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54화 (154/300)

< 미사일 발사 버튼. - (2) >

박무혁 의원도 전화를 하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성윤이 설미혜를 찾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죄송합니다.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됐어. 이유가 뭐든 잘 도와주라고 해.”

-알겠습니다.

노인은 박무혁의 정보통이다.

그리고 설미혜 마담에게 뒷돈을 주어 룸살롱을 운영하기도 한다.

노인이 막 전화를 끊으려 한다.

“잠깐만.”

-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내 보좌관이 이성윤을 감시하고 그러나?”

-네?

“아니야. 됐어. 그거 못 하게 하고 나중에 이성윤 소개해 줄게.”

-……소개해 준다고요?

밖으로 나갔던 성윤이 다시 들어오고 있었다.

박무혁 의원은 노인의 뒷말을 듣지 않고 통화 종료 버튼을 꾹 누른다.

그리고 성윤이 옆에 앉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묻는다.

“무슨 전화를 밖에 나가서 하는 거야?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내용인가?”

“아뇨, 대한당을 터뜨릴 폭탄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폭탄?”

“김선희 사무총장을 폭탄으로 사용해서 대한당의 지지율을 5% 이상 떨어뜨리겠습니다. 그럼, 김선희 사무총장과 손잡은 박영훈 부회장도 멀쩡하지는 못할 겁니다.”

성윤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일을 숨길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박무혁 의원이 물끄러미 성윤을 바라본다.

“김선희 사무총장의 사건…… 혹시 유흥과 관련된 일인가?”

“네, 맞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입에 문다.

“그래, 그렇게 해. 그럼 내가 할 일은 슬슬 탈당 날짜를 잡는 거지?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지. 신호만 줘.”

“모레는 어떨까요?”

“모레?”

“네. 제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박무혁 의원이 크게 웃는다.

“나도 예상치 못한 탈당인데? 세상이 깜짝 놀라겠어.”

박무혁 의원이 잔을 들며 조용히 말을 잇는다.

“재밌겠네.”

“하하.”

정치판이 뒤집어지는데 재미라니…….

성윤이 어색하게 웃었다.

박무혁 의원이 성윤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며 말한다.

“나중에 선물 하나 더 줄게. 이 의원이 가진 지금의 정보력은 약해.”

“정보력요?”

“기대해.”

잠시 후, 성윤은 박무혁 의원과 헤어졌다.

경호원 장한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서안시로 향한다.

성윤의 입가에 미소는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만 머릿속은 방금 박무혁 의원이 했던 말로 복잡하다.

-유흥과 관련된 일인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말투…….

성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꿈속을 기억해 보면 전 당 대표도 쉽게 얻은 정보가 아니었다.

해당 지역의 말단 공무원부터 건설사 하청 업체의 차장, 과장, 대리까지 싹 털어 내며 겨우 얻어 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뒷조사를 하고 있었나? 아니면…….’

지난번에도 박무혁 의원은 성윤이 엄대필을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알아냈었다.

‘이번일과 지난 일을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은 단 두 명.’

정우와 설미혜다.

정우는 당연히 아니다.

항상 붙어 있어도 속마음을 들어 봐도 정우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하나.

설미혜가 의심스럽다.

그런데…….

‘정보력을 선물해 준다고?’

***

-대한당 경선 후보 마감을 이틀 앞둔 오늘, 박무혁 의원이 탈당 선언을 했습니다.

화면이 바뀌며 박무혁 의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는 가운데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연다.

-지난 몇 년간, 부끄러운 스캔들로 얼룩진 대한당을 바로 세우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당을 떠나 실리와 합리를 내세운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겠습니다.

화면에는 다시 아나운서가 나타났다.

-박무혁 의원의 예상치 못한 탈당 선언에 대한당은 지도부를 모아 놓고 4시간 30분 동안 박무혁 의원을 설득했지만 합의점을 도출해 내지 못했습니다.

채널이 돌아갔다.

-박무혁 의원의 탈당으로 대한당의 집단 탈당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대한당의 열성 지지자들은 통합을 하지는 못할망정 분열을 야기한다며 박무혁 의원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채널이 바뀌었다.

-대한당 당사 앞에서는 대한당 지지자 백여 명이 진을 치고 박무혁 의원의 탈당을 규탄했습니다. 이들은 ‘의원직을 사퇴하라!’며 강력히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박무혁 의원은 당사 앞에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시위대가 몰려 욕을 퍼붓는 중이다.

-개새끼야! 넌 친일파급 기회주의자야!

-넌 영원한 배신자가 될 거다! 씨발!

-배신자는 무슨! 반역자지!

박무혁 의원 한 사람이 대한당에 주는 무게감은 컸다.

