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65화 (165/300)

< 늪으로. - (2) >

***

리제 회장 제임스의 방문은 더 할 수 없이 시끄럽고 뜨거웠다.

지루한 경기 침체가 계속되던 대한민국에 제임스가 나타나 투자 또는 협업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방문이 하나의 돌파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대로 제임스는 대정 자동차와 독점 계약을 맺었으며 성윤의 지역구인 서안시에 아시아 지부를 세울 것을 약속했다.

부지의 크기는 적어도 5만 평, 크게는 10만 평이 될 거다.

직접적인 고용은 둘째치고 몇 년간 계속될 건설 현장이다.

그 덕에 일이 없어 손가락을 빨고 있던 건설사들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늦은 밤, 성윤은 제임스가 묵는 객실을 찾았다.

셋째 날의 스케줄을 끝낸 제임스는 피곤한 모습이지만 매우 반갑게 성윤을 맞았다.

그리고 거실의 중앙에 놓인 소파로 안내했다.

“하필이면 왜 서안시예요?”

제임스가 웃음을 슬쩍 흘린다.

“이유야 간단하죠. 서울과 가깝고 외곽 순환 고속도로를 타면 항구 그리고 공항과 이어지죠. 땅값 역시 마음에 들었고요. 그래서예요. 이유는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성윤은 벼랑 끝에 몰린 그에게 투자를 해 줬고 약속대로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지사를 세운다면 성윤의 지역구에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국회의원에게는 해당 지역구의 발전이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성윤의 옆에 앉은 정우가 갑자기 낄낄 댄다.

“의원님, 기자들 대단해요.”

“왜?”

정우가 성윤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포털 사이트의 기사가 보인다.

이성윤 의원, 한 밤중에 리제의 회장 제임스를 만나다.

이성윤 의원, 제임스와 절친 인증. 한밤중에 술 약속?

호텔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했나 보다.

문제는 제목이다.

절친 인증이라니…….

성윤의 미간이 확 일그러졌다.

기업가나 일반 사람은 돈이 많아지면 마냥 좋지만 정치인은 아니다.

독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성윤은 나이가 어리다.

어린놈이 돈 자랑하며 제임스 같은 회장과 친하다고 으스대면 비호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

곧장 댓글을 확인했다.

-도대체 국회의원들은 왜 이렇게 투자를 잘하냐? 땅을 사면 개발이고 투자하면 대박이네.

-저래 놓고 선거 때 되면 서민 코스프레하겠지?

-나 가난하다 월세 집 산다 이런 거? ㅋㅋㅋㅋ

예상대로 시작은 좋지 않다.

하지만…….

-이성윤이 한국 기업 투자했냐? 좀 곱게 봐라.

-한국 기업도 투자한 적 있음. 신중석 대표의 아이워치 가드. 그거 이성윤 작품임. 신중석도 제임스랑 똑같이 인터뷰했던 것으로 기억함. 망하기 직전에 이성윤이 투자해 줬다고.

-그거 말고도 가방이랑 뭐랑 더 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통 잘 안 되는 스타트 기업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가방 사업이 요즘에 중고딩 애들에게 대박 친 디자인 가방이야. 내가 알기로 이성윤 투자 성공률은 지금까지 100%.

-진짜? 미다스의 손이야?

-응, 다 성공시킨 것도 대박인데 그 회사를 몽땅 서안시로 끌고 갔어.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는 양호했다.

성윤의 시선이 다시 제임스에게 옮겨졌다.

“정확한 부지와 건설 회사는 우리 쪽에서 알아볼게요.”

“아, 그럼 감사하죠.”

제임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성윤을 믿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잠시 더 업무 이야기가 이어졌다.

앞으로 이 기술을 어디에 접목하면 좋을지에 대한 것…….

성윤이 입을 열면 제임스는 손뼉을 치며 신기해했다.

“이 의원님은 제 머릿속을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이 똑같지?”

꿈속에서 봤던 것을 이야기한 게 전부다.

그런데, 제임스는 공학적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모양이다.

그 전에 말을 돌려야 했다.

“두유 노 김치?”

제임스가 배를 잡고 웃는다.

“그 말, 열 번은 들어 본 것 같아요.”

그렇게 한참의 이야기가 끝났다.

제임스가 와인을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 두며 강한 눈빛으로 입을 연다.

“또 언제 기회가 될지 모르니까 오늘은 이 의원님과 한잔해야겠습니다. 한 병 정도는 괜찮죠?”

“저는 괜찮은데, 내일 비행기 타려면 피곤하지 않겠어요?”

“제가 원래 술을 좋아합니다. 와인 한 병쯤이야 기별도 없죠. 하하하.”

하지만 한 병이 두 병 되는 법이다.

