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67화 (167/300)

< 늪으로. - (4) >

***

서안시의 한정식집이었다.

송건호 의원이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연다.

“……기사가 나갈 거야.”

민국당의 당 대표 민유헌이 칼을 빼 들었다.

그 계획이 온전히 진행되면 성윤과 박무혁 의원은 리제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쓰레기로 전락할 거다.

그만큼 대권도 멀어진다.

성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저와 박무혁 의원님의 지지도를 내리기 위해 그런 짓을 한다고요? 기회가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나요?”

리제는 한국 지부에 관한 사항은 도장을 찍기 않았다.

계약이 되지 않았기에 분란이 일어나면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으니까.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겁니다.”

제임스의 아시아 지부 약속으로 AI와 건설 등 관련된 모든 주식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주식이 실물경제로 옮겨질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그 덕에 내년 경제에 대한 낙관론도 나오는 중이다.

그런데, 민유헌 대표는 똥을 뿌려 대고 있다.

미친 새끼들이다.

송건호 의원이 생각에 빠진 성윤을 물끄러미 본다.

성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경제가 반등할 수도 있는데 왜 욕심만 부리는지…….”

그 말에 송건호 의원은 고개를 숙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어린놈의 뱃속에 뭐가 들어 있어서 그리 사나울까 궁금했는데, 영락없는 어린애였어! 정치인이 덜됐어. 아직 착해.’

성윤은 국민을 생각하며 경제를 고민한다.

‘그 생각을 네가 왜 해!’

경제 상황이 좋아지고 취업률이 올라간다 해서 성윤과 신당에 득 될 것은 없다.

지금의 성적표는 성윤의 것이 아니라 한상국 대통령의 것이기 때문이다.

신당이 아니라 대한당의 지지율이 올라갈 거다.

‘씨발, 잘못 골랐나?’

어떤 상황에서도 탐욕적으로 왕의 길을 걸어갈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착해 빠져 가지고!’

그가 주먹을 꽉 쥐며 입을 열었다.

“이 의원, 지금 생각할 것은 국민이나 경제가 아니야! 지금은 민국당을 어떻게 공격할지 고민해야 해. 그래서 이 문제가 흐지부지되도록…….”

성윤이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봤다.

성윤의 눈은 메말라 있었다.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의원님은 민유헌 대표에게 정치를 배웠죠?”

“갑자기 그건 왜?”

성윤의 말대로 그의 정치적 스승은 민유헌 대표였다.

민유헌 대표는 술을 마실 때면 이런저런 말을 꺼내는데 그중에서도 자주 내뱉는 말이 있다.

-대한당이 좋은 법안이나 정책을 내놔도 기를 쓰고 막아. 대통령과 여당을 병신으로 만들어야 우리 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거야.

민유헌 대표에게는 민생보다 당장 닥쳐온 선거가 더 중요했다.

대한당의 정권이 망하면 그 기회는 자연히 민국당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개 같다는 것 나도 알아. 하지만 대한당에 정권을 맡겨 둘 수는 없잖아? 저 쓰레기 같은 놈들은 국민을 생각하지 않아!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다 해결될 거야. 그때부터가 진정한 정치의 시작이야!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이 더러운 똥물을 헤엄치는 것이고.

송건호 의원의 속마음을 들으며 성윤이 얼굴을 쓸어 만졌다.

“개 같네요.”

이런 정치, 꿈에서는 많이 봤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하니 토악질이 올라온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왜 그를 후계로 지목하지 않고 질질 끌었는지…….

왜 뿌리째 뽑아 달라고 했는지 이해할 것 같다.

송건호 의원은 한숨을 내뱉으며 술을 홀짝였다.

‘확실히 이성윤은 민유헌의 상대가 아니야.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역량이 달려.’

그는 성윤에게 민유헌의 공격을 알려 줬다.

하지만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고민만 하고 있다.

‘개 같네.’ 어쩌네 하는 것은 패배자가 지껄이는 말이다.

‘이거…… 박무혁에게 다이렉트로 연락해야 하나?’

그 순간, 성윤이 휴대폰을 귀에 댄다.

“정우야, 제임스에게 연락해서 아시아 지부 보류하자고 전해.”

송건호 의원의 시선이 다시 성윤에게 향한다.

“이 의원?”

성윤은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박무혁 의원님게도 전화드려. 리제와의 독점 계약도 보류하자고.”

성윤이 휴대폰을 내려 두자 송건호 의원이 다급히 묻는다.

“지, 지금 리제의 제안을 반려한 건가?”

“네.”

