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늪으로. - (3)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성윤의 표정을 본 박무혁 의원이 웃음을 터뜨린다.
“도제성은 자네가 상대해야지.”
“네?”
“난 재계의 노인네들과 그 자식들을 신경 쓰는데도 머리가 아파. 알잖아? 우리의 적은 정계에만 있는 게 아니야.”
보통 사람들은 재계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이 편법이란 이름의 불법을 저질러도 ‘씨발, 저럴 줄 알았어.’라며 욕 한 번 내뱉는 게 전부다.
살아가는 세상이 달라서다.
우리가 천 원, 만 원에 벌벌 떨 때, 수백억을 잃어도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들…….
그 세계에서 살아 보지 못한 사람은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다르다.
그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자라왔다.
그들이 어떻게 돈을 세탁하고 빼내는지, 어떤 방식으로 비리를 저지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여차하면 그들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개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니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재계의 인물들이 박무혁 의원을 경계하는 거다.
박무혁 의원이 잔을 손에 쥐며 말한다.
“난 자네에게 내 등을 맡겼어. 자네가 선택할 차례야. 내 등을 찌를지, 아니면 지켜 줄지. 난 지켜 줬으면 좋겠는데.”
“그거 아십니까? 의원님은 가끔 무모한 부탁을 하십니다.”
“가능성이 없는 일을 부탁하지는 않잖아?”
“대선급 주자도 아니고 진짜 대선 주자를 제가 어떻게 상대합니까?”
대선 후보가 되면 평범한 정치인에서 대통령이 될 준비를 시작한다.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고 배우며 익힌다.
그 과정에서 시야가 넓어지고 상대 후보와 싸우기 위한 맹수의 발톱은 날카롭게 벼려진다.
그리고 대선이란, 각 지지자들이 가장 열성적이고 집단적 광기를 뿜어내는 시기다.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 서로를 적과 아군으로 나눈다.
이념과 정책은 상관없다.
오로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왕좌에 올리기 위한 종교적 행사처럼 보일 정도다.
이 시기가 되면 주자도 지지자도 반은 미쳐 버린다.
누군가는 야만적이라 말할 정도다.
그 광기를 성윤의 힘으로 찍어 누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부드럽게 웃고 있다.
“여의도 마귀까지 잡아먹었으면서 왜 이리 약한 소리를 하는 거야?”
“여의도 마귀는 여자를 밝혔던 거고요.”
“도제성도 남자야.”
“제 예상에 여자 문제는 깨끗할 것 같습니다.”
“지금 도제성 편드는 거야?”
성윤이 뒷목을 꾹꾹 누르며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국회의원을 잡던 놈이 대통령 후보 잡으려니까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습니다.”
“……?”
“오강민 의원에게 부탁해서 성종 그룹의 정보를 뒤져 봤지만 도제성의 옷에서 먼지 하나 찾기 힘들었습니다. 어깨에 비듬 몇 개 있는 게 전부입니다.”
박무혁 의원의 표정이 변한다.
성윤은 이미 도제성의 약진을 예상하고 조사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 자리까지 간 놈이 먼지 하나 없다는 건가?”
“네.”
“방법은?”
“왕좌에 앉고는 싶은데, 왕이 너무 세면 어떻게 합니까? 피해야죠.”
“피해?”
“초한지에서 항우와 유방이 싸울 때, 유방은 항우를 피해 다녔습니다. 하지만 승리는 유방이 했죠. 대한당이 평소 그대로였다면 서용우 총리는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대한당이 무너지자 15% 지지율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국당은 다를까요?”
굳이 도제성을 공격할 필요는 없다.
민국당을 두들기면 된다.
그들은 그들대로 약점이 많다.
박무혁 의원이 빙긋이 웃으며 성윤의 잔을 채운다.
“비싼 술이야. 많이 마셔.”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며 동시에 피식 웃었다.
박무혁 의원이 잔을 내려 두며 장난스레 말한다.
“그리고 지방선거도 자네가 알아서 해.”
“네?”
“나한테는 변동 사항이나 이슈만 보고해 주고.”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쳐 있다.
대선으로 따지면 월드컵 예선전과 같다며 떠들어 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엉덩이를 들썩인다.
여기서 보여 주는 게 없다면 죽도 밥도 안 된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대한당은 사력을 다해 총력전을 펼칠 테고 민국당은 기세를 얻기 위해 이를 꽉 깨물 테니까.
그런데, 그걸 성윤에게 맡긴다니.
“……제가요?”
성윤은 아직 어리다.
내년이 되어도 서른한 살이다.
이제 막 채워진 당직자들과 의원들이 순순히 따를 리가 없다.
물론 그 의원들의 목에 개목걸이가 채워져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선거는 국회의원이 공천이라는 권력으로 아랫사람을 찍어 누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니까.
