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62화 (162/300)

< 역으로 이용하면. - (4) >

***

“이성윤이가 정교훈을 만났다고?”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물었다.

그러자 앞에 선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내 지역구를 흔드는 게 박무혁이 아니라 이성윤이었나?”

“그런 것 같습니다.”

혹시 몰라 정교훈의 옆에 사람을 붙였다.

그런데, 주인 만난 똥개처럼 쪼르르 성윤을 찾아갔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손에 든 모나미 볼펜을 똑딱이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똑딱똑딱, 불안하게 울린다.

“정교훈…… 그놈은 불만이 많아. 몰라야 될 것도 많이 알고 있지. 이주혜와의 관계를 나불거렸을 거야. 그럼, 이성윤은 어떻게 움직일까?”

보좌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모나미 볼펜 소리만 똑딱이며 울린다.

한참 후 그 소리가 뚝 멎었다.

적막해진 공간에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뱉어진다.

“생각해 보면, 대한당에서 일어난 사건의 중심에 그놈이 있었을 것 같아.”

대한당은 짧은 시간에 생각할 수 없는 곤욕을 치렀다.

백형욱, 김대성, 김선희 등의 거물이 우르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누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성윤은 철저하게 수면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놈이 들어온 시기와 사건이 터진 날이 묘하게 겹치는 것 같지 않아?”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성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 갔다.

“박무혁이가 이성윤을 참모로 두고 있어. 이제 고작 서른밖에 안 처먹은 애송이를…….”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들고 있던 모나미 볼펜을 다시 똑딱이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이 점차 사납게 변한다.

한때, ‘여의도 마귀’라 불렸던 사람이다.

정계의 중심에서 한발 물러선 후 감을 잃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던 사나운 마귀로…….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이성윤은 이주혜에게 연락할 거야. 내 목을 치려면 증거가 필요하니까. 내 생각이 맞는다면 놈은 증거를 찾아다니는 애송이야.”

백형욱, 김대성, 김선희의 사례를 기억하면 앞으로 성윤이 어떻게 행동할지 손바닥 보듯 훤히 보였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입가에 비웃음이 채워진다.

“아직 어려. 멍청해. 증거 싸움은 법정에서나 하는 거지. 정치는 포장 잘하는 놈이 이기는 것인데…….”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손에 든 모나미 볼펜을 내려 뒀다.

그리고 보좌관을 향해 강한 목소리로 지시한다.

“이주혜에게 연락해! 이성윤에게 연락이 오면 같이 호텔에 가라고. 술을 먹이든 약을 처먹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몸으로 유혹하라고 해.”

“네?”

예상 못 한 지시다.

보좌관의 눈이 커졌다.

원동현 비대위원장과 이주혜 비례대표는 꽤 오랜 시간 함께했다.

나이와 신분이 있어 쉬쉬하지만 감정적으로도 찐득하다.

비례대표까지 넣어 줄 정도니까.

그런데, 같이 호텔에 가라니…….

보좌관이 머뭇거리자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호통을 친다.

“대답 안 해!”

“하, 하겠습니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흡족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이 이성윤의 마지막 날이 될 거야.”

보좌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의원님, 죄송합니다만…… 이주혜 의원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차피 여자는 많아.”

단호한 대답에 보좌관은 마른침을 삼켰다.

살을 맞댄 사람도 미끼로 사용하다니…….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에게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두려움의 존재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창밖으로 오늘을 살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을 보며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껄껄껄 웃는다.

“오랜만에 젊어지는 것 같아. 정치는 이래야지.”

그는 국민의 손에 의해 배지를 달고 앉아 있다.

하지만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메마른 권력 싸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발버둥질.

그게 삶의 활력소다.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박무혁에게 연락해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해. 그놈이 자신의 목을 소중히 할지 아니면 참모를 소중히 할지 궁금해졌어.”

***

“아, 한국에 오신다고요?”

-네, 약속은 지켜야죠.

성윤은 미국의 AI 회사 ‘리제’의 회장 제임스와 통화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자동차 회사와 미팅을 잡을 생각입니다. 생각해 두신 곳이 있습니까?

“대정 자동차라고 있어요.”

-아, 대정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정 자동차는 박무혁 의원이 대주주로 있으며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된다.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고 싼 맛에 타는 장난감 취급을 받고 있다.

