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주자. - (3) >
잠시 후, 곰같이 큰 덩치의 남자가 검은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20대 중반의 앳된 얼굴인데 험악한 인상은 딱 봐도 깡패다.
그가 건들건들 성윤 앞에 서더니 위아래로 살펴보며 입을 연다.
“접촉 사고로 전화하신 분?”
“차주세요?”
“차주는 아니고요. 사장님 대신 확인하러 왔습니다.”
덩치는 두목 대신에 차를 살피러 대신 내려온 놈이다.
허리를 굽힌 후 차를 살피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디 부딪혔다는 거예요? 멀쩡한데?”
사고 난 적이 없으니 당연히 멀쩡하다.
“직접 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차주는 바쁜가 봐요?”
“사장님은 쉽게 얼굴을 보여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서요.”
성윤이 픽 웃었다.
“깡패 새끼가 사장은 무슨…….”
덩치의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성윤을 죽일 것처럼 노려본다.
“깡패? 말 다 했냐?”
하지만 거기까지다.
행패를 부리지는 않는다.
오늘 민유헌 대표의 사건이 터져서 깡패 두목에게 조용히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상이나 일그러뜨리며 험악한 말을 내뱉는 게 전부였다.
“씨발, 운 좋은 줄 알아라. 평소 같았으면 넌 뒈졌어.”
성윤은 그의 협박을 신경 쓰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깡패를 무서워할 리도 없었고 옆에 선 경호원 장한수가 꽤 듬직했으니까.
성윤의 시선은 정우에게 향했다.
“전화해 봐. 도착할 때가 됐다고 했잖아?”
“그러게요. 거의 다 왔다고 했는데…….”
정우가 휴대폰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주차장으로 낡은 중형차가 들어왔다.
차문을 열고 다급히 내린 사람은 김재형 검사다.
“아, 늦었습니다. 이놈이에요?”
김재형 검사가 물건을 감별하듯 덩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덩치는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눈치를 본다.
보통 사람은 자신의 거대한 덩치를 보면 겁을 먹는데 이들은 오히려 장난감을 보듯 하고 있으니…….
“죄송한데요. 누구세요?”
말투가 공손해졌다.
김재형 검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덩치를 향했다.
“이분 몰라?”
턱짓으로 성윤을 가리키며 물었는데 덩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모르는데요.”
“뉴스 안 봐?”
“제가 텔레비전을 안 봐서…….”
김재형 검사가 낄낄거리며 성윤을 봤다.
“인지도 더 높이셔야겠어요.”
“그러게요.”
김재형 검사의 시선이 다시 덩치에게 향한다.
그리고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저분은 차차 알아봐. 일단 난 검찰 공무원.”
“……!”
덩치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주차 사고를 확인하기 위해 내려왔는데 검찰이라니…….
‘이런 젠장!’
김재형 검사가 덩치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만지며 말한다.
“우리 차 한잔할래?”
“영, 영장 있어요?”
“같잖은 짓 하지 말고 닥치고 따라와.”
“……네.”
김재형 검사의 낡은 중형차, 뒷좌석에 성윤과 덩치가 앉았고 운전석에 김재형 검사가 앉았다.
뒷문이 열리고 정우가 편의점에서 사 온 캔 커피를 건넨다.
“그럼, 드세요.”
“땡큐.”
정우는 커피만 건네고 탁, 문을 닫았다.
차량 안은 고요해진다.
성윤이 캔 커피를 따서 덩치에게 건넸다.
“마셔요.”
덩치가 불안한 눈빛으로 성윤과 김재형 검사를 살핀다.
성윤이 자신의 커피를 손에 들며 입을 열었다.
“플리 바겐이라고 알아요? 협조하면 처벌을 감면해 주는 거죠. 그 정도는 여기 검사님이 해 주실 것 같은데.”
“……!”
“계산기를 두들길 필요 없어요. 민유헌 대표가 쓰러지면 그쪽 패거리 중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공권력 우습게 보지 마요.”
덩치의 속마음은 갈등으로 가득하다.
의리와 배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아니다.
성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다.
“생각해 봐요. 대통령을 뽑는 기간이에요. 민유헌 대표를 다른 당에서 살려 둘 것 같아요? 자근자근 씹어 먹고 영양분으로 삼겠죠. 그런데, 그쪽 조직은 영양분도 될 수 없어요. 그냥 잡초니까.”
김재형 검사가 주먹을 꽉 쥐며 입을 연다.
“쉽게 가자. 수사에 협조하면 징역 2년 이하로 맞춰 줄게.”
민유헌 대표는 사건을 부정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고소를 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수사를 해 보라며 배짱을 튕긴다.
덩치는 이 사건에 쐐기를 박아 줄 거다.
