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으로 이용하면. - (3) >
대한당, 하루 걸러 ‘탈당’. 지역 기반 뿌리째 뽑히나
대한당의 탈당 행렬이 가속화되며 지역 민심도 휘청거리는 중이다.
대한당 소속 정교훈 등 송파 을 시의원 네 명이 송파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당 탈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대한당이 지역 민심을 읽지 못한다며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바람’이라고……(중략)…….
이들과 함께 송파 을 지역구 책임당원 및 일반당원 약 1천 명이 동시에 대한당을 떠났다.
대한당 당사, 비대위원장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입에서 ‘까득’ 하고 소리가 울렸다.
눈동자에는 분노가 가득하다.
‘내 지역에서?’
본인이 자리를 잡은 송파 을에서 대규모 탈당이 일어났다.
지역 관리도 못하는 사람이 비대위원장을 한다며 조롱하는 인간도 생겨났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이 주먹을 꽉 쥔다.
주름진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탈당한 자들이 이동할 곳이 어디인지는 뻔하다.
‘박무혁…….’
씹어 먹어도 불쌍하지 않을 인간이다.
이 모든 원흉이다.
반드시 죽여 버린다.
그의 눈이 불을 뿜을 때 문이 벌컥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왔다.
“기사 내리라고 지시했습니다. 10분 내로 사라질 겁니다.”
“송파에 가 봐야겠어. 다들 모이라고 해. 지금 당장!”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호통에 보좌관은 다급히 방을 떠났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허공을 노려본다.
이런 일은 빨리 해결해야 한다.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뜨리는 법이니까.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직접 지역구에 가기로 했다.
잠시 후, 송파구 원동현의 사무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사나운 눈빛으로 주변을 노려봤다.
모인 기초 의원들이 절절맨다.
눈을 마주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정교훈이가 선동했다고?”
송파구 청년 위원장이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며칠 전부터 이놈 저놈 만나고 다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의원님이 못마땅해 한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그놈 직업이 뭐지?”
“법무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초 의원은 공무원 등을 제외하고 겸직을 할 수 있다.
월정 수당과 의정 활동비를 포함하면 평균 연봉이 약 5천만 원이나 되지만 대부분은 다른 직업을 갖고 또 돈을 번다.
정기 의정 활동이 연간 약 80일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마음껏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이번에 입주하는 아파트 단지가 있지? 그쪽 등기 업무 털어 봐. 떨어지는 것 있으면 기자에게 넘기고.”
아파트 입대위는 시의원이 운영하는 법무사와 손잡는다.
그래야 아파트 관련 민원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어서다.
‘순수하게 지역을 위해 일하는 기초 의원은 없어.’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말을 잇는다.
“탈당해서 박무혁이에게 가고 싶은 놈은 지금 갈 수 있도록 해. 단, 그 길의 끝에는 교도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완벽한 협박.
기초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답한다.
“네!”
“그리고 당원이 천 명이 빠져나갔어. 지방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다시 채워. 청년 위원장은 오늘부터 실적을 보고 해.”
실적 보고…….
그 실적이 이들이 가질 공천권이 될 거다.
기초 의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당원 확보는 보험회사의 영업과 같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도 당적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입이 힘들다.
그래서…….
“미안한데, 내가 당비 낼 테니까 이름만 좀 올려 줘.”
이렇게 돈을 대신 내며 영입한다.
부탁 때문에 머릿수만 채우는 권리 당원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래도 저것은 양반이다.
어떤 경우는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고 입당 원서를 작성해 당원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시의원들은 불만을 토해 내지 못한다.
입술만 움찔거리고 있다.
“대답 안 해! 지금 당장 배지 반납하고 싶어!”
“하겠습니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개처럼 꼬리 흔드는 시의원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그들을 향해 강하게 회초리를 들었다.
이제 지역구의 일은 이들이 발 벗고 나설 테니 조만간 안정화될 거다.
그럼 다음은 박무혁 의원이다.
‘늙은이를 바쁘게 했으면 너도 바빠 봐야지. 지금은 좋다고 웃고 있겠지? 많이 웃어라……. 곧 울게 될 테니까.’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이번에 떠난 시의원을 폭탄으로 만들 생각이다.
비리로 똘똘 뭉쳐 신당에서 ‘펑!’ 하고 터질 폭탄…….
사람들은 말할 거다.
“신당이라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똑같아.”
