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70화 (170/300)

< 대선주자. - (2) >

***

‘딸칵’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어두웠던 공간에 손전등의 플래시가 나타나며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곳은 민국당 당사, 민유헌 대표의 방.

들어온 것은 송건호 의원이다.

그는 곧장 책상으로 향한다.

빠르게 의자를 치우고 서랍을 열자 작은 금고가 나타났다.

이 안에 민유헌 대표의 개인적인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

‘비밀번호가…….’

송건호 의원은 거침없이 숫자를 눌렀다.

비밀번호는 뻔하다.

민유헌 대표는 대부분의 비밀번호를 자신의 생일로 설정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르게 그의 생일을 눌렀는데…….

‘아니라고?’

금고는 열리지 않는다.

몇 번 더 흔들어 봤지만 덜컹 소리만 들린다.

송건호 의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지?’

비밀번호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려 봤지만 ‘1, 2, 3, 4’나 ‘0, 0, 0, 0’ 같은 것만 떠오른다.

‘침착해, 침착해.’

송건호 의원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민유헌 대표는 비밀번호를 어렵게 설정할 사람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 또는 상징적인 것…….

순간, 민유헌 대표가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

-다음 대선이 되면 난 새롭게 태어날 거야.

민유헌 대표는 현재 지지율 1위다.

그래서 그는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김칫국을 잔뜩 들이켜고 있다.

송건호 의원이 눈에 힘이 들어갔다.

‘대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선 날짜를 입력했다.

삐리릭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린다.

송건호 의원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흐른다.

‘미친 새끼.’

금고 안을 살피자 문서 더미와 USB가 보인다.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예사로운 물건은 아닐 거다.

USB를 확인하기 위해 가져온 노트북을 펼치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문서를 꺼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이성윤?’

성윤에게 여덟 번이나 전화가 왔다.

하지만 무음이었기에 몰랐다.

송건호 의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이 의원? 왜?”

-지금 나오세요! 박영훈 부회장과 약속을 잡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서 나오세요!

“지금?”

송건호 의원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젠장…….’

일이 틀어졌다.

안전하게 벗어나려면 물러서야 한다.

그의 눈동자가 책상 위로 향했다.

금고에서 꺼낸 서류와 USB가 보인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꺼져야 한다고? 저걸 놔두고?’

그냥 가기엔 억울하다.

그동안 민유헌 대표를 향해 개처럼 꼬리를 흔들었지만 공천 하나 받지 못하는 병신이 된 자신이 불쌍하다.

송건호 의원은 짖으라면 짖고 앉으라면 앉는 가축이었다.

이대로라면 민국당을 떠나 신당으로 간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을 거다.

무엇 하나 이뤄 놓은 업적이 없으니 인정받지 못한다.

송건호 의원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인다.

‘해야 해!’

이건 기회다.

가축처럼 살아왔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넌 어디야! 어디에 있든 이쪽으로 달려와! 지금부터 10분, 10분만 막아!”

-네?

“난 목숨 걸고 이 짓을 하는 중이야! 그러니까 무슨 수를 쓰든 막으라고!”

송건호 의원은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된다.

‘씨발…….’

망설일 시간이 없다.

USB를 손에 들어 노트북에 꽂는다.

그 시각, 민국당 당사 앞.

민유헌 대표의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향하던 민유헌 대표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한다.

화단에 앉아 있는 남자.

등에 멘 백팩과 어깨에 걸친 카메라 가방은 분명…….

‘기자?’

민유헌 대표의 눈빛에 짜증이 올랐다.

대정의 박영훈 부회장이 오기로 되어 있다.

그 모습이 기자의 카메라에 담기면 큰일이다.

“저 기자 치워.”

“알겠습니다.”

수행 비서가 뚜벅뚜벅 기자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혹시 기자님이신가요?”

“아, 네.”

“처음 뵙는 얼굴인데…….”

몸을 일으킨 기자가 명함을 건넨다.

“당 출입 기자는 아니고요. 리얼 팩트의 성 기자라고 합니다. 조금 앉아 있다가 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리얼 팩트요?”

서안시 부동산 투기에 참여한 전, 현직 국회의원과 장관의 이름을 공개한 언론사다.

그 안에는 민국당 의원의 이름도 잔뜩 있었다.

당연히 감정이 좋을 수 없다.

그래서 목소리도 삐딱하니 나온다.

“……리얼 팩트에서 우리 당 앞은 왜 지키고 계신 겁니까?”