“2, 2년요?”
“그래, 2년! 판사만 잘 만나면 집행유예로 끝날 수도 있어.”
‘집행유예’라는 말에 덩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늘 조직의 분위기는 심각할 정도로 어수선했다.
모든 조직원이 아는 경찰에게 전화하고 아는 시의원, 구의원까지 찾아 대며 난리를 쳤다.
그리고 앞에 중앙 지검의 검사가 나타날 정도면…….
닥쳐온 태풍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말 그대로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
거기서 최대 2년, 최소 집행유예라면 괜찮은 조건이다.
잠시 고민하던 덩치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겠습니다.”
이들에게도 의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결정으로 뉴스는 계속해서 시끄러울 수 있었다.
-민유헌 대표와 유착 관계가 의심되던 조직폭력배의 조직원 A 씨가 양심 고백을 했습니다. A 씨는 노숙자의 명의를 이용해 대포통장을 만들었으며 그 통장이 민유헌 대표에게…….
내부자의 폭로로 인해 민유헌 대표가 살아날 가능성은 0%에 가까워졌다.
***
1월이 지나가며 각 당의 대선 주자가 결정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대한당은 서용우 전 총리.
그리고 민국당은…….
민국당 대선 후보 도제성 의원 확정
오늘 오후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민국당 전당대회에서 도제성 의원이 대통령 후보에 당선되었다……(중략)…….
조폭 연루설에 휩싸인 민유헌 대표를 12,341 표차로 압도하고……(중략)…….
내일 아침 국립 현충원 참배로 대선 후보의 공식 일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도제성 의원의 등장에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그는 지난여름만 해도 존재감이 없던 사람이다.
아니, 기사가 발표되기 직전까지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한 국민이 대부분이다.
언론에서는 민유헌의 이름만 오갔으니까.
그래서 여기저기 모이는 사람마다 묻고 또 묻는다.
“그런데, 도제성이 누구야?”
“오, 잘생겼네?”
기존의 정치인과 다른 ‘새롭다’는 느낌.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미담만 가득하다.
그 덕에 순식간에 대선 지지도 1위를 차지했다.
1위. 도제성 47.4%
2위. 서용우 25.6%
3위. 박무혁 23%
이번 지지도에 대해 ‘박무혁 의원 등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후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직은 조심스럽다.’라는 평가도 많다.
하지만 그 파급력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여기저기 도제성, 도제성…….
그의 이름은 빠르게 전국으로 퍼고 있다.
하지만 성윤과 박무혁 의원은 느긋하다.
이번 민유헌 대표 사건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것이 신당이다.
새로 들어온 당원은 말할 것도 없고 기초 의원, 지방단체장 그리고 송건호 의원과 함께 들어온 민국당 의원들까지…….
조금만 더 세를 불리면 국회를 움직이는 것도 해 볼 만했다.
게다가 당의 지지율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다음 주 내로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말 그대로 돌풍이다.
***
그리고 설을 며칠 앞둔 날.
성윤은 리얼 팩트 우명진 대표를 만나고 있었다.
“이거…….”
우명진 대표는 빙긋이 웃으며 햄 선물 세트를 테이블에 올린다.
“뭐예요?”
“의원님 덕에 우리 회사 브랜드 가치가 쑥쑥 올라갑니다. 그 보답이죠. 흐흐.”
리제의 제임스 단독 인터뷰부터 최근 민유헌 대표의 조폭 연루 의혹까지, 리얼 팩트는 성윤이 던져 준 소스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거 직원들 설 선물 아니에요?”
“맞아요. 오는 길에 하나 들고 나왔습니다. 명절에 햄 선물은 기분이잖아요? 흐흐.”
“뭐, 감사합니다.”
우명진 대표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잇는다.
“의원님께 드릴 선물이 햄만 있는 것은 아니죠.”
“…….”
“이번에 우리 회사 덩치가 조금 커졌거든요. 연예 전문 팀을 따로 만들었어요.”
연예인들의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일을 말하는 거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우명진 대표가 말을 잇는다.
“정치판이나 연예계나 가면 쓰고 노는 것은 똑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사건 덮을 일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청순한 척하는 여배우의 뒷모습, 바른생활 청년의 민낯. 사랑했다가 헤어지는 치정 문제가 아니라 진짜 범죄. 말씀만 하시면 1~2시간 내로 터뜨릴게요. 이런 게 공생이잖아요.”
우명진 대표가 포크를 빙글빙글 돌리며 즐겁게 웃는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 부탁할 일이 있는데요.”
“뭐든지요.”
“박무혁 의원님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까요?”
우명진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박무혁 의원요?”
박무혁 의원은 성윤과 한배를 탄 사람이다.
