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60화 (160/300)

< 역으로 이용하면. - (2) >

***

“스타트 기업에 투자한 것인데,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습니다.”

신당의 당사, 성윤이 앞을 바라봤다.

박무혁 의원이 앉아 있었고 그 뒤로 그의 보좌관이 보였다.

박무혁 의원이 빙긋이 웃는다.

“기술만 보고 스타트업에 투자할 정도면, 공학에 대해 잘 아나 봐?”

전혀!

진짜 하나도 모른다.

꿈속을 통해 본 미래로 찍어 맞춘 게 전부다.

박무혁 의원이 즐겁게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 의원 덕에 우리 당의 평균 재산이 확 올라갈 것 같아. 알지?”

정치인은 청렴결백이 무기다.

돈 많은 것은 죄다.

그건 그렇고…… 평균 재산이 올라가네 어쩌네 하는 말을 박무혁 의원에게 듣는 것이 이상하다.

“상의할 게 있어서 보자고 했어.”

“말씀하십시오.”

박무혁 의원이 손을 흔들자 뒤에 서 있던 보좌관이 성윤의 앞으로 서류를 내려놓았다.

“오늘 자 지지율입니다.”

일단 압도적인 민국당은 뒤로 제쳐두고, 신당과 대한당의 차이는 여전히 2%다.

사건 없는 하루였기에 지지율의 변화가 있을 수 없지만 신당의 마음은 조급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품이 꺼질 테니까.

박무혁 의원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가리키며 말한다.

“단기간에 지지율을 끌어 올릴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 자네 같은 일벌레가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지?”

박무혁 의원의 눈빛에 성윤이라면 뭔가 해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보인다.

기대를 했으면 부응해야 한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님께서 선택해 주셨으면 합니다.”

“말해 봐.”

“민국당의 지지율을 가지고 오는 것은 현 시점에서 어렵습니다.”

박무혁 의원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신당은 대한당 출신으로만 채워져 있다.

민국당 지지자들이 볼 때는 대한당과 똑같은 쓰레기들의 집합소다.

“이제 대한당에는 골수 지지층만 남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지지율을 뺏어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골수 지지층, 이들은 곧 죽어도 대한당과 민국당을 외친다.

해당 당이 어떤 잘못된 정책을 내놓아도, 비리가 터져도 상관없다.

무조건 지지한다.

이들이 당을 생각하는 마음은 믿음을 넘어 종교에 가깝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만 전해진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성윤의 말을 끊지 않는다.

귀담아 듣고 있다.

“그럼, 남은 것은 무당층을 확보하는 것인데……. 이 사람들은 선거 전에나 생각을 굳히는 경우가 많아서 이것 역시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으로써는 답이 없다는 건가?”

“아뇨, 조금 더 크게 보셨으면 합니다. 대한당과 민국당이 경선에 몰두하고 있을 때 우리는 지지율이 아니라 정치 지형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은 팔짱을 끼더니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해하기 어렵네, 정치 지형을 바꾸자니…….”

“내년에는 대선만 있는 게 아닙니다.”

“……!”

대통령 경선 후보로 시끄럽지만 6월에는 또 하나의 큰 축제가 열린다.

바로 지방선거다.

뒤에 서 있던 보좌관이 자신도 모르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것도 어렵습니다. 일단 경선은 조금 있으면 끝납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시장이나 도지사에 도전할 사람을 우리 당에 영입…….”

성윤이 손을 저었다.

“아뇨, 시장이나 도지사급을 노리는 게 아닌데요. 기초 의원을 섭외하자는 겁니다.”

국회의원은 지역구를 지배하고 있다.

기초 의원은 손바닥이 닳도록 비벼 대며 용비어천가를 토해 내야 한다.

룸살롱에 데려가 술을 사 주고 봉투를 찔러주고.

그래야 알량한 공천권을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기초 의원이야말로 풀뿌리 정치죠. 도로에 나무 하나 심는 것도 기초 의원이 발로 뛰어 공무원을 움직이는 거니까요.”

“기초 의원 중에 공천에서 멀어진 사람을 섭외하자?”

“섭외만 된다면, 대한당과 민국당의 기초 의원들이 대규모 탈당을 한다면, 그래서 우리 당으로 오게 된다면…….”

적의 목을 치는 게 아니라 다리를 박살 낼 계획이다.

그럼, 아래에서부터 바뀐 정치 지형으로 민심은 요동칠 거다.

예로부터 역사가 뒤바뀌는 순간은 민심이 흔들릴 때다.

성윤이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치우고 휴대폰을 내려 뒀다.

그리고 서울시 지도를 화면에 띄운 후 천천히 확대해 나갔다.

“처음은 흔들 곳은 이곳이었으면 합니다.”

