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73화 (173/300)

< 대선주자. - (5) >

“저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보다는 저돌적인 분이 좋습니다.”

성윤의 말에 도제성 의원이 희미하게 웃는다.

“아쉽네요. 함께했으면 했는데.”

여기까지면 딱 좋았을 거다.

그런데, 도제성 의원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튀어나온다.

도제성의 오른팔로 불리는 오항로 의원.

이방 수염이 나서 얼굴부터 참 얄밉게 생겼다.

그가 깝쭉대기 시작한다.

“이성윤 의원, 재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봅니다?”

그 말에 공대출 의원의 미간이 확 일그러졌다.

“뭐요? 재벌을 위한 정치? 씨발, 지금 그걸 말이라고!”

“박무혁 의원은 재벌이 맞잖아요?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오항로 의원이 턱을 들이밀며 시비를 건다.

참지 못한 공대출 의원이 팔을 걷어붙였다.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재벌 밑에서 재벌을 위한 정치 하고 있잖아!”

주변에 있던 다른 의원들이 공대출 의원을 다급히 말린다.

“아, 진짜 참아요!”

“여기서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저 새끼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거예요! 기자들이 보고 있어요!”

공대출 의원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해 갔다.

하지만 의원들의 말을 듣고 꾹 참는다.

말 그대로 기자들이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멱살을 잡거나 하는 순간 실검 1위를 차지할 게 분명하다.

“이익!”

공대출 의원이 치아를 꽉 다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오항로 의원이 더 이죽인다.

“박무혁 의원이 서민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그 사람은 대한민국 0.01%를 위한 정치를 할 거예요. 그럼, 나머지 99.99%는 다 노예가 되는 거야! 하지만 우리 도제성 의원님은 서민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진흙탕에 쓰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럼, 우리는 진흙탕을 두려워하나?”

오항로 의원이 빙긋이 웃는다.

“진흙탕이 무서우니까 당을 버리고 신당으로 쪼르르 달려갔겠지.”

“……!”

“당을 만들고 지킨 선배들을 생각해 보세요! 힘들다고 도망치거나 숨지 않았어요. 이 악물고 견뎠죠. 그렇게 견뎠기 때문에 민국당과 대한당, 양 당에 정통성이 만들어진 거예요. 당신들처럼 피하기만 했다면 그 정통성은 없었을 겁니다! 창피한 것도 모르고 어디서 큰소리야!”

조용히 있던 대한당 의원들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한마디씩 내뱉는다.

“필요할 때만 붙어 있으면 그게 똥파리지.”

“어차피 박쥐같은 인간들이었어. 미리 나가 준 게 다행인 거야.”

주변이 웅성인다.

모두가 신당을 적으로 여기는 중이다.

오항로는 즐기듯 웃고 있다.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이건 자존심이다.

기세에서 밀리면 앞으로도 계속 밀려야 한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우리는 당의 정통성보다 국민의 뜻을 받들 겁니다. 우리는 올해 국회의원 연금법을 반대할 계획입니다.”

“……!”

의원들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갑자기 왜 연금법은 들고나오는지…….

기자들은 옳다구나 펜대를 굴릴 준비를 마쳤다.

의원들은 성윤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성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서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민국당 의원님. 정치 개혁 의지를 내보이시던 대한당 의원님. 재산 신고 300억의 의원님. 연예인 출신, 비례대표! 입으로만 ‘국민 여러분’을 외치던 분들!”

“……!”

“평소에는 이념을 앞세워 싸우던 분들이 연금 앞에서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찬성하셨죠? 그놈의 정통성 참 아름답네요.”

“…….”

“그거 제가 막아 보겠습니다. 국민의 뜻이거든요. 정통성은 필요 없습니다. 전 4년 계약직이라서요.”

의원들의 얼굴에 분노가 떠오른다.

“이성윤!”

하지만 오항로 의원은 다르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성윤을 바라본다.

‘걸렸어!’

성윤을 말싸움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살살 자극해서 ‘욱!’ 하고 성질을 내게 만들면 된다.

그럼 말보다 화만 내는 인간들의 집합소로 신당의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

그가 이방 수염을 손으로 만지며 입을 열려 하는데…….

성윤이 손뼉을 짝 쳤다.

“아, 오항로 의원님.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술에 취하면 혼자 사는 여 의원님 집을 찾아간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어?”

“매번 문전박대당하면서도 초인종을 30분이나 누르다가 온다고 들었거든요.”

꿈속에서 성윤이 민국당에 들어갔을 때 직접 봤던 거다.

오항로 의원은 술만 마시면 혼자 사는 여 의원의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는 등 진상 짓은 다 했다.

그 짓을 초선 때부터 했다고 했으니…….

오항로 의원의 얼굴이 붉어진다.

