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으로 이용하면.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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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약 1년 앞둔 시점에 삼십 여 명의 국회의원이 신당을 만들었다.
여의도는 술렁인다.
대한당은 울상이고 민국당도 마냥 좋아하지 못한다.
앞으로의 지지율이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민국당의 지지율은 대한당의 삽질로 얻은 반사이익이다.
그들이 잘해서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이익이 신당으로 향하고 무당층이 옮겨 간다면…….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계획했던 민국당은 급히 지도부를 소집했다.
“대선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그 기간이 1년이에요. 내일 당장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정치판에서 1년은 길어요. 박무혁의 신당을 잡아야 합니다.”
민국당은 대변인을 앞세워 선전포고를 했다.
“박무혁 의원의 신당 창당은 정치적 꼼수로만 보입니다. 박무혁 의원의 과거는 대한당의 지도부였습니다. 하지만 비리 세력이 저지른 사건의 책임을 지지 않고 신당을 창당해 도망갔습니다. 그가 신당을 창당하든 뭘 하든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동반 책임을 지기는커녕 어떤 사과의 한마디 없이 대한당의 의원을 모아 창당한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네티즌도 난리다.
-정치 쇼 아니야? 이러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대한당과 합당! 뻔하다. 정치 퍼포먼스지. 도로 대한당 가겠네. 퉷퉷!
-그러다가 합당 안 하면 책임질 거냐? 머리가 액세서리도 아니고 생각 좀 해라. 박무혁이 뭐가 아쉬워서 퍼포먼스를 해?
-합당은 합리적 의심이지. 김선희 비리가 터진 후에 연예인 스캔들 몇 개 나왔는데 덮지 못했잖아? 그래서 나온 게 박무혁 창당. 시기가 적절하지 않아?
-음모론자 등판! 정상 생활 가능?
-대한당도 노답인데 신당은 그 떨거지들이 모인 곳이야. 지지율이 박살 난 다음에 현실을 파악하고 눈물을 흘릴 것으로 예상돼.
-나도 그렇게 생각함. 신당이 잘된 적이 있나? 그리고 박무혁 신당에는 열성 지지자도 없어. 이 정도 기사의 댓글도 씹어 먹지 못하고 털리는 중이잖아? 신당은 실패할 거야.
-떨거지는 아닌 것 같아요. 인지도 높은 사람 꽤 많음. 이성윤도 있고.
-이성윤? 5년 후 10년 후면 모를까, 아직 네임드는 아니지. 이성윤이 단독으로 나오면 찍을 사람 있어?
-자, 자…… 진정들 하시고. 손가락만 털지 말고 손모가지 걸고 내기 한번 하죠? 지지율 몇 퍼센트 찍을지.
정치 밥을 먹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신당의 첫 지지율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인테리어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당의 당사.
도배와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는 회의실이다.
보좌관들이 노트북과 핸드폰을 늘어놓고 초조한 표정으로 이곳저곳 전화를 하고 있다.
“강 기자님? 지금 보도 자료를 보냈는데 봤어요? 지지율 5%, 7%, 10%, 세 가지 버전을 만들어서 보냈거든요? 오탈자 검사 싹 해서 보냈으니까 지지율이 나오면 그냥 올려 주시면 됩니다.”
다른 보좌관도 마찬가지다.
“윤 기자님! 기사 내려 주세요! 아니면 제목을 바꾸든지! ‘신당, 시작부터 10% 이상의 지지율을 노린다.’ 이게 뭡니까? 이러면 우리 욕먹는 것 몰라요? 아, 좀! 겸손하게!”
기자에게 모바일 상품권을 보내는 보좌관도 보였다.
언론은 신당의 이미지를 좌우할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갑질은 씨발…….”
한 보좌관이 허탈한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며칠 전만 해도 대한당의 깃발을 들고 기자들과 당당히 마주했는데 지금은 철저한 을의 관계다.
다른 보좌관들의 얼굴을 살펴도 피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게 보인다.
어떤 보좌관의 와이셔츠에는 며칠 전 먹었던 김치 국물이 그대로 물들어 있다.
“홍보실은 언제 만들어지는 거야? 우리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해?”
“해야지. 뼈 빠지게 일해서 창당 성공하면 공천 하나 주겠지. 아무래도 공신인데.”
“아, 진짜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몇 퍼센트 나올 것 같아요?”
한 보좌관이 공대출 의원의 보좌관에게 물었다.
공대출 의원의 보좌관은 이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원하는 것? 아니면 예상하는 것?”