게다가 지금은 각 당이 대선 모드로 돌입하는 중이다.

대한당 지지자들의 분노는 충분히 예상됐다.

-사퇴해! 돈이나 쓰고 살아!”

박무혁 의원이 차량으로 가는 길이 시위대에게 막혔다.

이십여 명의 경호원이 그들을 밀쳐 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시위대는 순간 긴장한다.

박무혁 의원의 경호원들이 보통 무서운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

박무혁 의원은 경호원들을 멈춰 세웠다.

그가 뚜벅뚜벅 시위대를 향해 걸어간다.

잠시 겁을 먹었던 시위대는 다시 욕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가!”

“그냥 여기서 죽어!”

“탈당을 번복해! 제발!”

박무혁 의원이 그들의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지나칠 정도로 정중한 태도에 욕을 지껄이던 시위대의 목소리가 한순간 조용해졌다.

“죄송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하겠습니다.”

***

대한당 당사, 채정학 당 대표와 각 지도부 그리고 주진만 원내 대표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박무혁 의원의 탈당은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계속된 회의를 하며 위기의 출구를 고민한다.

채정학 대표가 빈 의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김선희 사무총장은 아직 연락이 안 됩니까?”

김선희 사무총장은 회의실에 없었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

채정학 대표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잠깐의 적막 후, 김선희 사무총장의 계파 의원이 조용히 입을 연다.

“김선희 사무총장이 언론사를 만나고 다니며 수습하고 있지 않을까요?”

“수습요? 제 의견도 없이 혼자 움직인다는 겁니까? 어서 연락해 보세요!”

그 말에 한 의원이 테이블을 ‘쾅!’ 하고 치며 일어섰다.

분노한 눈빛으로 채정학 대표를 노려보며 강하게 말한다.

“대표님! 박 의원이 탈당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표님의 지도력이 문제가 됐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도 당 대표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채정학 대표는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물이 났다.

김선희 사무총장은 한정식집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만든다.

그리고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박영훈 부회장의 비서실장 김용준이 도깨비 같은 얼굴로 눈알을 부라리며 노려보고 있다.

그녀는 대한당이 뒤집어진 것보다 쩐주의 호출이 더 급했다.

“박무혁 의원이 탈당했습니다. 이러면 경선을 거치지 않고 대선에 나갈 수 있잖아요! 같은 당에 계시면서 이런 것 하나 파악하지 못합니까!”

김선희 사무총장이 다급히 말한다.

“같은 당에 있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에요. 그런데, 대선에 나갈 수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요? 약속했던 것은 박무혁 의원의 탈당이 아니라 대선이잖아요.”

이제 50억을 받았다.

박무혁 의원이 대선에 나가지 못하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녀의 눈동자는 욕망으로 가득했다.

비서실장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부드러운 눈매로 김선희 사무총장을 향해 묻는다.

“방법이 있습니까?”

“원래 이성윤을 보내려고 준비했던 게 있어요. 그걸 박무혁 의원에게 사용하면 될 거예요.”

그녀는 원래 성윤의 성추행을 목표로 했었다.

하지만 박상혜 의원의 첩자질로 계획이 노출되며 전면 수정했다.

더 강하고 악독한 것으로…….

“뭐죠?”

“성폭행.”

비서실장의 눈이 커졌다.

“성폭행요? 박무혁 의원이 성폭행을 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박무혁 의원은 마음만 먹으면 온갖 미녀를 불러낼 수 있다.

그런데, 성폭행이라니…….

“정치 싸움은 누가 더 그럴듯한 사실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죠. 도박에 빠진 여배우 하나를 섭외했어요. 연말 시상식에서 연기상까지 탔던 사람이니까 연기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여배우의 이름을 검색해 비서실장에게 건넸다.

화면에는 청순가련의 이미지로 인기를 끄는 여배우가 보인다.

김선희 사무총장이 계속 말한다.

“이 여배우가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열거예요. ‘박무혁 의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입막음으로 5억을 받았다. 이 일이 알려지면 찢어 죽이겠다는 협박도 당했다.’ 사람들은 믿을 거예요. 개돼지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않거든요. 감성에 흔들리고 선악만 나누죠. 그리고 박무혁 의원은 재벌이에요. 사람들에겐 무조건 나쁜 놈이죠. 실패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요.”

비서실장은 마른침을 삼킨다.

‘미친…….’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라니.

비서실장 자신도 깨끗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은 소속된 기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소속된 국가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쓰레기만 가득하다.

비서실장이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연다.

“진실이 드러나면요?”

김선희 사무총장이 활짝 웃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나라 재판은 길어요. 판결이 나올 때는 새로운 대통령이 청와대를 차지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성범죄는 여성의 일관된 증언이 완벽한 증거예요.”