“네, 왜요? 리얼 팩트는 여기 있으면 안 되나요? 그런데, 이 시간에 민 대표님은 왜 들어오신 거예요?”

“놓고 온 게 있어서 들르셨습니다.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그만 가세요.”

“그걸 변명이라고 합니까?”

“네?”

기자가 카메라 가방에 손을 올리며 히죽 웃는다.

“진실은 물어보면 되는 거고.”

수행 비서가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기자는 이미 빠른 속도로 민유헌 대표를 향해 다가가며 외친다.

“대표님! 리얼 팩트 성창훈 기자라고 합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시간에 당사로 오신 이유가 뭡니까!”

그의 어깨를 수행 비서가 잡는다.

“아, 진짜! 예의 없이 뭐 하는 짓입니까!”

“놔요! 지금 왜 오셨는지, 그것만 듣고 갈 테니까!”

옥신각신, 기자는 수행 비서에게 잡혔고 민유헌 대표는 계속해서 건물로 들어간다.

그 순간, 기자는 자신의 손목시계로 눈동자를 돌렸다.

‘아직 5분…….’

그는 우명진 대표에게 직접 지시를 받았다.

민유헌 대표를 10분 동안 잡아 두라고.

그가 눈을 치켜뜨며 민유헌 대표를 향해 외친다.

“민 대표님!”

하지만 민유헌 대표는 상관 않고 건물로 들어간다.

***

송건호 의원은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동영상 촬영 모드…….

서류를 빠르게 한 장씩 넘기며 찍는 중이다.

대포통장 거래와 조직폭력배의 뒤를 봐줬던 내역 등.

하지만 양이 많아 시간이 걸린다.

송건호 의원은 슬쩍 눈동자만 움직여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조금만 더…….’

민유헌 대표가 오늘 술을 마신 장소는 여의도다.

당사와의 거리는 몇 분 되지 않는다.

만약 성윤이 민유헌 대표를 막지 못 했다면…….

‘지금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고 있을 거야.’

송건호 의원의 눈동자가 노트북 화면에 닿았다.

아직 USB 파일 복사가 이뤄지는 중이다.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3분.

‘제발…….’

송건호 의원이 초조한 표정으로 바짝 마른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민유헌 대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앞에 기자가 있어요. 죄송하지만 시간을 20분 정도 늦출 수 있을까요? 그 정도면 보낼 수 있을 겁니다. 네, 제 방으로 오세요.”

-그러죠.

통화가 종료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올라탄 민유헌 대표는 자신의 방이 있는 층을 누른다.

송건호 의원은 이제야 마무리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USB와 서류를 금고에 집어넣고 빼놨던 의자를 원래 자리로 이동시킨다.

처음 들어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다.

노트북을 접어 가방에 넣고 한쪽 어깨에 걸친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삑삑삑삑 들리더니 문고리가 움직였다.

송건호 의원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굳어 버렸다.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을 지켜 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놓고 가신 것 있으세요?”

“어? 정 실장, 아직 퇴근 안 했어?”

“잘됐다. 이것 좀 봐 주실래요? 전당대회 끝나고 오픈할 혁신 플랜을 구상했는데요…….”

말소리와 발소리가 멀어진다.

송건호 의원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긴장을 토해 냈다.

잠시 후, 송건호 의원이 건물을 벗어났다.

앞에 세워진 차량의 조수석 문이 스르륵 열린다.

성윤이 앉아 있다.

“고생하셨습니다.”

송건호 의원이 뒷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넥타이를 풀며 한숨을 내뱉듯 입을 연다.

“정 실장도 자네가 섭외한 건가?”

“네.”

“능력도 좋아.”

송건호 의원은 느긋하게 웃는다.

일을 성공해서 그런지 기분이 꽤 좋아 보인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데.”

성윤이 담배를 꺼내 건네자 송건호 의원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그가 연기를 뱉어 내며 민국당 당사를 바라본다.

지금까지의 정치 인생을 함께 했던 곳이지만 이제 떠나야 한다.

그의 표정이 시원섭섭하다.

같은 시간, 민유헌 대표는 자신의 방에 앉아 있었다.

표정은 평소와 같다.

이 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문이 열리고 박영훈 부회장이 들어왔다.

민유헌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웃는다.

박영훈 부회장은 지긋지긋한 리제의 늪을 벗어나게 해 줄 은인이었으니까.

“오셨습니까?”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그럼, 제 일기장을 확인할까요?”

“그러시죠.”

***

“왜? 내가 허우적대는 민 대표에게 구명조끼라도 던져 줄까 봐?”

