 연관된 모든 사람이 줄줄이 엮일 게 분명하다.
최광주 서울 시장은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을 하는 것보다 검찰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거다.
성윤이 서류 가방을 자신의 옆에 두며 입을 열었다.
“이 내용은 후보자 등록까지 비밀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타깃은 최광주 서울 시장이다.
그가 후보 등록 전에 무너지면 대한당은 다른 카드를 ‘짠’ 하고 테이블에 올릴 거다.
그것은 막아야 한다.
대한당의 새로운 카드가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 잡은 물고기를 풀어 주는 꼴이니까.
이제 문제는 민국당의 후보 오항로.
그리고 신당의 서울 시장 선거 캠프에서 마주치게 될 정혜성, 꿈속의 아내…….
< 대선주자. -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