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72화 (172/300)

< 대선주자. - (4) >

꿈속의 인물을 현실에서 마주하는 일은 정말 신기하다.

그것도 장인어른…….

성윤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꿈속의 기억이 스쳐 간다.

좋은 일과 슬픈 일 그리고 안타까웠던 날.

현실에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성윤의 시선을 느꼈나 보다.

그가 멋쩍게 웃는다.

“정덕진이라고 합니다.”

“아, 네. 이성윤입니다.”

성윤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연다.

“동부 지방법원 정덕진 법원장님이야. 새로운 뜻을 위해 퇴임을 결정하셨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정덕진에 대한 것은 잘 알고 있다.

훗날 대법관 그리고 법무부 장관까지 오를 사람이다.

말 그대로 승승장구,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기록되어 명절마다 찾아오는 후배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었다.

그런데, 퇴임이라니?

‘이분의 미래도 바뀌었나?’

미래는 크게 틀어지는 중이다.

없던 신당이 창당되었고 대선 주자도 민국당의 도제성 후보 외에는 모두 바뀌었다.

어디서 나비효과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정덕진의 미래도 변화된 것 같다.

정덕진이 부드럽게 웃는다.

“이 의원님께 면접을 봐야 한다고 들었어요.”

“네? 면접요?”

“박무혁 의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성윤이 황당한 표정으로 박무혁 의원을 바라봤다.

“제가 뭐라고…….”

성윤이 재선 의원이기는 하지만 고작 서른한 살이다.

법원장을 면접 볼 짬밥은 아니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정덕진 법원장님, 말씀드렸듯이 우리 당에서 가장 사람을 잘 보는 친구입니다. 저는 이 친구의 눈이 원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요.”

정덕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기분이 나쁘거나 그런 것 없습니다. 그럼, 출사표를 던진 이유를 말씀드려야겠죠?”

성윤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미 판은 깔렸다.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럼, 제대로 해야 한다.

속마음을 듣기 위해 능력을 개방하고 꿈에서 봤던 미래를 베이스로 깔았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시의 1년 예산은 35조가 넘어요. 하지만 그 많은 돈을 감시할 견제 장치가 부족해요. 마음만 먹으면 코에 걸었다 귀에 걸었다 할 수 있어요. 유치원 비리나 요양원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에요. 제가 만약 당선된다면 단 하나의 일만 할 겁니다. 눈먼 돈을 시민에게 돌려줄 거예요.”

정덕진은 판사로 있으며 많은 비리 소송을 판결해 왔다.

지방의회, 진흥원, 복지 단체, 등등에 깔려 있는 눈먼 돈!

그 주변에는 침을 질질 흘리는 승냥이 떼가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편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세금을 냠냠 뽑아 먹으며 잘 먹고 잘 산다.

비싼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며 술값으로 탕진한다.

어차피 눈먼 돈이니까…….

“임기 동안 그것만 막을 겁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고요.”

정덕진의 눈빛은 꿈에서 봤던 것과 다르지 않다.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당시 그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서민의 살림은 쪼들리고 있는데 정부의 잉여 자금은 넘쳐 나고 있어. 돈이 없는 게 아니야. 도둑놈이 많은 거야!

꿈속에서는 텔레비전을 보며 외치던 말.

현실에서는 도둑놈을 잡기 위해 직접 나섰다.

“이게 전부입니다.”

잠시 후, 정덕진이 전화를 받기 위해 복도로 나갔다.

박무혁 의원이 슬쩍 성윤을 본다.

“어떻게 생각해?”

“스펙도 괜찮고 마인드도 훌륭하시네요.”

성윤의 칭찬에 박무혁 의원이 만족한 미소를 그린다.

“그리고? 전략적으로는 어떨 것 같아?”

“전략적으로도 괜찮을 것 같아요. 대한당이나 민국당은 올드 보이를 올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새로운 인물로 틈새를 공략할 수 있겠죠.”

대선이 코앞이다.

대한당과 민국당은 입으로만 새로운 정치, 새로운 공천을 지껄이며 모험은 지양할 게 분명하다.

그들이 내세울 후보 중에 새로운 사람은 없다.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인물을 후보에 넣고 ‘나를 뽑으면 새로운 서울이 될 거예요.’라고 모순적인 주장을 할 거다.

“신당은 신당의 이미지에 맞게 파격적으로 가야죠.”

“파격?”

“네, 하지만 법원장 출신이라는 안정감도 갖고 있어요. 우리 당의 지지율만 올려놓으면 해볼 만할 것 같아요.”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대로 추진해야겠어.”

성윤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문제는…….’

정덕진의 서울 시장 도전이 문제가 아니다.

꿈속에서 봤던 성윤의 아내가 문제다.