“부담 갖지 마. 의원들 지역구 몇 개 박살 나도 상관없어. 승리한 곳이 다섯 손가락에 꼽히지 않아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딱 세 곳만 먹으면 돼.”
“어디인가요?”
“일단 서울,”
성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서울특별시장이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다른 시장이 차관급 대우를 받는 것에 비해 유일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기까지 한다.
정치적 크기와 가치로만 생각하면 대통령 다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서울특별시장이 되면 자연스레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도 서울 시장을 역임했던 사람이 두 명,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던 사람이 한 명이나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각 정당은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서울에 깃발을 꽂으면 그 당의 상징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요?”
“경기.”
경기도지사, 서울시장 다음으로 막강하다.
역대 경기도 지사가 대선에서 고배를 마시며 대선 주자의 무덤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다음은 부산인가요?”
“아니, 서안시.”
“……!”
서안시는 네 개의 구로 나뉘어 있다.
동구와 서구, 북구와 남구.
동구의 성윤이 탈당하지 않았다면 대한당과 민국당이 두 개씩 사이좋게 나눠 먹고 있었을 거다.
지금은 무소속 시장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 외에는 군소 정당에 자리를 내준 곳이 없는 지역.
“서안시의 시장은 물론이고 모든 구청장까지 우리 당으로 채워.”
“……!”
성윤의 지지율이 높지만 서안시 전체를 신당의 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말 그대로 도전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박무혁 의원은 성윤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 나이가 만 40세.
성윤의 나이는 내년이 되어야 서른하나.
대권에 도전하려면 최소 다음, 다음을 기대해야 한다.
그때, 박무혁 의원은 없을 거다.
대권을 차지해 대통령이 되었다면 퇴임하여 재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계속 이 바닥에 머무를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 시간의 공백을 성윤 혼자 채우려면 확고한 거점이 필요하다.
박무혁 의원은 성윤의 거점으로 서안시를 선택했다.
“원하는 모든 것을 밀어주지. 돈, 명예, 사람……. 서안시 전부를 자네 것으로 만들어.”
성윤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독한 양주를 몇 병이나 비웠지만 걸음걸이는 흐트러짐 없이 바르다.
차량 앞에 기다리고 있던 박무혁 의원의 보안 요원이 고개를 숙인 후 차문을 연다.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대리 운전을 부를 수도 있지만 이곳은 비밀스러운 장소다.
거절할 명분은 없다.
성윤은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보안 요원이 핸들을 틀어 주차장을 빠져나갔고 성윤은 창밖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대선의 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한당의 서용우, 민국당의 도제성, 그리고 박무혁.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괜찮다.
세 사람 중 누구도 범죄에 가까운 죄는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최악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난세를 끌어 갈 힘은 박무혁 의원에게만 존재한다.
‘하나만 더…….’
세상의 모든 관심이 확 주목될만한 이벤트가 필요했다.
‘안재열 대통령님이 움직여 준다면…….’
***
며칠 후, 새해를 앞둔 날.
안재열 전 대통령이 장난기로 가득한 얼굴로 앞을 바라봤다.
성폭행 추문으로 곤욕을 치르는 원동현 의원이 보인다.
“입원했을 때도 안 찾아오시던 분이 어쩐 일입니까? 놀릴 게 생겼으니까 온 겁니까? 에잉, 고약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그 나이에 기력도 좋아. 옛날부터 여자 밝히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도 그럴 줄은 몰랐어요. 서른이나 어린 여자를…….”
안재열 전 대통령이 껄껄 웃자 원동현 의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화를 터뜨리지 않는다.
평생 적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라 그런지 상대의 속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재열 전 대통령은 진심으로 그의 불명예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그의 술잔에 술을 채운다.
“늙으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합디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겁니까? 사람들이 욕해요. 은퇴하는 것보다 무덤에 들어가는 게 빠르겠다고. 여기까지 몰렸으면 이제 그만 내려놓으세요.”
“아이고, 그쪽은 대통령을 해 봤으니까 속 편한 소리를 하지. 난 이대로 죽으면 억울해서 눈도 못 감아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잘 알잖아요?”
“하긴, 가장 열심히는 했죠. 잔머리 굴리는 쪽으로.”
안재열 전 대통령은 다시 껄껄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가며 대화를 이어 간다.
그리고 원동현 의원이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연다.
“안 대통령, 우리 시대가 끝났소?”
안재열 전 대통령이 픽 웃는다.
“몰라서 묻는 거요? 한상국 그 양반도 지금 절절매고 있어요.”
가장 잘 나갔던 시절만 기억된다.
세상을 호령하던 그 시기.
모든 언론사가 눈치를 보며 설설 기었다.
그 시절이었다면 이주혜 비례대표가 성폭행 어쩌고 인터뷰를 했어도 언론사가 나서 그녀를 미친년으로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이빨과 발톱이 빠진 늙은 사자가 되었다.