그 뒤에 박무혁 의원의 스캔들이 터진다면?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눈에 살기가 돈다.
***
그 시각, 성윤은 서안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각 지역의 민원 처리다.
그동안 일이 바빠 잠시 미뤄 뒀던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때,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이번에 탈당한 정교훈 시의원이 초췌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 뒤에 정우가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다.
정교훈 시의원이 막무가내로 들어온 모양이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정우야, 차가운 오렌지 주스 하나 가져다줘.”
정교훈 시의원은 영혼 빠진 눈으로 소파에 앉는다.
그러더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입을 연다.
“지금 친한 시의원에게 연락 왔는데요. 원 의원님이 지역구에 와서 기초 의원들을 모아 놓고 단도리를 쳤다고 합니다. 제 뒷조사를 시작하셨다고…….”
정교훈 시의원은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성격을 잘 안다.
그는 배신자를 가만둘 사람이 아니다.
사지를 찢고 목을 잘라 성벽에 걸어 둬야 분노가 풀릴 사람이다.
겁에 질린 그의 표정을 보며 성윤이 입을 연다.
“예상했습니다. 원동현 의원님, 다른 것은 몰라도 행동파라는 것만은 배울 만한 분이니까요.”
“……어쩌죠?”
그는 성윤의 말만 듣고 대한당을 탈당했다.
멍청하게 그 뒤에 올 후폭풍과 책임질 각오 없이 대한당을 배신한 거다.
이제야 걱정한다.
하지만 성윤은 느긋하다.
다리를 외로 꼬며 입을 연다.
“저쪽에서 의원님을 쫓을 만큼의 발자국을 남겼나요?”
“네?”
“의원님을 도우려면 그 발자국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양말 속의 구린내까지 알고 있어야 하죠. 그래야 원동현 의원님이 어떤 칼을 들이대도 치명상은 피할 수 있으니까요.”
“……!”
정교훈 시의원은 망설인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새끼가 가장 병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정우가 들어와 오렌지 주스를 내려 두고 나갈 때까지도 입을 꾹 닫고 있다.
급기야 성윤의 호통 소리가 사무실을 채웠다.
“의원님!”
“전 큰 문제는 저지른 적이 없어요!”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다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나 몰라라 할 수밖에 없어요! 의원님이 지금 착각하시는데, 의원님은 지금 무소속이에요.”
맞다.
정교훈 시의원은 아직 입당하지 않았다.
비를 피할 지붕도 바람을 막을 돌담도 없다.
허허벌판, 맹수가 우글거리는 곳에 혼자 서 있는 거다.
아니, 대한당과 박무혁의 신당이라는 고래 싸움에 본격적으로 새우등이 박살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교훈 시의원은 입술을 달달달 떨기 시작했다.
성윤이 차갑게 말한다.
“대한당이 칼을 가는데, 그 타깃이 뭔지도 모른 채 의원님이라는 폭탄을 끌어안을 수 없어요.”
정교훈 시의원은 ‘네가 나오라며!’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른 놈이 잘못인 거다.
“제가 법무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입대위에서 연락이 옵니다.”
성윤이 곧장 휴대폰을 귀에 댔다.
“정우야, 들어와 봐.”
정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의원님이 법무사를 운영하시고 아파트 단지의 등기 업무를 맡았어. 지방자치법에 어긋나나?”
지방자치법 제 36조에 따르면 기초 의원은 지위를 이용하여 재산상의 권리나 이익을 취득하면 안 된다.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의적인 것은 걸리지만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애매하네요.”
“여의도 사무실에 연락해서 법률을 검토해 봐.”
“네.”
정우는 간단히 답하고 방을 떠났다.
성윤의 시선은 다시 정교훈 시의원에게 향했다.
법률 검토라는 말에 그는 가슴이 답답한지 계속해서 한숨만 쉬어 대고 있다.
성윤은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정교훈 시의원을 폭탄으로 만들어 신당에 던진다?’
괜찮은 전략이다.
신당의 장점은 아직 죄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초 의원의 비리가 터지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 위는 더 더러울걸?’이라는 프레임 공격이 가능하다.
거기에 박무혁 의원을 향한 선동적인 스캔들이 던져지면, 대한당은 비리 프레임을 신당에 던지고 ‘우리는 깨끗해졌어요!’라는 개소리를 지껄일 수도 있다.
성윤이 입술을 쓸었다.
‘공격을 역으로 이용하면?’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표정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성윤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정교훈 시의원을 향해 몸을 굽혔다.