국내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원가절감과 귀족 노조 등의 이류로 쌍욕을 처먹는 중이다.

경쟁력이 점차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자동차는 국가 기간산업이며 그 나라의 기술력 척도를 보여 준다.

게다가 대기업의 욕심을 버리면 자동차라는 상품 안에 전자와 소프트, 무선, 제어 등의 중소기업과 협업도 가능하다.

“대정과 미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죠.”

-감사합니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시선을 틀었다.

정우가 소파에 앉아 뭔가 계산하는 게 보인다.

“뭐해?”

“주식을 팔면 우리 돈이 얼마가 되는지 확인하고 있어요. 이게 지금 오름세를 멈추고 조정 단계거든요? 제가 볼 때는 더 올라가기는 힘들고…….”

“안 팔아.”

조정을 거친 후 더 쭉쭉 올라갈 거다.

지금 팔면 호구다.

정우가 한심한 눈으로 성윤을 본다.

“의원님, 거품이 꺼지면 어디까지 떨어질지 몰라요.”

성윤이 정우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정우는 딱 호구의 눈을 하고 있다.

오를 때 사고 떨어질 때 파는 호구…….

“넌 절대 주식 같은 거 하지 마. 평생 정치해야 해.”

진심으로 한 말이다.

하지만 정우는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의원님?”

“투자해서 내가 실패한 적 있어?”

정우는 입을 꾹 닫는다.

성윤의 말 대로 실패한 적이 없으니 할 말이 없다.

성윤은 휴대폰을 내려 두며 팔짱을 꼈다.

지금은 ‘돈’ 계산을 할 때가 아니다.

당장 일을 그만둬도 자식, 손자까지 먹고살 돈은 있으니까.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원동현 의원…….’

머릿속에서 그를 끌어내릴 갖가지 계획이 세워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어디까지 준비하고 있을까?’

그는 이 바닥에서 십수 년을 뒹굴며 탐욕을 버리지 못한 여의도의 마귀다.

그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정교훈 시의원이 성윤을 찾아온 것도 알고 있을 거다.

성윤이 어떻게 행동할지도 예상할 게 분명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움직여야 한다.

‘내가 이주혜를 찾아갈 거라고 생각할 거야.’

전술의 기본은 상대의 의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연락을 기다린다면 연락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성윤의 시선이 정우에게 옮겨졌다.

“정우야, 일단 송파구 기초 의원들을 날려.”

기초 의원을 짓밟는 것은 파리를 잡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전화 한 통이면 끝나니까.

질질 끌 필요가 없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 후 방을 떠났다.

성윤은 다시 휴대폰을 손에 든다.

‘이제 다음 계획.’

성윤은 박무혁 의원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

그 시각, 박무혁 의원은 한정식집에 있었다.

그 앞에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말하고 있다.

“이성윤은 곧 스캔들에 휘말릴 거야. 박 의원은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한동안 신당은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박무혁 의원이 무심한 눈으로 원동현 비대위원장을 바라본다.

“이유가 궁금하군요.”

“그놈이 내 지역구를 흔들려고 있어. 예의 없이 남의 집 마당까지 쑤시고 들어왔지. 가만히 놔두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젓가락으로 시뻘건 육회를 집어 입에 넣는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박영훈 부회장을 만났어. 가정사가 꽤나 복잡한 모양이야. 정계의 일은 잠시 놔두고 가정에 집중하도록 해. 가화만사성 아닌가?”

박영훈 부회장과 손잡았다고 협박하는 거다.

양쪽에서 공격을 시작하면 박무혁 의원이라도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계속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 당의 정상화야. 그러려면 국민의 관심을 자네 당으로 옮겨 둬야 해. 그게 내 목적이니,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자네가 아니라 이성윤을 타깃으로 잡아도 상관없어.”

박무혁 의원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다.

하지만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은 원동현 비대위원장을 간절히 말리고 싶었다.

조금만 더 지껄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하지만 보좌관이 나설 자리가 아니다.

안절부절못하며 앉아 있는 게 전부다.

그때…….

지이이잉, 박무혁 의원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이성윤이다.

박무혁 의원이 휴대폰을 귀에 댄다.

“말해.”

-원동현 의원 잡겠습니다.

“그래.”

박무혁 의원이 휴대폰을 내려 뒀다.