송파구 을, 잠실본동, 석촌동, 가락 1동 등의 지역을 묶은 곳으로 2004년에서 16년을 제외하고는 격전지로 뽑히는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당의 권력을 손에 쥔 원동현 비대 위원장이 이곳의 국회의원이다.

박무혁 의원이 미소를 짓는다.

“송파 을이라……. 여기는 지역 의원만 뺏기엔 아쉽잖아? 보좌관, 원 의원님의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

“일흔셋입니다.”

박무혁 의원의 시선이 다시 성윤에게 향했다.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지 기초 의원을 수족처럼 부린다고 들었어. 이번 기회에 팔다리를 잘라 드려. 필요한 것은 모두 지원하지.”

***

“무혁이가 뒷주머니에 숨긴 돈요?”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이 능숙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물었다.

앞에 앉은 원동현 비대 위원장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재벌이라는 사람들…… 말도 안 되는 광산과 예술품을 사며 세계 각지에 돈을 숨겨 놓고 있잖나. 박 의원이라고 다를까?”

그가 천천히 원동현 비대 위원장을 바라본다.

원동현 비대 위원장은 그의 아버지 박 회장 세대의 사람이다.

박영훈 부회장을 어린애 취급하고 있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광산’은 지난 달 박영훈 부회장이 2,700억을 숨기기 위해 주머니에 쑤셔 넣은 페이퍼 컴퍼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에 원동현 비대 위원장은 능글맞게 답한다.

“장사치가 흔히 하는 게 거래잖나? 박 의원의 주머니를 털어 주면 광산에서 금을 캐든 석탄을 캐든 눈감아 주겠네.”

박영훈 부회장의 칼질이 멈췄다.

원동현 비대 위원장은 재벌과 싸울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 우리와 전쟁을 하겠다는 겁니까?”

“이 사람아, 전쟁 같은 거창한 소리가 아니라 단순한 물물 거래야. 내가 젊은 사람과 싸워서 뭐 하겠나?”

“의원님…….”

박영훈 부회장의 치아 사이에서 조금은 분노한 목소리가 흘렀다.

원동현 비대 위원장이 빙긋이 웃는다.

“나도 좀 봐주게. 이 나이에 비대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어. 하고 싶어서 했겠나? 대한당은 내가 한평생 일궈 놓은 밭이야. 그런데, 다 망가졌어. 내 평생이 망가진 거야.”

“죄송합니다. 무혁이의 지갑은 투명합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니까 괜한 헛걸음 하지 마십시오.”

원동현 비대 위원장이 포크를 들고 스테이크를 쿡쿡 쑤신다.

그때마다 스테이크에서는 핏물이 푹푹 흘러나왔다.

“없다고?”

“네.”

“자네 아버지 박 회장은 아직 병원에 있지? 큰아들이 오가며 살펴야 하는데, 검찰을 오가게 생겼으니 어쩌나? 이제 얼굴은 뉴스에서만 보게 생겼어.”

“의원님!”

“김선희에게 정치자금 보내고 대리인을 검찰에 보냈지? 그것도 뉴스에 나오면 어떨까?”

원동현 비대 위원장은 박무혁 의원이 대한당을 망가뜨린 원흉으로 지목했다.

박무혁 의원만 사라지면 구심점을 잃은 떨거지들이 다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그래야 대한당을 재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이 심했다.

박영훈 부회장이 테이블을 ‘쾅!’ 하고 치며 일어섰다.

분노로 몸이 파들파들 떨린다.

감히 대정 그룹의 부회장에게 협박을 하다니.

지금 당장 노인의 얇은 목을 틀어쥐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하지만 원동현 비대 위원장은 여전히 느긋하다.

“요즘 재벌들…… 할아버지가 만들고 아버지가 닦아 준 길을 편히 걸어왔어. 그래서 그런가? 정치하는 인간이 얼마나 독한지 몰라.”

박영훈 부회장은 물끄러미 원동현 비대 위원장을 바라본다.

주름진 얼굴, 흰머리…….

그들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하지만 여의도의 마귀라 불리던 매서운 눈빛은 그대로다.

따르는 가신들도 많다.

‘무혁이와 싸운다면?’

세상사 가장 즐거운 게 재수 없는 인간들의 싸움 구경이다.

“무혁이가 숨긴 돈은 없지만 숨긴 것처럼 만들 수는 있습니다.”

원동현 비대 위원장이 방긋 웃는다.

“아, 그거면 되네. 국민은 재벌을 믿지 않아. 정치인은 더욱 믿지 않고. 그런데, 박무혁은 재벌에 정치인이야. 모든 약점을 다 가진 거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나? 박무혁의 주변에 국민이 원하는 오물을 던져!”

똥 냄새가 진동하면 파리 떼 같은 기자들이 모인다.

그들은 푼돈을 벌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의혹을 증폭시킬 거다.

