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68화 (168/300)

< 늪으로. - (5) >

민유헌 대표는 눈을 부릅뜬 채로 조용히 있었다.

동시에 차량 안의 공기가 서늘해졌다.

보좌관도 운전수도 입을 열지 않는다.

한참 후, 민유헌 대표가 끓는 화를 참으며 입을 연다.

“차 돌려. 돌리라고, 이 새끼야!”

“아, 네!”

운전수는 신호가 바뀌기 전에 차선을 변경해서 유턴을 했다.

“국회는 됐어. 당사로 가. 그리고 보좌관?”

“네!”

“강동학 이 새끼, 내 방으로 불러.”

“알겠습니다!”

보좌관은 우물주물하면 혼쭐이 날까봐 빠르게 강동학 의원의 전화번호를 찾는다.

그리고 민유헌 대표의 차량이 민국당 당사 앞에 멈춰 섰다.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강동학 의원의 발언으로 리제가 투자 보류를 선언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유헌 대표가 슬쩍 기자들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제가 드릴 말씀이 없네요.”

“대표님, 여론을 보면 경기가 반등할 수 있던 기회에 민국당이 찬물을 뿌렸다고 합니다.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나중에 대변인을 통해서 잘 설명드리겠습니다.”

민유헌 대표는 카메라를 스치며 굳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민유헌 대표의 방이 벌컥 열렸다.

안에는 헐레벌떡 달려온 강동학 의원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를 노려보던 민유헌 대표는 한숨을 내뱉으며 의자에 앉는다.

“앉아.”

예상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강동학 의원이 서둘러 마주 앉는다.

민유헌 대표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리제를 통해 신당에 타격을 주는 것은 괜찮은 계획이었어. 타이밍만 잘 맞췄다면 기자들은 신당 앞에 가서 도시락을 까 먹었겠지.”

“죄, 죄송합니다.”

“강 의원, 안경 벗어. 그래야, 뺨을 때리든 뭘 하든 마음이 덜 아프지.”

강동학 의원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금테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올렸다.

동시에 짝!

민유헌 대표가 강하게 휘두른 손바닥이 강동학 의원의 얼굴을 스친다.

강동학 의원의 몸이 휘청거렸지만 그는 곧바로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다.

“죄송합니다!”

“죄송? 사람 죽여 놓고 미안하다고 하는 살인자 새끼와 네가 뭐가 달라?”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민유헌 대표가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흐릿한 연기를 내뱉으며 노기 어린 눈빛으로 쏘아본다.

“책임?”

“뭐든 하겠습니다.”

민유헌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은 풀어진 눈빛으로 입을 연다.

“‘뭐든’이란 단어는 무서운 거야. 할 수 있겠어?”

“네.”

“우리 당은 자네를 돕지 않을 거야. 자네는 홀로 서서 총알받이가 되겠지. 하지만 동학아…… 살아남으면 영웅이 될 거야.”

“…….”

“쌍팔 년도에 데모하던 것 기억하지? 난 건물에 갇혀 있었고 군인이 올라왔어. 놈들은 구석구석 뒤지며 나를 찾아내려 애썼지. 하지만 난 살아남았고 이 자리에 앉았어.”

민유헌 대표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의자를 쿡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살아남아. 그럼, 다음 이 자리의 주인은 너야.”

폭력으로 겁을 주고 희망을 던져 주는 쓰레기 화법.

강동석 의원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다.

민국당 의원들은 물론 지지자들에게도 빌런이냐는 소리를 듣는 중이다.

탈출구는 이것 밖에 없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죽으라고 등 떠미는 민유헌 대표에게 비참한 말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강동석 의원은 다시 기자들 앞에 섰다.

그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연다.

“우리는 세계 경제 대국입니다. 그런데, 리제라는 미국의 기업 하나로 이렇게 들썩이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닙니까? 이러니까 독점이니 투자니 질질 끌려다니면서 다 퍼 준 겁니다. 흥분을 멈추고 자세히 확인해 보십시오. 협업이 아니라 하청입니다.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없습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계약 조건이었습니다.”

강동석 의원이 브리핑실에서 나왔다.

복도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미안…….”

강동석 의원이 눈을 떴다.

앞에 송건호 의원이 보인다.

“됐어. 물건도 못 챙기는 내가 병신이지.”

“대표님은 뭐라셔?”

강동석 의원이 머리를 헝클더니 대답 대신 한숨만 내뱉는다.

“하…….”

송건호 의원의 눈이 반짝였다.

***

서안시, 성윤의 사무실은 분주했다.