“예상.”
“한…….”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마저 들린다.
“7%?”
“아이고…… 그만큼만 나와도 소원이 없겠네요.”
그때…….
“13.7%.”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정우가 보인다.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연다.
“전 13.7% 예상합니다.”
“뭐?”
보좌관들이 낄낄 대고 웃기 시작했다.
“박 보,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대한당이 14%대야. 그런데, 우리가 13.7%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3만 원 빵. 내기 할래요?”
“내기? 콜! 가장 근접한 사람이 다 먹기. 어때?”
여기저기 “콜!”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이다.
오전 9시 50분.
의원들이 회의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 굳은 표정이다.
박무혁 의원이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연다.
“10시에 보내 준다고?”
여론조사 기관에서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보내 주기로 했다.
그 시간이 10시.
남은 시간은 10분이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막해졌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란 말도 있지만 첫 진입을 화려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신당에 대한 우려를 잠재울 수 있다.
잠시 후,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시지가 도착한 거다.
“JH 갤럽입니다. 지금 메일 보냈다고 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에게 향한다.
성윤도 긴장된 한숨을 내뱉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의원들은 성윤의 협박으로 끌려온 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보좌관들은 다르다.
그들은 죄가 없다.
의원이 가는 곳으로 끌려온 게 죄다.
성윤은 그들의 거취도 고민했었다.
신당이 잘됐을 경우, 다음 총선에서 새롭게 뽑힐 의원의 아래에 넣어 줄 생각이다.
하지만 최악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패했을 경우 보좌진 삼백여 명이 백수가 될 수도 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보좌관이 입을 연다.
“맞혀 보실래요? 맞히시는 분께는 3만 원을 드리죠.”
벤처 의원이 발끈했다.
“아, 진짜! 답답하게 굴지 마! 심장 쿵쾅거려, 이 사람아! 이 나이에 병원 가면 약도 없어!”
“아, 네. 12.8% 찍었습니다.”
“뭐?”
“12.8%요.”
대부분이 7에서 8%를 예상했다.
그런데, 12.8%라니…….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잘, 잘못된 것 아니야? 전화라도 해 봐!”
보좌관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아, 또 왔습니다. LS 써치입니다. 이번에는…… 12.6%.”
“대, 대한당은 몇이야?”
“대한당은 소폭 상승해서 15.4%로 집계되었습니다.”
집권 여당과 2%밖에 차이가 안 난다.
의원들과 보좌관들은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이 보낸 메일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됐어!”
벤처 의원은 주먹을 꽉 쥔다.
“아, 귀찮게 보도 자료를 다시 만들어야 하네요.”
너스레를 떠는 보좌관도 보인다.
비록 민국당과 대한당에 이어 3위로 시작한 지지율이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으니까.
모두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을 때, 성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고작?’
대권까지 남은 시간이 1년이다.
12%의 지지율로는 대권을 손에 쥘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오픈발, 국민의 기대감과 거품이 섞여 있다.
국민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냉소적인 목소리와 함께 거품이 쭉쭉 빠질 거다.
게다가 시기도 좋지 않다.
각 당의 경선이 끝나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진다.
대선 레이스에서 3위를 보는 국민은 거의 없다.
대부분 1위와 2위만 찾아본다.
‘될 놈을 뽑아야 해.’라는 게 지배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대한당이 싫어. 그런데, 박무혁이 당선될 리가 없잖아? 차라리 민국당을 뽑지.”
“민국당은 아니지. 하지만 박무혁을 뽑는 것은 무효표나 마찬가지야. 대한당을 뽑아서 민국당을 막아야지.”
최선이 아니라 최악만큼은 피하자는 인식.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한당과 민국당을 지지할 거다.
그럼, 신당의 지지율은 쭉쭉 빠질 게 분명하다.
‘어떻게 해야 지지율을 올릴 수 있지?’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어떻게든 불을 피워 국민의 관심을 받아야 한다.
성윤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표정을 알아챈 공대출 의원이 조심스레 묻는다.
“이 의원, 정치 혐오가 만연한 시기에 첫 지지율이 12%면 대단한 거야.”
성윤의 시선이 박무혁 의원에게 틀어진다.
다행히 박무혁 의원도 샴페인을 터뜨린 얼굴이 아니다.
웃지도 않고 찡그리지도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다.
“의원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나쁘지 않아.”
좋은 게 아니라 나쁘지 않다?
그 말에 모두 조용해진다.