“원동현 의원님의 성격은 저보다 의원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정교훈 시의원은 몇 년이나 원동현 비대위원장의 종 노릇을 해 왔다.
몸에 새겨진 공포는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마른침을 삼킬 때 성윤의 목소리는 계속됐다.
“의원님이 등기 업무로 이득을 취한 게 있다면 법률 검토에 이상이 없어도 문제입니다. 원동현 의원님은 사건을 크게 부풀릴 능력이 있으니까요. 기초 의원의 도덕적 해이로 공격을 하겠죠. 그걸 알고 계시니까 의원님도 곧장 저를 찾아오신 거고요.”
정교훈 시의원은 입을 닫고 듣기만 한다.
건조한 날씨도 아닌데 입술이 쩍쩍 갈라지고 있다.
“원동현 의원님이 칼을 들었습니다. 피해도 치명상입니다.”
정계에서의 치명상, 운이 좋으면 은퇴고 보통은 감옥이다.
조금 있으면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를 가는데, 감옥에 다녀오면…….
“방, 방법이 없습니까?”
“먼저 찌르는 겁니다.”
“……!”
“함께했던 시의원들, 1년에 80여 일을 일하며 5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분들, 그러면서도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주민에게 봉사하려면 월급을 올려 달라는 분들……. 그분들의 발자국을 알려 주세요.”
정교훈 시의원은 주저한다.
바로 며칠 전까지 함께 술을 마시던 사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등에 칼을 꽂으라니…….
성윤이 그 마음을 읽었다.
“마음 약한 생각 하지 마세요. 그분들은 벌써 의원님의 뒤를 캐고 있을 겁니다. 먼저 캐서 보고할수록 원동현 의원님께 예쁨 받을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것은 의원님입니다.”
“그, 그게…….”
정교훈 시의원의 목소리는 작게 시작됐다.
하지만 금방 격양되기 시작한다.
원동현 비대위원장에게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분노로 표출되는 거다.
“박 의원이라고 있어요. 그놈은 건설사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감사하는 지자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있어요! 건설 현장에서 나오는 돈은 공구리 밑에 숨겨 둘 수 있다고 자랑하면서요. 그리고 정 의원이라고 있는데, 이번에 시청에서 업무용 PC를 구매할 때 중소기업에서 1억을 받았어요! 개새끼들!”
그의 흰자위에 붉은 핏줄로 죽죽 그어졌다.
처음에는 남의 치부를 들춰내는 것을 머뭇거리더니 지금 은 1인 시위라도 할 기색이다.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미쳤어요! 아주 다 미쳤어! 제가 원 의원에게 왜 찍힌 줄 압니까? 원래 지난 총선에서 저를 비례대표에 넣어 준다고 약속했었어요. 있는 돈, 없는 돈, 대출까지 끌어서 원 의원 술값을 내줬으니까요.”
그는 시의원들의 비리를 토해 낸 후 원동현 비대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격양된 감정의 표출은 받아 줘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그가 배신 또는 버려졌을 시 어떻게 행동할지 예상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아요. 한심하게 생각하시겠죠. 위에 있는 인간들이 골수까지 빼먹고 모른 척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화가 나요. 저보다 나은 사람이 비례대표가 됐다면 저도 인정하고 평소처럼 아부했을 거예요.”
뭔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흔들린 감정은 숨겨야 할 이야기까지 내뱉는 법이다.
눈이 벌게진 그가 계속해서 말한다.
“그런데 원 의원 이 새끼가 비례로 넣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이주혜 의원 있죠?”
“아, 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뽑힌 의원이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예쁘장하다.
예순이 넘은 의원들이 전화번호를 받으려고 애쓴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임팩트 없이 거수기로 지내는 중이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교훈 시의원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런 말 들어 보셨죠? 국회의원 집에서 청소하는 아줌마가 비례대표가 된다는 말. 그게 진짜일 줄은 몰랐네요.”
“……!”
원동현 비대위원장은 10년 전에 사별했다.
현재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집안일은…….
정교훈 시의원이 오렌지 주스를 벌컥벌컥 마신 후 냉소적으로 웃는다.
“이주혜 의원이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최고 좋은 대학을 나온 그 아줌마가 거기서 2년 동안 청소하고 밥하고! 씨발, 집안일만 했겠어?”
시의원들을 통해 카운터를 날리려고 했는데, 이거…….
< 역으로 이용하면.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