“그거 엎어지면 신당은 큰일 나! 지금껏 얻어진 지지율이 뭣 때문일 것 같아? 리제는 끌고 가야 해! 생각해 보면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박무혁 의원과 상의해. 그런 걸 혼자 결정하고 그러면 안 돼! 이게 기자들에게라도 흘러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기자요?”

“그래, 기자!”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기자를 활용해야겠어요.”

“이 의원!”

“리제가 한국에 등을 돌린 이유는 민국당입니다. 모든 것이 엎어지고 모든 비난이 민국당에 향할 때, 제가 미국에 가서 쇼 한번 하고 돌아오죠.”

“……!”

“겸사겸사 서안시 토지에 숟가락을 올린 의원들에게도 개망신을 줄 수 있겠네요.”

리제가 반려한 원인을 모두 민국당에 돌린다.

경제 회복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민국당을 신랄하게 비난할 거다.

그때, 성윤이 미국에 넘어가 삼고초려 끝에 계약서를 들고 돌아온다면…….

경제적 타격 따위는 없다.

민국당만 타격받는다.

“그래서 의원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송건호 의원이 활짝 웃었다.

잠시 어리다고 착각했는데, 자신의 눈은 잘못되지 않았다.

성윤은 역시 악마다.

“말해.”

***

한 해의 마지막 날, 송건호 의원은 강동학 의원과 룸살롱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강동학 의원은 민유헌 당 대표의 계파로 차기 대권 주자로 알려져 있다.

“어쩐 일로 술을 다 산대?”

“내가 요즘 대표님 눈 밖에 났잖아. 알아서 좀 찔러 달라고.”

“뭘, 그런 것 가지고.”

강동학 의원은 무게감 있는 행동과 목소리를 보이며 술잔을 손에 들었다.

하지만 잠시다.

흥청망청 술을 퍼 마시더니 곧 개가 되었다.

그가 송건호 의원의 옆에 앉은 여자에게 리모컨을 집어 던지며 말한다.

“야, <고해> 눌러 봐. 고해!”

“<고해>요?”

여자의 눈빛이 순간 흔들린다.

<고해>는 좀…….

하지만 리모컨을 눌러 대며 <고해>를 찾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강동학 의원이 자신의 파트너 어깨에 팔을 두르고 노래방 기기 앞에 선다.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휘청거렸지만 최대한 허스키하게 목소리를 뿜어냈다.

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노래를 부를 때, 송건호 의원은 재빨리 그의 휴대폰을 소파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발로 툭 차서 소파 밑으로 넣어 버린다.

그 순간, 강동학 의원이 몸을 홱 돌려 송건호 의원을 바라봤다.

거북한 눈빛이다.

‘씨발, 걸렸나?’

송건호 의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내 노래 어때? 잘 부르지?”

“100점이야. 100점! 으핫핫핫!”

다행히 모르고 넘어갔다.

“한잔 마셔!”

그 뒤로 양주 세 병을 더 마신 후에야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텅빈 룸.

삐걱 문이 열리더니 정우가 들어왔다.

허리를 굽혀 소파 밑을 살피자 강동학 의원의 휴대폰이 보인다.

정우가 휴대폰을 손에 쥐며 작게 말한다.

“붐!”

***

1월 1일.

사람들은 올해도 작년과 똑같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게다가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연달아 있는 해다.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아침을 먹으려 하는데…….

-한 남성이 언론사에 연락을 해 왔습니다. 강남의 한 주차장에서 휴대폰을 주웠는데 메시지의 내용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취재진의 확인 결과 휴대폰의 주인은 민국당 강동학 의원이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모습이 사라지고 휴대폰 메시지 창이 보였다.

-일단 리제가 한국에 못 들어오게 준비해라. 언론에 요리까지 해서 줄 수 있도록 레시피를 만들어 봐. 나머지는 보고 이야기하지.

삑.

텔레비전이 꺼졌다.

도깨비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민유헌 대표가 앞을 노려본다.

“이런 미친 새끼가!”

호통이 쩌렁하고 울렸다.

앞에 선 강동학 의원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죄,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지도부더러 다 모이라고 해!”

“네!”

잠시 후, 당 대표실에 지도부가 모였다.

그들은 지역구의 시장을 돌며 새해 덕담을 나누던 중이다.

하지만 당 대표에게 급히 호출되어 이곳으로 달려왔다.

모두 살벌한 표정으로 강동학 의원을 노려본다.

살인이 용인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 버릴 것 같은 눈빛이다.

민유헌 대표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멍청한 새끼의 메시지에 우리 당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 대선에 대한 말이 없다는 것이야.”

지도부가 일제히 휴대폰을 들어 기사를 검색할 때, 민유헌 대표가 말을 이었다.