성윤과 정우 그리고 제임스는 와인 세 병에 소주 세 병의 바닥을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

다음 날, 서안시 사무실.

정우가 성윤의 방으로 들어왔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어떤 것부터 들으시겠어요?”

“좋은 소식부터.”

“의원님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네요. 대정 자동차 독점 계약부터 서안시의 아시아 지부까지 모두 의원님의 작품이었냐며 난리예요.”

“어딘데?”

“패션 잡지요.”

“됐어. 패스해.”

미용실에 들어가는 잡지나 연예계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 묻는 질문이 똑같다.

“여자 친구 있어요? 그럼, 결혼은 언제?”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은?”

그런 시답잖은 인터뷰로 시간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궁금한 것은…….

“지지율 올라갔겠네?”

“네, 오늘 우리 당의 지지율이 23.9%. 이제 민국당과 10% 차이예요.”

원동현 의원의 성폭행 혐의에 이어 제임스의 내한으로 신당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정당 지지율 2위를 차지할 정도다.

정치 전문가들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신당의 지지율을 보며 낙관론을 쏟아 내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민국당에 필적할 것이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민국당과의 격차를 5% 이내로 좁힐 것이다 등등…….

하지만 전문가의 혓바닥은 틀린 적이 많다.

그저 기분 좋은 칭찬으로만 들어야 한다.

“그럼, 나쁜 소식은?”

정우가 성윤의 앞에 태블릿PC를 내려 뒀다.

성윤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서안시 부동산 꿈틀

정우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정효순 주임에게 들었는데요.”

정효순 주임의 남편은 서안시 부동산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세력들이 올라온 모양이에요. 기획 부동산, 강남 복부인 그리고…….”

정우가 휴대폰을 흔들었다.

발신 번호가 수십 통이 보인다.

“각 당의 국회의원, 보좌관 그리고 여러 고위 관료님들에게 쉬지 않고 연락이 오는 중이에요. 이 사람들, 어느 장소에 지부가 올라갈지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

똥 냄새가 나면 파리가 꼬이는 법이다.

기획부동산 같은 사기꾼부터 돈 냄새라면 기가 막히게 맡는 복부인 그리고 정치인까지…….

예상 못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인이 달라붙었다는 것은 예상을 했어도 짜증났다.

지금은 경기 침체의 상황이다.

좋은 투자를 받았고 기회가 생겼다면 국민에게 이득을 돌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계산기만 두들기고 있다니.

이러니까 부동산이 안 잡힌다.

“정우야, 서안시에 기웃거리는 인간들 명단 작성해서 가지고 와. 친하다고 봐주지 말고.”

정우가 능글맞게 웃는다.

“제가 친한 사람은 의원님밖에 없어요. 싹 적어 오겠습니다.”

망신을 한번 줘야겠다.

***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왔다.

성윤은 여느 때와 같이 고아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평소와 달리 부모님의 집으로 향했다.

조카 혜민이와 박대철의 딸 세진이에게 줄 선물을 가득 들고서…….

“삼촌 왔다!”

현관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말하자 혜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삼촌!”

혜민이는 성윤을 반긴다.

아니, 손에 든 선물에 더 눈길이 가는 모양이다.

“내 선물이야?”

“그럼.”

성윤은 혜민이에게 손에 든 큼직한 상자를 안겼다.

하지만 세진이는 두어 발 물러선 채로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다.

‘혹시 내 선물 안 사 왔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표정.

혜민이는 성윤의 친 조카지만 자기는 얹혀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서다.

평소에는 살갑게 굴었는데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힐끗힐끗 눈치를 본다.

가족이 소중한 날이다.

성윤이 다른 손에 든 상자를 들어 보였다.

“이건 세진이 선물인데, 안 궁금해?”

세진이는 그제야 쪼르르 달려왔다.

“감사합니다!”

혜민이와 세진이는 거실 구석에 앉아 포장지를 풀기 시작했다.

성윤이 두 아이의 옆에 앉아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줬어?”

혜민이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성윤을 본다.

“삼촌, 우리 이제 내년이면 4학년이야.”

“그런데?”

“산타가 어딨어?”

“있어.”

이번엔 세진이도 거든다.

“인터넷 찾아보면 없다고 하던데요?”

“정말 있어.”

혜민이가 고개를 저었다.

“삼촌, 우리 다 컸어.”

아이들과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방에서 아버지가 나오셨다.

“오늘 바쁘지 않아? 국회의원들 보면 이런 날 더 바쁘던데?”

“일정 마치고 왔어요. 그리고 아버지께도 선물 있어요.”

아버지의 눈이 반짝인다.

나이가 들어도 선물은 좋은 법이다.

하지만 일단 고개를 저으셨다.

“내건 왜 샀어? 저금이나 해.”

성윤은 아버지와 악수를 했다.