그런데, 그 뒷조사를 해 달라니…….
호기심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보며 성윤이 손을 저었다.
“출마를 선언하면 상대 당의 네거티브가 시작될 겁니다. 그 전에 미리 알아보고 싶어요. 어떤 약점이 있는지. 미리 대비하는 것과 대비하지 않고 당하는 것의 차이는 크니까요.”
“아.”
“박무혁 의원님이 자기 약점을 입으로 말해 줄 사람도 아니고. 제가 알아서 찾아봐야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성윤의 속내는 다르다.
꿈속에서 봤던 미래.
박무혁 의원은 대선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우명진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어디까지 알아봐 드릴까요?”
“팬티 색깔까지요.”
“보름쯤 걸릴 겁니다.”
“대가는 제대로 치를게요. 대신 다른 곳에 알리시면…….”
우명진 대표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기자예요. 약속을 깨는 양아치는 아니에요.”
속마음을 들어 봐도 진실이다.
짧은 기간 자주 만나며 성윤과의 관계가 꽤 돈독해졌다.
두 사람은 술잔을 들었다.
가볍게 부딪치며 한 잔 두 잔 술을 마신다.
그러다가 우명진 대표가 장난스럽게 묻는다.
“그런데, 의원님도 이제 슬슬 여자를 만나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나중에 대통령 되려면 아내도 영부인 훈련을 해야 할 텐데요.”
“아직 여자는 관심 없어요.”
“에헤이, 의원님은 지금이 딱 기회예요. 여배우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의원님 소개해 달라고 난리라던데요? 의원님과 결혼하는 순간 인생이 바뀌는 거잖아요.”
“인생이 바뀌어요?”
성윤이 술잔을 손에 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명진 기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본다.
“몰라요? 의원님은 돈 많죠. 어린 나이에 재선 국회의원, 권력도 있는 거죠. 앞으로 미래도 창창하고. 재벌이 부럽겠어요? 아랍 왕자도 안 부러울걸요?”
“술이나 드시죠.”
가만히 두면 계속 낯간지러운 소리를 할 것 같았다.
성윤은 술잔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
다음 날.
성윤은 오늘도 새벽같이 눈을 떴다.
간밤에 이것저것 술을 섞어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냉장고를 열어 오렌지 주스를 꺼냈다.
벌컥벌컥 마신 후, 현관을 열고 신문을 손에 쥐었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쳤는데…….
지이이잉.
새벽부터 휴대폰이 진동한다.
발신 번호가…… 박무혁 의원이다.
“네, 의원님.”
-우리 당 서울 시장 후보가 찾아봤는데, 오늘 만날 거거든? 같이 면접 좀 볼래?
“아, 네.”
박무혁 의원의 머릿속에 대선은 없다.
그는 당장 앞에 닥친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중이다.
거품 같은 지지율은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확 떨어질 수도 있고 솟구칠 수도 있으니까.
“어떤 분입니까?”
-만나서 파악해. 모르고 만나야 색안경이 없지.
점심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서울 시장…….’
서울이 가진 의미는 크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더욱 그렇다.
대한당과 민국당의 몰락과 신당의 상승.
단순 지지도인지 아니면 진짜 민심인지, 서울은 미니 대선이라는 말까지 들려온다.
서울 시장을 먹으면 대선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무혁 의원도 직접 서울 시장 후보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는 일방적인 통보를 하지 않았다.
함께 만나 보고 ‘확인’을 부탁했다.
성윤을 부하나 아랫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파트너로 생각하는 거다.
‘부담되네.’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성윤은 뒷목을 꾹꾹 누르며 신문을 펼쳤다.
그리고 그날 오전 11시 40분.
성윤은 정우와 함께 신당 당사에 도착했다.
“식사하고 오세요. 저는 당직자들하고 할 일이 있어서요.”
“어.”
“서울 시장 후보…… 누군지 알게 되면 제게 메시지 보내 주세요. 바로 조사해 볼게요.”
“땡큐.”
성윤과 정우는 복도에서 갈라졌다.
정우는 당직자 사무실로 향했고 성윤은 대표실로 걸어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윤은 또다시 긴 복도를 걸었다.
가장 끝에 서자 단정한 모습의 비서가 허리를 굽힌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들어갈게요.”
“네.”
성윤은 대표실의 문을 활짝 열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은 박무혁 의원의 모습이 보였고 맞은편으로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박무혁 의원이 선택한 서울 시장 후보다.
“아, 왔어?”
성윤을 발견한 박무혁 의원이 손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그러자 서울 시장 후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인자한 표정의 남성,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동시에 느긋하던 성윤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오른다.
‘어?’
……장인어른이다.
< 대선주자.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