“강동학, 지금 당장 브리핑실로 내려가. 기자들을 불러서 해명해! 그런 메시지를 적은 이유는 리제를 통해 개인의 지갑을 채우려 한 이성윤과 박무혁 때문이라고 전해!”

탈출 방법은 정면 돌파다.

논점을 흐리고 이성윤과 박무혁에게 비난을 돌릴 수 있다.

강동학 의원이 일어섰다.

“네, 알겠습니다.”

“어서 나가!”

강동학 의원은 도망치듯 회의실을 벗어났다.

구석에 앉아 강동학 의원을 보던 송건호 의원은 잠시 미안한 시선을 보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민유헌 대표의 시선이 지도부에게 향했다.

“총력전이야. 이성윤과 박무혁을 타깃으로 ‘돈맛을 알더니 이제…….’라는 말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녀. 어차피 국민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봐!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 돈 많은 새끼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국민이 준 권력을 이용했다고 외쳐!”

민국당의 대선 후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대한당과 신당을 짓밟으며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팔아 권력만 좇을 생각이다.

“우리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면 다 좋아질 거야. 그때까지만 참아.”

지도부는 앞다투어 달려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사무실로 또 어떤 사람은 기자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강동학 의원은 브리핑실 앞에 섰다.

비서관이 건넨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헝큰다.

“초췌해 보이나?”

보좌관이 강동학 의원의 얼굴을 샅샅이 살핀다.

“눈을 비벼서 충혈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씨발…….”

강동학 의원은 눈을 비빈 후 초췌하고 충혈된 눈으로 브리핑실 문을 열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

다음 날.

민유헌 대표가 탄 차가 국회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직접 국회 상주 기자들을 만날 생각이다.

한 명, 한 명 얼굴을 맞대고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을 보던 그가 휴대폰을 손에 쥔다.

어젯밤, 강동학 의원이 브리핑실에서 한 인터뷰 기사가 보인다.

강동학,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었다

민국당 강동학 의원은 휴대폰 메시지가 공개된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며……(중략)…….

‘리제의 투자는 박무혁, 이성윤 두 사람의 재산을 불리기 위한 꼼수다. 제임스 회장의 방한으로 이득을 본 것이 누군지 생각해 봐라. 박무혁 의원의 대정 자동차와 이성윤 의원의 서안시가 이득을 봤다.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중략)…….

강동학 의원은 이번 일이 드러나서 다행이라며 국민을 위해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겠다고……(후략)…….

민유헌 대표는 한숨을 내뱉었다.

기사의 내용은 나쁘지 않다.

문제는 민심이다.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댓글을 확인한다.

인터넷 댓글로 민심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 파악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눈을 감았다.

-질투인데?

-웃고 간다, 병신아.

-합리적 의심은 지랄. 민국당은 그래서 성공한 투자자가 누가 있죠?

-민국당에는 투자자보다는 아파트 다운 계약을 통한 절세의 왕이 많지.

-투자자가 없다니. 서초동에 아파트 스물네 채 가진 분도 계신데. 민국당에 부동산왕 많음.

-보여 준 것은 없고. 청와대는 갖고 싶고. 그래서 하는 게 잘되는 사람 발목 잡기. 인정?

언제나 대한당을 깠던 네티즌이 민국당을 씹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민국당의 편이 아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올해의 민국당은 힘들어질 수도 있다.

“보좌관, 조금 더 강하게 나가야겠어.”

“어떻게 할까요?”

“지라시 언론 통해서 리제가 대정 자동차를 인수할 의향이었다고 소문을 흘려. 겉으로는 독점 계약이라 말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인수에 대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

“네?”

“어서!”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강동학 의원의 절절한 인터뷰와 지라시를 통한 소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될 거다.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어도 마찬가지다.

이미 정치권과 재계에 관한 불신으로 가득한 상황이라 ‘그럴지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럼 되는 거야.’

하지만 성윤은 여기까지도 예상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기자의 전화번호를 찾던 보좌관이…….

“대, 대표님!”

“왜!”

보좌관이 서둘러 차량의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던 리제의 회장 제임스가 정치적 발언을 두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제임스 회장은 ‘한국은 좋은 나라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을 가지면서까지 투자하기는 어렵다.’라며 투자 보류를 선언했습니다. 이번 일은 민국당…….

민유헌 대표의 주먹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리제의 투자 보류, 리제 덕에 거품 지지율을 얻고 있던 신당이 이따위 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리제가 보류하면 신당의 거품은 다시 꺼져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꽉 다문 치아에서 분노의 이름이 흘러나온다.

“이성윤!”

< 늪으로.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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