변해 가던 눈빛이 다시 평소처럼 느긋하게 바뀌었다.

그가 원동현 비대위원장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연다.

“지금껏 빼앗는 삶을 살아왔지 손에 들어온 것을 놓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성윤을 내놓기 싫다는 건가?”

“네.”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살기로 가득한 눈동자가 박무혁 의원을 노려본다.

“협상은 결렬인가?”

“저는 협상을 하고 싶었는데,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

“이 의원이 의원님의 마당을 지나 안방으로 향하고 있어요. 말려 보려 했지만, 젊은 친구라 그런지 의욕이 앞서고 있네요.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뭐?”

박무혁 의원이 휴대폰을 건넸다.

속보로 나온 기사가 보인다.

송파구 기초 의원의 각종 비리 혐의

기초 의원의 자질 문제, 도마 위에 오르다

성윤이 움직였다.

승냥이 같은 기자들이 앞다투어 기사를 쏟아붓고 있다.

박무혁 의원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이 의원은 이제 안방 문을 열겠죠. 안방에는 의원님이 계실 테고요.”

“……이 정도로 내가 겁을 먹을 것 같나?”

“그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팔 하나 사라졌다고 겁을 먹으면 전쟁터에 설 자격이 없어.”

“전쟁터에는 젊은 사람들이 서겠습니다. 이제 그만 댁으로 돌아가세요. 그럼, 명예는 지켜 드리죠.”

명백한 선전포고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눈썹이 꿈틀댔다.

“박 의원…… 어설프게 똑똑하면 일찍 죽는 법이야.”

“지금은 팔 하나…… 하지만 다음 탄환은 의원님의 머리를 노릴 겁니다.”

“박무혁!”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호통을 내질렀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상관하지 않는다.

“할 말은 끝난 것 같습니다. 그럼,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박무혁 의원은 방을 벗어났다.

전전긍긍 앉아 있던 그의 보좌관이 잽싸게 뒤를 따르더니 복도를 걸으며 조심스레 묻는다.

“그래도 원동현 의원은 국회의 어른인데…….”

“원 의원이 그랬잖아, 전쟁터라고. 전쟁터에서 장유유서를 따지면 죽는 것은 나야. 그리고 궁금해, 이성윤이 여의도 마귀까지 잡아먹을 수 있을지.”

“네?”

“이성윤이 마귀를 잡아먹는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나를 도와준다면…… 내 꿈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아.”

박무혁 의원은 기분 좋게 웃으며 복도를 벗어났다.

***

혼자 남은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보좌관이 긴장된 얼굴로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표정을 살핀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평온하다.

“보좌관, 세월이 많이 지났나 봐. 내가 박무혁 저놈을 무릎 위에 올리고 놀아 줬었는데 어느새 저리 커서 싸우자고 덤벼들고 있어.”

“…….”

“어른이라면 이럴 때 회초리를 들어야지.”

성윤이 송파구 기초 의원을 날려 버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타격은 있겠지만 금방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번 일로 확신했다.

‘역시 이성윤은 아마추어야.’

기초 의원 따위를 잡을 때도 성윤은 증거를 내밀었다.

‘그렇게 해서는 나를 이길 수 없어.’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얼굴이 마귀처럼 일그러졌다.

당했으면 갚아 줘야 한다.

그 결과는 지독할 정도로 처절할 거다.

그때 보좌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기자입니다.”

왜 연락했는지는 뻔하다.

기초 의원들과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커넥션을 물어보려는 거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 봐. 기초 의원들과 어떤 사이도 아니었다고 못 박아 두도록 해.”

보좌관이 몸을 틀어 휴대폰을 손에 쥔다.

“오 기자님, 오랜만…….”

-원동현 의원님과 이주혜 의원이 정말 사귀는 사이예요?

“네?”

-지금 지라시가 돌고 있는데…….

보좌관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동시에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휴대폰도 진동하기 시작한다.

보좌관이 다급히 입을 연다.

“받지 마세…….”

하지만 늦었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휴대폰을 귀에 댄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핏대가 솟구쳐 올랐다.

“무슨 헛소리야! 그 기사 쓰기만 해 봐! 죽여 버릴 거야!”

그는 성윤이 증거를 갖고 움직이는 아마추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윤은 아마추어가 아니다.

악마다.

< 역으로 이용하면.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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