기자라는 하이에나는 늙은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술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아쉽지만, 이게 순리지.”
“순리…….”
“죽기 전에 우리 집으로 놀러 와요. 내가 회 하나는 기가 막히게 뜨거든.”
“됐습니다. 순리대로 우리는 끝까지 적으로 남읍시다.”
원동현 의원은 툴툴 대며 술잔을 입에 댔다.
“그런데…… 누구에게 당한 거요?”
안재열 전 대통령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하지만 이게 본질이다.
원동현 의원이 씁쓸하게 웃는다.
“당하기는 무슨……. 이주혜가 혼자 날뛴 거지.”
새카맣게 어린 서윤에게 당했다는 말은 쪽팔려서 못한다.
어디서 폭로를 했다가 추악한 진실을 꺼낼 거란 협박을 당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성윤입니까?”
“……!”
원동현 의원은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재열 전 대통령은 찰나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성윤이야…….’
원동현 의원은 안재열 전 대통령과 끝없이 싸웠던 사람이다.
그와 싸울 때 벼랑 끝까지 몰리며 곤욕을 치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성윤이 한순간에 보내 버렸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해도 한때 여의도의 마귀라 불렸던 사람을…….
안재열 전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성윤은 새로운 마귀인가 아니면 난세를 기다리는 영웅인가…….’
마귀나 영웅, 어느 것도 좋지는 않다.
우리의 역사가 그렇다.
마귀는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고 난세가 끝난 뒤의 영웅은 가차 없이 하늘의 버림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도 순리인가?’
대한민국 정치는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군사정권에서 민주 사회로…….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고이기 시작했다.
위에 선 놈을 보면 그 인간이 그 인간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악취가 진동한다.
하늘이 더러운 물을 쏟아 내기 위해 이성윤을 보낸 것만 같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가진 전 대통령이라는 책임.
순리에 맡겨 보기로 했다.
물론 그 전에 확인 과정은 필요하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가게를 벗어났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차량에 오르기 전에 원동현 의원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이제 알량한 잔머리는 그만두고 몸이나 챙기세요.”
“잔머리라뇨!”
“나이 들어서 아프면 약도 없어. 우리는 넘어지기만 해도 수술 받아야 해요. 왜 그걸 몰라?”
원동현 의원이 한숨을 내뱉는다.
“알았어요. 알았어. 넘어진 게 아니라 교통사고가 나버렸어요. 수술은 필요 없고 이제 그만 죽은 듯이 살아야겠습니다. 정리되면 내려갈 테니, 그때 봅시다.”
서로 적이었던 노인들, 이제는 서로를 걱정하고 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은 원동현 의원에게 눈길을 보낸 후 차에 올랐다.
그리고 성윤의 번호를 찾아 휴대폰을 귀에 댔다.
“이 의원.”
-네, 대통령님.
“민국당 대표 민유헌은 내가 남긴 씨앗이야.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려고 해. 뽑아 줄 수 있겠나?”
-네.
성윤의 대답은 자신감이 넘친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걸렸다.
“그럼, 뽑고 난 후에 연락해.”
***
그 시각, 민유헌 당 대표는 자신의 계파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아들이 호주에서 저지른 방탕한 생활이 언론을 탔었지만 이제 문제 되지 않는다.
대한당에서 연이어 똥을 싸줬기 때문이다.
아들 문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입을 연다.
“박무혁의 지지세가 만만치 않아. 더 까불기 전에 꺾어 줘야겠어. 그런데, 서안시의 땅값이 오르고 있다지?”
서안시는 리제의 대주주인 성윤의 지역구이며 제임스가 직접 투자를 거론했다.
돈 냄새를 맡은 외지인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돌아다닌다.
시끌시끌하다.
민유헌 대표가 구석에 앉은 보좌관을 보며 지시한다.
“기사 하나 준비해.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에도 연락하고.”
밥을 먹던 보좌관이 품에서 수첩을 꺼내 필기를 준비했다.
“어떤 내용으로 준비할까요?”
“이성윤이 자기 회사의 이득을 위해 서안시의 공유지를 헐값에 사들이려 한다. 국회의원이 개인의 이득을 위해 대놓고 투기를 하고 있다.”
“……!”
“그리고 리제는 대정 자동차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 대정 자동차의 대주주는 박무혁이다. 돈 많은 재벌이 권력까지 이용하며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 우리 민국당은 탐욕에 젖은 박무혁과 이성윤 의원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서민을 위한다.”
말도 안 되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다.
성윤의 투자 덕에 대한민국이 이득을 본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어떻게 하면 승리할지만 고민한다.
민유헌 대표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신당도 똥 한번 치워 봐야지?”
그 말을 민국당에서 성윤의 첩자 노릇을 하는 송건호 최고 위원이 듣고 있었다.
그가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핥는다.
‘새끼야, 네 똥이나 치워.’
< 늪으로.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