성윤과 정우 그리고 경호원 장한수는 모든 부동산에서 얻어 온 서류를 살핀다.

권력자들의 가족, 친척, 보좌진의 인적 사항을 파악해 부동산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하도 유명한 사람들이라 그들의 명단을 두어 바퀴만 돌려 보면 탈탈 털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정효순 주임은 계속해서 자신의 남편과 통화하는 중이다.

“아, 진 의원도?”

정효순 주임이 전화를 내려놓더니 성윤을 본다.

“진 의원의 비서가 국민 부동산에 들렀대요.”

리제의 투자로 서안시 부동산이 들끓었다.

평당 만원도 하지 않던 땅이 20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기현상이 벌어지는 중이다.

그 중심엔 정치인들이 있었다.

입으로는 ‘부동산을 잡아야 한다!’, ‘청년이 살 집이 없다!’라 지껄이며 돈 되는 곳이 있으면 오줌을 싸지르고 영역 표시를 하는 그들…….

“정우야, 진 의원의 이름도 집어넣어.”

“넵!”

정우는 곧장 휴대폰에 진 의원의 이름을 기록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다.

-강동석 의원은 ‘공권력을 행사해서 자기 재산을 늘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특검과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동석 의원은 살아남기 위해 결사적인 각오로 배수진을 쳤다.

벼랑 끝에 서서 성윤의 발목을 잡고 싸움을 건다.

하지만 성윤과 정우 그리고 정효순 주임까지 그의 목소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성윤이 한 묶음의 서류를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이것부터 시작하자.”

정우가 손을 흔든다.

“다녀오세요.”

최근 경호원으로 들어온 장한수가 성윤의 옆에 있으니 정우가 운전할 일이 없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서안 시청이었다.

임인혜 시장이 찻잔을 손에 쥔다.

“오랜만이네요.”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 게 몇 달 만이다.

그동안 잠도 못 자고 일을 했는지 피부가 많이 상했다.

예쁘게 보이려고 애를 쓰는 다른 국회의원과 천지 차이다.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뭐죠?”

“하나는…… 입당하실 생각 없나요? 강요는 아닙니다. 부탁이에요.”

그녀는 아직 무소속이다.

서안시 최초 무소속 시장이며 대한당과 민국당 어디에도 뜻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고개를 끄덕.

“예상했어요. 이번 선거에는 당적이 생기겠네요.”

그녀는 예상하고 있었다.

성윤이 자신을 영입할 것이라고…….

그리고 큰 고민도 하지 않았다.

신당의 이념은 ‘합리’였고 기초의원들에게도 압력을 행사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일할 것을 권하는 당이었으니까.

그녀와 뜻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다음은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 서 주셨으면 합니다.”

“기자요?”

서울 시장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해당 지역의 언론사에나 오르내리는 게 전부다.

메이저 언론사는 지방 시장에게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국민의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서안시는 다르다.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면에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성윤이 가져온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기자들은 제가 부르죠. 시장님의 브리핑은 서안시의 역사가 바뀔 나비효과가 될 겁니다.”

그녀가 서류를 넘겨 본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게…….”

“권력자의 더러운 민낯입니다.”

***

서안시 시청, 브리핑실은 기자들로 바글거렸다.

지역 기자만 있는 게 아니라 메이저 언론사와 방송국에서도 카메라와 노트북을 점검하며 임인혜 시장을 기다린다.

리제의 투자 약속과 보류, 민국당의 찬물 끼얹기, 게다가 부동산 폭등.

기자들은 서안 시장 임인혜의 브리핑이 충격적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임인혜 시장이 굳은 얼굴로 단상에 올랐다.

기다렸던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다.

임인혜 시장은 장내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린다.

“저는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최근 서안시부동산은 과열되었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자들은 숨을 죽인다.

‘뭐지?’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은 폭탄선언이 아닐까?’

‘리제에서 투자를 보류했잖아? 땅값이 조정될 것 같은데, 폭탄선언을 한다고?’

그녀가 다시 시선을 들며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관이 서안시의 땅을 매입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동산을 안정시켜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서 투기 세력이 된 겁니다.”

“……!”

기자들의 눈이 번뜩거렸다.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관? 씨발! 특종!’

기자들에게 정치인의 부동산 투기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이다.

씹고 뜯고 맛보고 할 수 있다.

임인혜 시장의 목소리가 계속 흘렀다.

“참고 있기 힘듭니다. 그래서 간절히 요청합니다. 제발, 이런 일에 앞장서지 말아 주십시오. 여러분이 헐값에 매입해 비싼 값에 파려는 행위! 더는 간과하지 않을 겁니다. 그 땅은 조상대대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멈췄다.