선거 캠프를 꾸리면 적어도 한 번은 마주칠 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까지 생각하던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몇 달 뒤에나 일어날 상황이다.

벌써부터 걱정하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만난다고 꼭 사귀거나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스쳐 지나는 인연으로 끝날 수도 있다.

꿈과 현실은 다른 거니까.

그때, 문이 ‘딸칵’ 열렸다.

밖으로 나갔던 정덕진이 다시 들어온 거다.

그런데, 표정이 멋쩍다.

“죄송합니다. 딸이 하나 있는데…… 주변을 지나던 길이라고 해서…….”

“네?”

성윤과 박무혁 의원은 정덕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덕진이 민망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박 의원님과 이 의원님을 지지해서 꼭 뵙고 싶다고 하는데……. 일단 오라고 했거든요. 날씨가 추워서 혼자 들어가라고 하기도 뭐하고…….”

횡설수설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 말뜻은 분명하다.

딸이 왔다는 거다.

박무혁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들어오라고 하세요.”

“갑작스레 죄송합니다, 허허.”

정덕진이 몸을 돌려 열린 문틈을 향해 손을 흔든다.

어서 들어오라고…….

‘뭐지?’

성윤은 멍했다.

정덕진에게 딸은 하나다.

그 딸은 꿈속의 아내.

‘왔다고? 지금?’

그동안 몇 번이나 스쳤다.

하지만 인연을 피해 계속해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결국은…….

타박, 운동화 소리와 함께 정덕진의 뒤로 그녀가 나타났다.

조금은 창백한 피부에 대조되는 검고 짙은 눈동자.

그녀다.

성윤의 심장은 도둑질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가 정확히 성윤을 향한다.

“정혜성이라고 합니다.”

그날 밤.

성윤은 박무혁 의원과 마주 앉아 있었다.

통재로 구입한 그 빌딩이다.

박무혁 의원이 잔에 얼음을 채우고 양주를 따른 후 성윤의 앞에 놓았다.

독한 술은 목을 타고 넘어간다.

“한 잔 더?”

“네.”

그렇게 한 잔 두 잔, 몇 잔이 더 들어가고 나서야 숨을 쉬기가 편해졌다.

‘로스쿨에 다닌다고?’

꿈속의 아내, 정혜성은 지금 로스쿨에 다니는 중이다.

이 역시 바뀌었다.

‘봉사활동을 했던 것으로 아는데…….’

정덕진이 판사를 그만두고 그녀가 로스쿨에 다닌다니.

어떤 나비효과가 그들의 인생을 바꿔 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송두리째 바뀌는 것은 확실하다.

이 모든 것은 성윤이 역사에 개입해 일어난 현상이다.

‘건강하기만 해라.’

잠시 그녀를 떠올리던 성윤은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녀가 아니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정덕진을 서울 시장에 당선시켜야 한다.

그래야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생활 법률 강의를 시작해 볼까?’

그렇게 이것저것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박무혁 의원이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예쁘던데.”

“네? 뭐가요?”

“정덕진 법원장 딸.”

기껏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도돌이표다.

박무혁 의원이 묘한 미소를 그리며 다시 술병을 손에 쥔다.

“청순가련……. 그런 스타일을 좋아했나?”

“아뇨!”

“그래?”

“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성윤을 보며 박무혁 의원이 즐겁게 웃는다.

“아니면 아니지,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네?”

“지금 표정 관리가 안 되고 있어.”

“……!”

박무혁 의원이 끌끌끌 웃는다.

“이 의원, 지금 자네 표정, 마음에 들어. 자네를 만난 후 처음으로 젊은 사람 같거든.”

성윤은 어색하게 웃었고 박무혁 의원은 잔을 손에 쥔다.

“한 잔 더 하지.”

다시 몇 잔을 마셨다.

박무혁 의원의 표정에 장난기가 싹 사라졌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정덕진 법원장의 그릇을 보면 서울시장은 가능해. 적어도 재선까지는 해 먹을 인물이야. 자네에게는 든든한 후견인이 될 수 있지.”

“…….”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하는 결혼도 나쁜 것은 아니야. 잘 생각해 봐.”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결혼은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미안한 존재가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성윤과 박무혁 의원의 잔이 조용히 부딪친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이 술잔을 입에 댄 뒤 입을 열었다.

“며칠 뒤에 올해 첫 국회가 열리지?”

“네.”

“국회가 끝나면 성종의 대관 담당이 자네를 찾아갈 수도 있어.”

성윤은 성종의 비서실장 정기화와 손잡고 있다.

그런데, 대관 담당이 또 찾아오다니…….

“우리 박 회장의 몸도 좋지 않지만 성종 윤 회장의 건강도 꽤 위독한가 봐.”

거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성종의 윤범성 부회장은 자기 아버지의 사후를 슬퍼할 겨를이 없다.