‘박무혁 의원은 이혼남인데, 이혼한 이유가 뭔 줄 알아요? 그게…….’

‘박무혁 의원이 장애 아동에 왜 후원하는지 알아요? 사실은…….’

“국민의 입에서 ‘난 박무혁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원동현 비대 위원장이 사납게 웃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원동현 비대 위원장이 떠난다.

그 뒷모습을 박영훈 부회장이 한참을 노려본다.

“병신 새끼.”

박영훈 부회장에게 세상은 돈이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생명 연장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할 수 있다.

원동현 비대 위원장의 옆에 선 가신들도 얼마든지 돈으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겁먹은 척 연기하는 것도 힘들었다.

“김 실장.”

“네, 부회장님.”

비서실장인 김용준이 박영훈 부회장의 옆에 섰다.

“원 의원 계파 인물을 알아봐.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계속 저 늙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혁이 주변으로 먼지 좀 주워 봐. 작은 것도 괜찮으니까.”

김용준 비서실장이 원동현 비대 위원장이 나간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작은 것이면…… 원 의원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상관없어. 정치하는 새끼들 명분 좋아하잖아? 이것도 명분이야. 무혁이와의 싸움에 나를 끌어들여서 여차했을 때 내가 나서지 못하도록 깔아 둔 명분.”

박영훈 부회장이 텅 빈 레스토랑의 한가운데서 담배를 입에 문다.

“씨발, 저런 새끼가 국회의원이라니. 이 나라가 참…….”

김용준 비서실장은 물끄러미 박영훈 부회장을 바라봤다.

“너 같은 재벌도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는다.

***

“네, 감사합니다.”

커피숍에 앉아 있던 성윤은 비서실장 김용준에게 전화를 받았다.

원동현 비대 위원장이 다녀갔다는 이야기와 박무혁 의원을 타깃으로 정한다는 계획을 들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가?’

꿈속을 통해 본 미래, 박무혁 의원은 다음 대선에 출마한다.

그리고 처절하게 깨진 후 정계를 은퇴하고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게 이런 선동의 결과였나?’

가능성은 있다.

말도 안 되는 일로 비난을 받으면 이 바닥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니지.’

박무혁 의원이 정계를 떠날 정도로 선동이었다면 성윤이 기억 못 할 리 없다.

대한민국이 떠들썩했을 테니까.

“의원님?”

들려온 목소리에 성윤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송파구 을의 시의원 정교훈이 보인다.

나이는 쉰한 살, 대한당 소속으로 원동현 비대 위원장의 아래에 있다.

일단 원동현 비대 위원장의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마주한 시의원을 포섭해야 한다.

시의원 포섭이 원동현 비대 위원장의 목에 칼을 겨누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아, 죄송합니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의원님을 저희 당으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저를요?”

시의원은 뜬금없는 제안에 눈을 깜빡인다.

하지만 그 역시 정치인이다.

빠른 시간에 정세를 판단한 후 신당에서 자신을 원하는 이유를 찾아냈다.

‘송파 을은 격전지야. 대한당과 민국당이 아니라 신당도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있어. 지방선거 전에 기초 의원을 포섭해서 민심을 얻겠다는 건가?’

답을 내렸으면 몸값을 올리기 위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데…….

성윤이 그 줄다리기의 줄을 끊어 버렸다.

“다음 공천이 힘들다는 것 알고 왔습니다. 괜히 힘 빠지게 밀당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렇게까지 말해 줬지만 시의원은 망설인다.

공천도 주지 않을 대한당과 박무혁 의원의 신당을 저울질하고 있다.

멍청한 짓이다.

이럴 땐, 결심을 당겨 줘야 한다.

“제가 이 커피를 다 마실 동안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의원님 말고도 오겠다는 분들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요. 참고로 이 커피……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네?”

성윤은 단번에 커피를 마신 후 잔을 테이블에 내려 뒀다.

정교훈 시의원은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보며 다급히 말한다.

“이, 이 의원님! 탈당 문제를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할 수는 없습니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 계속 대한당에 충성하시길 바랍니다.”

성윤은 가차 없이 일어섰다.

곧바로 원하는 답이 나온다.

“할, 할게요! 탈당할게요!”

당연한 결과다.

대한당에 남아 있다가 정치판을 떠나는 것보다 신당에 합류해 당선 가능성을 1%라도 높이는 게 이득이니까.

성윤은 시의원을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어려운 결정 하셨습니다.”

국회의원은 기초 의원을 쥐락펴락한다.

기초 의원 역시 국민의 손으로 뽑힌 정치인이지만 자신이 부릴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시의원에게 당할 거라 생각하는 국회의원은 없다.

하지만 성윤은 시의원을 통해 원동현 비대 위원장의 얼굴에 똥을 집어 던질 계획이다.

< 역으로 이용하면.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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