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64화 (164/300)

< 늪으로. - (1) >

보좌관이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켰다.

모두의 시선이 화면으로 향한다.

이주혜 의원이 보인다.

그러더니 아래에 자막이 깔린다.

-(속보)이주혜 의원, 원동현 의원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해

“저, 저년이!”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이주혜 비례대표의 인터뷰는 계속된다.

가증스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동안 지옥 같았습니다. 입막음의 대가로 마음에도 없는 비례대표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협박과 강요를 받았고…….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눈에 핏물이 죽죽 그어진다.

주변에 있던 의원들은 헛기침을 하며 엉덩이를 뗐다.

원동현 비대위원장과 같이 있는 게 언론을 타기라도 하면 함께 곤욕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의리란 없다.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 과감히 버려야 자신의 안위를 챙길 수 있다.

이들은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끝났음을 알고 있었다.

사람이 가득했던 공간에는 이제 원동현 비대위원장과 보좌관만 남았다.

텅빈 공간에 그의 목소리가 허망하게 울린다.

“막, 막아! 막으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원동현 비대위원장도 알고 있다.

이미 그녀의 눈물이 공중파를 탔다.

대통령이 나서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보좌관의 떨궈진 고개를 보며 발악한다.

“막으라고, 새끼야!”

그 목소리와 이주혜 비례대표의 목소리가 겹친다.

-저는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진실을 밝힙니다.

그때,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지금 당장 씹어 죽여도 아쉽지 않을 이성윤이다.

그가 다급히 휴대폰을 귀에 댔다.

“이, 이 새끼야! 너지? 네가 이주혜를 꼬신 거지! 내가 의혹만으로 쓰러질 것 같아! 넌 오늘부터 대한당의 주적이야. 오늘도, 내일도 살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할 거야! 매일 매일 살얼음판을 걷게 될 거야!”

수화기 너머에서 성윤의 한숨 소리가 작게 들렸다.

마지막까지 발악하는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한심해서다.

-의원님, 저도 국회의원입니다. 이 바닥에서 몇 년 굴러먹었다고 아는 기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어디서든 제 이름이 거론되면 의원님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날 겁니다.

“뭐? 추악? 진실? 이 새끼가 진짜!”

-일류 대학을 나온 여자를 가정부로 두고! 조선 시대처럼 잠자리 수청을 들게 하고! 그 대가로 비례대표? 이게 한두 명이 아니잖아요!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입에서 까득, 치아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성윤의 목소리는 계속된다.

-더 추해지기 전에 조용히 떠나세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원동현 의원님.

뚝 전화가 끊겼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한참 동안 오도카니 서 있었다.

그러더니 파도를 만난 배처럼 몸이 흔들거린다.

보좌관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미운 정이 들었다.

“의, 의원님?”

원동현 의원이 허탈하게 웃기 시작한다.

“아하하하하.”

오랜 시간 이 바닥에서 버텨 왔다.

나쁜 짓도 했지만 좋은 일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불명예뿐이다.

늙어서도 젊은 여자를 탐하는 변태로 마무리되는 중이다.

그가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씨발…….”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원동현 비대위원장, 성폭행의 입막음으로 비례대표를 줬나

대한당 비대위원장 원동현 의원에 관한 논란이 시끄럽다.

이주혜 의원은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성폭행을 했고 입막음으로 비례대표를 권했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의 각 공기업 채용비리로 문제가 많은 가운데 국민의 세비로 활동하는 비례대표까지……(중략)…….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이주혜 의원이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정치적 음모다. 분명 배후가 있을 것. 모든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며 철저히 부인했다.

-지라시 보니까 둘이 사귀었다고 하던데? 다시 정권을 노리는 원동현이 이주혜를 부담스러워했대. 그래서 헤어지자고 선빵 친 거지. 그런데, 이주혜는 노리갯감으로 여겨졌다고 생각한 거야. 분노한 거지. 그래서 성폭행당했다며 울고불고 난리 쳤다네.

-아님. 내가 듣기로는 원동현이 성폭행 한 것이 맞음. 일단 저지르긴 했는데 이주혜가 보통 성격이 아니니까 입막음으로 비례대표를 준 거야.