두 사람은 한정식집의 주차장으로 나왔다.

멀어지는 김선희 사무총장의 차를 향해 허리를 굽혔던 비서실장이 혀를 끌끌거리며 몸을 바로 세운다.

그가 휴대폰을 귀에 댄다.

“이성윤 의원님, 접니다.”

성윤은 서안시 사무실에 있었다.

비서실장을 통해 김선희 사무총장의 계획을 들은 후 휴대폰을 내려 뒀다.

“진짜 미쳤네.”

박무혁 의원의 탈당 소식, 그리고 뒤이어 다른 의원들이 탈당할 때까지 미사일 버튼은 가만히 두려 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김선희 사무총장은 더 악랄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넘었다.

계획은 틀어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미사일 버튼을 눌러야 한다.

“정우야, 그리고 장한수 실장님.”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정우야, 지금 한동일보 정석태 회장님 만나러 가. 출국해서 동남아 순회공연 한 번 더 다녀오셔야겠다고 말씀드려.”

“네, 터뜨리는 건가요?”

“어.”

정우의 얼굴을 즐거워 보인다.

곧장 재킷을 걸친 후 밖으로 나간다.

성윤의 시선이 장한수에게 향했다.

“실장님은 나갈 준비 해 주세요.”

곧장 움직였다.

김선희 사무총장은 성격이 급하다.

그녀가 움직이기 전에 끝장을 내야 한다.

차를 타고 그녀의 사무실로 향하며 성윤은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김재형 검사님? 송연아라는 여배우가 있어요. 상습적으로 불법 도박을 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잃은 돈이 10억에 가깝다고 하네요. 채권자들에게 쫓기기 전에 설렁탕을 야식으로 먹여 줬으면 좋겠는데요.”

그 시각.

김선희 사무총장은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

블라인드를 걷고 창밖을 보며 여배우 송연아와 통화하는 중이다.

“내일 성종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도록 해. 기자들은 내가 부를 거야. 걱정하지 마. 뒷일도 막아 줄게. 정권 바뀔 때까지만 휴양지에서 쉬다 와. 내일 눈 부어 있어야 하니까 오늘 밤에 눈물 좀 많이 흘리고.”

김선희 사무총장은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비웃듯 치솟는다.

“박무혁은 끝났어. 아쉽네, 이성윤한테 쓰려고 했는데.”

문이 열리고 그녀의 보좌관이 들어왔다.

“언론사에 전화 돌렸습니다. 내일 오전 10시, 성종 호텔이라고 못 박아 뒀습니다. 공중파와 케이블, 종편까지 모두 올 겁니다.”

“잘했어.”

보좌관이 잠시 망설인다.

“그런데…….”

“뭐?”

“너무 센 것 아닌가 합니다. 박무혁 의원도 분명 반격을 할 텐데……. 우리는 진실도 아니고…….”

김선희 사무총장이 고개를 저었다.

“거짓이라니? 진실이야. 박무혁이 이혼한 지 얼마나 됐지? 그동안 성욕을 어떻게 풀었겠어? 돈도 많은데 여자 불러서 돈 주며 풀었겠지.”

“…….”

“이게 시작일 거야. 그동안 박무혁에게 돈 받았던 여자들, 합의금 받겠다고 너도나도 들고나올 거야. 어쩌면 박무혁도 몰랐던 아들 딸과 상봉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보좌관은 언론 식지 않도록 타이밍 보다가 계속 터뜨리기만 해.”

김선희 사무총장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는 듯 깔깔거렸다.

세상이 그녀를 도와주고 있다.

박무혁 의원이 탈당하며 채정학 당 대표에게 사퇴 압박이 들어온다.

그 자리는 그녀가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차지할 거다.

그리고 박무혁이 박살 나면 대정 그룹이 또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올 거다.

‘내일 경선 출마 선언을 하고 비대위원장까지 맡을 거야. 거기에 자금까지 넉넉하면 언론을 주무를 수도 있지.’

그럼, 서용우 전 총리를 누르고 경선에서 승리할 수도 있다.

대한당을 결집하고 대선에 나가면 다시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다.

그녀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른 계파를 만나 포섭해야 한다.

열심히 전화번호를 검색하는데 진동이 울린다.

발신 번호는 이성윤…….

‘이성윤?’

그녀가 평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 의원? 무슨 일이야?”

-도시락이라는 룸살롱을 운영하고 계셨네요? 아무리 자금이 부족하셨어도 국회의원이 성매매를 알선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요?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얼굴이 창백해진다.

몸이 와들와들 떨려 온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지?”

-지금 사무총장님을 잡으러 가겠습니다.

< 미사일 발사 버튼.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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