기자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그중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시장님,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관이 땅을 매입한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이름을 밝혀 주실 수 있습니까?”

임인혜 시장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녀는 적절히 선을 긋고 몸을 돌려 단상에서 내려왔다.

기자들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신다.

하지만 투기한 정치인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부동산을 돌고 등기부 등본을 확인해야 하는 과정이 귀찮을 뿐이다.

기자들이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들을 보며 성윤이 담배를 입에 문다.

다행히 신당에 합류한 의원들은 이번 부동산 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박무혁 의원이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걸려드는 것은 대한당과 민국당 의원들.

성윤이 담배를 비벼 끄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우명진 기자님? 팩스 받으셨죠?”

기사가 올라갔다.

이성윤 의원과 박무혁 의원이 돈벌이에 이용했다고? 민국당의 후안무치 행태!

오늘 오후 서안시 시청에서 임인혜 시장의 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리얼팩트는 전, 현직 국회의원과 장관의 이름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찾아냈다.

대한당 오근민 의원, 왕명경 의원……(중략)……민국당 장용주 의원, 채정헌 의원, 오태식 의원……(후략)…….

댓글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시 부동산 투자의 제왕들. 안 산 게 등신인 거야!

-위선, 위선, 위선!

-지금까지 대한당 욕하던 민국당 알바들 어디 가셨나?

-대한당도 샀잖아, 병신아!

-대한당은 원래 더러워서 저런 건 티도 안 남. 엣헴.

-뭐라고 변명할지 기대됨. 치킨과 맥주 준비됐으니까 어서 변명해 봐!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의 이치라더라. 민국당이나 대한당이나 손잡고 검찰에 가셔야지.

-오태식이 돌아왔구나. 반갑다. 임인혜 아줌마에게 투기 걸린 얘기는 들었다.

-병진이 형은 나가, 뒈지기 싫으면.

-민국당 좆 됨. 깔깔깔깔깔.

“저년이 미쳤나.”

텔레비전으로 임인혜 시장의 브리핑을 보던 민유헌 대표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벌게진 눈동자로 휴대폰을 귀에 댄다.

“오늘 서안시 시장 관련 기사, 후속 보도 막아. 지금 올라온 기사도 내리라고 해. 포털 사이트에도 실검 빼지 않으면 각오하라 전해. 일회성으로 끝나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와 마주하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민유헌 대표는 보좌관의 목소리를 들으며 휴대폰을 내려 뒀다.

끄음,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불을 꺼야 하는데 쉽게 꺼질 불이 아니다.

기사를 막아도 SNS나 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민국당을 조롱하며 침을 뱉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개돼지들은 자연스레 잊어 먹겠지만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해, 큰불은 큰불로 덮어야 하는데…….’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지도부가 우르르 들어온다.

그들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웅성거린다.

“씨발, 땅 몇 평 산 것 가지고 되게 지랄이네.”

“리제가 발 빼면서 땅값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나도 피해자야. 만 원짜리 땅 웃돈 줘서 산 거라고. 그리고 내가 돈이라도 만져 봤으면 몰라.”

민유헌 대표가 지도부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배에 구멍을 냈는지 찾아내는 게 우선이 아니다.

구멍을 막아야 한다.

“됐고. 여론을 식힐 방법을 말해 봐. 연예인 구설수로는 못 덮는 것 알지?”

***

“역풍 제대로 맞았는데? 민국당은 정신 못 차리겠어.”

박무혁 의원이 빙긋이 웃으며 신문을 내려 뒀다.

“그래, 이제는 뭘 할 거야?”

박무혁 의원의 얼굴은 피곤해 보인다.

성윤이 정계에서 발에 땀띠가 날 정도로 뛰어다닐 때 그는 재계의 인물을 상대하고 있다.

성윤이 입을 연다.

“민국당은 자신들의 불을 끄기 위한 더 큰 불을 원할 겁니다.”

“큰불? 덮을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연예인 스캔들로도 이건 어려워. 동영상이 유출되지 않는 한 잡기 힘들 거야.”

대한민국에서 군대 문제와 부동산 투기는 민감하다.

연예인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기회에 박영훈 부회장과 민국당이 싸우게 만들면 어떨까요?”

혼란을 수습하려는 민국당에게 재계는 좋은 먹잇감이다.

그 말에 박무혁 의원이 한참을 웃는다.

“또 개판 되겠네.”

< 늪으로.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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