-나도 성폭행에 동의해. 비례대표도 국회의원이야. 저거 다 버리고 폭로한 것은 원한이 없으면 힘들지. 성폭행 맞다.

-한 번도 안 사귀어 봤나? 원한은 사귀는 사이에 더 많이 생겨. 자신은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배신당하면 빡치지. 차였다고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잖아?

-원동현 씨 응원합니다. 예쁜 사랑 하세요.

-진짜 원동현은 인간쓰레기다. 딸보다 어린 여자에게 저러다니…….

-이주혜 울어서 화장 지워진 것 보니까 안 예쁜데…….

성윤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앞을 바라봤다.

앞에는 한동일보 우명진 기자가 보인다.

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대한당이 끝났네요.”

“네.”

채정학 의원이 모든 잘못을 끌어안고 당 대표를 사퇴한 것이 얼마 전이다.

구원투수로 원동현이 올라왔지만 시작부터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 대한당은 다음 투수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

우명진 기자가 말을 잇는다.

“비대위원장이 바뀌기 전까지, 기자들은 더 자극적인 루머를 쏟아 낼 겁니다.”

기자들은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다.

클릭 한 번 더 받기 위해 말초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포털 사이트를 도배할 거다.

대한당은 이런 상황에 대통령 후보 경선과 비리 해결 등 많은 고민을 이어 가야 한다.

정상화되려면 적어도 몇 달은 지나야 할 게 분명하다.

우명진 기자가 성윤을 보며 묻는다.

“신당에 유리한 쪽으로 판세가 돌아가고 있는데…… 굳이 절 보자고 한 이유가 뭐죠?”

지금껏 대한당의 몰락은 민국당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박무혁이라는 대안이 나왔다.

대한당의 지지율을 신당이 흡수하는 중이다.

꽹과리 치며 풍악을 올려도 모자란데, 성윤은 바쁜 시간을 쪼갰다.

우명진 기자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왜?’

우명진 기자는 성윤과 친분이 크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얼굴 몇 번 보고 거래를 했으며 오며가며 인사 정도 하는 사이다.

그런데, 식사를 제의하다니.

이유가 궁금하다.

그가 알기로 이유 없이 만나자고 할 사람이 아니니까.

성윤이 젓가락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돌리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퇴사 준비하고 계시죠?”

“……!”

우명진 기자의 눈이 찌푸려진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다.

성윤의 꿈속에서 우명진 기자는 ‘리얼 팩트’라는 정치 전문 언론사를 만들었다.

언론사는 정당과 이념에 상관없이 모든 정치인을 까며 ‘모두 까기’ 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게 이 시기쯤이다.

“……제 뒷조사를 하셨습니까?”

“아뇨. 전혀.”

“그런데…… 어떻게……?”

“제가 관상을 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어떤 말을 해도 믿지 않으실 테니, 길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관상요? 지금 놀리는 겁니까?”

정치 집단과 맞설 언론사를 만들려면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성윤에게 걸려 버렸다.

당황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격양되기 시작했다.

“의원님, 기자를 놀려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눈치 보며 사는 월급쟁이고 기레기라 불리지만 작은 문제로 정치인을 물어뜯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지금의 뒷조사!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성윤은 여전히 느긋하다.

“뒷조사한 적 없고 놀리는 것도 아니에요. 자세한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래요. 어쨌든, 기자님의 퇴사와 창간에 대해 다른 사람은 모를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것조차 우명진은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급기야 능글맞은 가면을 집어던지고 사납게 덤벼든다.

“뭡니까? 입 다물어 줄 테니 의원님의 꼬리는 밟지 말라는 겁니까!”

“…….”

“그럴 수는 없어요. 권력자에게 배를 까고 재벌들에게 꼬리치고! 그런 언론사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 만드는 거예요. 다 뿌리 뽑아 버리려고!”

언론의 정의는 죽었다.

정의라 우기는 사기꾼만 득실거린다.

우명진 기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국민은 알 권리가 있어요! 빌어먹을 알 권리! 그 권리를 위해서라면 의원님도 제 타깃이 될 수 있습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퇴사하세요. 시간 없으니까 사업자 등록부터 하시고요.”

우명진 기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성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그만 가겠습니다.”

우명진 기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정치인은 말을 빙빙 돌리다가 허점을 찾는 순간 쑤시고 들어온다.