다음 날, 성윤은 안재열 전 대통령을 찾아왔다.

민유헌 대표를 무너뜨리는 것은 안재열 전 대통령의 시험이었다.

터뜨리기 전에 검사를 받으러 온 것은 당연하다.

성윤이 낚싯대를 손질하는 안재열 전 대통령을 보며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민유헌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만든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안 괜찮으면 봐줄 건가?”

“…….”

성윤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안재열 전 대통령이 조용히 웃는다.

“잘못 만들었으면 부숴야지. 자네도 마찬가지야. 똑같은 괴물이 되어 침을 질질 흘리고 다니면…… 그때는 내가 부숴 버릴지 몰라. 내가 아무리 힘이 없어도 회초리는 들 수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말투는 차갑고 험악했지만 표정은 온화했다.

그가 낚싯대를 접어 옆에 두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이 의원. 내가 신당에 들어가면 세상이 뒤집어질 거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자신이 없다면 말씀드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가는 시기는 조만간 결정하지. 민 대표부터 터뜨려.”

***

“뭐라고?”

민유헌 대표는 눈을 부릅뜬 채 친한 기자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대표님이 조폭과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들어오고 있어요. 뇌물을 받고 무력 단체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1시간 안으로 기사 터질 것 같아요.

“조, 조폭? 무슨 헛소리야! 아니, 출처가 어디야?”

민유헌 대표의 눈동자가 초점을 읽고 떨려 온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했지만 긴장된 목소리를 숨길 수 없다.

-출처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런데 대표님, 이거 헛소문인 것은 아는데……. 루머 맞죠? 거짓말이죠?

“그럼, 그런 게 진실이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렇죠?

민유헌 대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얼굴의 핏기는 싹 빠져나가 있었다.

친한 기자가 조심스레 사실 파악을 하려 한다.

그렇다는 것은 정황이 확실하게 드러났다는 것…….

정치생명이 끝날 거다.

어쩌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던 민유헌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한 번씩 위기가 온다고 했어. 이 위기를 넘어서면 당선이야!’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야 한다.

“윤 기자, 1시간 안으로 기사가 나갈 것 같다고?”

-아, 네.

“20분 안으로 출처 알아봐.”

-네?

“그 헛소문을 내뱉는 곳을 찾아서 보고해. 그러지 않으면 자네 회사의 윗선부터 자네까지 줄줄이 검찰 구경을 하게 될 거야.”

-……!

“20분!”

민유헌 대표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 뒀다.

시선은 시계로 향한다.

기사가 나가는 것은 앞으로 1시간.

그 시간은 언론사가 상황을 파악하며 눈치나 볼 시간이다.

20분 안에 출처를 파악하면 막아 낼 수 있다.

일단 각 언론사의 사장에게 전화를 하려고 휴대폰을 드는데…….

문이 쾅, 열리며 보좌관이 들어왔다.

표정이 참…… 썩어 있다.

“큰일 났습니다!”

“왜!”

보좌관이 손에 든 휴대폰을 다급히 내려 뒀다.

“리얼 팩트라는 곳에서…….”

민유헌 대표의 불안한 눈동자가 화면으로 향한다.

민유헌 대표가 조폭과 연루되어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분명 1시간 후에나 기사가 나갈 거라고 들었는데…….

민유헌 대표의 얼굴에 분노가 솟구쳤다.

“이, 이 새끼들이!”

그리고 대한민국은 시끄러워졌다.

“봤어? 민유헌 그 새끼, 리얼 팩트한테 딱 걸렸잖아?”

“그거 진짜 사실이래?”

“사실이겠지.”

“야, 아니라는데? 사실 무근이고 고소할 거래.”

남자 세 명이 골목에서 흡연을 하며 떠들어 댔다.

어제만 해도 차기 대권 순위 1위였던 민유헌의 스캔들이다.

민국당은 부인하고 대한당과 신당은 국정조사를 주장하며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들고일어섰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그리고 성윤은 어느 빌딩의 지하 주차장에 와 있었다.

검은색 벤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정우에게 묻는다.

“이거야?”

“네. 번호 맞네요.”

“짝퉁 팔아서 성공했나 보네? 2억 넘는 차도 타고.”

“그런데, 진짜 전화하시려고요?”

“어.”

성윤은 운전석에 붙은 주차 번호판을 보며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했다.

그리고 귀에 댄다.

묵직한 목소리가 흘렀다.

-여보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주차하다가 접촉 사고를 냈거든요? 직접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은데…….”

-하…… 지금 내려가죠.

< 대선주자.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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