“누,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지만 이미 주변에 있던 의원들이 그 말을 들었다.

“뭐야? 오항로 의원이?”

“그러고 보니까 술 마시면 항상 택시 타고 먼저 갔잖아?”

성윤의 감정을 자극하려던 오항로 의원이 오히려 길길이 날뛴다.

“어디서 헛소리를! 고소당하고 싶어!”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그만이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또 다른 것도 알고 있는데, 계속 떠들어 볼까요? 아니면 쿨하게 사과하실래요?”

오항로 의원이 마른침을 삼킨다.

“이, 이 새끼가…….”

하지만 성윤의 눈빛을 보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섣불리 덤비지 못한다.

그때…….

“그만.”

도제성 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지만 단호하며 위엄이 있다.

한순간에 장내를 정리해 버린다.

오항로 의원은 살았다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선다.

“죄송합니다.”

도제성 의원은 눈동자만 틀어 성윤을 노려봤다.

닭살이 쭉 솟아오르는 눈빛이다.

“이성윤 의원도 그만하세요.”

성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까불었던 오항로 의원에게 더 무안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말싸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성윤은 그 말을 끝으로 도제성 의원의 옆을 스쳐 지났다.

상황이 정리된다.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기자들의 시선도 그제야 흩어진다.

“대박, 이성윤이 안 밀리네?”

그들의 대화는 성윤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성윤은 이제 막 재선으로 주가가 오르는 중인데 대선 주자를 상대로도 밀리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그 패기는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던 중 한 기자가 툭 말한다.

“이번 대선은 도제성, 박무혁, 서용우 삼파전인가?”

“그렇겠지.”

“박무혁하고 서용우가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도제성이 무난히 당선되겠지?”

신당에는 민국당 출신 의원도 많다.

하지만 대한당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평이 크다.

그러니까 박무혁 의원과 서용우 전 총리는 서로의 표를 갈라 먹는 중이다.

두 사람이 합치지 않으면 민국당을 이기기는 어렵다.

민국당은 오로지 도제성 의원 한 명뿐이니까.

기자들이 도제성 의원과 성윤을 번갈아 봤다.

“도제성은 단일화를 막으려 할 테고 박무혁과 서용우는 단일화를 꿈꾸지만 서로가 대선 주자가 되려 할 테고…….”

“누가 양보할까? 박무혁?”

“설마…….”

기자들의 시선이 성윤에게서 멎었다.

성윤은 서용우 전 총리와도 잘 지낸다.

게다가 주진만 의원의 계파로도 소문이 나 있었다.

단일화의 키를 성윤이 쥐고 있을 것만 같다.

***

국회가 끝났다.

성윤은 의원 회관에 앉아 업무를 보는 중이다.

정우가 앞에 섰다.

“올해부터 다자녀 복지 예산 늘어났잖아요?”

“어? 어.”

“성과는 없고 캐시나 빨아들이는 복지라고 욕하는 곳이 생겼네요. 당장 그만두라고 시위를 할 예정이래요.”

“누가?”

정우가 손에 들고 있던 메모장을 건넸다.

“민국당과 손잡은 시민 단체죠.”

성윤은 메모장을 슥 본 후 책상 한쪽에 던져 뒀다.

정치권과 손잡은 시민 단체는 관심 밖이다.

그리고 다시 정우를 본다.

“서안시에 청년 주택 어떻게 됐어? 임 시장님도 승인한다고 했는데.”

이 시대 청년은 결혼을 하고 싶어도 먹고살 집이 없다.

돈을 주고 매입하자니 수억이다.

전세도 마찬가지로 수억…….

그들이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해 바로 취직을 한다고 해도 20대 후반.

월급을 올인해서 적금을 넣어도 서른 전에 수억을 모으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집을 찾아 지방으로 내려가면 일자리가 없다.

임대주택과 주택 청약이 있지만 그것들은 신혼부부가 되어야 가능성이라도 보인다.

그 전에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이런 말도 나온다.

“씨발, 집이 있어야 결혼을 하지!”

그래서 성윤은 청년 혼자도 신청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계획했다.

서안시에 일자리는 충분하니 집만 지으면 된다.

정우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데, 반대가 심해요.”

“누가?”

“주민들이요.”

집을 가진 시민들, 그들은 임대주택을 반대한다.

욕할 수는 없다.

서민들에게 집 한 채가 전 재산.

물량이 늘어나서 집값이 떨어지면 큰일이다.

“오케이, 집값과 상관없다는 걸 알려 드려야 하니까 간담회를 잡아 봐.”

“넵.”

그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삐걱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온다.

“성종 그룹 박근서 부장이라고 합니다.”

성윤을 통해 박무혁 의원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서 찾아온 성종 그룹 대관 담당자다.