그리고 뼈까지 남기지 않고 으적으적 씹어 먹는다.

그래서 지금 성윤의 말과 행동이 꺼림칙했다.

틈을 내보이기 전에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제가 기자님이 만들 회사에 날개 한번 달아 드리고 싶습니다.”

‘날개’라는 단어가 바짓가랑이를 잡아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만 틀어 성윤을 본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리제의 회장 제임스가 곧 내한하죠? 단독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시죠? 제가 그 회사의 최대 주주입니다.”

세계적인 회장과의 단독 인터뷰는 단번에 이름을 알릴 기회.

거부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기사 하나 올리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 아부할 필요가 없다.

어딜 가나 프리패스…….

그가 더듬더듬 묻는다.

“바, 바라는 게 무엇입니까?”

“별 것 없습니다. 계획한 것처럼 진실을 위해 목숨 걸고 취재해 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제 그림자를 밟아도 상관없습니다.”

“……상관없다고요?”

“제가 우명진 기자님의 회사에 꼬리를 밟힐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으니까요.”

우명진 기자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잠시 머리를 굴려봤지만…….

“의원님께 득 되는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요.”

성윤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제가 타깃을 정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 상대가 각 당의 당 대표일 수도 있고 대통령일 수도 있겠죠.”

“……!”

“그럼, 서로 좋지 않을까요? 기자님은 원하시는 대로 정치인의 뒷모습을 잡을 수 있고 저는 제 나름대로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고. 좋은 말로 공생 관계. 기자님과 저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언론의 아군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한동일보 정석태 회장이 도와주고 있지만 그는 이미 은퇴한 사람.

게다가 나이가 많다.

새로운 바람을 이겨 내기 어렵고 언제까지 성윤의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명진 기자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술병을 들며 입을 연다.

“이야기가 길어지겠네요.”

***

-미국 ‘리제’의 제임스 회장이 오늘 오후 인천 공항에 도착, 3박4일간의 방한일정에 들어갔습니다. AI의 리더라 불리는 제임스 회장은 한차례의 강연과 청와대 방문 그리고 대정 자동차 등 산업계 인사들도 만날 예정입니다.

아나운서의 모습이 사라지고 출국장이 나타났다.

게이트가 열리고 제임스가 캐리어를 끌고 나온다.

세계적인 기업의 대표가 되었지만 복장은 소박하다.

청바지에 두툼한 패딩을 입고 있다.

그를 본 기자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기다리던 경호원이 그들을 막으려 하자 제임스가 만류한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경호원들이 길을 비켰고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한국의 첫 인상은 어떠십니까?

-대주주가 이성윤 의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성윤 의원과 어떻게 만난 겁니까?

제임스가 빙긋이 웃는다.

-이성윤 의원은 제 은인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좌절했을 때, 이성윤 의원이 나타났죠. 그리고 제가 가진 기술의 가능성만 보고 투자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이름이 ‘리제’입니다. 이성윤의 ‘리’ 제임스의 ‘제’. 우리 둘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조합을 하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했죠.

기자들은 눈을 깜빡거렸다.

성윤이 단순한 투자자인 줄 알았는데 은인이라니…….

게다가 기업명에 ‘이’ 씨가 들어가다니!

실시간으로 기사가 올라갔다.

(속보) 리제의 ‘리’는 이성윤의 ‘리’

그리고 한 기자가 잽싸게 또 묻는다.

-혹시 이번 방한 중에 이성윤 의원도 만날 예정이십니까?”

-Of course.

또 기사가 올라갔다.

<속보> 제임스 회장 이성윤 의원만큼은 반드시 만날 것

제임스가 입을 연다.

“또 질문이 있나요?”

기자들의 눈이 반짝인다.

그들은 제임스가 한국의 기자들을 무시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해 보이면서도 상당히 호의적이다.

정말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기자가 다급히 묻는다.

“두유 노 김치?”

부끄러움은 시청자의 몫이었다.

***

텔레비전으로 현장을 보던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법안 제출해야겠어. 기자가 되면 ‘두유 노’라는 말을 못 하게 만드는 법안.”

“바로 준비할게요. 저건 국회를 부숴서라도 못하게 막아야겠어요.”

정우도 결의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늪으로.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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