터졌던 웃음도 잠잠해지며 두 사람에게 집중됐다.
그들은 눈빛으로 묻고 있다.
여당과 고작 3% 차이인데, 이 정도면 성공한 게 아니냐고…….
그러자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연다.
“의원님들,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더 바삐 뛰어야 합니다. 쉴 시간은 없습니다. 지역구로 돌아가 지지자를 만나고 향우회를 방문하세요. 아파트 단지를 찾아 민원을 해결하세요. 우리가 국민과 함께한다는 것을 발로 뛰어 증명하세요. 앞으로 대선까지 매일 선거운동처럼 지내야 할 것입니다.”
민심은 사무실 책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발로 뛰고 얼굴을 마주하며 현장을 느껴야 얻을 수 있다.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의 뒤는 절벽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3위가 버틴 선거가 있었습니까? 이대로라면 우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진 군소 정당으로 기록될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국회의원으로 남고 싶다면 이를 악물고 뛰어야 할 겁니다.”
의원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지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성적표를 받았지만 그 성적으로 일류 대학을 갈 수 없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박무혁 의원이 의원들의 굳은 표정을 살피며 조용히 말을 잇는다.
“제 첫 번째 목표는 하나입니다. 여러 분과 함께 곯아떨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싶습니다. 그 장소가 청와대였으면 좋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은 위기감을 준 후 목적을 토해 내며 희망을 안겨 줬다.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잠시 후, 성윤도 서안시로 향했다.
조수석에 앉은 정우는 싱글벙글 웃고 있다.
“왜 그렇게 웃어?”
“한수 실장님, 그리고 의원님?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말씀하세요. 피자? 파스타? 청국장?”
“뭐야? 적금 탔어?”
정우가 주섬주섬 만 원짜리를 한 다발 꺼낸다.
“100만 원 넘어요.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말씀하세요. 오늘 제가 쏠게요. 스포츠 토토 해서 땄어요! 보좌관끼리 지지율 내기를 했거든요? 다 6%, 7%, 8%에 거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딱 13%를 걸었죠. 으핫핫핫핫!”
***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치인을 꼽아 보라면 당에 상관없이 두 명을 말한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획은 그은 한상국 대통령과 안재열 전 대통령이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흘러가기 마련.
먼 옛날 사림과 훈구가 그랬고 동인과 서인도 그랬다.
한상국 대통령과 안재열 전 대통령으로 구분되었던 시대도 저물고 있다.
성윤은 꿈속에서 봤던 미래를 바탕으로 현실을 예측한다.
아직 각 당의 경선이 끝나지 않았지만 대한당은 서용우, 민국당은 도제성, 신당에는 박무혁이 대선 후보로 나설 것이다.
‘꿈속에서 봤던 선거의 강자 도제성, 대한당을 결집하고 모든 지지를 받을 서용우……. 이대로라면 박무혁 의원님은 쭉정이가 될 텐데, 어쩌지? 야당이 할 수 있는 대통령 발목 잡기도 힘들고…….’
대통령은 레임덕이다.
뒷방 늙은이를 때려 봤자 티도 나지 않는다.
‘대한당은 비리에 내성이 생겼고…….’
해결법을 찾느라 머릿속에 쥐가 날 것 같다.
대선 레이스 전에 포기할 수 없는 지지율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당의 지지자들이 표를 갉아먹지 말고 합당하라며 들고일어날 게 분명하다.
‘결국…….’
안재열 전 대통령을 당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성윤은 노트북 화면을 보며 ‘민국당’을 검색하려 했다.
그런데…….
‘어?’
실시간 검색어에 이성윤이 보인다.
‘뭐지?’
이름을 눌러 확인했다.
기사가 주르르륵 터져 나왔다.
제목부터 눈살이 찌푸려진다.
재벌이 된 국회의원 이성윤
다급히 클릭해서 기사를 확인횄다.
미국의 AI 회사 ‘리제’의 주가가 20일 연속 급등하고 있다. 월가에서 로또라고 불리는 ‘리제’는 자동차에서 의료기기까지……(중략)……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 AI 기술을 보유한 곳이다. 놀라운 것은 이 회사의 최대 주주가 국회의원 이성윤……(후략)…….
미국에 투자한 사업이 상장했다.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다.
지이이잉, 휴대폰이 진동한다.
발신 번호는 박무혁 의원이다.
“네, 의원님.”
-부자네?
진짜 재벌에게 부자라 불렸다.
< 역으로 이용하면.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