그가 성윤에게 명함을 건넨다.

“식사라도 같이하고 싶어서요.”

성윤이 손목시계를 확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잠시 후, 성윤과 박근서 부장은 일식집에 마주 앉았다.

박근서 부장이 성윤을 보며 씩 웃는다.

‘뭐야? 대관 담당자들한테 뻣뻣하다고 소문나서 겁먹었더니, 별것 없네?’

이렇게 쉽게 성윤과 식사 자리를 함께할 것이라고는 박근서 부장도 생각 못 했다.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 생각하며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가 손바닥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바쁘실 텐데, 바로 용건을 꺼내도 되겠습니까?”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근서 부장이 말을 잇는다.

“아시겠지만 우리는 대선 전에 이곳저곳 줄을 대 놓습니다.”

기업은 자신들만 공격하지 않으면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다.

그들은 이념과 철학이 아니라 이득으로 움직이는 자들이니까.

그래서 선거가 시작되면 여기저기 용돈을 뿌리고 다닌다.

친분을 쌓기 위해서다.

“그래서요?”

박근서 부장이 슬쩍 웃는다.

“박무혁 의원님도 그렇고 이성윤 의원님도 그렇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정치자금이 부족한 분들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걸 말해 달라는 건가요?”

“네, 뭐.”

“혹시 윤범성 부회장님의 지시입니까?”

“네?”

일개 대관 담당자가 국회의원을 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정치자금을 운운할 수 없다.

그리고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듣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손바닥 보듯 훤히 보인다.

“아닙니다. 진짜 아니에요.”

박근서 부장은 최대한 변명하고 있지만 성윤은 일부러 기분 나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부터 주도권을 잡아야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갑자기 나타나 원하는 것을 말해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저를 무시하는 겁니까!”

화가 단단히 난 표정에 박근서 부장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리다 해도 국회의원,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이다.

성윤의 호통 소리가 이어지는 순간 박근서 부장이 재빨리 말했다.

“죄송합니다. 윤 회장님의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저희로서는 그 사후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원님을 무시하려던 게 아니라 제 마음이 급했던 겁니다.”

태세 전환이 빠른 사람이다.

적당히 ‘주어’를 제외하며 목적을 이야기했다.

그가 계속 말을 잇는다.

“성종이 각 후보에게 줄을 대고 있지만 담당자는 한 명에게 올인합니다. 박무혁 의원님이 대선에 성공하면 제 주가도 뛰는 거죠. 그래서 전 박무혁 의원님을 대선까지 돕고 싶습니다.”

성윤이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저는 성종 그룹에 나쁜 감정이 없습니다. 후계 과정도 적극 도울 생각입니다.”

물론 성윤이 돕겠다는 후계 승계 과정은 윤범성 부회장이 아니다.

정기화 비서실장이 승계하는 것을 도울 생각이다.

하지만 그 마음을 박근서 부장은 모른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 전에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박근서 부장이 고개를 들어 성윤을 본다.

“말씀하세요.”

“서울시 지원 사업, 많은 예산이 벤처의 탈을 쓴 도둑놈들의 뒷주머니로 들어간다고 들었어요.”

“아, 네.”

성종은 벤처의 동향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놈이 자신들에게 맞먹을 공룡이 될지 항상 파악하고 있어서다.

그리고 공룡이 될 싹이 보이면 그대로 뿌리째 뽑아 자근자근 먹어 버린다.

“그 회사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싶은데요.”

“네?”

“신당이 정권을 잡으려면 기존은 비리투성이었지만 우리는 다를 거라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아. 서울시가 시작인가요?”

“그렇죠. ‘도둑놈들이 곳간의 돈을 빼먹어도 무능한 서울 시장은 몰랐다’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

박근서 부장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성윤이 계속 말을 이었다.

“도둑놈들을 싹 갈아 버리면 서울시는 깨끗해지고 신당의 지지율은 올라가고 새로운 정권에 대한 기대치 역시 올라갈 겁니다.”

박근서 부장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긴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벤처만 박살 난다.

성종 그룹은 눈 하나 꿈쩍할 필요 없다.

‘어쩌면 알짜 벤처를 매입할 수도 있겠네?’

계산기의 답이 나왔다.

신당이나 성종이나 윈윈이다.

“알겠습니다. 비리 방법, 방식, 시기…… 모두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터뜨리면 그 충격은 꽤 클 겁니다. 국민들이 예상하던 것과 실제로 터진 사건을 보는 기분은 다르니까요.”

“종기를 건들면 아프죠. 그렇다고 놔두면 안 돼요. 뽑아내야죠.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제압할 겁니다.”

성윤은 빙긋이 웃으며 물컵을 손에 쥐었다.

‘너희도 종기야.’

< 대선주자. - (5)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