“국회의원과의 악수. 이게 선물이에요. 하하하.”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하신다.

악수를 하며 건네준 것.

자동차 키다.

“이게 뭐야?”

“밖에 주차되어 있으니까 가서 보세요.”

“차?”

“네, 저 서울에 올라갈 때 차 주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선물로 하나 가져왔어요.”

아버지는 이번에 경비 일을 그만 두셨다.

연세가 있으시기도 하고 일자리가 부족해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경비 일에 나선다.

나이 든 사람은 이제 경비 자리를 찾기도 어렵다.

그래서 6인승 승합차를 준비했다.

리무진 모델로 넓은 공간이 장점인 자동차다.

앞으로 용돈은 두둑이 드릴 테니 여행이나 다니시라고.

성윤과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간 아버지는 검은색 승합차를 보며 활짝 웃으셨다.

아버지가 차 문을 열고 이곳저곳 살펴볼 때 성윤이 입을 열었다.

“제 명의고요. 가족 보험으로 했으니까 기름만 넣고 타시면 돼요.”

“애들 데리고?”

“네, 그게 즐거움이잖아요.”

아버지가 슬쩍 성윤을 본다.

“혜민이하고 세진이도 예쁘지만, 친손주가 있으면 좋겠어. 그럼, 하루 종일 업고 다닐 텐데.”

성윤의 나이도 며칠만 있으면 서른하나다.

은근슬쩍 결혼하기를 바라신다.

하지만 성윤은 아직 생각이 없었다.

대답 없이 조용히 미소만 그렸다.

“이게 뭐야?”

장을 보러 갔던 어머니가 돌아왔다.

집 앞에 주차된 큼직한 차를 보더니 깜짝 놀라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며 차 키를 흔들며 말씀하신다.

“야 타.”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정우의 아재 개그를 들으며 귀가 썩어 버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진짜 아재의 개그를 듣다니…….

어머니는 아버지의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준다고 받아요? 넌 왜 이런데 돈을 쓰고 있어! 나쁜 돈 받은 거 아니야?”

“어허! 이 사람아, 우리 성윤이가 그런 돈을 받을 것 같아!”

두 분의 목소리가 커진다.

성윤이 두 분을 말리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배당금 받아서 돈 많아요. 그리고 어머니 선물도 있어요.”

성윤은 품에서 통장을 꺼내 어머니에게 건넸다.

오고가는 현금 속에 사랑이 싹트는 법이다.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케이크에 붙은 촛불을 끄며 각자 소원도 빌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성윤의 결혼을 빌었고 혜민이는 내년에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세진이는 박대철의 출소를 소망한다.

“삼촌은 뭐 빌었어?”

혜민이가 묻는다.

“대선, 잘되게 해 달라고.”

열시가 다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고 가라고 했지만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은 여기까지다.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야 한다.

***

잠시 후, 성윤은 박무혁 의원이 통째로 사 버린 빌딩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휑한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 그리고 그 앞에 앉은 박무혁 의원이 보였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부자다.

그런 사람의 크리스마스 이브라기엔 초라하다.

“왔어?”

성윤이 박무혁 의원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의자를 빼 앉았다.

박무혁 의원이 손가락으로 양주병을 툭 친다.

“한잔해.”

성윤이 조용히 잔을 들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박무혁 의원이 크게 웃는다.

“그러지 마. 자네에게 그런 소리 들으면 낯간지러워.”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고 정말 크리스마스 이브네. 원한다면 여자들 좀 부를까? 배우? 가수?”

“…….”

“농담이야.”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박무혁 의원이 빈 술잔을 내려 두며 입을 연다.

“대한당 후보는 서용우로 결정될 것 같아.”

경선의 결과는 1월 중순이 되어야 확실시된다.

하지만 대한당의 윤곽은 벌써 잡혔다.

경선으로 싸우지 말고 될 놈을 밀어주자는 분위기다.

“민국당은 민유헌과 도제성으로 압축되고 있어. 사람들은 민유헌이 유리하다고 하는데, 난 어쩐지 도제성이 꺼림칙해. 그놈은 바닥에서부터 시작했거든.”

험로를 걸어온 사람이 매력적인 법이다.

위에 서서 제왕적 권한을 행사했던 민유헌 당 대표보다 낮은 지지율로 시작해 정상에 다다른 도제성이 더 관심을 끌고 있다.

지지율이 뒤집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제성이 의원님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될 것 같습니다.”

성윤이 봤던 꿈속의 미래.

민국당의 후보가 된 도제성은 도제 바람이라는 신드롬을 만들며 대선까지 움켜쥔다.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번 대선도 그가 가져갈 거다.

그런데, 박무혁 의원이 손을 내저었다.

“도제성은 내 경쟁 상대가 아니야.”

< 늪으로.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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