왕자의 난과 신하들의 반란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 회장님이 사망하면 성종은 흔들리겠지. 상당히 약해질 거야. 정치권에서 가볍게 던진 돌멩이에 처맞아 죽을 수도 있어. 그래서 윤범성은 자네의 의중을 파악하려 할 거야.”

“저를요?”

“난 재계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잖아. 자네는 내 측근이고. 자네를 통해 내 생각을 읽으려 할 거야.”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종이 오면 정덕진 법원장을 좀 도와야겠네요.”

뜬금없이 나온 정덕진의 이름에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덕진 법원장을 도와?”

“정덕진 법원장은 서울시에서 나오는 눈먼 돈을 막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하지만 국민은 세금이 새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별로 없어요.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죠.”

“그 생각을 일깨워 주겠다? 성종으로?”

“네.”

성종이 코 묻은 돈을 뜯어먹는 좀도둑은 아니다.

하지만 눈먼 돈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들을 통해 세금이 질질 새는 곳을 찾는다면…….

“정덕진 법원장의 공약 발표와 함께 터뜨릴게요. 그럼, 꽤 괜찮은 선전이 될 것 같아요.”

***

올해의 첫 국회가 열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설을 앞두고 민심을 생각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국회는 얼음이 쏟아진 것처럼 삭막하다.

연이어 터진 성추행으로 변태 취급을 받는 대한당…….

깡패, 양아치 모임이라며 조롱을 받는 민국당…….

그들의 분노는 신당으로 쏟아진다.

신당을 타깃으로 잡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정당을 배신하고 도망쳤다는 유치한 이유 때문이다.

자신들은 지금 너무 힘든데, 신당으로 간 인간들이 낄낄거리며 웃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다.

의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기자들이 속닥댔다.

“신당은 아직 한 명도 안 왔지?”

“오겠냐? 대한당 의원들이 눈 부라리는 거 봐. 눈 마주치면 잡아먹게 생겼잖아. 딱 시작할 때 올걸?”

“야, 야…… 민국당 봐 봐. 주먹 쥐었다 펴는 거 봤지? 지금 신당이 들어오면 곧바로 이빨을 털어 버릴 기세야.”

“오랜만에 전기톱 흔드는 거 아니야? 오함마로 문 부수고 소방 호스로 물 대포 쏘고.”

기자들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의원들을 바라본다.

세상에 제일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싸움 구경이니까.

“왔다!”

기자들의 입이 확 닫혔다.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시선을 구석을 돌린다.

신당 의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대한당과 민국당 의원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어? 이성윤이 중앙이야?’

박무혁 의원은 출석하지 않았지만 신당에도 기라성 같은 의원들이 포진되어 있다.

민국당 출신의 송건호 의원이나 대한당 출신의 공대출 의원 등등.

그런데, 가장 중앙에 성윤이 걸어오고 있다니.

모두가 멍한 눈으로 성윤을 본다.

그때…….

“저쪽에 도제성이다!”

기자들의 시선이 반대편으로 향했다.

민국당의 대통령 후보 도제성 의원이 등장했다.

서글서글한 미소, 밀짚모자를 쓰면 지금 당장 모내기를 할 것 같은 서민적인 분위기.

저 촌스러운 얼굴 하나로 지지도 10%는 먹고 들어갔다.

민국당 의원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십니까?”

“오셨습니까?”

도제성 의원은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 성윤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뒤를 의원들이 우르르 따른다.

그리고 도제성 의원이 성윤의 앞에 뚝 멈췄다.

“이성윤 의원?”

두 사람의 첫 마주침이다.

국회 내의 모두가 두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 기자가 마른침을 삼킨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도제성이랑 이성윤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어?”

정치판에서 가장 핫한 두 사람이다.

성윤의 나이가 많았다면 이번 대선에서 같이 붙었을 수도 있다.

둘 다 새로운 얼굴, 승부는 예측할 수 없다.

속닥이던 목소리가 다시 멎었다.

그리고 도제성 의원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연다.

“우리 당에 들어올 생각 없어요?”

“……!”

“이성윤 의원이면 박무혁 의원보다 나랑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박무혁 의원은 좀 저돌적이잖아요?”

도제성 의원은 웃고 있지만 신당의 분위기는 서늘해진다.

지금 도제성이 지껄인 말은 명백히 박무혁 의원을 무시하는 뜻이니까.

하지만 성윤은 빙긋이 웃었다.

도제성, 실제로 만나 본 것은 처음이다.

꿈속에서는 대통령이 된 도제성을 먼발치에서 몇 번 본 게 전부였으니까.

도제성은 깨끗했고 정의로웠다.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만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행동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그는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선민사상으로 가득하다.

그를 보며 성윤이 입을 열었다.

< 대선주자.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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